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중세 전반부 요약과 질문

마음
2023-04-29 11:28
83

질문 1. 257쪽 “아담이 죄를 선택한 이후로 모든 인류의 인간적 본성은 깊은 타락의 길을 걸었다. 다른 모든 인간은 죄를 피할 수 없다. 선택과 자유는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신은 은총을 베풀어 일정한 소수는 그 벌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이가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사람의 선택은 그 사람 자신의 장점이나 덕성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모든 과정이 신에 의해 미리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모든 일은 신에 의해 예정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에서 오직 신의 의지만을 인정한 결과 악이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보다는 빛의 부재가 어둠이듯이 선의 부재가 악이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원죄와 악의 문제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생각해야 하나요?

질문 2. 258쪽 “시간을 보는 관점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속적 시간 속에 산다. 하지만 신은 이 시간 개념을 초월한다. 그가 우주와 함께 시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 신은 스스로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봄으로써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다.” 신이란 이 세계를 창조한 주체로 파악한다.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신이 창조한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계가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인간에게 자유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요?

질문 3. 259쪽 “기독교적 신앙의 진리와 세속적 지식 간의 관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일부 계시된 진리는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다른 진리는 우리의 지적 능력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동시에 어떠한 신앙의 진리도 궁극적으로는 이성과 상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으로써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댓글 7
  • 2023-04-29 12:00

    236-7p.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의 제국으로 이행하면서 개인(특수)과 국가/법(보편) 사이에 일종의 이분법이 등장하였고, 보편 내에서 다시 한번 자연법과 제국의 실정법 간의 이분법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연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정법을 정당화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연법이 실정법보다 큰 전제가 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법의 정당한 해석자로 교회와 교황이 꼽힌 것은 이미 권력 체계가 미묘하게 기울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그만큼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해진 걸까요? 왕권이 순순히 권력을 넘겼을 것 같지 않아서 질문합니다.

    252-3p.
    “신비한 합일을 통한 현인의 일자에 대한 통찰은 언제든 스스로를 그 수준으로 고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최고의 통찰은 ‘역사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기독교도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계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가르침에 의해 역사 속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신앙을 통한 인간과 신의 공동체 형성은 ‘역사적 제약’ 조건하에 위치한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적 제약’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됩니다. 신앙이 세속적 지혜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맥락에서 쓰인 표현일까요?

  • 2023-04-29 12:34

    257쪽)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악은 인간의 자유의지로부터, 의지적 의도적인 오용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사고에는 신플라톤주의의 경유를 볼 수 있는데, 그리하여 저자에 따르면 "악들은 '존재'의 절대적 부재, 그리하여 '좋음'의 절대적 부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악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고 싶다. 그리고 저자도 덧달고 있지만, "인간은 왜 자유의지로 죄를 짓는 것을 선택할까?"라는 질문. 이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258쪽)이성보다 의지를 주장하고 있는 면모가 새롭다. 스토아의 경우, 외물에 끄달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외물과의 거리 혹은 이성을 통해서 평정심에 이르는 것이 행복이었다. 지난번까지도 서양철학사에서 이성은 참 중요하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의지를 더 중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본다. 어떻게 그와 같은 자가 등장했을까. 어쩌면 스토아의 수련이 힘들거나 실패였거나 였을 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경험적으로 올바른 통찰이 올바른 행동으로 이끈다는 스토아의 주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기(241) 때문일 테다. 이렇게 행복 혹는 마음의 평화에 이르는 길에서 그는 이성보다는 의지를 선택한다. 그런데 이런 의지는 어떻게 생겨나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했으니, 영혼처럼 자유의지는 본성처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디폴트값인가? 그럼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어, 인간은 왜 자유의지를 갖고도 죄를 짓는 것일까?
    다시 이와 관련해 감정의 문제가 궁금하다. 신과 세계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합일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저 내적 통찰을 통해서 신과 만나고 그와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의 양상이 사랑이나 구원, 열정, 부끄러움, 죄 등등이다. 이러한 감정과 의지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맹자는 志는 氣를 이끄는 장수라고 했는데, 그것처럼 의지가 기, 여기서는 감정을 이끈다고 할 수 있나. 集義하여 호연지기를 키운다는 맹자처럼,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자유의지는 길러질 수 있고 수련될 수 있는가. 그것과 감정과의 관계는?

  • 2023-04-29 12:37

    265쪽 ‘후기 스콜라철학의 주요 철학자는 영국인 오컴의 윌리엄인데, 그는 신앙과 이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선포했고, 유명론과 경험적인 것에 대한 지향을 옹호했으며 이로써 새로운 시대의 철학의 도래를 예고했다.’… ‘유명론자들은 신의 말씀과 신앙을 통해 계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이성이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면 신의 육화의 핵심적 의의가 약화될 것’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유명론자들은 ‘보편자’는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이름에 불과하는 것이고 ‘신’은 이성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실재’한다고 본 것인가요? 이 주장이 실재론자들에게 ‘신’의 존재 또한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플라톤적 실재론’에서 보는 ‘보편자’와 ‘신’의 개념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적으로 보이는 유명론자들의 사상과 신앙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2023-04-29 12:51

    P251우리의 가장 확실한 지식의 대상인 우리의 내적 삶과 순수한 형식들은 또한 우주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실재적인 것이다 이것은 인식론과 존재론이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를 보여준다 기독교는 인식론이 더 앞선다보고 보이며 인식론과 존재론중 어떤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가요?

