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철학학교]시즌3 네번째 후기

요요
2022-09-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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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전 목요일은 세미나를 쉬어 가기로 하여 일주일을 선물받은 것 같아 마음이 느긋했습니다. 그러다 대충 뭔 내용인지 감이나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 읽다가, 아이고.. 다시 책을 덮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읽기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대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읽을 수 없는 것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습니다. 단어에서 막히고, 문장과 문장의 연결에서 막히면서 더듬더듬 읽어나갑니다. 머리 속엔 온통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아무튼 제가 요약을 맡은 부분이 칸트의 이념으로부터 시작하여 들뢰즈의 이념이 무엇인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 정도로 이해가 되었지만, 미분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읽기도 싫었습니다. 고행수행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일을 하니, 고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조할만한 보조 텍스트도 없으니  '검색'에 의존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막힐 때마다 검색창에 단어를 치고, 관련 문서들을 뒤적거리고, 때로는 어쩌다 걸리는 인터넷 수학 강의도 듣습니다. 하하하.. 이게 뭔 뻘짓인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뻘짓들이 다 쓸모없는 짓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모래를 손으로 쥐면 주르르 흘러내리듯이 주워들은 지식들은 들어오기가 바쁘게 빠져나가지만.. 그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아련한.. 아니, 희미한 맥락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야말로 반복에 의한 수동적 종합이 아닐런지요? 정신차려! 지금은 수동적 종합이 아니라 차이의 이념적 종합을 이해해야 할 때야! 속으로 이런 헛소리를 해대면서 차이의 이념적 종합에 대한 장을 읽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아마도..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요.^^ 

3장 6절은 바로 이런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유의 이미지는 <결과로서의 앎>을 공준으로 갖고 있지만, 사유하기는 기호들과 기호들이 마주쳐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가는 변화와 생성의 배움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의 1장인가 2장에서도 '배움'에 대한 부분이 나왔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사유는 사유 안에서 태어나고, 사유하기의 활동은 사유의 생식성 안에서 분만된다는 들뢰즈의 주장이 다시 주어집니다. 제가 세미나 준비를 하느라 책을 읽고 있으면 제 남편이 저를 비웃으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책 그만 읽고 아는 것만 실천하며 살아도 남은 인생 짧다고.. 하하하 들뢰즈의 말로 반박을 할까 합니다. 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다고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얼마전 <금강경>에서 읽은 것, 아상을 깨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때요, 설득력이 있을까요?^^

 

4장 1절은 들뢰즈가 칸트의 이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롭게 이념을 정의해가는 도입부입니다. 플라톤의 이념(이데아)이 사물자체(용기 자체, 정의 자체, 아름다움 자체)를 말하는 것라면, 칸트의 이념은 이성에 원리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형식입니다. 칸트는 플라톤의 이념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시킵니다. 사물자체에서 형식으로.. 이게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칸트의 경우 감각-직관형식,  지성-범주형식, 그리고 이성-이념형식, 이런 구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잘못된 거면 이야기해주세요..) 아무튼 칸트의 이념은 이성이 추론하고 종합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는 규제적인 역할을 합니다. 칸트의 이념은 감성, 지성에 원리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힘을 갖습니다. 칸트가 이념이 문제제기적이고 해없는 문제라고 한 게 다 이런 이유인 듯 합니다.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에도 칸트적 의미-통일적 원리로서의 이념이 필요합니다.(그런데 그것은 통일의 원리이면서 변화와 생성의 원리여야 합니다.) 그런데 칸트의 경우 이성은 불가피하게 경험과 무관한 초월적 가상을 불러옵니다. 그게 자아, 우주(세계), 신의 삼종세트입니다. 우주와 신의 문제에서 이성이 이율배반에 빠지는 것을 칸트는 경험과의 유비를 통해 해결합니다. 들뢰즈는 그것을 외생적 종합이라고 봅니다. 이념을 원리가 아니라 경험과의 유비의 문제로 불완전하게 해결했다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아의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들뢰즈를 읽으며 들뢰즈가 칸트가 자아의 균열을 발견했지만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고 서둘러  대충 덮었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어왔듯이, 자아의 문제는 대충 봉합되었다는 것이지요.^^(아, 칸트 없는 서양철학사는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들뢰즈의 이념은 세 계기를 갖습니다. 미규정성, 규정가능성, 규정성. 어제 세미나에서 또 지겹도록 여러번 반복된 이야기입니다. 칸트에게서 자아는 규정되지 않은 채 남겨지고, 우주는 규정가능하고, 신은 규정성의 이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 점은 칸트 이후의 철학자들로부터 발생의 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조건화나 정당화에 머물렀다고 호되게 비판받았는데, 들뢰즈는 칸트에게 경험주의가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아마도 칸트가 흄의 세례를 받고 관념론과 경험론을 종합하려 했기 때문 아닐까요?)그렇다면 이 문제를 경험주의로도, 독단주의로도 해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들뢰즈가 스스로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고.. 그래서 차이의 이념적 종합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물리학적이고 수학적인)미분, 무한소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된 것 같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우리의 논의가 미분으로 이념을 논하는 2절에서 오래도록 머물렀지만, 들뢰즈의 이념이 칸트의 이념에 젖줄을 대면서 또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식으로 서술되고 있어서 후기에서는 칸트의 이념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칸트를 별도로 공부한 적이 없어서 제가 칸트에 대해 들뢰즈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잘 모르는게 뭔지 더 잘 알겠군요.^^ 다행히 악어떼 족구대회 덕분에 또 한 주가 선물로 주어졌으니 할 수 있다면 그 사이에 이수영샘이 정리한 순수이성비판 이념 부분이라도 한 번 들춰 보고 싶군요.^^ 

