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클래식 법구경_2강 후기

김언희
2022-04-21 17:28
166

괴로움은 후기와 함께

 

먼저 너무 늦은 후기를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동안 지난 주 내내 마음의 부담을 안고 지냈는데, 오늘 올린 후기와 함께 내일은 가벼운 마음으로 모임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붓다는 모든 형성된 것은 괴롭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조금 더 나은 무엇인가가 되려고 온갖 것들을 하지만, 하려고 할수록 괴로움의 조건들은 늘어만 가는 것인가 싶다.

최근 개인적으로 일의 양과 범위를 늘렸다. 시작은 조금 더 나은 ‘우리’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의 개인적 욕구와 가까운 지인들의 욕구가 합쳐져 좋은 우리가 되고자 했으나, 계획했던 일들은 삐그덕 대고 확장된 범위만큼 서로 간의 불편함이 크게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더 나은 무엇이 되려고 하는 그 자체가 무상의 조건들을 확대했고, 서로의 불편함으로 인해 괴로움이라는 두 번째 화살에 맞았나 싶다.

그러나 화살을 맞고 괴로움 속에 존재하면서도, 지금 당장 불 속에서 나올 마음은 없다. 불 속은 흔히 세상이 말하는 온갖 좋은 것들이 존재한다. 나와 친구들이 더 나은 무엇이 되려했을 때, 그 곳에는 ‘내려놓음’이란 단어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것에 더 나은 인생의 가치, 더 나은 사회적 힘, 더 나은 경제적 이득을 그렸다. 그리고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우리가 그렸던 그 무엇이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불난 집에 괴로움이라는 기름을 붓고 있는 중이다.

 

오, 어찌 웃고, 어찌 즐기는가? 언제나 세상은 불타고 있고, 그대들은 어둠에 덮여 있는데, 등불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늙음의 품, 146)

 

붓다는 내 욕망인양 포장된 사회적 욕망에 대해 경계한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 동료들과 붓다의 이야기에 대해 나누었다. 결론은 붓다의 가르침은 이상적이지만 실제 삶에서 구현될 수는 없으리라는 회의론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붓다가 말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화살의 정체를 알아도 뽑고 싶지 않거나 뽑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다 죽겠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그래서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어쩌다 그것이 고통이 되어 삶을 뒤트는 순간이 오면, 어찌할 수 없어 방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으니, 고통이 고통으로 인식되는 순간은 우리가 가장 기뻐해야 할 순간인가도 싶다.

그러나, 붓다는 고행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없다고 하는데, 나의 경험상 인간이 고통에 이르지 않고 스스로의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흔히, 밑바닥을 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붓다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밑바닥을 치는 고통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바꾸려 하는걸 보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밑바닥을 치는 과정보다 더 힘든 수행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사실들의 선구이고 정신이 그것들의 최상이고 그것들은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만약에 사람이 오염된 정신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리. 수레바퀴가 황소의 발굽을 따르듯이. (쌍의 품, 1)

 

요즘 매일 카톡방에 인디언 선생님의 아침 명상 문구가 올라온다. 그 짧은 문구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갈 때가 많은데,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생각들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는 것 같다. 언젠가 이런 마음의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

댓글 1
  • 2022-04-23 18:28

    언희샘의 후기에서 화살을 맞고, 불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뭐라고 댓글을 달면 좋을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가 '범천권청'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발견했어요.

    범천권청은 붓다가 깨달은 직후 자신의 깨달음을 설하면 사람들도 괴롭게 하고, 본인도 피곤할 것이라 생각하자

    범천(브라흐만-베다교의 최고신)이 설법할 것을 권했다는 신화적인 이야기입니다.

    붓다는 왜 설법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마음을 바꾸어 설법했을까?

    가장 쉬운 대답이 고통받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대목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군요.

     

    "석존의 가르침은 세간적인 욕망을 조금이라도 채우려는 마음가짐으로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보통 있다고 생각하고서 애착하는 자아를 근저에서 해체하지 않을 수 없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 ,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을 역행하는, 정신의 안정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가르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듣고자 하는가? 라고 이 설화는 우리들에게 그 각오의 정도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음.. 붓다의 가르침이 세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군요.
    마음 편하게 도와주는 힐링은 아니라는 이야기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지금처럼 오로지 더 편리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살려고 하는 이 욕망의 흐름으로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희샘 후기 덕에 이 구절이 아주 쏙 들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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