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교-단기세미나] 고요한 변화 세번째 메모

진달래
2026-02-04 09:12
55

 

 

<고요한 변화> 마지막 시간이네요^^

메모 올려주세요~

댓글 6
  • 2026-02-04 22:55

    (메모 1)
    “시간은 고요한 변화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경우 필요없게 될, 모든 것에 대한 혹시 모를 위대한 설명 역할을 맡기기 위해 우리가 발명해 낸 배역이 아닐까? 왜냐하면 시간은 존재에 대한 우리의 선택과 다름없는 특유의 그리스 선택과 공동 전선을 이루며, 존재의 사유가 저버린 것을 존재에 대비된 ‘생성’을 위한 틀과 토대가 되는 방식으로 되찾음으로써 그리스 선택과 한 쌍을 이루기 때문이다.”(106)

    <그리스 철학에서의 시간>
    1. 헤라클레이토스는 시간을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며 존재(Being)보다 '생성(Becoming)'을 중시했다. 그는 시간은 대립하는 힘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장인 변화 그 자체로 보았다.
    2. 파르메니데스는 시간을 불변하는 영원한 존재 (Being)로 보았다. 우리가 느끼는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은 감각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며, 진리는 정지해 있는 '영원한 현재'에 있다고 보았다.
    3. 플라톤은 시간을 영원의 모상(Image)이라고 보았다. 영원한 세계(이데아)는 움직이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현상계는 그 영원함을 흉내 내기 위해 숫자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것이다. 즉, 해와 달의 주기적인 운동이 곧 시간의 시작인 것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전후(Before and After)에 기초한 운동의 수"라고 정의했다. 즉, 무언가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현재(Now)의 역설: 시간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이다. 하지만 '지금' 자체는 시간적 길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시간의 실체에 대하여 철학적 의문을 던졌다.

    (메모 2)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은 상호 결합을 통해 유럽 사유 전체를 총칭하는 제목이다”(106)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결합 방식>
    하이데거는 존재 자체는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에, '존재'를 묻는 유일한 존재자인 '현존재(Dasein)'의 실존을 분석하여 존재의 의미를 밝힌다. 현존재의 존재 방식은 시간적이며, 이러한 시간성 위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드러난다. 즉, 시간은 존재를 이해하는 지평이 된다.

    시간성의 3중 구조 (탈자적 시간성) :
    1.미래(기투): 자신의 죽음(유한성)을 앞서 감당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2.과거(피투): 이미 던져진 과거의 상황 속에 있음을 인식한다.
    3.현재(현전): 과거와 미래를 통합하여 지금-여기에서 세계와 연관을 맺는다.

    죽음을 향한 존재: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일 때, 현존재는 '비본래적' 삶(세인)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실존으로 나아간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삶의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존재와 시간을 하나로 연결한다.

    (메모 3)
    “고요한 변화 맞은 편의 ‘존재’sein,being은 결국 그리스의 선택일 뿐이며 특히 정의의 문제와 과학의 규정의 요청에 답하기 위해 가치가 있다. 존재의 개념은 오히려(비-존재와 나아가 외관의) 배제를 통해 활성화하는 개념으로서 이행과정의 이해를 가로막으며 우리 삶의 ‘생성’을 불안정성으로 쫒아낸다.(157)”
    저자는 서양 철학이 습관(?)처럼 ‘존재’와 ‘주체’의 편성으로 만든 섣부른 규정짓기는 과학에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세계,사회,삶을 성찰할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고요한 변화과정을 추적하기를 제안한다. 또한 현세에는 매체를 통한 ‘여론의 철학’이 ‘가공의 철학’을 덮고 있다(147)는 점도 지적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조용한 변화를 추적하는 것에 시선을 두지 않고 사건-오락의 감각화에 따라 반응한다고 볼 수 있다. 줄리앙의 사유를 따르면, 이런 흐름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조용한 변화의 한 단면일텐데, 어디에서부터 그 조짐이 생겼까? 기미를 알아채야 어디로 흐를 것인지 상(像)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 2026-02-05 00:21