    P254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도덕적 악은 존재의 결여가 아니라 주로 의지의 오용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사상에 발맞추어 형이상학적 악을 존재의 결여로 이해 시도했다 제가 보기엔 도덕적악은 의지오용으로 보이는대 존재의 결여로 이해했을까요? 책 뒷부분은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요?

  • 2023-04-29 13:43

    P. 231, 4-5
    고대 후기에 이러한 인생철학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종교적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 . . . . .
    철학과 종교는 사람들이 제각각 따로 추구하는 영역이었을 것이다. 시대상황이 종교에 더욱 몰두하게 만들 수 있었을 지는 몰라도 종교가 철학의 대체재가 될 내용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P. 231, 16-23
    초기 기독교들에게 헬레니즘 지식인들과의 만남은 . . . . . .
    이 부분에 쓰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시대적으로 보아 구교, 신교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단어 뜻 그대로 '폭이 넓은'과 '반대하는'으로 쓰여 졌다고 생각됩니다.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이방인에게도 전도하자는 사람들과 유대인에게만 전도해야 한다는 사람들과의 의견 차이는 있었습니다. 결국 이방인에게도 전도하자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이후 가톨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프로테스탄트는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에 이의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
    그리고 성서가 씌어진 언어의 차이는 훨씬 나중에 대두되는 문제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2023-04-29 15:21

    p.234

    기독교가 가져온 새로운 철학적 개념 중 하나는 '인간중심주의적 인간관'이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인간이 우주 속 피조물 중 하나였는데 기독교에 의해 신이 창조한 독특한 위상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런데 책에서는 이런 인간관이 "자연법과 보편적 형제애와 평등에 대한 스토아철학적 이념들이 기독교의 개념들과 합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후기 고대철학에서 이미 개인에 대한 성찰이 있었는데, 기독교의 인간중심주의는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스토아적 인간관에 신이 창조했다는 높은 가치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적이라고 한 것인가?

    p.243

    "내성은 감각 경험보다 더 확실한 통찰을 준다. 인간의 내적 존재는 인식론적으로 우월한 위상을 갖는다. 이 주장은 주체와 객체는 내성을 통해 일치하는 반면에, 감각 경험은 주체와 객체가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적 존재는 감정, 영혼이면서 다양한 비합리적 충동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로 지배할 수 없어 초인간적 조력=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렇다면 내성은 신의 도움으로 얻은 통찰 같은 것인가? 반성과 비슷한 의미? 그리고 "이 주장은 주체와 객체는 내성을 통해 일치하는 반면에, 감각 경험은 주체와 객체가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불확실하다는 것이다"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p.254

    신플라톤주의에서는 도덕적 악과 형이상학적 악을 모두 존재의 결여로 봤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덕적 악은 의지의 오용으로 형이상학적 악은 존재의 결여로 나누어 본 것인가? 그런데 이것이 신과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 2023-04-29 16:50

    질문들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0
[2024 철학입문 시즌2] 고대 그리스 희·비극 읽기
정군 | 2024.04.15 | 조회 84
정군 2024.04.15 84
89
[2024 철학입문 시즌1] 8주차 후기(방학입니다!) (3)
덕영 | 2024.04.14 | 조회 56
덕영 2024.04.14 56
88
[2024 철학입문 시즌1] 8주차 질문들입니다 (10)
효주 | 2024.04.11 | 조회 68
효주 2024.04.11 68
87
[정신의 발견] 7주차 후기 (1)
돈키호테 | 2024.04.11 | 조회 58
돈키호테 2024.04.11 58
86
[2024 철학입문 시즌1] 7주차 질문들입니다 (10)
정군 | 2024.04.04 | 조회 68
정군 2024.04.04 68
85
[2024 철학입문 시즌1] 6주차 후기 (5)
우현 | 2024.03.29 | 조회 131
우현 2024.03.29 131
84
[2024 철학입문 시즌1] 6주차 질문들입니다 (11)
정군 | 2024.03.28 | 조회 72
정군 2024.03.28 72
83
[5회차 후기]그리스 비극은 그래서 죽었나? (6)
자작나무 | 2024.03.26 | 조회 87
자작나무 2024.03.26 87
82
[2024 철학입문 시즌1] 5주차 질문들입니다 (11)
정군 | 2024.03.21 | 조회 92
정군 2024.03.21 92
81
[2024 철학입문 시즌 1] 4회차 후기 : 달콤씁쓸한 희랍 문학 (6)
토용 | 2024.03.16 | 조회 110
토용 2024.03.16 110
80
[2024 철학입문 시즌1] 4주차 질문들입니다 (10)
정군 | 2024.03.13 | 조회 102
정군 2024.03.13 102
79
2024 철학입문 3회차 후기 (6)
경덕 | 2024.03.10 | 조회 108
경덕 2024.03.10 10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