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학교] 맹자 9회차 후기

곰곰
2022-10-26 00:26
336

<맹자> 전체 260장 중 긴 장이 3장이 있다. <양혜왕 상7>(1,313자) - <등문공 상4>(1,118자) - <공문추 상2>(1,095자)

이번에 공부한 ‘호연지기’가 이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지난 시간엔 그 중 일부만 보았는데, 이번 시간에는 전체 장을 모두 살펴보았다. 진달래샘이 정리해 주신 내용과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을 참고해서 잘 엮어보려고 했는데... 그냥 길어지기만 했네요. 그렇다고 더이상 후기를 미룰 수는 없어서.... 일단 올립니다. --;;;

 

맹자는 당시 팽배했던 기(氣)학설을 수용하되 이를 도덕적으로 재해석하여 호연-지기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맹자는 무슨 까닭으로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고 했을까? 

 

맹자는 먼저 부동심(不動心)에서 시작한다.

제자 공손추가 스승님이 제나라 재상이 되면 마음이 동요되는 일이 없겠느냐고 묻자, 나이 40부터는 부동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공손추가 그 방법을 묻자, 맹자는 마음 흔들리지 않기, 즉 부동심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한다. 예를 들어 북궁유는 살갗에 찔려도, 눈을 찌르려 해도 꿈쩍하지 않았으며, 상대를 불문하고 자신을 모욕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보복을 했다. 맹시사는 객관적인 상황을 돌아보지 않고 결과도 신경쓰지 않고, 다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부동심을 성취했다. 북궁유가 상대가 누구든지 반드시 이긴다는 자세에서 부동심을 얻었다면, 맹시사는 승패와 관계없이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키움으로써 부동심을 얻었다. 

맹자는 이들에 대해 “맹시사는 증자와 닮았고 북궁유는 자하와 비슷하다. 두 사람의 용기 중 어느 것이 나은지 모르겠지만 맹시사의 것이 지키기는 간략하다”고 논평했다. 자하는 내면에 대한 반성보다는 외적인 규범인 예를 학습하는데 주력했던 공자의 제자이다. 반면 증자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에 주력했던 제자이다. 맹자의 논평으로부터 맹시사가 지켰다는 그 간략함(요령)이란 내면에 있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맹자는 나아가 증자와 맹시사의 차이점에 대해 말한다. 맹시사는 북궁유와 비교할 때 간략함을 지켰다고 할 수 있지만, 증자와 비교한다면 증자가 간략함을 지킨 반면 맹시사는 ‘기’를 지킨 사람이다. 맹시사가 기른 것은 육체에 가까운 것이었다. (북궁유 몸(體) < 맹시사 기(氣) < 증자(마음 心(뜻 志)))

맹자의 부동심은 옛날 증자가 공자에게 들었다는 용기(大勇)와 비슷하다. 마음의 떳떳함에서 오는 강함. 맹자의 부동심은 육체적인 강함이 아니라 강한 ‘마음’이 핵심이다. 맹자식의 부동심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끄러움 한 점 없는 떳떳한 마음을 확립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맹자의 생각에, 마음이 주인이고 육체적인 기는 그에 종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단단하다면 기는 그 뒤에 따라온다. 맹자가 얘기한 북궁유와 맹시사의 이야기는 외부에서 나의 몸으로, 그리고 다시 마음으로 용기가 점점 내면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맹자는 북궁유의 용맹함, 맹시사의 기가 아니라 마음이 핵심이라 말한다. 

 

공손추가 맹자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을 묻자, 고자는 ‘말에서 얻을 수 없으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 마음에서 얻을 수 없다면 기에서 구하지 말라’(말 -> 마음 -> 기의 방향)고 했다. 그러나 맹자는 ‘뜻(志)이란 기를 통솔하는 장수요, 기(氣)는 몸에 가득찬 것이다. 뜻에 이르면 기는 그것을 따른다’고 말한다. (마음(뜻) -> 말 -> 기/몸의 방향)

맹자는 마음이 가는 방향, 즉 뜻(志)은 기를 통솔하는 장수이고 기는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라고 마음과 기의 관계를 규정한다. 의지와 육체적 기운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의지가 앞서고 기가 그 뒤를 따른다. 의지가 전일하면 자연스럽게 기를 움직일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에게 용기는 의지, 즉 마음의 문제이다.