4장의 2절과 3절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세미나 후 소감을 기대할게요~~ 

 

댓글 7
  • 2022-09-16 17:38

    아, 벌써 후기를 올려주셨네요. 가열차게 일을 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들어왔는데 그 어려운 내용을 이렇게 정연하게 풀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3장 이후로 매 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을 느껴요. 그런가보다 했던 것들이 제 눈앞에 와서 따지고 드는 기분이랄까요. 언젠가는 제가 계몽주의를 잘 모르는 채 계몽주의자였구나 생각하게 되었었는데 요즘은 제가 칸트철학을 잘 모르는 채 칸트주의자였나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튼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뭔가 공부가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청신호라고 여깁니다. 

     

    저도 어제 세미나 들어가기 전에 다시 질문을 정리해보며 원의 미분방정식을 설명하는 유튜브를 봤어요 ㅎㅎ 아니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 싶었지만 덕분에 어제 선생님들이 나누는 수학 얘기가 조금은 감이 왔던 것 같으니 잘한 일 같습니다. 저는 원을 대수방정식으로도 미분방정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대수방정식은 특정한 원만을 표현할 수 있는 반면 미분방정식은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원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이 과정을 되돌리면 그러니까 미분방정식의 경우 도함수를 원시함수로 되돌린다고 R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거듭제곱의 널뛰기와 질의 변화들에 대한 이해까지. 그런 연장선상에서 세션샘이 가끔 생물학으로 이해할 때 더 잘 다가온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참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어쩌면 들뢰즈가 생물학에 대해서도 한 절을 할애할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아, '구체적인 보편자'라는 말은 헤겔도 썼다는 말씀도 신기했습니다. 헤겔이 특수자라는 것은 가상이라고 했다는 말을 본 것 같은데 그러니까 들뢰즈와 반대되는 뜻으로 같은 말을 쓴 것인가 짐작해보았습니다. 

     

    어제 족구대회 못 간다며 세미나도 못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몇 달전부터 전전긍긍 ㅎㅎ 다른 선생님들도 다 어려운 여건 중에 하시는 걸 알지만 자꾸 체력이... 쌍화탕으로 안 되네요. 공진단을 먹을까요?) 집에서 가까우니 족구대회도 가고 세미나도 부실하게나마 하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다음달과 그 다음달 두 차례의 마감을 지나며 결석이 잦아질지도 모르겠지만요. 정군샘, 힘내세요. 저는 철학 좋아합니다.

    • 2022-09-16 18:11

      오무나 이와 중에 두 차례 마감이라니요... 

      호수샘 화이팅입니다~~

  • 2022-09-16 19:51

    어제 남편이 퇴원하고 집에 누워있다보니 거실에서 줌하는 소리를 다 들었나봐요. 

    리그레션?? 요즘 리니어 리그레션이 핫하답니다. 선형회귀요. 딥러닝 관련해서요. 

    그러면서 제게 마구 설명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살포시 먼 산을 쳐다봤습니다. 

