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시즌3 4장 4절~5절 요약과 질문

요요
2022-09-29 08:54
326

질문 먼저 올립니다.^^

 

1. 지난 주에 질문했던 변증법 말인데요. 그동안 <차이와반복>에서 변증법은 부정성과 매개를 도입하는 헤겔의 변증법, 나눔의 방법으로서의 플라톤의 변증론으로 언급되어 왔습니다. 플라톤의 변증론은 문제와 물음의 기술이었지만 재현의 사유의 역사를 통해 왜곡되고 변질되어 왔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반-합의 도식으로 이해되어 온 (대립하는 재현들을 축으로 하는) 헤겔의 변증법은 단호한 비판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외적으로  타르드의 새로운 변증법이 긍정적으로 한 두 차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장 3절에서 들뢰즈는 변증법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합니다. 여기에서는 헤겔적 의미의 변증법이 아니라 미분법의 변증법이 언급됩니다. 문제제기적이라는 말은 변증법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들은 언제나 변증법적이다.(396)"라는 말처럼요.  나아가 4장 4절에 이르러 이제 이념은 변증법적인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부차모순에 대한 언급에서는 모순을 지양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부차모순과 함께 차이를 낳는 변증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들뢰즈의 변증법은 차이와 반복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해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2.들뢰즈는 가설에서 필증성으로 이행하는 철학을 과학적 가설주의와 도덕주의(432)라고 비판하면서 이와는 다른 물음-문제 복합체라는 새로운 현대적 사유의 성취에 대해 말합니다. 플라톤에서 후기 칸트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사유의 운동을 가설적인 것에서 필증적인 것으로 향하는 특정한 이행(430)이었습니다. 들뢰즈에 의하면 진정한 사유의 운동이란 가설적인 것에서 필증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적인 것에서 물음으로 나아갑니다(432). 가설적인 것과 문제제기적인 것, 필증적인 것과 물음은 넘을 수 없는 심연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첫째, 문제는 가설이 아닙니다. 둘째, 물음은 이전 철학의 필증성이 도달한 도덕적 명법과는 완전히 다른 명법입니다.

문제와 가설은 어떻게 다를까요? 또 물음은 도덕적 명법과는 어떻게 다른 명법일까요? 과학적 가설주의와 도덕주의에 기초한 철학의 물음들과,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론적 물음-문제 복합체를 우리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댓글 12
  • 2022-09-29 11:48

    어떻게 보면 이념들은 어떤 공존의 복합체들이고, 모든 이념들은 공존한다. 하지만 자연의 빛이 가져오는 균일한 형식과는 결코 무관한 점, 가장자리, 미광들을 통해 공존한다. 이념들 간의 분명한 구별에는 매번 어떤 음지, 애매성들이 상응한다. 이념들은 서로 구별된다. 하지만 이념들의 상호 구별 방식은 그것들이 구현되고 있는 형식과 항들의 상호구별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념들은 자신의 유동적인 종합을 규정하는 조건들에 따라 객관적으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부숴진다. (중략) 이념들은 어떤 변이체들이고, 이 변이체들은 그 자체 안에 하위 변이체들을 담고 있다.(411쪽)

    철학의 통상적인 '사유의 이미지'에 따라 보자면, 들뢰즈의 이와 같은 서술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로 요약될 수 있다. 이념은 출현하는 것이지 기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념'을 다루는 4장을 확정불가능하지만 도출 가능한 수학-미분법과 함께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이념'은 대상적 의미에서 '이것'으로 지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출현'의 바탕으로서만 사유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의 '이념'은 칸트의 '이념'과 위상적으로 유사한 구도 아래에 있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칸트의 그것('요청')과 마찬가지로 이때의 '이념'도 어떤 현행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 초월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칸트는 끝내 이념을 수렴해 가는 하나의 점으로, 그리고 다시 현상을 규제하는 원리로 이념의 역할을 제한한다. 들뢰즈가 보기에 칸트의 '이념'은 '이념'이라기 보다는 '이념이 출현한 것'에 가깝다. 왜냐하면 들뢰즈에게 있어서 '이념'은 복합체이고, 다양체이며, 무의식이면서, 더 작은 변이체들을 안고 있는 변이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이것이다'의 형식으로 기술하는 순간 애매성이 함께 출현하고, 동시에 그늘을 만들며, 결정적으로 '이념'이길 멈추게 된다.