    쩝...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아니면 배움이 모자라서 그런가 (높은 확률로 후자 때문이겠죠?ㅋㅋㅋ)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카페에서 만난 봄날쌤이 그냥 스윽 읽어~라고 해서 두 번을 스윽 읽어 보았는데도 .... 결국 뭐라는거야~~~ 하고 말았습니다.
    해제를 살짝 보니 줄리앙이 책을 쓰는 사이에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책이라고 하는데 거짓말...
    아무튼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 알고 싶은 부분을 발췌해서 적어보는 정도로 메모를 남깁니다.

    9장
    125p 사건은 단지 주의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구조화하고 서사의 극화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사건은 분명 뮈토스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런데 유럽 문화는 거대 서사의 도움으로, 따라서 신화의 논리로 기본 표상들을 가공했기 때문에 사건의 문화로 정의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긴장, 파토스에 의해 사건은 유럽 문화가 포기하지 않는 매력을 보유한다. 유럽 문화의 신앙 자체는 절대화된 사건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기독교는 선지자가 세상의 신인바, 신의 삶이 모든 역사와 단절하고 시간을 재형상화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29p 중국 사유, 그리고 더 일반화 하자면, 철학에 대비한 빈약한 용어로 지혜라고 불리는 것의 고유성은 그야말로 사건을 해체하는 데 있지 않은가? 중국 사유와 지혜의 일관성과 매혹의 힘은 이로부터 비롯한다. 이 매혹의 힘은 동시에 탈-초점화와 탈-극화(탈-수축)에 속한다. 사건이 주의력을 독점함으로써 촉발하는 흥분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 사건은 고유의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133p)

    10장
    142p 브로델은 두 시간을 대립시킨다. 짧은 시간과 긴 시간, 한편으로는 사건의 폭발과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유동성의 한계에 처할 정도로 늦춰진 시간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브로델은 생성으로서의 시간이라는 강요된 개념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그 자체로는 물리학의 바깥 개념이며 기본 양상은 서사다. 중국에서 전통은 극히 중요하지만, 중국 역사가들과 역사 철학자들은 시간 개념 안에서 그들의 견해를 전개하지 않았다. 명확한 시간 개념을 갖추지 않았고 오히려 도를 이루는 끊임없는 운행을 근거로 사유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고요한 변화 개념이 사건의 짧은 시간과 대조로서 블로델이 구상하는 긴 시간 또는 느린 지속 개념과 일치하되, 부동과 유동의 모순에 빠지지 않는 빠지지 않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 브로델이 말하는 부동과 유동의 모순이 얼마나 우리의 형이상학에 의존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브로델이 인류학자들을 참조하면서 항속성과 규칙성의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구조나 모델 개념에 의거할 떄, 이 개념들이 불가피하게 다다르는 비-변화의 사유는 역사의 본성 자체를 구성하는 개념을 거스르며 작동한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역사의 고요는 부동성이 아니다. 전반에 걸친 본성은 고요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통일성이다. 반면 사건들의 강조점은 우리의 주의를 끌며 심층 이동의 본성으로부터 출현하고 분리된다. ->헤겔 구도에 대한 질문!!

    내일 가마처럼 가마니 앉아있을 생각에 좀 걱정이 되네요...

  • 2026-02-05 04:31

    119쪽)
    "오류는 시간을 시간에서 전개되는 것과 혼동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물리학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탈피되어 있고, 그 구조가 모든 순간들에 동일한 위상을 보증하는 시간의 흐름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생성을 구성하고 물리학이 다루지 않는 현상들의 시간 화살에 따라서만 '사건'들이 이해된다."
    이 문장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요....
    인터넷에 찾아보니 에티엔 클랭의 '시간의 화살'은 시간의 단방향성 ,또는 비대칭성을 말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설명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128쪽)
    현상학에서 언어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어렵습니다.
    "현상학자들 역시 언어를 해방시키고자 하며, 변화 아래에 전제된 '사물'없이 변화를 사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존재와 인과성의 범주 하에 변화를 즉각 들어오게 함으로써 주체에게 변화를 지정하는 술어 기능 구조로부터 변화에 대한 언술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이는 사건에 대한 동사(발생하다, 출현하다, 산출되다 등)를 행위자와 실체에 의존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 간의 관계를 그야말로 전복할 것을 요청한다."

