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클래식, <주역의 세계> 2강 후기

고은
2023-01-19 11:49
79

 

   <주역의 세계> 2강은 자누리쌤이 강의하셨습니다. 8페이지를 준비해오셨는데, <주역>에 대한 정보를 다각도로 다루셔서 쉬는 시간에 “정보가 너무 많아요”라는 원성을 듣기도 했지요. 자누리쌤은 “그래요? 어쩌나~ 쉬는 시간 이후에 있을 강의는 더 많을텐데~”라며 너스레를 떠셨습니다. 그러나 수업을 다 듣고보니, 정말 너스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쉬는 시간 이후에는 쉬는 시간 이전에 다룬 정보를 바탕으로, <주역>이 가져다주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 다루었거든요.

 

 

 

  1. 시공간을 초월하는 점치기

 

   <주역>에 관한 여러 정보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시초점을 치는 행위가 갖는 의미였어요. 처음 시초 1개를 빼는 것은 우주를, 그 다음에 양손으로 나눠갖는 건 천지를, 다시 1개를 빼는 건 사람을 상징한다고 해요. 하나의 효를 내기 위해서는 온 우주를 짊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지요?! 본격적으로 효를 내는 과정은 그보다 더한 중압감을 가져다주는 듯합니다.

 

“한 손에 쥔 시초 더미에서 네 개씩 내려놓는데, 사계절을 상징하니 한 번씩 셀 때마다 일년이 후딱 지나가는 셈이다.”

 

   손에 시초가 떨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4개의 시초를 내려놓는데, 이 일은 시간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합니다. 4개의 시초가 일 년을 상징하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건 과거일수도 있고 미래일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 체감하는 시간의 체계를 붕괴시키는 작업같이 느껴져요. 점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뚝뚝 절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여하튼 자누리쌤은 이 대목에서 기가 소진되는 기분이 들어서 점을 잘 쳐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처음 점을 쳤을 때 기억이 났습니다. 어찌나 손에 땀을 쥐었는지.. 점을 다 치고 났더니 진이 빠지더라구요. 뭔가.. 제가 평소 안착하고 있는 시공간을 떠나서 세계와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길다란 막대기일 뿐인데, 혼자 방에서 이런 느낌을 느낄 수 있다니.. 상징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몸소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1. 개인의 책임 영역 증가와 점술의 유행

 

   <주역>에는 십익이라고 하여 전국시대 중기에서 말기, 한나라 초까지 쓰여진 10개의 해설서가 있습니다. 전국시대에 <주역>이 인기를 얻게 된 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이전에 단단한 공동체였을 때 개인에게는 점칠 정도로 큰 판단이나 책임을 요구하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공동체가 해결해주거나, 그것 자체가 공동체의 일이었을 거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전국시대 이후에는 이렇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자누리쌤은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 좋은 길을 열기 위해서 ‘자기 판단’이 많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무척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판단과 책임을 한 개인이 지고 있습니다. 저희 세대부터는 특히 더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매순간이 판단과 책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투브에 무작위로 타로카드를 읽어주는 리딩이 유행하는 것도, 사주 시장이 젊은 층 사이에서 점점 커지는 것도 그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개인이 더욱 도드라지고 공동체가 점차 옅어지는 이 시대에 어떤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저의 주된 문제의식 중 하나이지요. 작년에 진행한 인터뷰집 역시 그 맥락 위에 잇습니다.

 

 

  1. 관습, 나름의 믿음 체계

 

