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시즌3 다섯번째 후기

진달래
2022-10-05 08:04
304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지려니 했지만 영 그럴 기미가 보이진 않습니다.

요약을 맡으면서도 이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후기를 쓰려니 또 그렇습니다. - 정군샘이 내용을 안 쓰면 된다고 하네요.

 

“이념은 다양체다.”라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보다 저는 “이념”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파랗다.’를 개념이라는 말을 쓰면 공통적인 성질을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재현에 해당하는데, “이념은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해다(들뢰즈의 차이와 반복/p267)”라고 하면 하늘이 파랗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회색빛이기도 한 여러 가지 중 하나를 나타내는 것뿐이라고 보는 건가?

“하늘이 파랗다”가 재현 안에서는 규정이 되면 앎의 요소가 되고, 이념은 배움의 요소가 된다. 하늘이 파란 것 어떤 사건이나 감각기관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늘이 정오에는 파랗지만 해질 무렵에는 시간의 변화나 계절이나 날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다른 색이 되는 것이 문제들의 세계로 빠지는 걸까요?

“하늘은 파랗다”보다 하늘이 어떤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매번 하늘을 보고 어떤 시간, 어떤 상황에서 보이는 하늘만 알 수 있는 게 배움인가? 따라서 “하늘이 파랗다”는 하늘의 속성이라기보다 그 때 보이는 그 자체다. 그럼 여기서 윤리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건 “파랗다”하나가 아니라 다른 것도 함께 인정하는 것으로 드러나나요? 그렇다고 너도 맞고, 너도 맞다 뭐 이런 건 아닌 것 같던데....

 

들뢰즈가 말하고 있는 게 고정된 게 아니라 순간(?)적인 것을 포착하기 위한 것들인가 싶기는 하지만 여전히 단어들이 잘 와 닿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문제와 물음이 어떻게 다른가도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중에는 잠깐 이런 거구나 싶었다가 고개를 돌리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합니다.

철학 공부가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문득 처음 문탁에 와서 동양고전 공부 시작할 때도 똑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말 때문에 매번, 이건 가 싶으면 아니고 또 저건 가 싶으면 그게 아니어서 괴로웠던 적이 있었네요. 10년 쯤 지나니까 이제 좀 적응하나 싶긴 하지만 여전히 말로 나타내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철학공부 합네.’하고 이제 말하면서 쉬울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10년 쯤 해야 - 총기가 많이 사라져서 더 걸릴지도 - 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내년에는 철학 공부하지 말고 그냥 그 시간에 장자도 읽고, 묵자도 읽고 뭐 이런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도 미련이 좀 남는 건 아마도 철학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그 말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장자를 장자로, 맹자를 맹자로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 이것도 뱅뱅 도는 문제군요.~

어제 정군샘과 공부방에서 아 들뢰즈는 왜 이렇게 헤겔, 칸트, 이런 사람들을 자꾸 말하냐고 질문했다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돌파해야 하는 어떤 시대적 문제를 ‘너는 이렇게 말했지만 그건 아니다’, 뭐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논지를 피는 게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하필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겠다고 한 게 후회되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에 요약을 하면서 ‘자꾸 읽으면 된다.’는 말이 아닌 건 아닌가보다는 느낌이 있긴 했습니다. ‘모르는 걸 자꾸 읽는 건 괴롭다’에서 조금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애들한테 ‘공부는 원래 어려운거야 !’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제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줄이야....

 

댓글 5
  • 2022-10-05 10:02

    저도 그래요. 자꾸 이념이 뭐지? 묻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플라톤적 이념, 칸트적 이념, 헤겔적 이념과 다른 이념이 등장하니.. 그 세 개도 잘 몰라서 벅찬데, 이제 네번째를 알아야 하니 더 헷갈리네요. ㅎㅎㅎ

    근데 플라톤에게서나 칸트에게서나 헤겔에게서나 이념은 어떤 원리와 질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아마도 이념이라는 말은 그런 걸 갖고 있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군님과 아렘님이 협공으로 들뢰즈의 약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ㅎㅎ)

    아무튼 그렇다 해도 플라톤의 이념은 각각의 사물자체라는 점에서 엄청 다원적입니다. 칸트의 경우는 실재가 아닌 선험적 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요. 이성이 제멋대로 한계를 넘어가서 이율배반에 빠지지 못하게 규제하는 것으로 주어진 가상이라는 의미에서. 헤겔의 이념은 절대정신 같은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이념은 철학적으로 엄청 중요한 개념인 것만은 틀림없군요. 그러니 들뢰즈가 차이를 긍정하는 그 바탕을 이념으로, 또 이념적 종합이라고 말하려는 시도를 한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 제가  읽고 있는 6절에 이런 대목이 나오네요.