     

    제가 여름방학에 수학세미나하면서 읽었던 2권의 책 덕분에 이번 읽기 분량은 좀 수월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익숙한 용어들이 나오니깐 그냥 읽을만 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플라톤과 칸트가 나올 때마다 나는 매번 동공에 초점이 사라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익숙한 분들은 이런 기분으로 들뢰즈를 읽는거구나... ㅎㅎ

    이수영샘의 칸트 해설서를 올 겨울방학엔 꼭 읽어야지... 낭독세미나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아침엔 심지어 어제 논의 속에서 해소되지 않은 몇 가지 의문점은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보통 다음 날은 거들떠 보기도 싫거든요. ㅎㅎ

     

    - 들뢰즈에게 미분은 한 가지 예나 방법일 뿐이다. 

     

    "미분적인 것과 문제제기적인 것

     

    하물며 본래의 문제들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오로지 미분법을 통해서만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매우 상이한 영역들 안에서 거진법은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해석기하학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최근에는 이런 역할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족시키는 다른 기법들이 등장했다."

     

    찾아보니 이 문장들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문장에 이어서 수학자 아벨과 갈루아의 작업(우린 여기까지 세미나에서 다르지 않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 미분법은 하나의 수학적 도구이자 수단일 뿐이다."

     

    직접적으로는 이런 문장도 있더군요. 그러나 다음 문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분법은 어떤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폭넓은 의미에서 새길 때 미분법은 변증법적 문제나 이념, 한 문제의 과학적 표현, 해의 장의 수립 등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전체를 보편적으로 지칭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벨의 방법에는 미분공식의 적분을 다루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이들의 작업은 이미 문제이론의 순환론을 벗어나고 있다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벨은 5차 이상 방정식은 일반적인 해를 구할 수 없다고, 갈루아는 5차방정식부터 근의 공식이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들뢰즈의 말들과 결합하는지 세세하게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들의 수학적 방법론은 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문제제기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제기적인 것을 변증법적이라고 말하며, 이를 미분적 성격(위에 요요님 정리 세 가지)으로 규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정군님과 잠깐의 커피타임을 가지면서 저는 "들뢰즈에게 미분은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관통하는 무엇이다"라는 정군님의 의견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칸트 말예요. 칸트의 유한 무한의 이율배반은 어떤 위치인가에 대해서요. 들뢰즈는 현대수학(집합론 등)이 무한을 유한으로 취급(극한/무한급수의 수렴 등)하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견주어 이율배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이는 어제 나왔던 말들 중 '칸트의 조건화??' 같은 말들은 명제의 참거짓 방식(집합론)의 문제점을 말하는 것인가요? 

     

    제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미분법의 무한소 개념(발생학적/동역학적 관점)이 무용화 되면서 구조주의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군님과 토킹어바웃 하고나서 적분상수 C의 은폐에 대해 찾아봤어요. 우리 책 어디에 나왔더라... 

    세미나시간에 가마솥님의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요. 이에 대한 문장이 어디있나 해서요. 

    (정군님은 이때 적분상수 C가 은폐되면서 매번 차이나는 (영원)회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다 이해는 못했지만 앞으로 나올 내용인 것 같아요..)

     

    미분은 원을 무한히 작게 쪼개는 거구, 적분은 이 쪼갠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이잖아요.  

    적분으로 모아진 조각들은 아주 작은 값(울퉁불퉁한 부분)을 퉁쳐버리는 거죠.(수학세미나에서는 후려치기라고들 했죠.)

    그럼 적분하고 난 후에 다시 미분하더라도 본래 원으로 regression할 수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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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절 미분법과 무한소의 무용성/"우리는 그것을 “문제틀”이라 부른다. 만일 미분적 차이들이 결과 안에서 사라진다면, 이는 문제의 심급과 해의 심급 사이에 본성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멸은 해들에 의해 문제가 필연적으로 은폐되는 운동 속에서 일어난다. 이 소멸 현상은 문제의 조건들이 어떤 이념적 종합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새겨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이념적 종합은 해의 경우들을 구성하는 명제적 개념들의 분석 안에서는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 2022-09-17 13:20

