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차이와반복>읽기 시즌2 1장5절 요약 모음

정군
2022-05-24 20:31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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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 2022-05-25 01:50

    6절2 나눔의 방법, 150-152

    플라톤주의는 어떻게 전복될 수 있는가? '플라톤'에 의해서 전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플라톤주의 내부에서 '으르렁'거리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뢰즈는 '이데아'를 '재현불가능한 것'의 '생생한 현전'으로, 그것을 슬그머니 순수한 '차이'로 바꿔놓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헤라클레이토스'는 '플라톤주의' 안에서 은폐되었던 것일까? '관행' 때문이다. 플라톤적인 '나눔의 방법'을 아리스토텔레스적 종별화의 전범으로 읽어온 '관행' 때문이다. 이때 플라톤적 나눔의 방법은 분류를 가능케 하는 '매개'를 결여한, 잘못된 '종별화'의 방법이 된다. 그러나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순수한 존재'를 찾아내는 '선별'이지 '분류'가 아니다. 다시말해 '나눔의 방법'은 온갖 혼란한 것들 속에서 순수한 것을 찾아내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때 대립되는 것은 '유' 내부의 '종적 차이'가 아니라, 순수와 불순, 진짜와 가짜, 좋음과 나쁨이다. 그래서 선별은, 저마다 자신의 순수, 진정성, 좋음을 주장하는 경쟁이 된다. 달리 말해, 다른 것에 대해 '차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종별화는 의미를 상실한다.

    이런 구도에서 보면 플라톤적 나눔의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종별화와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작은 차이들을 포괄하는 '동일성'이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차라리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어떤 것'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얼마나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차이'가 되는가?

    • 2022-05-25 21:15

      헤라클레이토스가 플라톤주의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궁금해요. 불? 변화? 이런 수준으로밖에 모르다 보니...

  • 2022-05-25 07:59

    6절 마지막 부분(158~160)

    플라톤의 변증술은 문제나 물음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문제나 물음은 인식의 일부를 이루고, 문제나 물음은 ‘존재’(이데아)를 향해 있다. 존재와 물음 사이에는 존재론적인 관련이 있다. 이 관계에서 볼 때 존재는 본연의 차이이다. 존재는 또한 비-존재이기도 하다. 비-존재는 반대가 아니라 다름이기 때문이다.(이 문장은 들뢰즈가 플라톤의 <소피스트>에서 가져온 것) 비-존재를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문제와 물음의 존재로 이해한다면, 비-존재는 (비)-존재, 혹은 ?-존재라 적는 편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존재는 변별적 차이 관계가 형성되는 지반이고, 이 지반 위에서 긍정은 다양체의 성격을 띠는 자신의 발생원리를 발견한다. 이 때 부정은 그림자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비)-존재를 부정으로 잘못 이해한다면, 모순은 불가피하게 존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순은 여전히 문제에 의해 투사된 가상이고, 열려 있는 물음의 그림자, 이 물음과 소통하고 있는 존재의 그림자이다. [모순의 저편은 차이다. 비-존재의 저편은 (비)-존재이고, 부정적인 것의 저편은 문제와 물음이다.]

     

    *비-존재를 (비)-존재, 나아가 ?-존재로 적어야 한다는 들뢰즈의 말은 비-존재와 관련한 <소피스트>에서의 도달점, 즉 ‘비-존재는 부정이 아니라 다름이다’를 더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는 플라톤으로부터 플라톤을 넘어서는 것을 끄집어 낸다. 존재는 차이이고 존재는 비-존재라는 문장 역시 그렇게 플라톤을 밀어붙이는 맥락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그런데 다름으로서의 (비)-존재를 부정으로 혼동한다면, 모순은 불가피하게 존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말은 헤겔을 겨냥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뒤이어 나온 하이데거에 대한 철학적 주석 때문에 하이데거와 관련된 것인지 헷갈린다. 아니면 둘 다?^^

    *하이데거에 대한 주석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건 좀 더 생각해 보겠슴다.ㅎ

  • 2022-05-25 11:02

    7절 마지막 부분(구165-167)