 

그런데 때론 그 방향이 역전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의지적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사실 우리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도리어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정말로 인간의 모든 육체적 행동이 의지의 수하에 있는 것이라면, 특별히 기 자체를 수련한다거나 키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의지만 바르고 강하다면 기는 저절로 거기에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상황이 있으므로, 기 자체를 바르게 할 필요도 생겼을 것이다. 맹자는 마음과 함께 기 역시 수련하여 기 자체로 도덕적인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련해서 성취해야 할 그 그 기상이 ‘호연지기’이다.

 

공손추는 물었다. 스승님은 무엇을 잘 하시냐고. 맹자는 말을 알고(知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고 답한다. 공손추가 호연지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것이니, 일상을 올바로 살면 길러지는데 올바름(直)을 해치지 않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고 답한다. 호연지기는 의과 도와 함께 있는 것이므로 ... 의(義)를 행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의는 따로 밖에서 가져와 취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자기 마음속에 무언가 꺼림칙하면 바로 쪼그라든다. 

 

호연지기는 올바름을 지키고 있다는 떳떳함에서 나오는 육체적 용기이다. 그 올바름은 내면에서 나온다. 맹자는 호연지기가 나의 내부에 있는 ‘의가 쌓여서’(集義) 생기는 것이라 했다. 올바름에 대한 내면의 지향성이 지속적으로 발현됨으로써, 그 자체로 세력을 형성하여 몸 밖으로 뻗어나가는 이미지다. 그 세력은 몸을 통해 발산되므로 정신적인 것이면서도 육체적인 힘을 갖는 것이리라. 

 

맹자는 반드시 호연지기 기르기를 일로 삼되 집착하지 말고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한다. 저 송나라 사람은, 날이 가물어 이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해 싹을 키워준답시고 뿌리를 뽑아 도와주니 오히려 싹이 죽어버렸다. 

 

맹자는 곡식 키우는 일에 비유하여 호연지기를 기르는 그 미묘함에 대해 말한다. 먼저 곡식을 키우는 일에 종사해야 한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도 매야 한다. 그러나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반드시 이러저러하게 되어야 한다고 결과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되는대로 맡기도 잊어 버려서도 안된다. 곡식이 스스로 가지는 생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빨리 자라게 조장해서도 안된다. 이것이 호연지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맹자의 설명 전부이다. 

 

맹자는 부동심을 위해 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호연지기는 자신의 도덕성을 기르는 가운데 맞닥뜨릴 수 있는 물리적인 위협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위협이란 물리적인 곳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을 뒤흔들 수 있는 남의 말이 갖는 위력. 그것은 물리적인 힘 이상의 파괴력이 있다. 맹자는 남의 말, 남의 이론이 행사하는 위력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훈련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남의 말 파악하기(知言)이다. 

맹자가 부동심의 한 방법으로 지언을 든 것은 자기 개인의 부동심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과 다른 주장을 펴는 이론가들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맹자처럼 확실하게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적대적 이론에 대항하여 그 이론의 약점이나 위험성을 파악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그 이론에 현혹되지 않게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맹자는 자신이 편파적인 말, 근거 없는 말, 사특한 말, 궁한 말 등을 어떻게 잘 파악하는지 말한다. 올바른 것에 대한 분명한 관념이 있으면 그것을 기준으로 그러한 모자란 이론들을 판단할 수 있다. 가령 누군가의 말이 편파적인 것은 그 사람이 정서상 혹은 이익 문제 때문에 어떤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밝혀내고 바로잡아 준다면, 그 상대를 설복시킬 수 있다. 적어도 내가 그 편파적인 공격 때문에 허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론의 대립이 아니라더라도, 지언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건설적인 인간관계나 마음의 평정을 위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의사표현이 액면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흔하다. 다른 일 때문에 화가 났으면서 눈 앞의 사소한 것을 꼬투리 잡아 애먼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든 이론의 충돌에서든 결국 남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말의 배경을 이루는 것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발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고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으며 거기에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상대에 대한 애정 때문에 상대의 본의를 잘 이해하기 위한 지언이라면, 소모적인 말싸움에 빠지지 않는 그 인간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고, 맹자처럼 이론적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지언이라면, 상대 이론의 골조를 꿰뚫어 보고 약한 곳을 공격함으로써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맹자의 정치사상에서 호연지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왕도정치를 이룰 추동력이기 때문이다. 난세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건설할 에너지원. 그것의 이름이 호연지기다. 부동심에서 호연지기로, 그리고 지언으로 이어지는 이 장은 평천하를 설계할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말과 행동, 사람의 가치와 그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댓글 2
  • 2022-10-27 09:03

    제가 어려워했던 호연지기를 잘 정리해 주었네요.
    여러번 읽어볼께요~

  • 2022-10-28 15:38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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