    여기서 의문은, 들뢰즈가 칸트와 같은 형식으로 이념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섯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어떤 '요청'의 형식은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칸트 역시 '이념'의 실재성을 '이념' 그 자체로서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그렇지만 현실적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요청된다고 하는 것처럼 들뢰즈의 '이념' 역시 그 자체로 설명된다기 보다는 현상 세계가 이러이러한 것을 보면 '이념'은 이러이러한 형태로 있다고 말하는 그 형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점은 '감성적인 것'을 다루는 5장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해명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미리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 2022-09-29 12:13

    (4절)

    Q) 본연의 문제나 이념 그 자체를 규정해야 하는 순간, 변증법이 작동해야 하는 순간,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일종의 아포리아적 대화일 뿐, “얼마만큼?”, “어떻게?”, “어떤 경우에?” 등의 물음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p.413-414)......무슨 의미인가요? 물론 들뢰즈가 앞서(p414) 살짝 말한 막-주름운동이나, 뒤에 말할 것같은 차이의 강도 등의 개념을 끌어 내려는 질문 형식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무언가의 본질(?)을 규정하려면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혹시, 들뢰즈는  그런 본질(?)같은 것은 없고 다양체의 요소를 규정할 때처럼 어떤 상호적 관계나 비율들에 의해 구조-발생적인 우연한 사건으로 보기 때문인가요?

  • 2022-09-29 12:28

    5절, P425) 궂이 이야기하라면 ‘본질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본질은 비본질적’이라고 한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P425 에서는 역설감을 설명하면서 ‘부조화의 조화’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한다’ 는 말은 최근에 단골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들을 거울삼아  5절의 요약을 저는 이렇게 해보았습니다.  ‘필연은 우연적이다’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5절, P437) 그냥 문장 해석에 대한 질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명법들(imperatives)에서 유래하는 이념(the Ideas)들은 결코 어떤 사유하는 실체의 성질이나 속성이 아니다. 이념들은 균열된 나의 그 틈바구니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일 이외의 다른 것을 행할 줄 모른다. 이런 균열은 언제나 어떤 타자로 하여금 그 자체로 사유되어야 하는 자아 안에서 사유하게 만든다. 사유 안에서 첫 번째에 오는 것은 도둑질이다. “   타자라는 말의 해석을 코기토란 것은 없고 상시적 분열 상태의 조각들의 지속이라고 봐야 하니까, 여기서 타자는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다른 조각이라고 봐야 하는거지요? 도둑질이란 말로 봐서 그리 해석이 되는데…. 애매해서 여쭤봅니다. 여러분들은 어찌 읽으셨는지요?

    • 2022-09-29 14:25

      오무나 질문을 올리고 났더니 첫번째 질문은 제 질문과 유사한 측면이 있네요.

       

       

      들뢰즈 입장에서 보자면, 필연은 우연이다.. 보다는 우연은 필연이다.. 가 더 변증법적인 문장이 아닐런지. 

       

      두번째 질문의 영문판을 찾아보니... 

      Consequently, far from being the properties or attributes of a thinking substance, the Ideas which derive from imperatives enter and leave only by that fracture in the I, which means that another always thinks in me, another who must also be thought. Theft is primary in thought. 

      • 2022-09-29 15:14

        사실 질문에 이어 제가 세미나 시간에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 '우연은 필연적이다' 란 말과 '필연은 우연적이다'란 말이 같은 사태를 이르는 지점입니다. 이쯤 되면 아마도 필연(들뢰즈가 본연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 일의성이 있다. 차이이다) 과 우연(들뢰즈가 그리 우연적이라고 강조를 합니다만)은 사태를 그려내는 적합한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들뢰즈의 초월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텍스트들의 자구, 문장들을  재현/동일성/유사성/대립/유비에 입각하지 않고는 파악하기 어려운 지점과도 비슷해보입니다. 

         

         

  • 2022-09-29 13:35

    요약입니다. 

