[2022 철학학교] 시즌3 4장 8절~5장2절 요약 모음

정군
2022-10-12 19:44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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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2022-10-12 19:50

    4장8절, 역동성 혹은 드라마들_요약_470-475

    ‘이념적 종합’을 다루는 장의 마지막 절에 이르러 들뢰즈는 ‘이념’의 ‘현실화’에 관해 말한다. 여기에서 ‘사유 밖에 될 수 없는 것’이 마감되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감각 밖에 될 수 없는 것’으로서 ‘감성적인 것의 종합’이 다뤄진다. 따라서 ‘분화’, ‘역동성’, ‘극화’ 같은 용어들은 이념이 사유의 차원에서 겪는 마지막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들뢰즈는 [역동성 혹은 드라마들]이라고 이름 붙인 부분에서 ‘분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적 역동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질, 연장, 세계의 부분들의 심층에 ‘시공간적 역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로 드는 것이 ‘배아’다. 대개 ‘발생’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 사람들은 어떤 원천적인 세포가 스스로 분열하고, 기관화 되는 어떤 고립적 모델을 가정한다. 그런데 들뢰즈는 반대로 생각한다. ‘배아’는 그러한 과정을 겪어내고 있다. 배아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배아는 가속과 감속, 정지, 운동과 같은 시공간의 역동들을 견뎌내는 절차를 겪는다. 그 절차들을 겪는 과정을 들뢰즈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이 연극과 같은 과정에서 ‘배아’는 배우이고, 그것은 분열되는 배역을 받는다. 그러한 배역이 연기하는 어떤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은 이념(문제제기적인 것)에 따른다. 요컨대 어떤 발생적인 것과 그것의 바깥은 수많은 방식의 연결들을 통해서 장면화 된다. 다시 말해 개체 이전의, 종種 이전의 장場이 있는 셈이다. 분화는 작은 부분들로 만들어 지면서(부분화-양화) 동시에 묶음(종별화-질화)이 된다.

    이어서 들뢰즈는 그러한 ‘시공간의 역동성’을 칸트의 ‘도식’과 관계 짓는다. 칸트의 도식이란 무엇인가?

     

    한 개념 아래 한 대상이 포섭될 때는 언제나 대상의 표상은 개념 표상과 동종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개념은 그 아래 포섭될 대상에서 표상되는 것을 내용으로 가져야만 한다.
    (중략) 그런데 지성개념들은 (감성적인) 직관들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동종적이 아니고, 결코 어떠한 직관에서도 마주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후자가 전자에 포섭되는 일이, 그러니까 범주가 현상들에 적용되는 일이 가능한가? (중략) 이 자연스럽고도 중대한 물음은 바로 순수 지성개념들이 어떻게 현상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 판단력의 초월적 교설이 필요한 이유를 제공한다. (중략) ……, 전자(범주)를 후자(현상)에 적용가능하도록 해주는 제3의 것이 있어야 함은 명백하다. 이 매개적인 표상은 순수하면서도(경험을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성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적이어야만 한다. 그러한 표상이 초월적 도식이다. ― 칸트, 『순수이성비판』, B176-B178.

     

    들뢰즈가 말하는 시공간적 역동성을 띈 규정들과 칸트의 도식들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 일단 들뢰즈는 칸트의 도식이 ‘어떻게’ 현상과 범주를 만나게 해주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다. 이점은 칸트의 논변 속에서도 확인 되는 바, 칸트는 일관되게 ‘-하다면, -여야 한다’는 어법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일이 일어나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들뢰즈는 바로 그 공백을 메우는데 ‘시공간적 역동성을 띈 규정들’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즉 경험 세계에서 만나는 것들의 심층에서 그것들의 경험적 성격을 가능하게 해주는 (초월론적) 역동성이 있어야만 시간-공간이 펼쳐질 수 있고, 그래야만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면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칸트의 도식이 놓치고 있는 것은 ‘역량’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니체적인 의미의) ‘힘’이다. 다시 말해 들뢰즈는 칸트의 어법(-하다면, -여야한다)을 충실히 따르면서 칸트가 말하는 ‘제3의 것’을 훨씬 심층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역동성은 개념에 외부적이고 그런 자격에서는 도식이지만, 이념에는 내부적이고 그런 자격에서는 드라마 혹은 꿈이기 때문’이라는 들뢰즈의 말은 칸트의 도식이 ‘한편으로는 지성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적’이라는 말과 겹쳐진다.
    들뢰즈는 그렇게 칸트가 멈춘 지점에서 한발 더 들어간다. 즉, 들뢰즈는 칸트가 초월적이지만 가상적이기 때문에 단지 ‘규제적 적용’으로만 고려했던 ‘이념’을 존재의 적극적인 역량으로 파악함으로써 ‘개념’ 너머에서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존재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분화된 주체가 겪는 이 세계는 드라마이자, 어떤 꿈이다. 들뢰즈가 자기 이전의 철학들을 ‘철학은 가설에서 필연으로 향하는 이행’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제기한 문제는 이렇게 해결된다. 다시 말해 차이와 반복이 일차적이라면 그러한 가설에서 필연으로의 이행 역시 단지 하나의 ‘극劇’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란 무엇인가? 무수한 배역, 무수한 상연이 이어지는 ‘극장-알’이 아니었을까?

