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사기열전 - <태사공자서> 후기

곰곰
2023-03-13 15:35
420

<사기>는 모두 130권, 52만 6,500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제130권은 자서전이다. <태사공자서>라고 해서 사마천이 스스로 자서전을 남겼다. 아주 특별한 자서전이다. 앞의 129권에 관한 전체 요지와 취지를 소개한다. 사마천 자신이 내가 이건 왜 썼고, 어떻게 썼다는 것을 간략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집안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다. 마지막 편에 들어 있지만, 서문인 셈이다. 그런데 왜 맨 뒤에 있을까? <사기>는 <오제본기>라는 중국의 전설 속 제왕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 제왕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곤 하지만, 어쨌거나 제왕들 이야기 앞에 자기 이야기인 서문을 놓으면 좀, 아니 많이 건방져 보일 것이다. 그래서 겸손의 의미로 가장 뒤에 놓지 않았을까? 우리 세미나는 머릿말에 해당하는 <태사공자서>에서부터 시작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과 사마천의 여행 이야기였다. 

 

중국 역사상 극성 어머니 1호가 맹자 어머니라면, 극성 아버지 1호는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지 싶다. 사마천은 <태사공자서>에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꽤 많이 남겨두었다. 사마담의 문장도 들어있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역사책에 자신의 집안 내력을 시시콜콜 다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아버지 외에 형제를 비롯한 다른 가족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열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옛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됐을 때에는 천하 주유를 떠난다. 아마도 사마담이 태사공이 되려면 책상 머리에만 있어서는 안되고, 현장을 직접 돌아보라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버지가 사마천이 서른여섯 살 때 돌아가신다. 당시에는 황제가 치르는 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봉선(하늘과 땅의 제사)이었는데, 가장 동쪽에 있는 태산에서 제사를 지내야만 천자의 권위가 만천하에 알려진다고 해서 봉선제를 나라의 가장 큰 행사로 쳤다. 제왕이라면 누구든 봉선제를 지내고 싶어했고, 그만큼 큰 행사였기 때문에 관료들에게도 이 행사에 참석하느냐 마느냐가 대단히 중요했다. 천문, 역법을 관장하고 기록을 담당하는 사마담도 이 봉선제에 참석하는 것이 일생의 가장 큰 바람이었다. 그런데 무제가 사마담을 제외시켰다. 사실 그때 제사 방식을 두고 신하들끼리 다툼이 심했을 것이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가 맞다고 주장하며 무제를 설득했을 텐데, 문헌을 찾아 그대로 복원하려는 유가의 방식보다는 도가(술사)의 방식이 더 화려하고 드라마틱해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사마담은 봉선제에서 배제되고 화병이 나 쓰러졌다.

서남 정발에 나갔던 사마천이 돌아오면서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사마담은 “나는 태사가 되어 이들을 논하여 기록하지 못하여 천하의 역사 무헌을 폐하게 될까 심히 두렵다. 그러니 너는 이 점을 명심하라!”라고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자신이 염원 했던 것, 자신이 준비해 왔던 것을 사마천 당대에 이루라는 말이다. 사마천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맹세했다. “소자가 영민하지는 못하나, 아버님께서 순서대로 정리해 두신 옛 문헌을 빠짐없이 모두 논술하겠습니다.” 역사책을 쓰겠다는 다짐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유언은 사마천에게 대단히 중요한 작용을 했다. 사마천은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대개 마흔두 살 전후해 사기를 쓴 것으로 보고 있다. 늦게 시작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대부터 계속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늦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황제를 수행하며 늘 공무에 쫓기느라 마땅한 집필 기회를 찾지 못하던 사마천이 마흔이 넘으면서 본격적으로 사기 저술에 매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마천은 스무 살 때 300만 제곱킬로미터 정도(cf. 우리나라가 10만 제곱킬로미터가 안 된다) 되는 영역을 약 3년에 걸쳐 여행한다. 지도로 본 그의 여행 경로는 2천 년 전임을 감안할 때 더욱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사마천은 관료가 되고 난 뒤에도 무제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이미 한 차례 천하 여행했고 황제를 따라 대여섯 차례 이상 천하를 순시한다. 이런 모든 경험이 쌓여 당시 중국 강역 전체에 대한 나름의 인식이 자리잡혔을 것이다. 어느 동네는 풍물이 어떻고 풍토가 어떻고 언어가 어떻고 지형이 어떻고 사람들의 기질이 어떤지 같은 것 말이다. 역사학자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여행 중에 보고 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황가 도서관에 있는 기록과 대조해 가며 쓴 역사책이 <사기>이다. 

