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학교] 맹자 4회차 후기

곰곰
2022-09-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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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에는 일곱 개의 강대국이 서로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날마다 싸우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는 일반 백성들이 입는다. 전쟁에 직접 참여해야 했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위해 세금을 많이 내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래저래 고통스러울 뿐이다. 어느 때보다 백성들이 살기 힘든 시대였다. 역사서에 기록된 전쟁 횟수만 하더라도 1,200여 차례가 넘고, 본래 100여 개국에 달했던 제후국의 수가 전국시대 말에는 일곱 개의 나라로 줄어들었으니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였다고 할 만하다. 맹자는 그처럼 혼란한 시대를 끝내기 위해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누가 천하를 다스려야 하는가. 

맹자가 처음으로 찾아갔던 나라는 양나라였다. 당시 양나라 혜왕은 이웃 진나라와의 전쟁에 패해 많은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사방에서 자신을 도와줄 인재를 찾았다. 그들의 힘을 빌려 진나라를 쳐부수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게 되었고, 양혜왕은 기대가 컸던 만큼 맹자를 만나자마자 물었다. 

 

왕이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은 하필 이익(부국강병)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하기를 바라고 사/서인은 제 몸을 이롭게 하기를 바라게 될  터이니 결국 위아래가 모두 이익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양혜왕 상, 1>

 

혜왕이 생각하기에 맹자는 당시 현실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이상주의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왕이 추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익이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국가의 경제적 풍요를 확보하고 군사력을 강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통일하는 것! 그런데 맹자는 이런 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반대한다. 맹자가 생각하기에 인의를 뒤로하고 모두가 이익을 앞세우면 나라는 위기에 처하고 비정한 세상이 만들어질 뿐이다.

 

2. 누가 천하를 다스려서는 안되는가.

제선왕이 맹자를 설궁에서 뵈었는데, 왕이 말씀하셨다. “현자도 또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하여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자도 잘못이요,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지 않는 자 또한 잘못입니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들 또한 그 군주의 낙을 즐거워하고,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들 또한 그 군주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즐거워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며, 근심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고 이렇게 하고도 왕노릇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양혜왕 하,4> 

 

맹자는 당시 권력자들에게 왕도정치를 베풀고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실천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군주의 자리를 바꾸는 혁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울러 군주가 백성들의 근심을 자기 근심으로 삼고 백성들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면 백성들 또한 군주의 즐거움을 즐기고 군주의 근심을 근심할 것(樂以天下, 憂以天下)이라 하면서 인정(仁政)을 권고했다.

 

제선왕이 물었다.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였다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전하는 기록에 있습니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함이 가합니까?” “인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이르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이르고, 잔적한 사람을 일부(獨夫)라 이르니, 일부인 주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고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양혜왕 하, 8>

 

아마도 제나라 선왕은 맹자가 걸핏하면 칭찬하는 탕임금과 무왕이 실제로는 자신의 군주를 시해한 파렴치한 신하들이었다는 점을 들어 맹자를 곤란하게 하려던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맹자는 탕임금이 걸왕을, 무왕이 주왕을 친 것은 신하로서 임금을 해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어진 성군이 지극히 불인한 폭군을 주벌한 것이므로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대답함으로써 혁명의 정당성을 인정한 셈이다. 왕도정치를 베풀기는 커녕 백성들을 학대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은 갈아치워도 상관없다고, 그런 사람은 더이상 임금이 아니라고 말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그러므로 구민의 마음을 얻은 이는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 신임을 얻은 이는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신임을 얻는 이는 대부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꾸어 둔다. 희생이 갖추어지고 그릇에 담긴 기장이 이미 정결하며, 제사를 제 때에 지내되, 그런데도 가뭄이 들고 홍수가 넘치면 사직을 바꾸어 설치한다.” <진심 하, 14>

 

백성이 가장 귀하다. 맹자가 추구한 왕도정치의 대상은 백성들이었다. 사직은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꼬박꼬박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홍수나 가뭄이 일어나 농사를 망치면 그런 사직을 갈아엎고 다시 세운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땅에서 자란 곡식물로 백성이 먹고 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만약 흉년이 들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면 사직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여겨 처벌하는 것이다. 결국 그 어떤 신성한 국가의 상징도 백성들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백성 다음, 사직 다음에 군주가 있으므로, 맹자는 군주가 정치를 제대로 못해 백성들이 힘들다면 군주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 당대 맹자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공자의 주유 생활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집 잃은 개라는 별명까지 붙었겠는가. 하지만 맹자는 초라한 행색으로 다니지 않았다. 수행하는 제자가 수백 명이었고 뒤따르는 수레가 수십 대였다고 할 정도로 공자와는 달리 위세 당당하게 제후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맹자는 훗날 공자와 함께 성인으로 찬양받았음에도 당시 군주들에게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제후들은 병법으로 유명한 손자나 오자 같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들을 등용해야 전쟁에 이겨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맹자는 끊임없이 주유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일부 제후들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들도 실제로 맹자가 내놓았던 왕도정치나 덕치 같은 정책을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제후들을 찾아 천하를 다니면서 혹시라도 한자리 차지해 볼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올라야만 자신이 뜻한 덕치주의를 펼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맹자는 애초에 벼슬 따위는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당시 제후들을 만나서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돌하기 그지없다. (핵사이다!) 그는 당시 군주들의 욕망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굳이 당시 제후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자신의 소신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쪽을 택한 것 아닐까. 

 

4. 당대 민(民)에 대한 생각은 어땠을까.  

춘추전국시대에는 토지 개간과 생산 증대에 반드시 필요한 노동력 제공자로 민(民)의 중요성이 그 이전 시기에 비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 전쟁의 보조 역할이었던 민이 실제 싸우는 사람이 되었고, 머릿수에 따라 병력이 달라지고 세력이 바뀔 수 있으므로 민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맹자>는 이전에는 거의 무시 되었던 민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그들에 대한 정치적 고려가 적극적으로 논의된다는 점에서 당시로는 대단히 진보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배병삼 선생님은 맹자가 위민(爲民)이 아니라 여민(與民)을 주장했다고 해서, 우리는 세미나에서 위민과 여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민은 주체가 군주가 되고, 군주(위)가 백성(아래)에게 베푸는 방식이므로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여민은 군주와 백성이 함께 한다는 것으로 주체가 군주가 아니다. 이때는 마음이 중요해지며 시혜나 베풂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 2
  • 2022-09-21 16:02

    전국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지가 요즘 저에게는 조금 고민입니다. 

    사실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많아졌다는 건 꼭 '그 시대가 살기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쩌면 못 살아서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잘 살아서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전쟁은 사실 돈이 많이 들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이번 금요클래식의 뚜버기샘 강의가 기대가 됩니다. -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 2022-09-21 23:40

    음... 곰곰쌤의 후기 부러워요. ㅎ

    (저도 이렇게 잘 써보고 싶군요. 다음 기회에~)

     

    공자에서 맹자 사이의 백년. 맹자가 공자를 사숙했다고 해서 공자와 많이 닮았을까 싶지만,

    우선 둘의 문제의식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게 보여요.  인간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암튼 아직은 딱 떠오르는 뭔가는 없지만, 맹자... 어렵지만 재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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