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 - <관안열전>후기

가마솥
2023-03-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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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안열전(管晏列傳).

 

사마천은 이 열전편(列傳篇)에서 무언가를 대비하려는 듯 보여 읽을수록 생각하게 만든다.

 

첫째, 제목처럼 관중과 안영의 대비이다. 시차는 100년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공통점은 모두 제나라의 재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대비되는 초점은 정치적인 측면이다. 관중은 정치적 능력, 특히 외교와 경제에 탁월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하여, 그가 왕에 버금가는 재산으로 삼귀(三歸)와 반점(反坫)을 갖춘 사치를 누렸지만 백성들은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쓴다. 관중이 “백성들은 곡식창고가 가득차야만 예절을 알며, 의식이 풍족해야만 영욕(榮辱)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준수하면 육친(육친)이 굳게 단결하게 되고, 사유(四維, 禮/義/廉/恥)가 해이해지면 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위에서 내린 명령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당시에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백성을 먼저 먹이자는 정치를 한 것이다. 또한 그는 귀족 출신이 아니다.

안영은 제(齊)나라 영공, 장공, 경공 삼대에 걸쳐서 재상을 지냈지만, 검소하기 이를 데 없고, 임금의 안색을 가리지 않고 바른말을 고하는 신하이다. 그에 대해서는 관중처럼 정사(政事)의 성과보다는 인품에 관한 에피소드(장공의 시신수습, 마부, 월석보)만 적는다. 그는 귀족인 대부 출신이다.

사마천은 관중에 대한 공자의 인색한 평(評)을 소개하면서도 “군주의 장점은 따르고 단점은 고쳐주는 것이야말로 상하가 서로 친해지는 것이다”는 경구를 실천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또한 안영이 살아있다면 그의 마부가 되어도 좋을만큼 흠모한다고 적는다.

평민출신으로 사치하였지만 탁월한 정책을 펼친 자와 귀족출신이지만 극도로 검소하며 바른말 하는 자를 대비시킨다. 무릇 정치인이란 안영의 성품으로 관중의 성과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아니면 이 둘을 달성하기는 어려우니 분명하게 둘 중 하나라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가.

 

둘째는 왕과 재상의 대비이다. 관중과 안영은 왕들과 대비하여 그들이 국사를 모두 처리하며, 그들이 제나라의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이루었음을 말한다. 누가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가? 세습되는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발된 재상의 능력에 기대는 것이 합당하지 않는가? 조선 건국시에 나라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는 제도인 왕권에 대하여, 경국대전을 기반으로 재상정치를 추구한 정도전과 왕위세습을 요구한 이방원의 싸움이 오버랩된다.

 

셋째는 관중과 포숙아의 대비이다. 평민과 귀족, 속이는 자와 속아 주는 자 등등으로 대비하다가 마지막에 관중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포숙아의 천거를 묻는 환공에게 No!라고 대답한다. 친구사이라고 하지만 포숙아는 항상 양보하고 베푸는 거의 성인(聖人) 수준의 덕(德)을 갖춘 사람으로 그려지고, 관중은 그런 호혜를 받는 줄 알면서도 포숙아만이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이라는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친다. 그렇기만 할까? 친구사이라면 한 사람의 왕자를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달래쌤 말처럼 관중,포숙아,소홀이 모두 친구사이로서 왕자인 소백과 규로 나누어 추종한 것은 서로의 안위를 지켜주는 확률을 높이는 선택일 지도 모른다. 또한 포숙아는 당시 제나라의 유력한 귀족인 고,국,포씨 중의 한 집안으로 정치에 깊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대대손손 오래도록 가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실제로 포숙아는 오래도록 가문을 유지하지만 관중은 자식代에서 폭망함), 그의 친구인 관중은 평민출신으로서 그의 능력이면 왕의 패권주의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과 관중이 그것을 원한다는 것(왕자 ‘규’가 죽을 때, 소홀을 따라 죽었지만 관중은 감옥살이를 선택함)을 알고 있어서 그를 환공에게 천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없이 정치를 해본 관중이 죽으면서 포숙아를 천거하지 않은 것도 권력 무상의 맥락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요컨대, 서로가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친구사이도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환공과 관중의 대비이다. 자신에게 활을 쏘아 죽을 뻔하게 만든 작자를 신임하는 신하이지만 포숙아가 천거한다고 해서 재상자리에 올린다?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내용이 없으니 그 자체로 유추해 보자. 환공이 별일 하지도 않으면서도 제나라가 패자가 된 것처럼 사마천은 썼지만, 관중을 등용한 것은 그를 알아 보는 식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즉, 환공은 관중 수준이상으로 정치,경제,외교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선거에서 이길 때,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빌린다”는 말로 식견은 높을지 모르나 한쪽 다리에 핸디캡있는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외환위기를 맞았고, 빈 곶간 열쇠를 쥐고 대통령을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극복하였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번 정부에서 국가기관장들이 죄다 검사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 금융분야의 검찰활동 경력이 많기 때문에 금융위원장을 할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데 아전인수(我田引水)도 유분수요, 국민을 바보로 아는 처사이다. 그들의 무위(無爲)가 최선이기만 바랄 뿐이다.

댓글 5
  • 2023-03-29 15:45

    포숙아가 관중을 천거하고 관중이 포숙아를 천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관중이 원하는 바를 포숙아가 알고 있었다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권력무상을 깨달은 관중이 포숙아를 천거하지 않았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가마솥샘의 글을 보니,
    제 환공 말기에 자기가 죽고 난 뒤 올 혼란한 정국에 포숙아가 휩쓸리지 않기를 바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3-03-29 20:05

    관중과 포숙아 관계에 대한 가마솥샘의 분석이 흥미롭네요.
    저는 포숙아가 그냥 속 깊고 착한 친구인가보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가마솥샘의 후기를 읽으니
    포숙아라는 인물이 아주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자기 몫으로 더 챙겨가는 관중이 살짝 얄밉기도 했는데 이또한 얄팍한 생각이었구나 싶고요.

    후기를 너무 정성스레 잘 써주셔서
    세미나 회원은 아니지만 주절주절 댓글 달아봅니당^^;;;

    • 2023-03-30 00:08

      여기서 만나니 넘나 반갑네요! 셈나에 오시면 더욱 풍성한 내용이... ㅋㅋㅋ

  • 2023-03-30 00:07

    모아놓고 보니 대비들이 참 많았었네요. 재밌어요 ㅎㅎ
    아, 그리고 저도 관중이 죽음을 앞두고 포숙아 천거를 반대한 건 포숙아를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믿음이 있었는데 말이죠!
    포숙아가 관중을 알아준 것만큼 관중도 그런 포숙아를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잘 알아주고.. 그렇게 서로 평생 신의를 지키며 살았을 것 같은... (저는야 낭만주의자 ㅋ)

  • 2023-05-14 23:09

    바보가 신념을 가지면 보이는게 없다란
    말이 현실이 되는 요즘입니다.
    嗚呼痛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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