     

  • 2022-09-29 13:38

    질문은 4절 끝부분의 가로친 작은 글씨 부분입니다. 지금 책이 없어서...거기에 나온 예시를 통해 4절에서 말하는 이념을 풀어보면 좋겠습니다. 

  • 2022-09-29 13:52

    들뢰즈의 존재론은 무엇인가?

    5절의 문제와 물음은 (하이데거의 존재물음이 연상시키는) 들뢰즈의 존재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들뢰즈 존재론의 특이점은 우발성과 무의식(436~438p)인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당시 1920년대 과학자들의 원자론에 대항하는(애매모호한 확률적 존재론을 극복하는) 존재론이었다면 들뢰즈의 존재론은 이들의 확률적 애매모호함을 우발점(사건)이라는 주사위놀이로 표현하며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이며(당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이들 원자론 가설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 반대), 이러한 우발성으로 인해 우리는 존재를 (확률적으로나마)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역량)으로 전환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들뢰즈는 이성(지성)에 근거한 칸트의 정언명법(명령)의 한계를 넘기 위해 들뢰즈의 명법은 '사유의 무의식'에 근거하며,  이로써 초월적 실행이 가능해집니다. 사유의 무의식에 대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어떤 무의식을 소유할 권리가 있고, 이 무의식이 없다면 나는 사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순수한 사유 대상을 사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서 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들뢰즈 자신이 부정했던 존재론을 다시 되살리는 것 같습니다. 니체의 "운명의 돌덩어리"를 말하며, 우발성의 다른 이름으로 "관계 안에서의 결정성(정해진 방향성)"에 대해 말하고, (칸트적인/이성적인?)특정한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들뢰즈의 존재론은 우발적인 결정성 혹은 결정되지 않은 결정성,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는 사유 등과 같은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그의 논의 방식이 사뭇 변증법적입니다. 어느 것과도 대립하지 않으면서 본질이 아니라 물음을 드러내는 부차모순의 방법론 말입니다^^그렇다면 제 답변은 다시 작성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들뢰즈에게 존재란 이념이자 다양체라고... 

  • 2022-09-29 15:07

    늦어서 죄송합니다. 5절 요약입니다.  근데 이게 요약이 된 건지 아닌지... 

    제가 요약을 했는데도 

    "드디어 우리가 지금까지 모호하게 방치해두었던 두 심급, 문제와 물음의 차이를 규정해야 할 순간이 왔다"p427

    근데 문제와 물음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 2022-09-29 15:11

    늦어서 죄송합니다!

    (4절 418쪽) 부차모순의 두 가지 절차를 소개하며 이념의 두 얼굴, 사랑과 분노가 등장합니다.

    “부차모순은 문제의 조건들을 규정하는데 개입하면서 동시에 해의 경우들에 상관적인 발생에 개입한다. 이런 부차모순의 두 가지 절차는 한편으로는 ‘부가체들의 명시’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특성들의 응축’에 있다. 사실 한편으로 우리는 조건들을 점진적으로 규정할 때 문제 그 자체에 주어진 최초의 체를 완결하는 부가체들을 발견해야 한다…”

     

    1. 1) ‘문제 그 자체에 주어진 최초의 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미규정상태의 이념, 즉 평가나 할당 이전의 수준을 말하는 걸까요? 현실화 이전의 본질의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요?(408쪽 참조)

    2. 2) 여기서 부가체들의 명시는 “파편들이 파편들이 최초의 체와 연쇄를 이루거나 끼워맞춰지는 방식을 고정”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이 방식에서 이념은 사랑이라 말하고, 독특성들의 응축은 “모든 상황, 용해점, 빙점, 응결점 등을 어떤 숭고한 기회, 곧 카이로스 안으로 침전시키는 것”으로 설명되고 이 방식에서 이념은 분노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분노’라는 표현에서 “서정적이거나 신비적인 은유를 보지 말라”는데 이 표현이 제게는 모호하게만 느껴져서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 2022-09-29 15:22

    맑스와 알튀세 부분. 어떤것이 이념의 층위에 해당하고 어떤 부분이 현행화된 것들인지, 또 그 과정은 뭐라는 건지 읽어도 모르겠네요. 

  • 2022-09-29 15:40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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