    이 장은 재현에서 시작해 재현이하의 영역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재현은 불가피하게 감성론을 두 영역으로 쪼개버린다. 재현의 요소들인 가능한 경험의 조건들로서의  범주들이 실재에 이르기에는 너무 일반적이고  크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두 영역은 감성적인 것에 대한 이론과 미에 대한 이론으로 나뉜다. 들뢰즈에 따르면 실재적 경험은 미적이론과 관계있는 예술 작품에서 나타난다. 사실 재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현이 동일성의 형식에 머문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의 단일한 중심만을 지니는 헤겔의 무한한 원환과 계열들이 하나의 같은 세계로 수렴하는 라이프니츠의 예를 통해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동일성의 구조를 깨는 것이 말라르메의 '책'이나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와 같은 현대 예술작품이다. 이들은 계열들을 발산시키고 원환들을 탈중심화시키면서 동일성을 와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한 계열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계열들의 회귀 안에서  '허상'의 형태로 돌아온다. 이때의 허상은 원형과 특권적 위치에 대한 전복이며 모든 유사성의 폐기이다.  또한 허상을 돌아오게 하는 선별과 반복등을 통해 우리는 가능한 경험의 조건들이 아닌 실재적 경험의 조건들을 찾게 된다. 그리하여 이런 실재성을 체험하게 하는 곳은 재현 이하의 영역이다. 이 곳에서 재현의 동일성과 유사성은 계속되는 불일치와 차이의 차이로서의 순수한 현전이 된다.

     

     

  • 2022-05-25 11:32

    7절 시작부분(161~164)

     

    플라톤주의가 길들여졌고, 플라톤주의의 전복이 현대 철학이 될 것이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149) 그렇다면 전복(들뢰즈식 전유)은 어떻게 가능할까? 플라톤주의를 막다른 위기(149)에 처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주의의 막다른 위기(역설)를 포착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데아(현명한자)의 가장 극명한 반대쪽 그러니까 모순(소피스트)을 만나게 하는 장면이지 않을까?  들뢰즈는 이를 ‘소피스트’의 장대한 결말에서 찾아낸다.

     

    그 장대한 결말을 살펴보자. ‘그(소피스트)가 현명하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그러나 그는 현명한 자를 모사하는 자이므로, 그가 이 사람으로부터 파생한 어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이자를 전적으로 진정한 소피스트라고 우리가 진실로 불러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거의 이해했습니다. ~ 모순을 만드는 기술에서, 위장하는 기술에서, 믿음에 의존하는 기술에서 나온 모사자 그리고 유사 닮음을 만드는 종족에서, 모상 제작술에서 나와서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제작하는 부분 그리고 말로써 볼거리를 만드는 부분으로 구분된 자, 바로 이런 가계와 혈통으로부터 진정한 소피스트가 나왔노라고 누군가라도 주장한다면, 그는 가장 진실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플라톤의 대화술(변증술)은 차이(나눔,선별)를 만들기는 한다. 신화를 매개로, 이데아와의 같음이나 일자에 근거해서 물자체와 허상(시뮬라크르)을 선별한다. (163~164) 당연히 원본은 소중한 절대적 근거가 되고, 이 근거(이데아)를 필두로 가장 낮은 등급의 모순에까지 이른다. 현명한자(이데아)의 반대편에 모순덩어리인 소피스트가 있다. 역량 분유의 마지막 단계는 소피스트다. (164) 이데아에서 세운 줄은 모순으로 가득찬 카오스에 이른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그리는, 나눔/선별/분유가 그리는 세상이다. 이제 뒤집어 보자. 소피스트가 드러내는 세상이 진짜가 아닐까? 원본에 대한 사본의 우위를, 이데아에 대한 허상의 우위(162)를 그러니까 근거와해가 일어나는 영원회귀의 사태(163)가 진실이 아닐까?  소피스트는 물자체를 허상의 상태로까지 끌고 가는 자, 허상의 상태 안에서 사물들 전체를 운반하는 자가 아닐까? (164) 세상을 바로보는 방법은 이데아가 아니라 허상일 것이다. 들뢰즈의 바탕/잔혹성을 드러내기가 여기서도 반복된다. 플라톤은 이걸 보고도 무엇을 봤는지 몰랐다. 플라톤주의를 여기까지 밀어붙일 수 있지 않을까? 플라톤주의의 역설은 플라톤이 낳지 않았을까?

  • 2022-05-25 21:33

    157~158

     

    신화는 근거의 시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해준다. 변증술[문답법]은 반어이다. 그러나 반어는 문제와 물음들의 기술이다. 변증술은 ‘문제들’을 통해 근거의 역할을 맡는 순수한 원리로까지 나아간다. 문제와 물음이 플라톤의 변증술에서 맡았던 역할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부정적인 것이 떠맡는 역할에 견줄만하다. 그러나 플라톤에서의 역할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비-존재’에서 ‘비’는 부정적인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표현한다. 전통적인 이론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① 비-존재는 없고 부정은 가상적이며 근거가 없다. ② 비-존재는 있고 이 비-존재는 존재 안에 부정적인 것을 위치시키며 부정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비-존재는 있다. 그리고 동시에 부정적인 것은 가상적이다.

