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 <상군열전> 후기

곰곰
2023-04-12 12:09
409

사기가 다른 역사책과 달리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이유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에피소드들을 적절하게 장치한다는 것이 아닐까. 사마천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일어나고 그것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 입체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번에 읽은 <상군열전>도 그러하다. 

 

상군은 위(衛)의 서얼 공자로서 이름은 앙, 성은 공손이다. 앙은 어려서부터 형명의 학을 좋아했고 위(魏)의 상 공숙좌를 섬겨 그의 중서자(일종의 가신)가 되었다. 공숙좌가 중병에 걸렸을 때 위나라 혜왕(맹자에 나오는 양혜왕과 동일 인물이다)에게 사직을 맡길만한 사람으로 공손앙을 추천하였지만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혜왕은 “공숙의 병이 (정말) 심한가 보다. 슬픈 일이다. 과인에게 국정을 공손앙에게 맡기라고 하다니.. 망령이 아닌가?” 라 할 뿐이었다. 

공손이 죽은 후 상앙은 진나라 효공이 현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으로 들어갔다. 그는 효공의 총신 경감을 통해 효공을 만난다. 처음 효공을 만나 알현한 상앙은 왕도를 설파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에 재차 효공을 만나 법치를 통한 부국강병을 제시하는데, 그때서야 효공은 흡족해하며 상앙을 붙잡아두고 몇날 며칠이나 대화를 나눈 뒤 비로소 그를 등용한다. 

 

이러한 효공의 태도는 혜왕과 사뭇 달라 보인다. 당시 위세가 있었던 위나라 혜왕의 입장에서 공숙좌의 말은 고려할만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쉽게 무시해 버리는 모습에선 오히려 혜왕의 무능함이 드러났다. (나중에 혜왕은 공숙좌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한편, 진나라 효공은 아버지 헌공의 개혁정치를 계속 추진하기 위해 재능있는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상앙을 세 번이나 만나 (졸면서까지) 이야기를 들었고 마지막엔 얼마나 재밌고 진지하게 들었는지 효공의 몸이 상앙 쪽으로 점점 기울어져 하마터면 고꾸라질뻔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다른 제후국들은 귀족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실력있는 인재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반면, 진나라는 인재들에게 열려 있는 국가였다.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던 진나라는 다른 나라의 인재를 영입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실제로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핵심 인재들은 모두 진나라 사람이 아니다. 상앙(법 개혁), 장의(연횡책), 범수(원교근공) 3명은 위나라 사람이고, 이사(법가사상)는 초나라 출신이며 여불위(군현제도)는 조나라 출신의 대상인이었다. 이들의 정책과 개혁은 모두 진나라에서 최초로 시행된 것들이다. 전국시대 진나라는 지식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희망의 땅이었을 듯하다. 

 

여튼, 상앙은 그렇게 30살 즈음(기원전 361년)에 등용되어 법을 바꾸는 변법(變法), 즉 제도 개혁을 시행한다. 1차 개혁은 상벌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었다. 군대 체계는 전쟁에서의 공로를 평가해 계급을 부여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상군서>에 따르면 전쟁터에서 적1명을 사살한 병사는 1계급 올려주고 농지 100무와 주거지 9무, 하인으로 농민 1명을 상으로 주었다. 또한 모든 인구를 군대 체제처럼 5-10가구를 하나로 묶어 백성들이 납세, 징병 등 의무를 자발적으로 하게 했고 연대 책임의 원칙을 세웠다. 

 

상앙의 개혁에 귀족 가문의 불만과 반발이 터져 나왔지만 효공은 상앙을 일관되게 보호해 주었다. 기원전 352년, 정부와 군대를 모두 장악하는 대량조라는 최고위 관직에 올랐고, 상앙은 더욱 가혹한 2번 째 개혁을 실시했다.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부부 중심의 가정을 사회 및 경제의 기본 단위로 삼는 것이었다. 한 집에 성인 남성이 둘 이상이면 세금을 두 배로 내야 했고 성인 아들은 분가가 원칙이었다. 장자 상속 관습을 폐지하여 상속은 모든 아들에게 동등하게 나누어 받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법 조항들은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를 내포했다. 농토를 구획하는 법령도 있었다. 토지 구획은 둑(천맥)이나 길 등으로 테두리가 표시되어야 했는데, 새로운 토지 소유와 세금 체계의 기본이 되었다. 중앙집권정책도 실천했다. 관리들은 제복을 입어야 했고 조세 형평성을 위해 도량형 단위도 통일시켰다. 수도를 함양으로 옮겨 통치자의 권위에 걸맞은 기념비적 규모의 궁궐 건축을 시작했고, 이로써 정부는 귀족의 거주지와 멀어졌다. 

 

상앙의 엄격한 법치주의 정치 철학은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진나라에 새로운 법령이 시행된 지 1년 동안, 새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백성이 1,000여 명에 달했다. 이러한 여론을 무마시킨 상앙의 태도는 과히 혁신적이다. 그 무렵 태자가 법을 어기자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원칙을 들어 법에 따라 태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왕위를 이을 태자를 직접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태자의 태부인 공자 건의 목을 베고 임금을 보좌하는 태사 공손고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 다음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자 진나라 백성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도시든 촌이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으며 산에 도적이 없고 집집마다 풍족했다. 사람마다 마음이 넉넉했고 나라를 위한 전쟁에는 용감하고 사사로운 싸움은 두려워했다. 예전에는 법령이 불편했으나 지금은 법령이 편하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를 들은 상앙은 “이러한 자들 역시 교화를 어지럽히는 자다”라며 그들을 변방으로 쫓아버렸다. 그 뒤로는 감히 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없었다. 상앙은 원조 단호박이시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나쁘지만, 상앙은 인상이.... 너무 무섭다)  

 

상앙에 대한 효공의 신임은 날로 깊어졌지만, 효공이 죽고 혜문군이 즉위하자 상앙은 실각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평소 상앙은 매우 강경한 태도로 타인을 대했고 그의 법 집행 역시 가혹했다. 이에 효공이 죽자 상앙에게 해를 입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혜문왕에게 상앙을 참소했고 상앙에겐 반란 혐의를 씌워진다. 이를 피해 달아났던 상앙은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붙잡히고 자신이 만든 거열형에 처해졌다. 