  • 2022-10-12 21:31

    4장 8절

    분화: 이념의 현실화 과정(466~470)

    이념의 현실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분법적이다. 질과 연장, 혹은 종별화와 부분들. 들뢰즈는 이렇게 상보적인 두 길로 이루어진 세계(혹은 주체) 이전에 알의 운동학이 있다고 말한다. 알의 운동학은 어떤 순수한 시공간적 역동성들이다. 이 역동성의 운동은 잠재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운동이다.(8절의 도입부인 이 챕터에서는 주로 생물학의 배의 형태발생적 운동과 진화론의 논쟁을 통해 이념의 현실화, 분화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

    분화는 두 가지 길을 통해 이루어진다. 질화의 길과 부분들의 합성의 길, 혹은 종별화의 길과 유기적 조직화의 길. 그러나 현실적 질과 연장들, 현실적 종과 부분들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두 갈래 길 이전에 더 깊은 시공간적 역동성, 현실화의 작인, 분화의 작인이 있다.

    그것은 유형화와 개체화 이전의 알의 운동학, 어떤 동역학을 함축하는 운동학 전체이다. 이운동은 높은 일반성에서 낮은 일반성으로의 이행이 아니다. 오히려 잠재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으로의 이행이다. 질과 부분들의 일반적 지지대에 해당하는 배가 있다면 그 이전에 개체적 주체에 해당하고 또 시공간적 역동성을 겪어내는 배, 즉 애벌레 주체가 먼저 있다.

    퀴비에와 조프루아 생틸레르 사이의 진화의 과정에 대한 논쟁에서도 이 문제가 나타난다. 조프루아의 접기에서 그는 접기를 통해 이행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보다 심층적인 것은 시간적 요인의 도입이다. 어떤 발달의 시간들에서의 멈춤이 중요하다. 유형의 분화가 공간적 방향들의 역동성에 의해 규정된다면, 이 역동성들에 내재하는 서로 다른 빠르기의 시간들(감속이나 가속)은 역동성들 사이의 이행이나 분화된 유형들 사이의 이행을 규정한다. 즉 감속이나 가속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공간적 유형이 나뉘어진다.

  • 2022-10-12 23:39

    양식과 공통감(486~491)

           칸트에게는 감성적 직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들뢰즈는 이거 아니라고 합니다. 시간/공간 아니고 차이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차이라는 것이 감성적인 것의 영역에 들어오면 강도라는 말로 둔갑을 합니다. 그러니까 차이=강도가 됩니다. 이 감성적인 것에서 강도(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요? 그안에 불균등한 것들이 우글대며 소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성적인 것들이 드러나는 그러니까 모든 현상의 배후에 있는 형식은 (칸트에게는 시간과 공간이었으나) 불균등성때문입니다. (차이=강동=불균등성) 그런데 이 차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일까요?  차이가 소멸되는 이유는 양식과 공통감 때문입니다. 양식과 공통감은 차이를 없애버리는 이종세트입니다. 죽이 잘 맞습니다. 상호 복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식은 차이를 없애며 공통감으로 나아가고 공통감은 양식으로 나아갑니다. 이를 들뢰즈는 양식과 공통감은 각기 서로에게 의존하며, 서로 반영하며, 각기 정통교리의 반쪽을 구성한다(491)라고 합니다.

    따로따로 좀 뜯어보자면…

    양식은 차이를 직접 없애지는 않습니다(488 하단). 시간의 화살(한쪽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 습관을 만들었던 첫 번째 종합의 시간, 498 상단)을 끌어들여 양식은 같아질 때까지 차이들을 잘게잘게 쪼갭니다. 얻어터진 차이들은 균일화, 균등화, 동일화 되어 버립니다. 이를 들뢰즈는 양식은 그 자체가 ‘중간’이다라고 합니다.(487하단) 중용, 중간계급의 이데올로기 열역학적이란 말은 이걸 염두에 둔 말입니다. (491) 이렇게 차이가 소멸된 후 현상들은 예견 가능하게 됩니다.

