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시즌2] 첫시간 후기

인디언
2022-05-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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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들의 블루스

 

“그에게 긍정한다는 것은 짊어지고, 떠맡고, 감당한다는 것이다. 당나귀는 모든 것을 짊어진다. 사람들이 그에게 지우는 짐들을, 그 스스로 떠맡는 짐들을, 그리고 짊어질 것이 더 이상 없을 때는 자신의 피로해진 근육의 무게를 짊어진다. 이 당나귀...는 책임감을 향한 지독한 취향과 도덕적 향수가 있다.”

“니체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분명 역량을 지닌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현행 가치들의 귀속 관계에 의해 판정되기 때문이다. 노예가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예들은 세계의 운행법칙이나 세계의 표면 법칙마저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

 

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게 환영이었나?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긍정이 아니고 짐을 떠맡는 것, 그저 감당하는 것이었나? 이미 확립된 가치들에 매여 스스로 짐을 떠맡고 긍정적으로 사는 좋은 사람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는 건데......

가마솥은 얼마 전 형님이 어머니 제사를 성당에서 연미사 드리는 것으로 바꾸자고 하며 의견을 묻자 그러자고 해놓고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망자에 대한 안녕은 연미사로 되겠지만, 살아 있는 후손들이 조상을 이야기하며 기리는 것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형님은 카톨릭 신자니까 그럴 수 있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은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 아들에게 나중에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지내는 걸 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까지 하고... 형님이 하는 건 내가 어찌 못하겠으나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 같단다. 가마솥이 묻는다. 나 당나귀인가?

그럼, 나는?

난 정말이지 모든 걸 떠맡고 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이다. 나 말고는 할 사람도 없으니까. 내가 조금 힘들면 만사 오케이니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그래야 한다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가끔은 이런 내가 우월한 인간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책임감을 향한 지독한 취향과 도덕적 향수”가 바닥에 깔려있는 것 같다. 그것도 능력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주인의 역량이 아니고 노예의 권력이었던 것인가?

내가 지고 있는 짐의 무게로 나의 가치를 평가해왔나?

 

“긍정은 차이, 거리를 긍정한다. 차이는 가벼운 것, 공기 같은 것, 긍정적인 것이다. 긍정한다는 것은 짐을 짊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짐을 던다는 것,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짐을 내던지고 가벼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아니오"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재현이 아닌, 동일성의 가치를 벗어나는,  진정으로 긍정하는 존재가 될 수는 있을까? 

<차이와 반복>을 읽으며 해결해야할 화두가 하나 생겼다. 한번 가보자. 끝까지!

 

댓글 8
  • 2022-05-22 22:13

    아니 이것은 니체 후기인가 들뢰즈 후기인가? ㅎㅎ 인디언 샘 잘 읽었습니다. 제 기억에 짐을 지는 동물은 낙타였는데, 당나귀가 출현해서 세미나 시간에 헷갈리긴 했습니다. 

    • 2022-05-23 07:57

      낙타가 좀 낫네...ㅎㅎ 

  • 2022-05-23 14:27

    예전에 니체읽을때 3단계 변화를 낙타ㅡ사자ㅡ어린아이로 읽었었죠. 근데 늘 맘속에선 현실에서 볼 때는 낙타와 어린아이가 과연 얼마나 실제로 다르게 보일까가 좀 의문이었다는^^ 아직 멀었죠? 공부 좀 했다 싶을려면 

    • 2022-05-23 17:27

      샘...공부 좀 했다 싶을 때...올까요? 전 그런게 있을까 싶어요...

  • 2022-05-23 16:36

    그새 많은 기억이 달아났습니다만, 지난 시간은 제게 조금 더 특별했어요. 정군샘이 '재현'은 왜 문제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어쩌면 새삼스럽게 다시 물어오신 것, 아렘샘이 들뢰즈의 논증 방식을 역시 어쩌면 새삼스럽게 문제 삼으신 것(충격의 가스라이팅 ㅋ), 그리고 거기에 대해 요요샘이 용수의 중론을 빌려와 새로운 논증의 가능성을 언급하신 것, 또 비재현적 사유와 표현의 실천으로서 예술에 대한 이야기.... 그런 새삼스러운 논의들이 저로 하여금 잠시 눈앞의 텍스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어요. 그리고 들뢰즈를 읽고 있는 바로 지금의 저를 돌아보게 했네요. 강독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아무튼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좀 더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 2022-05-24 09:44

    인디언 샘께서 와닿은 내용만 가볍게 써주시니 이것이 가벼운 차이, 긍정의 차이 같아요. ㅎㅎㅎㅎㅎ 일상에서도 이렇듯 가볍게 해보실 수 있지 않을까요.^^   

    복습하면서 지난 시간 분량을 읽었는데.... 이해가 되고 말고를 떠나서 무척 가볍게 읽혔습니다. 푸하하. 개념들에 짓눌려서 이해가 안돼에에에..으아아악, 너무 어려워~! 라고 울부짖지 않으면서, 그냥 들뢰즈의 노래처럼 들렸달까요.....(하하하하하)  

  • 2022-05-24 11:50

    '중심과 수렴이 없는 다른 계열들을 구성한다'는 게 우리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 걸까요?

    요즘 장애인들이 시설로부터 탈시설을 감행한 기록, <집으로 가는, 길>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안에도 수많은 계열들이 있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시설로부터 벗어나는 선들이 그려지고 있더군요.

    또 탈시설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도 아니고요..

    <차이와 반복>이 펼쳐가는 '계열 안에서조차 발산과 중심 이탈을 긍정'하는 읽기는 어떤 것일까요?

    <차이와 반복>을 단일한 중심찾기가 아닌 방식으로 읽는다면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호수샘과 매실샘의 댓글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에 공명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2022-05-24 19:37

    제가 '재현이 왜 문제가 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은....(음흉한 의도도 물론 있었지만)...ㅎㅎㅎ 다른 의미로 '철학'을 공부한다는 게, 실제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지난 주엔 좀 나은 편이었지만) 엄청나게 어렵지 않습니까. 이 어려운 공부가 우리 삶에 무엇을 불러오고 있는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면 공부는 무의미한가, 우리가 이미 무언가를 재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잘 연결된 것인지 이렇게 재미있는(?), 후기의 본령에 부합하는 후기를 써주셨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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