    셈나전에는 막연한 개요 정도만 이해했었는데 요요샘 발제와 설명을 들으면서 내용이 연결이 되더라고요. 테일러 급수는  좀만 더 생각해서 잠재력과 멱급수의 관계를 일부라도 알고싶었지만.  흠, 샘들께서 좀 화를 내시는 수준이라ㅎㅎ.  3절은 너무 이야길 못해서 아쉬웠어요.  차반이 해설서나 요점 중심의 강의같은 것들은 있지만 제대로 된 강독 강좌나 해설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사실 제가 궁금한 건 책 한 줄 한 줄의 의미라서 해설서에는 전혀 손이 가질 않아요. 그런 면에서 구절 구절 중심으로 공부하는 우리 강독 셈나가 웬만한 강의나 해설서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용 정리야 뭐 어차피 지금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해설서도 많으니까요. 힘들어도 많이 질문하고 서로 고민하면서 공부하니 좋습니다.

  • 2022-09-17 16:07

    정군샘이 몇 주전부터(몇달됐나요? 벌써...) 문탁 공부방으로 출근 중입니다. 저는 줌이 익숙해져서 좋은데 직접 설명을 들으니 똑같은 말도 더 잘 이해되는 마력이 있더라구요. 맨날 서로 바쁘니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서로 얼굴 마주보고 차 마셨네요.. ㅎㅎ 암튼 공부방에 놀러오세요. 보통 월수금 출근하십니다!! 

     

    매실샘!!! 날 잡아서 책 싸들고 저녁먹으러 오세요.. 아님 점심시간 이용해서 잠깐이라도... 

  • 2022-09-18 18:12

    어쩐지... 제가 여울아샘께 댓글을 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만 ㅎㅎㅎ.

    이번주 세미나는 정말이지 제게 큰 난관이었습니다. 개인사를 비롯한 여러가지 일들이 이리저리 겹쳐서 머리를 단순하게만 쓰고 싶은 시절이었거든요.(다행스럽게도 이제 출구가 좀 보입니다) 그런데다가 수.......하....악이라니... 그중에서도 '미분'이라니.... 읽고 읽고 읽어도 들뢰즈가 하는 말의 반만 알아들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반이 아닙니다.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는 게 '반'이라는 이야깁니다ㅋㅋㅋ) 그러다가 결국 수학-미분에 대한 마음을 접고, '이건 철학책이야'를 되뇌이면서 다시 읽고 나니 들뢰즈가 '미분'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겨우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차이와 반복>을 읽는 동안 막히는 순간이 올 때 베르그손을 떠올려보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순간이 아주 많다는 걸 자주 느끼곤 하는데요.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뭐냐하면, 베르그손은 기본 관점은, (대충) 근대 과학은 '시간을 공간으로 환원'해서, 다른 말로 하면 끊임없이 진동하는 지속의 세계를 멈춰있는 것들의 연속동작으로 파악한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진상은 그렇지가 않고 우주는 모든 사물은 매순간 한순간의 멈춤없이 지속한다는 겁니다. 들뢰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요. 그런데, 우리가 보는 동일성의 세계, 재현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지속'이 포착되질 않습니다. 이 '지속'을 '파악'하려면 그 지속을 다룰 수 있는 논리학이 필요할 겁니다. 아... 그래서 '미분'이구나! 그런 의미에서 이 지속의 세계에 지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미분'이라는 생각을 했었었습니다.  

    그렇다면 들뢰즈에게 '이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경험은 감성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개체적인 것이고, 기계적으로 보면 '재현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일 거고요. 칸트에게서 '이념'이 지성적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규제적' 요소라고 한다면, 들뢰즈의 존재론에서도 '이념'은  '경험'의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론적 바탕'일 겁니다. 칸트의 구도와 비슷하지만, 아주 많이 다르죠. 그리고 그것은 제 생각엔 아마도 베르그손이 봤던 '지속'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칸트를 훨씬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고, 베르그손적 직관을 훨씬 칸트적으로 해석하면 차이와 반복의 존재론이 되는걸까요? ㅎㅎㅎ

    (지난주 쉬고, 이번주 세미나 하고, 다음주 쉬고... 이렇게 하다보니 앞으로도 세미나를 이렇게 격주로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ㅎㅎㅎ)

  • 2022-09-21 09:39

    갑자기 저를 호출하심이.... 낙오자를 부르셨나요? ㅎㅎㅎㅎㅎㅎㅎ 

    가면 정군샘이 일대일 과외 해주시나요?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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