    공통감의 정의는 주관적으로는 먼저 자아의 자기 동일성이 있다는 것이고 객관적으로는  모든 인식능력들이 관계한다고 간주되는 대상의 자기 동일성입니다.(490중간)양식으로 차이가 소멸되면 자아이건 대상이건 동일성 아래에 모여들게 됩니다. 서로 달랐던 자아나 대상이나 모두 동등해지고 균일해지는 것이지요. (490 하단) 이렇게 해서 공통감은 주관적 자아의 형식과 대상이 지녀야 할 보편적 형식을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차이는 아주 말끔해졌습니다. 이런 공통감 아래 우리는 재인이 가능해집니다.  

    양식은 차이의 양적 종합이자 역동적 종합?  위에서 ‘중간’ 권법으로 차이를 같아질때까지 잘게 쪼개서 차이들이 서로 싸우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양식은 차이를 양적으로 역동적으로 종합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공통감은 잡다의 질적 종합이자 정태적 종합? 잡다/소여는 원래 차이여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동일성(자아이건 대상이건) 묶이는 자아와 대상의 질적 다양성 잡다는 말려버리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 2022-10-13 00:38

    (478p)복합 개념 미/분화(여울아)

    현실화의 세 가지 계열은 시간, 공간, 의식 안에서 진행된다. 모든 시공간적 역동성은 어떤 초보적 의식을 출현시킨다. 현실화 과정에서 반복은 도처에 있으며, 이러한 반복이 의식을 재취합하고 시간과 공간의 재생산을 규정한다. 반복은 차이의 역량이자 분화의 역량이다. 즉 독특성들을 응축하든 시간들의 가속이나 감속을 가져오든, 또는 공간들의 변이를 가져오든 반복은 언제나 차이와 분화의 역량이다. 헐벗은 반복을 설명해주는 것은 옷 입은 반복이다. 이 둘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이다. 따라서 이념의 현실화 안에서 우리는 반복의 개념적 (자연적)봉쇄뿐 아니라 (죽음본능 같은) 초자연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념이 외부적이라면 이념은 내부적이기 때문이다.

     

    이념 전체는 미/분화의 수리-생물학적 체계에 속에 붙들려있지만, 이들은 탐구를 위한 기술적 모델들에 불과하다.

    1)변증법적 이념은 미분비들의 변이성들 안에서, 그리고 상관적인 독특성들의 분배 안에서 이중적으로 규정된다.(미분화)

    2)감성론적 현실화는 질들의 종별화와 부분들의 합성 안에서 이중적으로 규정된다.(분화) 종별화는 비율적 관계들을, 합성은 독특성들을 구현한다. 현실적인 질과 부분들, 종과 수들은 이념 안의 질화 가능성 요소는 물론이고 양화 가능성 요소와 교감하고 있다.

    3)이념의 잠재적 요소는 어떻게 실행될까? 아마 그것은 양과 질 이전의 극화, 드라마를 연출하는 극화일 것이다. 바로 이 극화를 통해 현실적인 것의 분화는 비로소 규정되거나 개시되고, 또 이 분화가 이념의 미분화와 교감하는 가운데 다시 분화되는 것이다.

     

  • 2022-10-13 02:03

    5장 1절  차이와 잡다(p481~482)

    차이는 잡다가 아니다. 잡다는 주어진 소여이지만 차이를 통해서 주어진다. 차이는 그것을 통해 소여가 잡다로서 주어지는 그 무엇이다. 차이는 현상이 아니지만 현상의 본체에 가장 가까이 있다. 세계는 신의 계산 아래에서 만들어졌지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세계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은 결과 속의 불공정,환원 불가능한 비동등이다.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그것을 조건짓는 어떤 비동등이 자리한다. 모든 잡다성,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그 충족의 이유로 어떤 차이가 자리한다. 모든 현상은 어떤 차이들의 질서들의 상관항이며,  어떤 신호-기호 체계 안에 있다. 우리가 신호라고 부르는 것은 적어도 두 개 이상,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다질적인 계열들, 불균등한 질서들에 의해 구성되거나 경계를 이루는 체계이다. 모든 현상은 합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현상의 경계를 이루는 두 계열이 이질적일 뿐 아니라 각각의 계열 그 자체가 다질적인 항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현상 이하의 것들을 형성하는 어떤 수많은 다질적 계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 2022-10-13 03:31