  • 2022-05-25 23:20

    6절 (p.149~150)

    -6절은 일자(一者), 유비, 유사성, 심지어 부정성의 역량에 대한 차이의 종속을 대변하는 플라톤주의는 그 안에 전복적인 요소가 내재함을 언급한다. 이러한 전복적인 요소로서 ‘나눔’이라고 하는 중간항이나 합리적 이유 없이 진행되는 ‘무매개적 절차’에 대해 설명한다. 아울러 나눔은 하나의 독특성에서 다른 하나의 독특성으로 도약하는 어떤 변덕스럽고 일관되지 못한 절차라고 한다. (‘나눔’..정말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점점 더 난해해지는 부분이다.)

    때문에 “나눔의 방법이 진정한 차이의 철학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모든 변증술적 역량을 집약하는 기법, 그래서 플라톤주의와 플라톤주의의 전복 가능성을 동시에 가늠하는 기법이 아닐까?” 라는 저자의 물음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 2022-05-25 23:56

    152p~154p 여울아

    앞서 나눔의 방법은 플라톤주의와 플라톤주의의 전복 가능성을 동시에 가늠한 수 있는 변증술적 기법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들뢰즈는 나눔의 방법에 힘입어 어떻게 선별적 차이를 만드는지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정치가>는 정치 지망생을, <파이드로스>는 광기들을 선별/구별하는 문제에서 플라톤이 “신화”를 끌어들이는 것이 들뢰즈는 놀랍다고 말한다. 이런 나눔의 방법으로 누가 참된 지망자이고 참된 참여자인지, 그리고 다른 인물은 어떤 순서로 놓이는지를 규정할 수 있다. (제임스 윌리엄스는 최선을 선별하는 문제라고... 이상적인 말은 무엇인가? 이상적인 연인은 무엇인가? 등 173)

    • 2022-05-26 00:24

      뿅님 감사.. 왜 폰으로는 되는데 컴으로 댓글이 안 올려지는지.. 

      ※들만철 2장이 플라톤주의를 뒤집다.. 네요. 너무한 거 아녀요. 미리 좀 알려주시지.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또 이거 다 읽어야 하나 싶어서 수업전까지 못읽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들뢰즈보다 친절한 느낌적인 느낌... 저처럼 사전 세미나 참석하지 않은 분들은 참고하셔요.

  • 2022-05-26 01:25

    154p~155p 

    신화와 변증술은 플라톤 사상에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힘이지만 '나눔'을 통해 신화는 변증술 안에 통합되고 변증술 자체의 한 요소로 바뀌게 된다.  플라톤에게서 신화의 구조는 원환적이다. 이 원환은 회전과 복귀, 분배 또는 할당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역동적인 기능을 갖는다. 신화의 순환 모델은 차이를 만드는 어떤 근거, 선별의 원리를 만든다.  따라서 원환적 구조의 신화는 어떤 정초 작업의 반복-서사이다. 나눔 안에서 정초로서의 신화와 나누는 말로서의 로고스(변증술)가 하나를 이루고 있다. 

  • 2022-05-26 08:03

    155~157p

    분유(分有)란 '나누어 가진다'라는 뜻으로도 '부분적으로 있다'는 뜻. 즉, 이데아가 완벽하게 들어있는 사물이란 있을 수 없으며,  완전히 떼어서 완벽하게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없다...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근거는 이데아인데, 이데아는 일차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올바름만이 올바른 것은 근거이며 이데아이다. 세상에는 올바르다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올바른 자질이 있지만 단지 이차적, 삼차적으로 있을 뿐이다. 이들 이차적, 삼차적으로 소유한 자들은 서로 경쟁적 지망자가 된다. 

    정리하면 먼저 올바름(근거)이 있고, 올바른 자질(지망대상)이 있고, 올바른 자들(경쟁적 지망자)이 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이것을 삼항관계로 제시한다.  근거는 분유불가능한 것-지망대상은 분유되는 것-경쟁적지망자는 분유하는 자이다.  이것을 아버지-딸-구혼자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아버지는 분유불가능한 자로서 권력을 나눠/가질 수 없다. 딸은 아버지로부터 나누어 줄 수 있는 것, 나뉘어지는 대상이 된다. 구혼자는 경쟁적지망자, 즉 딸을 차지하는 자이다. 이때 여러 구혼자들은 저마다 올바르다고(자신이 가장 적합한 사윗감이라고) 주장하지만, 뭘 가지고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구혼자들을 이러저러한 매개항으로 랭킹을 매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모, 조수, 하인들같은 허상들이 선발경쟁에 참여하고, 올바른 지망자 자체에 있는 허상, 가짜들이 시험에서 적발된다. 플라톤은 당시 소피스트들, 어릿광대, 켄타우로스, 사티로스 등이 모두 허상, 가짜라고  했다.  

    들뢰즈는 여기에서 이 허상들을  살려내어 수직계열로 위계지을 수 없는 평등관계,  차이의 동등성만이 있는 '존재의 일의성'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2022-05-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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