    135쪽)
    지성계의 삶이 철학 이벤트로 '사건 기획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부분을 보니 줄리앙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오락'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49쪽)
    "고요한 변화는 행동과 모순되는 것인바, 우리는 고요한 변화 속에서 수동성에 매몰되는 대신 이 변화에 영향을 가할 수 있는가? 고요한 변화는 묘사의 개념에서 관리의 기술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보면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즉 유도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때 '숙성'과 관련하여서는 지구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26-02-05 07:42

    * 시간은 개념적 발명
    시간은 세계의 실제 구조라기보다, 우리가 변화를 이해하지 못할 때 만들어낸 설명 장치(알리바이)가 아닐까? (p103)
    --우리는 흔히 시간을 객관적·보편적·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줄리앙은 여기에 제동을 건다. 시간은 변화가 잘 보이지 않을 때, 그 변화를 대신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 즉, '왜 변했는지'를 묻는 대신 '시간이 흘렀으니까'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시간은 원인이 된다.

    시간의 의인화된 개념 (p114)
    --시간은 위대한 행위자(존재를 생성시키는)이자, 파괴(소멸)의 원인이다.
    --시간은 존재들의 존재로 실체화된 결정권자(p113)
    --시간은 고통과 논란을 치유한다(p115)
    -------------------------------------------------------------------
    사건은 이야기되는 순간부터 '사건이 된다'. (p122)
    --사건은 해석의 산물..
    (ㅇ: 어느 순간에, 어떤 원인이, 뚜렷한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서구적 시간관 + 인과론 + 주체중심 사고가 만든 허구적 틀이이다.
    --미디어 만드는 '사건화'는 사건들이 관심을 끌어내는 데 기여하고, 이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듣고 영향을 받게 만든다. (p133)

    사건은 '고요한 변화'를 가린다.
    --사건 중심 사고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유의 편의성은 주지만, 삶에 대한 감각과 책임을 둔화시킨다.
    (ㅇ: 병은 언제 시작되는가.. 관계는 언제 무너지는가)

  • 2026-02-05 07:50

    8장 시간을 발명해야 했는가

    "내 생각에 시간은 언어의, 특히 인도유럽어의 구성물로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부분에서 착각하게 하고 운행의 논리에서 이탈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 이래로 우리는 개념상의 분류 및 분리를 통해 정당화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시간'의 용어로 포장했고, 시간을 우리 삶에 대해 지배권을 가진 수수께끼 같은 원인으로 세웠다. 이로부터 나는 지금의 성찰지점에서 감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이름붙여 구별하기 위해 우리가 발명해 낸 허구의 드라마 배역이 아닐까?"(105쪽)

    시간이란 무엇인가? 줄리앙에 따르면 시간을 생성으로 사유한 최초의 인물은 아낙시만드로스입니다. 그런데 생성이야말로 존재를 비껴가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존재의 대립항이 되는 것이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왜 <존재와 시간>이어야 했는지, 이 제목이야말로 서양철학사를 다시 쓰려는 야심찬 제목이었다는 것이 이 대목에서 완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시간'. 즉 때의 사이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등장한 번역어이자 신종발명품이었습니다. 중국사유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시간(감성의 조건으로서의 보편적 시간, 모든 변화의 조건으로서의 시간t)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역사와 연대를 헤아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역사의 기록들이 말해주듯이 중국인만큼 역사와 연대를 중시한 이들은 없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왜 시간개념을 발전시키지 않았을까요? 바로 이점이 유럽사유와 중국사유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결정적 분기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중국사유는 유럽사유처럼 시간을 문제화하지 않는 사유였다는 것!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시간의 흐름과 시간의 화살입니다. 이 두가지는 줄리앙이 "적어도 뉴턴 이후로 물리학자들이 분리한 시간과 생성"(118쪽)과 관계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시간과 관련하여 과학은 시간의 흐름을, 철학은 생성의 문제를 다루는 분리가 근대에 와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아닌가 싶습니다. 물리학의 시간은 척도(t)이자 배경으로 한정됩니다. 그러나 철학의 시간은 생성, 단절, 사건으로, 행위자, 지배자가 됩니다. 근대에서의 이러한 과학과 철학의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베르그송의 지속의 철학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베르그송 조차도 '고요한 변화'를 사유하지는 못했다?

