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철학학교] <차이와 반복> 읽기 시즌 2 여덟 번째 후기

지원
2022-07-13 11:57
389

“정신분석 잘 모르지만….” “프로이트 잘 모르지만….”

 

지난주, 이번주 세미나 시간에 아마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왜 갑자기 정신분석이지? 왜 프로이트지?’라는 질문이 함께 들었습니다. 4절 시작을 떠올리면 대략 짐작은 갑니다. ‘생물 심리학적 삶’을 다루기 위한 것이었고, 이제 개체화, 혹은 한 인간의 주체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프로이트가 어쨌다는 건지, 어린아이의 손 빨기가 왜 그리 중요한 건지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겨냥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블로그에 연재 중인 글* 때문에 《천개의 고원》 2장을 같이 읽은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습니다. ‘1914년 –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라는 멋진 제목의 장은 ‘다양체’를 다루는 장입니다. 여기도 프로이트가 등장하는데, 그는 이 장에서 비판의 대상일 뿐 아니라, 거의 조롱의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정말이지 늑대가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프로이트만 모를 뿐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것을 프로이트는 모르고 있다.”

 

소위 ‘늑대인간’이라 불리는 프로이트의 환자가 꿈 속에서 나무 위 여러 마리의 늑대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해석하는 프로이트. 그는 일곱 마리 늑대를 한 마리 늑대로, 늑대라는 상징으로 포착하고, 그것을 ‘아버지’로 환원합니다. 들뢰즈는 이에 반해 늑대가 언제나 무리임을, 하나의 상징으로 축소될 수 없음을, 그것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때마저 ‘우글거림’임을 주장합니다. 이 또한 개체화 이전의 상태에서 개체화로 나아가는 과정 혹은 그런 것이 펼쳐지는 장, 면pla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늑대들’이라는 장과 ‘늑대인간’이라는 고유명. 《차이와 반복》과 《천개의 고원》은 1968년과 1980년이지만, 묘한 기시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68년과 80년, 그 12년 사이 들뢰즈는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읽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건 역부족이었습니다. 더 잘 읽히게, 더 멋있게 썼다는 것…? (2장은 《천개의 고원》 중에서도 아주 짧은 장이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러시아의 귀족이었던 세르게이 판케예프는 강박증과 늑대 공포증으로 프로이트에게 정신 치료를 받았다. 그는 창밖의 호두나무에 하얀 늑대들이 앉아 있는 꿈을 꾸었는데, 이를 그린 그림이다.)

 

 

저에겐 또 하나, 프로이트와 관련한 재미난 인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였는지, 중학생 때였는지 모르겠으나 엄마가 침대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노란 표지의 프로이트 전집을 쌓아두고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 옆에 누워서 그것을 읽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저였으나, 매우 집중해서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책들이 ‘야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 선생이 소파에 앉은 여성 환자와 꿈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그 꿈에 등장하는 인물, 사물, 사건들을 모두 성적인 상징으로, 특히 길거나 두껍거나 뾰족하거나 위협적인 모든 것을 성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어린 저에겐 엄청나게 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엄마 옆에서 합법적으로(?) 야한 것을 읽고 있다는 묘한 긴장감까지 더해져 저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늘 어디선가 프로이트가 나오면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런 점에서 프로이트의 ‘상징’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론서가 아닌 임상과 관련한 (그리고 특히 야해 보이는 제목의) 이야기들만 읽었기에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10살 무렵의 어린아이도 납득 가능한 직관적인 상징의 체계를 구축하고, 그 체계 속에서 모든 사건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이름을 붙이고, 모든 사건과 이름이 결국 하나의 상징으로 환원되도록 하는 것의 힘에 대해서 말입니다.

 

정군 샘에 세미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들뢰즈가 정신분석을 가져온 이유는 이제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다루기 위해서이고, 그것이 아버지의 질서라는 상징체계에 의해 축약되어지는 방식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는 반기인 것이고, 그 상징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쾌락이나 욕망이 어떤 원칙 속에서 결핍의 기호로 이해되어선 곤란하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이름 붙여지고 명료한 대상으로 포착되는 현행적 현재는 언제나 사라진 현재와, 이 두 현재 사이에서 우글거리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잠재적 대상들의 움직임과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아주 어설프고 불분명하게 지금 수준에서 요약하면 그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세미나 말미에 들뢰즈에겐 ‘생명 활동 자체가 문제와 물음’인 것 같다는 요요샘의 말씀이 좀 더 잘 이해됩니다. 붙여진 이름들, 개념들, 상징들에 문제제기하고 물음을 던지고 그것을 깨트리고 다시 이름 붙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이상 독해력 0의 책 얘기는 안 하고 딴소리만 하는 후기였습니다(다들 딴소리 후기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벌써 두 시즌이 지나가는데 뭘 읽고 뭘 이해한 건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뭔가 속에서 우글거리고 있을 거라 믿으며…

 

 

* 연재 중인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젠다2.0 블로그로,, ☞ https://blog.naver.com/agendaof/222781310467

댓글 5
  • 2022-07-13 14:36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많은 것들을 성적인 욕망, 결핍, 해소 등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리 상징일 것이다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유없는 정신분열적 논리의 점프 때문에(성기가 무슨 죄이냐고요!!!!) 반감이 일었는데, 들뢰즈는 왜? 이것을 가져와서.........

