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입문] 제6장 중세 / 토마스 아퀴나스 - 요약과 질문

앙코르석공
2023-05-0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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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조화와 종합이라고 규정하였다.

 

생애

 

토마스  아퀴나스 ( Thomas Aquinas, Tommaso d'Aquino )는 1225년생으로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의 Aquino 근처에 있는 로카세카에서 출생하였다 ( 아버지 란돌포 다퀴노 ).  그는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몬테 가시노 수도원과 나폴리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도미니크 수도회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 결국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신학대전>. <대이교도대전> 그리고  성서에 대한 주해서들과 함께  <통치에 대하여>, <정규토론집> 등  참으로 많은 책들을 저술하였다. 1274년 선종하였고 1323년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1879년 그의 철학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 교리로 선포되었다.

 

법과 정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1200년경 서구 기독교 세계에 알려 졌다. 처음에는 교회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적대적 태도를 취했으나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고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신학적 종합을 이룩해 냈다. 이 종합은 이후 그 생명력이 입증되어 로마가톨릭교회는 나중에 토마스주의 ( Thomism )를 무엇보다 선호하는 철학으로 채택하였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화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인은 기독교의 신으로 대치되었다.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토마스주의적 종합의 특징은 조화시키기 ( harmonization )이다. 신과 세계를 조화시키고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보편자 문제에 관련하여 토마스는 다음과 같은 온건한 ( 아리스토텔레스적 ) 개념실재론을 수용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토마스도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았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사는 것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조건이다. 정치학은 대체로 계시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교도들도 상당한 정도까지는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덕과 행복을 넘어서는 최종 목표 바로 구원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은 배타적인 지역사회에서 시민적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하는 것에 반해, 토마스에게 덕은 법률에 의해 지배되는, 안정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의 위계질서 안에서 도덕적 생활 방식을 영위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하는 것이다.

토마스는 영원법을 피조물 전체에 대한 신의 섭리를 표현하는 이성의 칙령이라 하였고 이성적 피조물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데  자신들의 이성, 즉 루멘 나투랄레 (  lumen naturale, 자연의 빛 )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토마스는 비기독교도들에 비해 기독교도들이 갖는 장점은 계시를 통해 신법 ( divine law )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법은 구원에만 사용되면 선의 인식은 이성적 성찰의 문제라기보다는 올바른 신앙의 문제라고 하였다.

법의 근본목적은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한 삶의 적극적 실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법률만이 아니라, 바로 덕이다. 토마스는 지혜와 용기, 절제와 정의라는 고전적인 4주덕에 덧붙여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덕목을 언급하였다.

 

재론

 

토마스는 기독교적 계시와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조화시키는형태로 신앙과 이성의 종합을 추구하였다. 이 종합에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전해진 신플라톤주의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유산은 이븐 루시드와 같은 아랍 철학자들을 통해서 토마스에게 전해졌다.

존재와 존재자  /  토마스주의 ( Thomism ) 철학은 존재의 철학, 즉 인격체들만이 아니라 실체 일반의 존재에 관한 철학이다. 토마스주의는 본질적으로 " 존재론 "이다. 존재는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사유 자체를 포함하여 사유될 수 있는 것은 모두 존재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하여 존재는 철학의 최대의 미스터리이다. 토마스는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사물이 무엇인가를, 즉 현존 ( existentia )과 본질 ( essentia )를 구분한다

범주들  /  사물에 대한 많은 정의 가운데 모든 사물과 현상에, 즉 모든 존재자에 적용되는 보편적 정의들을 범주하고 부른다.

악투스와 포텐티아  /  토마스는 모든 존재자에 공통되는 이 기본 특징들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태와 잠재태와 같은 악투스 ( actus )와 포텐티아 ( potentia )가 있다고 하였다. 또 순수현실태 ( actus prutus )인 신을 최상위로 하여 모든 잠재태가 위계적으로 하향 현실화되어 나타나고, 맨 아래에 있는 제1물질 ( materia prima )는 조금의 현실화도 포함하지 않는 순수잠재태 개념을 나타낸다.

원인들  /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현실태와 잠재태이론, 즉 변화에 대한 이론은 네 가지 원인 또는 원리 이론, 즉 질료와 형상, 그리고 작용인과 목적인과 연결되어 있다.

형상과 질료  /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현실태와 잠재태와 유사한 주장을 하면서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순수현실태를 주장하였고 이것은 신의 개념을 암시한다.

영혼과 육체  /  토마스에게 인간은 최상의 물질적 존재자이다. 인간은 육체인 동시에 영혼이다. 이러한 견해는 육체를 진정한 인간 존재인 영혼의 비실재적 외피로 간주하는 신플라톤주의적 견해와 대조된다. 토마스에게 인간 영혼은 두 가지 주요한 기능을 갖는다. 인지와 의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토마스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행위에 관하여 이성이 의지보다 우선한다는 일종의 주지주의 ( intellectualism )를 표방한다.