 

 

참 많이도 다녔다. 이러니 역사를 밋밋하게 쓰지 않고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된다. 역사책은 단순히 몇 년도에 어떤 일이 있었고,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설명하는 팩트의 나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많다. 하지만 사마천은 사기를 입체적으로 구상하고 서술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과 자료를 확보한 듯 하다. 사마천은 왜 역사책을 소설처럼 쓰냐고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단다. 그것은 3천 년의 방대한 역사를 쓰는데 무조건 기록을 죽 늘어놓으면 재미도 없고 사람들이 많이 읽지도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마천은 독자를 고려해 자신의 표현이, 이 책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얼마나 잘 전달될까를 고민했다. 독자 입장에서 잘 읽힐 뿐 아니라 재미까지 고려하고 독자가 그 장면에 함께 들어가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까지 모두 고려해 <사기>를 구성한 것 같다. 여기에 그의 여행 경험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현장을 다녀본 뒤 묘사하는 것과 현장을 가보지 않고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사마천 마흔일곱 살 때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하나 터진다. '이릉지화' 사건. 이릉을 변호하다 당한 화라는 뜻이다. 이릉이라는 장수가 흉노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하다 끝내 항복했다는 소식에, 사마천은 황제의 심기도 달래고 이릉에 대한 변명도 해 주려 했지만 오히려 황제의 심기를 건드렸다. 다음 해 이릉이 흉노 군대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무제는 이릉 가족을 몰살시키고 반역자인 이릉을 편들었다는 이유로 사마천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사마천은 마흔여덟 살때부터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더욱 큰 문제는 막 집필 시작한 <사기>였다. 그것을 완성하려면 살아남아야 한다. 당시 한나라 법에서 사형수가 살아남으려면 돈을 내거나 성기 자르는 궁형을 받아야 했다. 옥에 갇힌 사마천은 자신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자신이 몸 담았던 관료 세계에 대해, 그 관료 세계의 최고 정점에 있는 황제에 대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사마천이 궁형을 자청한 이유는 발분저술(發憤著述). 남을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저술에 울분을 표출하는 것이다. 쉰 살에 옥에서 풀려난 사마천은 5-6년 정도 더 심혈을 기울여 사기를 완성한다. 이러한 치욕스러운 형벌을 겪지 않았다면 <사기>의 내용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사기는 처음에 관찬 사서로 출발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식 역사서로 출발했다가 궁형 이후 개인이 쓴 사찬 사서로 바뀐다.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전무후무한 3천 년 통사가 사기이다. 참 사연이 많은 책이다.

 

다음 시간부터 <사기열전>을 읽기 시작한다. 백이열전과 루쉰의 <새로쓴 옛날 이야기>에서 고사리 캔 이야기를 읽고 온다. 

댓글 3
  • 2023-03-13 20:07

    "사마천은 독자를 고려해 자신의 표현이, 이 책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얼마나 잘 전달될까를 고민했다!"

    캬~ 정말 사마천 대단해요.^^ 얼마나 고민했으면... 이천년이 지나 동천동에서 우리가 사기를 사마천을 읽고 있다니요!
    사마천이 이야기를 전개한 방식이 평면적이지 않고. 한조각 한조각 여기 저기 숨겨놓은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인데 살짝 기대되고 설레이고 그래요. ㅎㅎ
    그런데 곰곰쌤도 역사책 쓰면 잘 쓸 것 같아요. 후기 보면 그런 생각이~^^

    백이숙제가 고사리인지 고비인지 캔 이야기도 기대 만땅!!!

  • 2023-03-15 19:21

    이번에 '태사공 자서'를 읽으면서 사마천의 마음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2023-03-15 21:42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역시 꼼꼼하십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37
[2024고전학교] <케임브리지중국철학입문>4 - 질문 올려주세요~ (5)
고전학교 | 2024.04.17 | 조회 57
고전학교 2024.04.17 57
1136
[2024 고전학교] <캠브리지 중국철학입문> 2 후기 (2)
고은 | 2024.04.10 | 조회 68
고은 2024.04.10 68
1135
[2024고전학교] <케임브리지중국철학입문>3- 질문 올려 주세요~ (5)
고전학교 | 2024.04.10 | 조회 74
고전학교 2024.04.10 74
1134
[2024 고전학교] <캠브리지 중국철학입문> 2 - 질문 올려 주세요 (5)
고전학교 | 2024.04.03 | 조회 88
고전학교 2024.04.03 88
1133
[2024 고전학교] 네번째 시간! 케임브릿지 중국철학 입문 첫번째 후기! (4)
동은 | 2024.04.01 | 조회 103
동은 2024.04.01 103
1132
<케임브리지 중국철학 입문>(1) 질문 (4)
고은 | 2024.03.27 | 조회 110
고은 2024.03.27 110
1131
[2024 고전학교] 세번째 시간 <춘추에서 전국까지> 후기 (4)
곰곰 | 2024.03.26 | 조회 91
곰곰 2024.03.26 91
1130
[2024고전학교]<춘추에서 전국까지>2-질문 올려주세요! (3)
자작나무 | 2024.03.20 | 조회 112
자작나무 2024.03.20 112
1129
[2024고전학교] <춘추에서 전국까지> 두번째 시간 - 후기 (5)
가마솥 | 2024.03.19 | 조회 144
가마솥 2024.03.19 144
1128
[2024고전학교] <춘추에서 전국까지> 1 - 질문을 올려 주세요 (6)
고전학교 | 2024.03.13 | 조회 128
고전학교 2024.03.13 128
1127
[2024고전학교] 첫 시간 후기 - 요순우탕문무주공 (2)
진달래 | 2024.03.12 | 조회 182
진달래 2024.03.12 182
1126
[2024 고전학교] '중국철학 입문' - 첫시간 공지입니다 (3)
진달래 | 2024.02.28 | 조회 168
진달래 2024.02.28 16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