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 <맹자순경 열전> 후기

가마솥
2023-04-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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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이 열전(列傳)에서 사마천은 맹자, 추기, 추연, 순우곤, 신도, 추석, 순경(순자), 공손룡, 묵적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짧아도 너무 짧다. 맹자나 순자만 떼어내도 한참 써야 할 판에 이 많은 제가(諸家)들을 간단히 다룬다. 『장자』, 마지막 33편인 천하편(天下篇)에서 “천하에는 도술을 배운 자가 많다. 모두 각기 자기가 배운 도술을 다시 없다고 생각한다......”로 시작되며 소개된 제가(諸家) 들의 내용보다 매우 적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이 들을 무슨 기준으로 묶어서 소개하는 것일까?

진달래샘은 이들은 직하학궁(稷下學宮)의 학자들, 직하학파(稷下學派)로 묶인다고 설명한다. 고전을 읽다보면 직하학궁, 혹은 직하학파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참에 정리해보자.

 

     우선, 직하학궁은 강태공(姜太公)의 제(齊)나라가 전오(田午, (田)제환공)에 의해서 무너진 사건에서 출발한다. 전(田)씨가 강(姜)씨 제(齊)를 전복시킨 것은 진(晋)이 한(韓), 위(魏), 조(趙)로 3분된 사건과 함께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이정표였다. 전오는 전씨대제(田氏代齊)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여론의 지지가 필요했다. 정치권력을 안정시키고, 다시 국위를 떨치려면, 능력위주로 인재를 발탁한 제의 전통을 계승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모델은 정적인 관중(管仲)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한 (姜)제환공 강소백(姜小白)이었다. 전오는 국가적 인재양성풍조를 이룩하기 위해 수도 임치성 서문인 “직문(稷門)” 밖에 직하학궁을 창건하고, 천하의 인재들을 초빙했다. 운영원칙은 학자들에게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정책자문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정치를 담당하지 않고 의론만 하였기 때문에 논의가 잘못되어도 죄를 받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정신문화연구원쯤 되겠다. 취지가 그렇다고 해도, 직하학궁의 역사적 성격은 “국가가 학문을 국가적 기능으로 생각하는 명백한 신념으로 학문을 후원한 최초의 사례”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田)제환공 전오(田午)의 아들 위왕(威王) 전인제(田因齊)와 선왕(宣王) 전벽강(田辟彊) 등 여섯 군주를 거치면서 150년 정도 지속됐다. 전성기에는 1천여명의 선생과 학생들이 모여 연구원, 대학당, 정책자문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유명한 직하학궁의 선생은 순우곤(淳于髡), 맹가(孟軻), 전병(田騈), 신도(愼到), 환연(環淵), 순경(荀卿), 노중련(魯仲連), 추연(鄒衍), 팽몽, 접여, 송연, 윤문 등등 이다. 이사(李斯), 한비(韓非), 굴원(屈原) 등도 직하에서 유세하거나 공부했다. 맹자가 교장인 좨주(祭酒, 제주라고 쓰고 좨주라 읽는다)를, 순자는 좨주를 3번에나 역임하였다. 전국시대 중·후기의 모든 철학자들은 대략 직하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철학적으로는 각 학파가 탐구하고 토론한 주제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백가쟁명이 난무하던 시기에, 이들은 다른 학파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각자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치며 통일된 학문을 추구하였다. 광활한 우주의 신비함을 찾거나, 평범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직하학자들은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에 대한 변론, 대일통의 필요성, 의리(義利)에 대한 논쟁, 하늘과 인간의 관계, 인성의 본질, 세계의 근원, 명(名)과 실(實)의 논리적 개념, 음양오행설 등을 통해 치국안방(治國安邦)을 위한 정치이론 확립에 강한 의지와 열정을 표출했다. 각 학파의 주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직하학궁은 제민왕의 치세까지 번영하다가, 기원전 284년 연나라가 임치를 함락시키고 약탈할 때 망해 버렸다.

직하학궁의 특징을 꼭 집어서 말한다면 노자사상을 중심으로 여러 학파를 모아 황로학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최진석, 『장자철학』). 마지막 좨주가 순자이어서 그런가? 순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해석에 따라서 유가인 듯 법가인 듯한 그의 노선을 직하학궁과 관련하면 정리가 된다.

 

     춘추말 전국초 어지러운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 질서를 자리 잡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제자백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대표적으로 철학자로서 세사람, 공자는 인의와 덕에 의한 통치를, 노자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도에 의한 통치를, 묵가들은 겸애 사상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 이들의 후학들은 제(齊)나라 직하학사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는데, 당시의 유가(공자) 및 법가(노자) 사상들과 열렬한 비판과 논쟁을 거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맹자는 유가로서 공자의 仁을 바탕으로 인간은 스스로의 도덕적 자강능력을 가지므로(性善) 그 내성(內性)을 키우는 덕치(德治)를, 순자는 인간 내면의 힘만으로는 안되고(性惡), 외적인 조절장치 즉 예치(禮治)를 주장하였다. 그가 유학자(儒學者)이면서도 ‘노자’에 가까운 외부(노자에게는 자연)의 조절장치를 주장한 것이다. 순자의 제자이며 진(秦)나라 통일의 일등공신인 한비자, 이사가 직하학파이지만 법가로서 그 들의 저서에서 유가(儒家)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 들이 직하학궁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논쟁하였는 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들의 계통을 진달래샘이 공자에서 내성으로 공자-증자-자사-맹자로 이르는 성리학의 계보와 외왕(?)으로 공자-자하-순자-한비자/이사로 연결되는 법가의 계보로 정리하여 설명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법가는 도가와 연결되기도 하고, 유가와 연결되기도 한다. 사마천도 권63 에서 노자한비열전을 지어 노자(도가)와 한비(법가)를 묶은 것은 무위(無爲)개념에서 연결고리를 찾은 듯하고, 이는 중간에 순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연전에 『한비자』를 읽을 때, 보조교재의 많은 학자들이 道家인 노자와 儒家 혹은 法家로 순자를 불러와 한비와 연결시켜서 설명하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댓글 3
  • 2023-04-25 20:47

    ㅎㅎ 샘들 저랑 세미나 하시고, 어디 가서 과외 받으시는 듯^^
    아프신 와중에 이렇게 정리를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2023-04-25 21:58

    저 빼고 세분이 그룹 과외하시는 것 같죠?
    저도 같이….😅

  • 2023-04-25 22:27

    오~ 저는 결석해서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덕분에 셈나 시간으로 타입 슬립한 듯.. 좋습니다요! ㅋ
    혼란한 시기였음에도 직하학궁이 만들어지고 150년이나 번영할 수 있었던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르네요.
    노자-순자-한비로 이어지는 라인도 흥미롭구요.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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