    매우 공감하는 후기 !  감사!

    • 2022-07-14 09:03

      음..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본 건 이렇습니다.

      들뢰즈는 칸트의 세가지 종합(세겹의 종합)을 넘어서는 시간의 세가지 종합을 펼칩니다.

      칸트의 세겹의 종합에 대해 이수영 선생이 정리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직관에서 마음의 변양인 표상들의 포착의 종합, 상상에서의 표상들의 재생의 종합, 그리고 개념에서의 표상들의 인지의 종합"(A97). 칸트는 이 세가지 종합이 주관의  세 인식원천(감각기능, 상상력, 통각)을 이끌고, 이 인식원천이 지성을 가능하게 하며, 이에 따라 지성의 경험적 산물인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여기서 핵심은 종합이 연역에서 그 첫단계라는 것입니다."(이수영, 순수이성비판 강의 1권, 149쪽)

      칸트의 세 종합에 대응하는 구조가 들뢰즈의 시간의 세가지 종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의 세 종합이 능동적 종합인데 반해 들뢰즈는 능동적 종합의 근거로서 수동적 종합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프로이트를 끌어오는 것은,  칸트의 세 종합의 불철저함을 수동적 종합으로 정리한 뒤, 이 종합을  생물 심리학적 삶의 경우를 밝힘으로써 보충(혹은 반증?)하려는 것 같습니다.

      지원님이 후기에서 쓴 것처럼 들뢰즈는 통념적인 프로이트(가마솥샘의 성기가 무슨 죄라고?^^)를 넘어서서 무의식 차원에서 세가지 종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자신의 논리를 쌓아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존 형이상학이 의식의 차원에서 철학을 전개해 나갔다면(칸트의 세가지 종합 역시!) 들뢰즈는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프로이트에 의해 발견된(발명된?) 무의식의 차원에서 시간의 세가지 종합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동적 종합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무의식에서의 비자발적 종합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지난 시간 잠시 논란이 된 대상=x도 칸트의 개념이더군요.(순수이성비판 A105/ 이수영 1권 154쪽) 잠재적 대상을  대상=x라고 표현하는 것도 역시 칸트를  비틀고, 또 프로이트학파의 후계자들이 말한 대상a를 동시에 비트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트의 대상=X는 직관이 종합한 감각들의 잡다.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 근거없이 직관들을 종합해 대상=X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래 "대상이라는 것은 그것에 대한 개념이 그러한 종합의 필연성을 포현하는 어떤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니 말"(A106)입니다.](이수영 1권 155쪽)

      • 2022-07-14 11:31

        잘 읽었습니다. '대상=x'도 칸트에서 온 것이었다니! (아니, 얼마나 꼼꼼하고 깊이 읽으시는 것인지 요요샘께 경탄을....) 궁금해서 알려주신 부분을 이수영샘 책에서 찾아보니 이 '대상'은 '저 표상 능력 바깥의 '대상'과 다른 대상, 그러니까 '표상들의 종합에 의해 성립하는 '대상'이네요. '인식에 의해 성립하는 대상'을 '어떤 것=x'라고 표현한 것이라고요. 들뢰즈가 사용한 대상=x와 칸트의 대상=x를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또 다시 새로운 관점을 요구 받는 느낌이 듭니다. 

  • 2022-07-14 07:22

    https://blog.naver.com/agendaof/222781310467

     

    지원씨 블로그 링크를 걸어서 올렸습니다.
    저도 세미나와는 다른 짓꺼리만 하고 사라집니다.ㅋㅋㅋ

  • 2022-07-14 09:50

    '68년의 들뢰즈와 80년의 들뢰즈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은 후기 안에 어느 정도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부정적인 것에 대한 공격과 긍정적인 것의 구성'이 철학사-존재론(플라톤-헤겔주의)에 적용되는지, 정치적인 것(정신분석-신자유주의)에 적용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68년의 들뢰즈는 80년의 들뢰즈의 '전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고요. 다시 말해서 사유의 '코어'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개의 고원> 2장의 '다양체'를 통해 역방향으로 68년의 들뢰즈를 이해하는 게 가능한 것이죠. 

    저는 이 점이 들뢰즈 안에 들어와서 들뢰즈가 되어버린 스피노자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피노자가 '민주정'을 말할 때, 그것이 '윤리학'에서 펼쳐놓은 존재론적 평면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들뢰즈 역시 후기에 존재론과 아무 상관없는 듯 보이는 것을 말할 때에도 개체화, 다양체, 긍정성 같이 존재론적 테마들을 전제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들뢰즈는 거의 17세기인처럼 철학을 하는 듯 보입니다. 과학과 철학이, 문학과 철학이, 존재론과 정치론이 한 몸처럼 엮여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결론이 이상하지만 그래서 17세기 철학을 꼼꼼하게 공부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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