 

상앙은 진나라를 개혁시키고 변법을 통해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훌륭한 사상가이자, 개혁가, 정치가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연좌제의 실행, 너무 가혹한 법령 등이 진나라를 금방 무너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상군열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사마천은 상앙이 천성이 잔인하고 각박한 사람이었다고 평한다. 제왕의 도로 효공을 설득하려 하였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도 실제 관심이 없으면서 고상한 척한 것에 불과했다고. 또 총신을 통해 알현의 기회를 얻고 중용이 된 이후에 공자 건에게 육형을 가하고 위의 장군 앙을 기만한 것이라든지, 조량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모두 그 무자비한 인간성을 드러낸 것이라 한다. 결국 진에서 명예롭지 못한 최후를 맞은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고.  

 

상앙이 진나라 재상이 된 지 10년이 되었을 무렵, 조량이라는 선비가 찾아왔다. 나는 사마천이 그를 통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상앙에게 하고픈 말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조량은 총애받던 신하 경감의 소개로 왕을 만난 일, 백성의 이익을 중요한 일로 삼지 않고 큰 궁궐을 세운 일, 태자의 태사와 태부 죽이고 이마에 먹물 들이며 무서운 형벌로 백성을 상하게 한 것은 원한을 사고 재앙을 쌓아 놓은 일이라 한다. 상앙이 세운 제도는 도리를 등지고 국법은 이치에 어긋나니 교화라 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얻은 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은 자는 망한다.' 그는 백성들의 원망이 높으며 스스로 위태로움에 빠져 있으니 땅을 반납하고 시골로 가 숨어 살라고 충고했다. 조량은 이런 말로써 상앙을 조금이나마 일깨우려고 했지만 득의양양했던 (혜왕처럼) 상앙은 그의 충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게 마련이라는 도가의 말은 참으로 이치에 어그러짐이 없다.

 

다음 시간(바로 내일 ㅋ)에는 <노자,한비 열전>을 읽는다! 

댓글 3
  • 2023-04-12 12:17

    😍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4-12 15:52

    와우....다시 수업시간에 들어 온 듯. ㅎㅎ
    천하를 얻은 상군에게 조량의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 이것을 상당한 분량으로 상군열전에 적은 사마천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입니다.

  • 2023-04-12 22:02

    꼼꼼한 후기가 다시 한번 정리를 해주네요~~

    개혁가의 상앙은 진취적이었으나
    권세가의 상앙은 독선적이었네요.
    올라가는 마음과 내려옴을 아는 마음은
    늘 차이가 많은거 같습니다.

    그리고
    상앙의 인상이 왕지락(배추도사 무우도사에 나오는 그 모옷~된 도사!!)
    같습니다. 이름도 비슷한듯 왕 ! 앙 !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39
N 케임브리지 중국철학입문 5장 후기 (1)
누룽지 | 2024.04.25 | 조회 20
누룽지 2024.04.25 20
1138
N [2024고전학교] <케임브리지중국철학입문>5 - 질문 올려주세요~ (6)
고전학교 | 2024.04.24 | 조회 44
고전학교 2024.04.24 44
1137
[2024고전학교] <케임브리지중국철학입문>4 - 질문 올려주세요~ (5)
고전학교 | 2024.04.17 | 조회 61
고전학교 2024.04.17 61
1136
[2024 고전학교] <캠브리지 중국철학입문> 2 후기 (2)
고은 | 2024.04.10 | 조회 70
고은 2024.04.10 70
1135
[2024고전학교] <케임브리지중국철학입문>3- 질문 올려 주세요~ (5)
고전학교 | 2024.04.10 | 조회 78
고전학교 2024.04.10 78
1134
[2024 고전학교] <캠브리지 중국철학입문> 2 - 질문 올려 주세요 (5)
고전학교 | 2024.04.03 | 조회 90
고전학교 2024.04.03 90
1133
[2024 고전학교] 네번째 시간! 케임브릿지 중국철학 입문 첫번째 후기! (4)
동은 | 2024.04.01 | 조회 108
동은 2024.04.01 108
1132
<케임브리지 중국철학 입문>(1) 질문 (4)
고은 | 2024.03.27 | 조회 114
고은 2024.03.27 114
1131
[2024 고전학교] 세번째 시간 <춘추에서 전국까지> 후기 (4)
곰곰 | 2024.03.26 | 조회 92
곰곰 2024.03.26 92
1130
[2024고전학교]<춘추에서 전국까지>2-질문 올려주세요! (3)
자작나무 | 2024.03.20 | 조회 114
자작나무 2024.03.20 114
1129
[2024고전학교] <춘추에서 전국까지> 두번째 시간 - 후기 (5)
가마솥 | 2024.03.19 | 조회 146
가마솥 2024.03.19 146
1128
[2024고전학교] <춘추에서 전국까지> 1 - 질문을 올려 주세요 (6)
고전학교 | 2024.03.13 | 조회 129
고전학교 2024.03.13 129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