    5장 2절  차이와 역설(p491~493)

    차이는 주어져 있는 소여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소여가 주어지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사유할 수 없는 한이 있더라도, 차이는 느껴져야 하고 감각해야 할 잡다를 부여하는 것으로 느껴져야 한다. 그러므로 차이는 잡다를 창조하는 것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양식의 밑바닥에는 착란이 있다. 그러므로 양식은 언제나 이차적이다. 사유가 사유해야 하는 것은 차이, 사유와  절대적으로 차이나는  이 차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차이를 통해 사유의 행위가 태어나고 그 행위에 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들에 반하는 어떤 것을 느끼고, 사유의 원리들에 반하는 어떤 것을 사유한다.  이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철학은 양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설을 통해 드러난다.

    역설은 인식능력들의 공통적인 사용을 깨뜨리고,  또 그런 역설을 통해 각각의 능력은 자신의 고유한 한계, 자신의 비교불가능자에 직면한다. 사유는 오로지 자신만이 사유할 수 있으면서도 결국 사유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직면한다. 그러나 역설은  깨진 인식능력들을 향해  양식에 속하지 않는 관계를 전달한다. 이때 인식능력들은  불을 뿜으면서 한 능력의 한계에서 다른 능력의 한계로 이어지는 도약을 일으킨다.  이렇게 역설을 통해 전체 속으로 총체화되지 않는 요소, 또 어떤 양식의 방향안에서 동등화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차이가 드러난다. 

  • 2022-10-13 07:32

    2절 차이의 소멸

     

    강도는 차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연장 안에서, 그리고 질 아래에서 스스로 부정되고 소멸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경험 안에서는 강도intension는 외연extension와 분리될 수 없고 이 외연을 통해 연장extensity과 관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조건들 아래에서 강도 그 자체는 연장을 채우고 있는 질들에 종속되어 있다. 즉, 우리가 알 수 있는 강도는 이미 어떤 연장 안에 개봉되어 있고 이미 어떤 질들에 의해 뒤덮여 있다. 사실 질들은 어떤 기호들이고 어떤 동등화의 시간을 조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차이가 자신이 분배된 연장 안에서 소멸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정한다. 게다가 인과율은 신호화 과정에서 물리학적 규정을 획득한다. 이러한 일련의 비가역적 상태들에 대해 강도는 객관적 방향을 정의한다. 이렇듯 ‘시간의 화살’에 따른 정의는 차이의 감소, 잡다의 균일화, 비동등한 것의 동등화로 이어지고 이것은 과학과 양식과 철학이 연대할 기회를 낳았다. 그 예가 열역학이었다. 이렇게 소여는 잡다로 정의되고 이성은 동일성으로 기울고 부조리와 불합리는 잡다의 저항으로 정의되었다.

  • 2022-10-13 13:24

    극화의 보편성

    극화는 개념의 이편이나 재현들의 이편에서 일어난다. 사물을 구성하는 동영학적 시간과 공간에서 자기 동일성이나 유사성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가장 단단한 바위도 수천년에 걸쳐 진행된 현실화의 시간에 비추어 보면 다시 어떤 유동적인 액체 물질이 되어버리는데, 이런 카오스모스인 세계 안엔 잔혹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잔혹극 속에서 이념은 동요하는 공간으로, 움푹움푹 패이며 시간이 감속. 가속되는 공간이다.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비틀림과 전치를 대가로 일어난다. 여기에도 주체와 배우는 있지만, 이건 동일성이 깨져버린 애벌레들이다. 이 애벌레만이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궤적과 미끄러짐, 회전을 견딜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린 어떤 상태 보다는 진행중인 운동 속에 고착된다. 애벌레들은 살갗에 이념을 품고 있으며 잠재적인 것에 이웃해 있고 그걸 현실화시키지만 가능한 것은 알지 못한다.

    이념이 드라마로 극화되고, 서로 다른 질서의 극화들은 서로 공명하고 가로지른다. 심리적 드라마 연출, 유기체적 드라마 연출, 화학적 드라마 연출 등 상이한 질서의 극화들이 서로 반향한다

    잠재적인 것을 탐구해서 반복들의 바탕에까지 내려가는 것이 사유라면, 재취합이나 반향의 관점에서 영역, 질서, 수준들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우리의 영혼을 고취하면서 가로지르는데 이때 에벌레 의시근 과학에서 꿈으로 꿈에서 과학으로 오고간다.

  • 2022-10-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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