    9장 사건의 신화
    줄리앙은 우리가 얼마나 사건에 매혹되는가를 길게 말합니다. 왜 서양철학이 존재의 철학에서 사건의 철학으로 이동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너무나 공감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한때 역사의 선형적 발전, 진보를 믿었던 것이 깨졌을 때 저 역시 '사건'에 매혹되었기 되었습니다. 역사의 법칙에서 사건으로! 그것은 '우연한 마주침'에 대한 열광이었고, 그것의 결정적 사례로 제시된 것은 바디유가 말한 '바울의 회심 사건'이었습니다. 여전히 사건의 자장 속에 있는 저는 줄리앙을 통해 뒤늦게 사건의 철학과 고요한 변화 사이에 놓인 심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줄리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건에 대해 나는 의심하고자 한다." 그 의심은 아마도 사건의 신화에 대한 의심이겠지요. 그 의심을 거쳐 그는 어디를 향할까요? 그가 도달하는 곳은 빈약하거나 지루한 것이 아니라면 신비로운^^동양의 '지혜'일까요?

    "고요한 변화의 사유에서 사건은 끊임없는 도래에 불과하며, 난입이 아닌 출현의 질서에 속한다. 사건은 다른 가능성을 생겨나게 하기보다는 우리가 통상 따를 줄도 모르고 관찰할 줄도 모를 정도로 감지하기 힘든 숙성의 결과로서 이해될 뿐이다. 따라서 지혜가 의거할 자원은 사건이 구성하는 ‘보충성’이 아니라, 시의적절하게 나타나는 모습대로의 모든 ‘때’의 상황, 그것을 거두어들이기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특정 때를 특권화하지 않고 모든 때를 동등하게 유지한다. 스토아주의가 주장하듯 덕의 기회로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자는 모든 때와 발맞추는 ‘시의적절한’ 존재다".(130쪽)

    바디유나 현상학에 앞서 사건에 대해 사유한 고대철학은 스토아철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마치 인과성을 다시 조직하듯이 '비물체들'에 대한 이론을 통해 사건을 술어 의존성에서 해방시키는 사건명제의 위상을 적절히 발젼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위상을 다시금 명사와 동사의 차이 안에 고정시키면서 그것을 수행한다."(129쪽) 스토아주의가 술어의존성에서 해방시켜 적절히 발전시킨 사건명제의 위상과 고요한 변화는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스토아주의가 특권화한 '덕의 기회'는 어떤 점에서 현자의 시의 적절함(시중?)과 다른 것일까요?

    - 사건-활성화와 사건-오락에 대해서도 정리해보아요.
    - 줄리앙은 9장의 말미에 나온 부부의 에피소드를 왜 배치한 것일까요?

    10장
    '고요한 변화'라는 개념은 우리가 역사와 정치를 이해하는데 어떤 효과를 발휘할까, 궁금해집니다.
    기미와 세를 읽고, 숙성의 기술을 발휘하게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잘 철학적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기미와 세를 읽고, 숙성의 기술을 발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론의 철학과 가공의 철학이라는 개념이 제시되었는데요. 이 부분을 읽으면 가공의 철학이 더 멋있어 보이긴 합니다만..ㅎㅎ 우리의 고전 공부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 2026-02-0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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