    아무리 오늘날 주술이 유행한다하더라도, 대부분은 ‘미신’이라거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방편/오락’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자누리쌤은 고대에 ‘주술’이 바로 지식이자 패러다임이었다고 말합니다. 근대의 지식은 합리적, 과학적,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지지요. 그러나 퍼스에 따르면 예측-판단이야 말로 사유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명들은 자기 나름대로 믿음 체계를 지녀야 살 수 있답니다. 나름의 믿음 체계란 관습 같은 것입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내면, 그건 서로를 안심시키는 행위가 됩니다. 반면 처음보는 중장년 남성이 “어이 아가씨”라는 말로 인사를 건내면, 그는 제게 위협적인 인물로 간주됩니다. 오늘날 관습은 많이 붕괴되었습니다. 또래 사이에서 ‘관습=문제’이 주된 프레임입니다. 그러나 저는 새로운 관습을 발명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의 올해 개인적인 공부 방향이기도 합니다. 관습과 상징이 우리 세대에게 왜 필요한지, 지금 그것이 횡횅해서 문제가 아니라 전무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갖게 된 저의 주요한 문제의식이지요. 그것을 자누리쌤은 ‘나름의 믿음 체계’라고 표현하셨는데요.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앞으로는 관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나름의 믿음 체계’라는 설명을 덧붙이려고 합니다. 그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요? 매순간 판단과 책임을 져야하는 개인들이 사는 이 세계에 믿음이나 공동체 같은 것은 요원하게 느껴지기만 하니까요. 저의 친구들은 우리에게 관습이 없다는 말엔 의아해할지 몰라도, 믿음 체계가 없다는 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1. 구체적인 지식의 필요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강의에 제가 가진 문제의식과 제가 작년 인터뷰집을 진행하던 맥락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네요. 관습은 구체적인 지식과 함께 간다고 자누리쌤이 말하고 계시는데요. 저는 <주역>을 잘 모르지만, 여태까지 신체로 배웠던 동양고전 감에 의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집 끝에 ‘함께 살기 위한 노하우’를 넣어두었지요. 물론 5~6월에 출간 될 출간본 인터뷰집에는 ‘노하우’ 부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젠가.. 이 노하우나 구체적인 지식을 더더더 밀고 싶은 바람이 있답니다.

 

   너무 신나서 구체적인 지식에 대한 설명을 건너뛰고 제 인터뷰집과 문제의식에 대해 말해버렸네요. 제가 읽으며 좋았던, ‘관습-믿음-구체적 지식’이 연결된 문장을 옮겨와보겠습니다.

 

“식당 주인이 차려준 음식을 보고 주저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독이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불신에 늘 흔들려도 그 속에서 믿음의 체계를 구성해가며 ‘관습’을 만들어간다. 믿음은 이런 관습법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구체적 삶에 기초한다는 것이 퍼스의 견해이다.”

 

   믿음은 양화가 가능하거나 측정이 가능한 ‘정량적 지식’으로부터 기인하지 않습니다. 일상과 아주 밀접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질적인 ‘정성적 지식’으로부터 기인하지요. 아주 작은 손짓, 고갯짓으로 우리는 믿음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공유합니다. “너랑 나는 오늘부터 100의 관계야~ 만약 네가 약속에 10분 이상 늦을 경우, 2씩 감점될거야. 80이 되면 나는 너랑 단 둘이 만나지 않을거야. 설령 어쩌다 같은 공간에 남게 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나는 너와 1m 이상 가까워지지 않을거야.”라고 설명하며 믿음을, 관습을 형성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지식이 왜 필요한지, 문탁에서 생활을 하면서,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천천히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전엔 구체적인 지식이란 건 제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많은 경우 ‘정량적 지식’으로 믿음 체계를 확인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약간 습관 같은 것이라서, 처음 만나는 관계 안에서 특히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체계는 구체적인 사건과 경험, (말을 포함한)행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아직도 종종 까먹곤 합니다.

 

 

 

   무척 재밌게 들은 강의였습니다. 사실 많이 졸았는데요^^… 연말연초에 바빠서 수영장에 못 다니다가, 이날 오랜만에 새벽 수영강습에서 체력훈련을 해서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그래도 뒷부분에서는 정신을 차려서 잘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저의 작년, 그리고 올해 공부와 작업에 너무 큰 도움이 되는 강의였습니다.

 

   관습은 '나름의 믿음 체계'다! 제게 두고두고 도움이 될 문장 하나 들고 갑니다 홍홍홍

 

 

댓글 1
  • 2023-01-19 13:53

    후기 잘 읽었습니다~~ 글이 쏙쏙 읽히고 정리가 쫙 되네요

    저도 자누리선생님의 믿음에 관한 부분이 강렬했어요. 누군가가 밥을 해주는 것을 먹는 것은 상당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요.

    관습은 '나름 믿음의 체계다'라는 해석이 와닿네요. 그 믿음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시대마다 달라지는 부분도 있을 것같습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습관적일 뿐인 관습일 경우에는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같구요. 그래서 제가 아직 주역은 잘 모르지만 주역도 시대마다 그 해석이 달라지며 모습이 달라지기도 할 것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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