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그 스스로 이야기가 되다

스르륵
2023-02-10 03:42
470

 우샘의 «사마천의 사기» 겨울 특강을 신청했을 때 큰 욕심(?)은 없었다. 그건...나의 단촐하고 소박한 지식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겸손함' 이었달까. 그런데... '위대했지만 고독했던 사마천을 추앙합니다. 그와 대화하고 그를 연민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라는 강좌 문구에서는 잠시 나는 겸손한 자의 본분을 잊고서 조금 '웃고' 말았다. 아니 뭘 그렇게 까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사기»를 제대로 읽어보진 못했어도 '사마천과 «사기»' 의 story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주 위대한 역사서'인 동시에 '드라마틱한 사마천(기원전 145~89?, 전한시대)의 개인적인 질곡(궁형)'이 뗄 수 없는 한 몸으로 아주 선명하게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 정도의 스토리는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었던게 확실할까. 고백하자면... 나는 '몰랐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마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다른 사람들의 '' 심정을 ... 진정 난 몰랐었다.

 

  '역사가로서의 사마천은 어떻게 단련되었을까'라는 1강에서, 우리가 익히 알지만 그러나 자세히는 몰랐던 '인간' 사마천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알고 보면 사마천은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카데믹한 집안(부친, 사마담)의 영향력과 타고난 천재성을 가진,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승승장구 했었을 인물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왜 '이릉을 변호'했는가, 그리고 그는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역사가, 혹은 인간 사마천에 대한 부분은 «사기»의  <태사공자서>와 반고의 «한서» <사마천전> 중 <보임소경서(사마천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참조할 수 있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건 사마천이 <태사공자서>보다 <보임소경서>에서 자신의 심경을 열 배 이상의 분량으로 더 솔직하게 토로했다는 부분들이었다. 또한 <태사공자서>에서 자신의 불운을 과거 위대한 인물들의 수난과 연결하여 표현한 점도 흥미로웠다. 하여 바로 여기서 이 어마한 울분의 근원인 '이릉의 변호'의 원인이 궁금해지는데, 이는 30년 간 계속된 전쟁과 한무제와 관료들의 행태에 좌절했을 사마천의 심리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 안타깝고 궁금하다. 술 한 잔 나눈 사이도 아니라는데...)

 

  처남(이광리)을 비방한다고 여긴 한무제의 분노, 악명 높은 담당 검사의 가혹한 고문, 그 와중에 전해진 이릉의 배신에 관련된 오보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사마천을 설상가상 죽음보다 못한 궁지로 몰고 가지만, 그는 간신히 궁형을 치르고 살아남아 환관(중서알자령, 비서관)이 되어 남은 생을 오직 «태사공서»에 매진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보임소경서>로 따라가 보자면, 그는 '나의 죽음은 아무 의미 없는 한오라기의 터럭(구우일모)같은 죽음이며, 누구나 감옥 안에서 비굴해질 수 밖에 없기에 이런 모욕과 매질을 당한 후에는 자결도 무의미'하였기에 '열정은 치욕이 되었지만 고독은 글로 완성 될 수 있었다.'

 

  이번 강의에서 사마천 사후, 선제(재위: 기원전 74~48, 여태자의 손자) 때에 사마천의 «사기»가 정사로 인정받은 '아이러니한' 역사적 귀결도 무척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보임소경서>에서 소환되는 절절하다고 밖에 표현되지 않는 사마천의 목소리에 문득 뭉클하게 마음이 가 닿았다. 하여, '위대했지만 고독했던 사마천을 추앙하고, 그와 대화하고 그를 연민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 마음들에  나도 합류하고 싶어져버렸다.

 

       僕誠以著此書  藏諸名山  傳之其人  通邑大都  則僕償前辱잏之責  雖萬被戮  豈有悔哉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여러 명산(名山)에 보관했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들에게 전해 고을과 큰 도회지에 알려지게 하려는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치욕을 참은 점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몇 만 번 주륙(誅戮)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함이 있겠습니까?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且負下未易居  下流多謗議  僕以口語遇遭此禍  重爲鄕里所戮笑
그러나 이는 지혜로운 사람에겐 말할 수 있지만 속인에게 말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죄를 지은 자는 처신하기가 쉽지 않고 하류층들은 비방의 말이 많은 것입니다. 제가 말을 삼가지 못하여 이러한 화를 입고 거듭 마을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되어

以汚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雖累百世  垢彌甚耳  是以腸一日而九廻  居則忽忽若有所亡
선조를 욕되게 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산소 앞을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백세(百世)의 세월이 흘러도 저의 수치로움만 심해질 뿐입니다.  이로 인해 하루에도 수없이 애간장이 타고, 집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하며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沾衣也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
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할른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몸이 환관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깊은 바위굴 속에 숨어 은거할 수 있겠습니까?

故且從俗浮沈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그래서 잠시 세상의 부침에 따르고 시대와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미쳐 혹한 것과 통하고 있습니다.                   

                                                                                                                                                           -   <보임소경서> 중에서 -

  

 

댓글 3
  • 2023-02-12 11:13

    니체를 공부할 때 미래의 책이란 느낌이 들었는데, 사마천이 사기를 쓰는 마음도 미래에 읽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점이라는 것!! 당대에는 읽을 수 없으리라 단념하면서도 쓰는 마음! 그 깊이에 좀 울컥했습니다....

  • 2023-02-14 16:24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자니, 올해 다시 읽게 될 <사기>가 좀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 2023-02-14 17:57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한 것을 후회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닐까?
    하여간 말을 삼가지 못해 화를 당한 그의 치욕은 <태사공서>의 밑거름이 된것임에는 틀림없을테죠.
    그 치욕을 참고 미래에 읽힐 역사서를 그리 대단하게 남기다니... 추앙할만 하지요...
    사기를 읽으며 그 안에 녹아있는 사마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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