 

인식론

 

토마스의 경우 인식론은 그의 전체 철학 속에 통합되어 있다. 토마스주의 인식론은 실재론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견해는 인식론적 회의론과 반대된다. 토마스는 지식이 감각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토마스는 온건한 실재론의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토마스의 입장이 유명론적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토마스에 땨르면 외부의 물질적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우언가에 추상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수준의 추상을 통해 자연철학과 수학 그리고 형이상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이 등장한다.

 

인간론과 도덕철학

 

토마스의 인간론과 도덕철학은 그의 존재론 및 인식론과 마찬가지로 뚜렸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특징을 갖는다. 토마스가 전체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자신의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토마스주의적 학설의 중요한 측면들은 기독교적 요소나 성경적 요소없이 순수하게 철학적 이론의 성격을 갖는다. 토마스의 도덕철학은 행위는 목적을 갖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토마스는 보편적인 도덕규범 내지 법규를 상정한다. 불변적이고 보편적 구속력을 갖는 도덕적 원칙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토마스는 자연법 전통의 대표자이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그의 신관, 즉 우리가 창조한 신은 선을 원한다는 견해의 결과이다. 선은 신의 의지에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신은 선을 원한다. 신앙은 우리가 구원의 목표를 깨우치기 위해서 필요하며, 신앙과 훈련은 우리가 이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요구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토마스주의 인간론과 도덕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이자 기독교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부터 고유하게 기독교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과 세계

 

대부분의 스콜라철학자는 신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논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 논증들은 종종 "신 존재 증명"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 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과 관계하는 데 적절한 수단은 계시와 신앙이다. 그래서 이 논변들은 비신도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유용하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  /  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완벽함 ( 최상의 존재 )에 관한 관념이다. 우리는 신보다 더 완벽한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최고의 최고의 완벽함인 신은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후 안셀무스의 증명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토마스가 말한 " 다섯가지 길", 즉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

1.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  /  그 자체로 다른 원인을 갖지 않는 최초의 원인, 모든 변화와 모든 운동의 원천인 최초의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 이 최초의 원인이 원동자 ( the prime mover )이며, 이것을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2. 인과론적 신 존재 증명  /  인과론적 신 존재 증명은 원인과 결과 간의 특별한 직접적 관계에 기반을 둔다.

3. 필연성에 기반을 둔 신 존재 증명  /  모든 것이 우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언가 필연적인 것이 존재해야 한다. 이것을 "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4. 최상의 완벽함과 최상의 존재라는 관념에 기반을 둔 신 존재 증명  /  존재와 완벽함의 단계적 차이를 상상할 때, 이 위계적 질서는 자상의 것을 넘어서서 완벽하고 절대적 존재인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 것이다.

5.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  /  우주는 그 구조와 질서가 정연하다. 이 디자인을 창조하고 그것을 우주에 실현한 이성적 정신이 있음을 가리켜준다. 바로 이 " 디자인하는 " 정신이 "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 것이다.

 

악의 문제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면 신은 악의 원인이기도 한가? 진짜 악인 인간의 죄악은 신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로부터 기원한다. 신이 인간에게 정직하게 살지 죄악을 저지를지를 결정할 자유의지를 준 것은 맞다. 그러나 자유의지의 실제적 오용, 즉 악한 행위의 원인은 신이 아니다. 이 악은 정확히 비존재 ( non-being )라는 의미에서, 즉 좋음[선]과 신의 결핍이라는 의미에서 악이다. 그리고 이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떠한 원인도 갖지 않는다. 신조차도 이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댓글 8
  • 2023-05-06 06:18

    P. 270 / 1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사는 것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조건이다.
    여기서 자기실현의 단어적 뜻은 " 삶의 이유 또는 목적의 완성 " 정도로 이해되지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다른 철학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요.

    P. 295 / 16
    진짜 악인 인간의 죄악은 . . .
    악과 죄악은 철학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요 ?

  • 2023-05-06 11:02

    1) 281쪽 아퀴나스는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통해 지각 가능한 현상들의 감각 인상들로부터 다양한 현상 속에 공통되는 특징들을 인식해낼 수 있고 개념들을 형성해낼 수 있다.”고 한다. 282쪽에서도 “개념들이 대상들 속에 존재하며, 우리는 사유를 통해 오직 대상들 속에 현시된 개념들만을 인식한다고 주장한다.” 지성이 이런 개념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간 정신에 내재하는 사유 형식 (즉 어떤 것들이 우리 정신의 보편적 형식과 특성에서 오는지에 대한) 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2) 280쪽 끝부분에서 아퀴나스는 “근본적으로 인식주체가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 인상을 형성해낸다는 점을 강조하는 칸트의 견해와 다르다.” 고 하는데요. 칸트의 인식론과 토마스주의 인식론을 비교해서 설명 부탁드려요.

