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철학학교] <차이와 반복> 읽기 시즌 2 여섯번 째 후기

정군
2022-06-24 00:56
287

<시간의 종합>이라는 문제

먼저, 2장의 제목을 다시 읽어봅니다. '대자적 반복'이라고 하는군요. 1장은 '차이 그 자체'였고요. 1장의 제목을 다른 말로 하면 '즉자적 차이'일 겁니다. 앞서나온 '즉자'의 계기를 통해서 '차이'를 유-종적 차이와 구분하고, 헤겔식의 더 종합을 예비하는 차이와도 구분합니다. 더불어 더 미소한 차이와도 구별하죠. 그 작업들은 '차이'를 '부정'으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대자적 반복'에서는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2장 '대자적 반복'은 '차이'와 어떤 관련이 있는걸까요?

우리가 강독을 하다보면, 계속 세부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까딱하면 '전체'를 잃어버리게 되고요. 게다가 <차이와 반복>처럼 정신이 쏙 빠질만큼 어려운 텍스트라면 그 위험이 더더욱 커집니다. 그래서 '들뢰즈가 지금 이 말을 왜 하고 있지?'하는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세미나 중에 종종하곤 합니다. ㅎㅎㅎ

 

 

이번 주에 본 '시간의 세 번째 종합'에 가서야 드디어 1장 차이 그 자체와 2장 대자적 반복 사이의 관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읽은 것과 같이, '시간의 텅빈 형식'으로서 세번째 종합은 여러 시간들을 모으고, 분배하고, 자아를 분할하고, 자아의 일관성 너머의 비밀스러운 일관성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게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러니까 '반복' 속에서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차이'는 이미 전체 속에 그렇게 있는 것으로 있는데, 그 차이들은 '시간' 안에서, '반복'을 통해 '펼쳐진 것'이죠. 그런 점에서 212쪽(구211쪽)에 '즉자적 비동등'으로서 '평민-초인'은 이미 '개체'나 '주체', '자아'를 훌쩍 넘어선 것일 겁니다. 첫번째 종합(습관의 종합), 두번째 종합(기억의 종합)이 특정한 '주체'를 구성하는 '종합'처럼 보이는 걸보면 좀 더 분명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세번째 종합은 그걸 넘어서는 것이고요. 말하자면 그것은 '텅빈 형식'이기 때문에 어떤 '전체'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시간의 세 계기가 한꺼번에 들어있는 것이죠. 세번째 종합을 첫번째 두번째 종합과 관련지어서,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주체는 주체다. 다만 그것은 (차이나는) 반복 속에서만 주체가 된다'라고요. 두번째 종합이 어떤 기억의 불충분한 재현인데 반해, 시간의 형식 그 자체로서 세번째 종합은 훨씬 더 넓은 시야 속에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2장 3절 초입에서 데카르트를 비판하다가 주체 안의 어떤 '균열'을 발견한 칸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들뢰즈는 거기서 '수동적 자아'를 봅니다. 칸트는 그걸 '수용적 자아'(수용만 하는 자아)라고 하면서 그것이 가진 '역량'을 제거해 버리죠. 그런데 들뢰즈가 본 '수동적 자아'는 달리 말하면 역량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재현적 주체'의 '바탕'이니까요. '재현'된 것은 언제나 '(불충분한) 일부분'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쯤되면 데카르트가 '연속 창조론'을 이야기한 것도 이 세계가 이렇게나 다양하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생시키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야 하니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똑같은 질문에 대한 들뢰즈의 답변은 '차이나는 것들이 영원회귀 속에서 반복된다'일테고요. 그때 '수동적-수용적 자아'라는 건 '자아의 일관성 너머의 비밀스러운 일관성'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 자아의 '수동성' 덕에 2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프로이트가 불려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대목을 다시 생각하니 저 자신이 진실로 우연적으로 발생한 극미한 일부분일 뿐이라는 게 아주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우연을 반복하고 있고요. 이 시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일이 하나도 없겠네요. 그야말로 '절대적 긍정'입니다.ㅎㅎㅎ(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 그러니까 절대적 긍정과 현실적 허무 사이의 딜레마가 사실은 제가 몹시 자주 부딪히는 문제이긴 합니다. 물론 들뢰즈의 말이 이런 말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 길에 들어서기가 쉬운 구도라는 건 분명합니다. 아마 그래서 니체도 그렇게 '니힐'을 문제 삼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또 그런 이유로 계몽주의가 이 도식에 강하게 의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봐 그러면 안 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지!')

 

당장 내일부터 뭔가 써야할 글이 많은 관계로 급히 쓴 후기를 후다닥 올립니다. 피곤하기는 한데, 긴장상태로 운전을 해서 그런지 아직 이완이 되질 않고 있습니다. ㅎㅎㅎ 그 덕에 후기를 마감하는군요. 자 그럼, 한주일 또 잘 읽고 고민해보고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뿅!

 

 

댓글 3
  • 2022-06-24 07:02

    와~~ 에너지가 넘치십니다

    그밤에 빗속을 운전하고 또 후기까지

    정군샘의 정리를 보니 어제 세미나가 쪼끔은 이해가 될것도 같네요

    정말이지 대자적 반복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했었거든요

    에로스 타나토스도 이제 쬐끔은 아? 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도 같고

    고맙습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밤 꼴딱새고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이 순간은 뭘까요?

  • 2022-06-24 13:24

    빗 속에 배를 몰아 집에 가셔서 후기를 남기신 정군샘과  밤새 손주를 돌보시고 아침에 댓글을 다는 인디언샘 두 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세미나 중에 '들뢰즈의 영원회귀'에 대해서 계속 시비를 걸어 방해를 하느니, 조용히 들어 앉아 이 뻘스런 '들뢰즈의 영원회귀'가 나오게 된 배경...그러니까 클로소프스키와 주거니 받거니 한 내용을 좀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세미나 옆으로 클로스프스키의 '니체와 악순환'을 좀 읽어보려고 합니다. 세트로 묶인 신의 죽음과 자아의 분열이 나올테고 영원회귀가 나올텐데...어쩌다가 들뢰즈는 이리 많이 나가게 되었는지 그 틈을 좀 메워보겠습니다. 

  • 2022-06-29 11:28

    왜 시간의 세번째 종합에서 데카르트와 칸트가 불려나오는가?

    왜 세번째 종합의 시간은 미친 시간인가?

    세번째 종합에서 순서적인 시간(운동에 종속된 시간도 아니고, 경험적으로 분배되는 과거현재미래도 아닌 텅빈 형식으로서의 시간)은 시간의 집합과 계열에 의해 정의되는데, 시간의 집합은 균열된 나를, 시간의 계열은 분할된 자아를 상관항으로 가진다. 왜 이 둘이 상응하면서 이르게 되는 공통의 출구가 평민, 초인(영원회귀)인가?

     

    이 문제를 풀려고 지난 시간 분량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음..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군님 후기를 보니.. 뭔가 깨치신 것 같아 부럽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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