     

    "이념들은 미분비들이 변화하는 모든 변이성들을 끌어안고 있고, 독특한 점들이 분배되는 모든 방식들을 포함하고 있다."(451) 6절을 읽다 보니 이념은 변이하는 비율적 관계들 같기도 하고, 구조 같기도 하고, 발생의 원리 같기도 하고, 잠재성 같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모든 것이지만.. 그건 다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들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들뢰즈는 차이와 이념을 말하면서 아름다운 영혼을 경계하고 다원주의의 위험을 염려합니다. "그래, 그것도 맞고 이것도 맞아." 이런 아름다운 영혼의 속삭임은 차이의 철학을 평평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악마의 유혹이라는 이야기 아닐까요?

     

    아 놔!! 뭔 말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읽다가.. 잠시 멈추어서 진달래님의 후기를 읽었습니다. 이념도, 지난 시간에 우리가 한참 서로의 생각을 묻고 답했던 물음-문제 복합체도, 여전히 아리송(혼잡? 애매?ㅋ)하다는 점에서 깊이 공감합니다.^^ 

  • 2022-10-05 13:20

    '이념은 다양체'다라는 말이 생각하면 할수록 들뢰즈가 생각하는 '이념'을 관통하는 중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다양체'를 그냥 '다양한, 다질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갔었는데요, 요즘 다시 읽으면서는 그냥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걸 매우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위키나 네이버 백과 같은데 나오는 수학용어로서 '다양체'들을 찾아보니 '다양체'를 찾아보니 이렇다고(링크) 합니다. 이 정의에 따라 보면, 들뢰즈가 말하는 '이념', 'n승의 역량' 같은 말들이 좀 더 이해잘 와 닿는 느낌이고요.

    그러니까 들뢰즈의 생각은 우리가 경험하고 보고 있는 이 세계는 단지 그것 자체로만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무수한 차원들이 이미 그 안에 접혀 있는 세계(부차모순)라는 것 같습니다. 그 무수하게 접혀있는 차원들의 '논리'를 어떻게 밝힐 수 있느냐, 만약 수학이 어떤 진리를 보여줄 수 있다면 아마 이런 방식(들뢰즈가 미분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거고요. '하늘은 파랗다'라고 한다면, 그 파란 하늘이라는 '해' 안에 접혀있는 '하늘'들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럼 왜 하필 '하늘은 파란'거냐?라고 물을 수 있을텐데, 그것은 하늘에게 주어진 문제들(태양광선, 바람, 대기의 습도 등등)에 하늘이 답한 결과일 겁니다. 그런데, 기후가 계속 변하고 태양과 지구가 맺는 관계들, 지면의 인류가 하늘로 보내는 물질들이 달라지면 하늘은 아마 다른 답을 내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겁니다.

    대략 '이념'은 초월론적인 것으로, 이 세계가 이런 모양으로 존재하려면 그렇게 있어야 하는 '바탕'. 이 세계는 그러한 이념에서 솟아 올라온 해들의 세계, 이 세계가 변화해 가는 이유는 이념 안에서 개체들이 맺는 관계, 역학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답을 내줘야 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개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이념을 배워야 한다. 이 정도로 (기계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마치 '이원론'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번주 읽어가는 부분에서 그 오해를 지우려는 듯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들뢰즈가 그리는 '세계'의 모습은 참 가차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든 뭐든 자신의 논리에 따라 그렇게 갈 길 가니까요. 저는 이 점이 근대철학과는 다른 의미의 윤리학을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근대철학의 윤리학이 '주체'에게 '너는 무엇이든 알 수 있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스피노자-들뢰즈의 세계는 주체를 '인간 따위'로 만듦으로서 자연히 겸손해지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ㅎㅎㅎ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그림자('부정')처럼 '그러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건가'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주 읽는 부분에서 그에 대한 들뢰즈의 답이 살짝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만...

  • 2022-10-06 11:58

    진솔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이념이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저 역시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생각이 꼬리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져요. 플라톤이 그린 세상이 이데아들로 빽빽한 저 너머의 실재 세계와 그 모상들로 빽빽한 동굴로 나뉘었다면 들뢰즈가 말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다양체인 이데아들(이념들)이 서로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세상으로 한데 합쳐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진달래샘의 후기 속 질문은 하늘의 색이 주인공인 것 같아요.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에는 파란 하늘이나 화창한 하늘의 이데아도 있었을까요? 아무튼 플라톤의 이데아는 그런 식일 것 같고 칸트는 이념은 결코 우리 우리 감각으로 만날 수 없는 대상의 이성 개념이라고 정의했다는데 그러면 파란 하늘의 이념은 칸트에게 성립하지 않는 게 될까요? 들뢰즈의 경우라면 어떨지.. 이번 부분에서 빛이라는 이념이  눈에게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하거나 색의 이념을 하얀 빛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던데 이게 좀 힌트가 되려나요. 버거워서 여기까지만.. ㅎㅎ 

  • 2022-10-06 13:47

    달려고 한 댓글을 슬쩍 손봐서 질문으로 바꿔서 올렸습니다. 진달래 샘... 저도 댓글 단걸로 인정해주세요... 

    • 2022-10-06 19:20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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