  • 2023-05-06 11:36

    p.280

    아퀴나스의 의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와 같은가? 다른가? 의지가 목적으로 설정된 것에 종속적인 충동이라면 자유의지와는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좋은 것을 파악하려는 인식은 자유의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와는 관계없는 이성의 작용일 뿐인가? 의지와 자유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라 했고, 아퀴나스는 의지라고 했을까?

    p.283

    "질료는 개별 사물들을 개별화시켜주는 것이다. ...... 우리가 고찰하는 것은 개별화시켜주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즉 우리는 개별화시켜준다는 의미에서의 질료를 추상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상을 지각 가능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의 질료를 추상하지는 않는다."

    개별화시켜주는 것과 지각 가능하게 해준다는 의미는 같은 것 아닌가? 개별화를 넘어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개별화 원리로서의 질료를 추상하는 것 아닌가?

  • 2023-05-06 11:49

    P300 신학과 신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일차적으로 성서와 거기에 쓰여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 토대한다, 따라서 유명론은 일종의 이성과 신앙 간의 분리로 나아간다. 형이상학과 사변신학은 말하자면 배제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지성활동이 철학에서 경험과학으로 그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하는데 그려면 토마스주의 이후로 철학이 유명론으로 옮겨가나요?

  • 2023-05-06 12:12

    274쪽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설명에서 아퀴나스는 ‘에세(존재)는 곧바로 신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저는 아퀴나스가 말하는 ‘존재’와 ‘신’이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어떤 점이 다른 걸까요? 그리고 275쪽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존재의 미스터리이다”라는 말은 인간이 ‘존재’의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인가요?

    295쪽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유한한 우주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의 귀결이다. 그리하여 사물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제약과 그것이 수반하는 악은 아무리 완벽한 우주에서라 할지라도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신의 의지에 귀속시킬 수 없다.”
    위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우주의 사물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 제약은 악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신은 완벽한 우주를 만들긴 했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 또 그 안에서의 악은 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렇지만 신의 의지를 벗어난 것 자체가 결국 신의 불완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 2023-05-06 13:38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한 5세기 경이 초기 스콜라 철학 시기라면, 중기는 13, 14세기이고, 후기는 15세기(265)라고 할 수 있다. 상상한 것과는 달리 초기가 길고 중기가 짧다. 아마도 사회 시대적 상황에 따르는 바이겠는데, 십자군전쟁등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대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한다면?

    274쪽)"에세는 곧바로 신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정신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이 근본적인 에세이다.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것도 상상할 수 없다." "존재는 철학의 최대 미스터리"이지만, 정신을 통해서 그 에세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에 대해서는 정신적으로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은 이성 너머의 계시, 신앙을 통한 통찰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에세와 신은 플라톤에서 봤듯, 이데아와 그 이데아들의 이데아(일자)로 볼 수 있나?

    300쪽)오컴에 대해서 말하면서, 앞에서 이성-신앙의 짝으로 말하던 것에서 '지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지성은 어떤 의미에서 사용되나?

    302쪽)루터는 신앙의 지도를 받는 이성은 신학의 하녀가 될 수 있다고 말했고, 이성이 신앙을 판단한다면 이것은 악마의 도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철학적 견지에서 그릇되고 부조리한 것으로 보이는 것", 즉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이성에게 강요함으로써 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성은 유리 규범의 토대가 될 수 없다." 으흠, 루터에게 이성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 2023-05-06 19:57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써놓고 깜빡해버린..

    286p.
    아퀴나스는 “서로 다른 사람들은 각기 다른 다양한 능력을 갖는다는 생각을 거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기독교를 벗어나서라도 세속에서의 좋은 삶은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는데요, 얼핏 보기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듯이 보이지만 기독교적 ’구원‘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는 걸 보면 최상의 좋은 삶(?)이라는 게 있다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 층위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다양한 삶을 인정하기는 하나, 그것이 진정으로 좋은 삶은 아니라는 건가요?

    보편적인 도덕규범을 상정하기도 한다는 파트를 보면 ’사람들이 법규와 원칙을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들이 상대덕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뿐“

    295p.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유한한 우주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의 귀결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신은 무한이라는 걸까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과 ‘무한’의 개념은 좀 다른 걸로 느껴집니다. 수학적 개념이 아닌 ‘무한’에 대한 얘기는 따로 없는 것 같고.. 무한에 대한 언급 자체도 없는 것 같네요. 아퀴나스는 무한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나요?

  • 2023-05-0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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