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 홀로바이옴 드로잉2 -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가로지르며

2023-03-28 08:54
134

                 산호산, 드로잉북에 색연필, 21x 29.5cm, 2022

산호 홀로바이옴의 오랜 생명력을 지층에 깊이 뿌리 내린 산호산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드로잉 작업은 달의 순환 의식을 통해 그들의 삶이 이어지기 바라는 제의이면서 동시에 애도의 과정이다.

 

산호초는 해양 생태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산호 홀로바이옴(공생적 집합체)들은 산성화되고 뜨거워지고 있는 바다에 담겨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위기에 처해 있다.

산호는 지의류와 더불어 생물학자들이 가장 초기에 인지한 공생의 사례로 그들이 개체와 집단에 관해 품었던 생각의 편협함을 깨닫게 했던 귀한 존재들이다. 게다가 몇몇 심해 산호초들은 얕은 물속의 손상된 산호들을 되살리는 레퓨지아refugia(과거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던 생물체가 제한적으로 생존하는 지역)역할을 한다. 해러웨이는 산호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떠나, 산호초의 세계는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다. 나는 그들의 육체에 깃든 아름다움을 아는 존재가 인간뿐이라고는 생각할 없다.”

취약해진 산호는 이내 생존을 위해 광합성을 포기한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살아 남기 위해 황록공생조류를 떠나보내고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데, 그것이 산호의 백화 현상Coral bleaching이다. 앙상하고 푸르른 모습은 내가 알던 죽음들을 떠올리게 했다.

 

                         백화현상이 진행된 산호초 사진

 

               산호가 사라진다면(백화현상을 그린 드로잉)

                            종이에 아크릴, 27x37cm, 2020

 

상실을 대할때 마다 자동으로 건드려지는 기억들이 있다꾹꾹 눌러두었다고 해도 기억의 감각들은 꿈을 통해 되살아 나거나 일상의 허튼 짓으로 삐져나오곤 한다. 기억은 감춘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였다.

감각들을 통제했던 이유가 있다상실로 인한 <슬픔, 아픔, 고픔>땡픔 3 세트 오랫동안 나에게부끄러움' 동의어였다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용기가 없었고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3 세트를 드러내서 취약해질까 안절부절했고 얕은 감정의 가면 속에서 진짜 감정은 숨죽일 때가 많았다.그런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영화나 소설을 보면 억압된 감정들이 쏟아져내렸다그렇게 애도를 멈춘 자리는 산호의 백화현상처럼 앙상하고 푸르다그리고 산호초와의 감응은 그 어리석었던 자리에서 생겨났다.

 

나의 산호 홀로바이옴 드로잉은 그들에 대한 기억 퍼포먼스이자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애도이다.애도가 무거울 필요는 없다. 모노톤도 좋지만 밝고 경쾌하게 그리고 싶다나의 애도는 여전히 드러내기와 감추기 사이를 널뛰고 반복하다 실패한다. 그러나 감각의 취약함을 마주하고 상실과 함께 살아가려는 지금의 나도 있다. 애도와 슬픔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정희진의 말이 응원으로 들리는 오늘의 말이다.

그리기는 내가 배우고 있는 애도의 방식이고 느린 죽음의 기록이다.

 

- 두렌 Thom van Dooren <<항로 Flight Ways-life and loss at the edge of extinction>> 멸종이 어떻게 점이나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길게 늘어난 가장자리 혹은 넓어진 가장자리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역사적 상황속의 인간을 포함하여 많은 종들의 세계에서, 멸종은 계속 살아가는 길의 거대한 섬유조직들을 풀어버리는 길게 지속되는 느린 죽음이다. (…) 두렌은 애도하기  응답- 능력을 배양하기 본질적인 것이라고 제안한다애도란 상실과 함께 사는 이고, 그래서 상실이 의미하는 무엇인지,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해서 우리의 관계들을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트러블과 함께하기 Staying with the trouble 중에서, p71

 

 

 

댓글 4
  • 2023-03-29 07:34

    참님의 홀로바이옴 드로잉에 살짝 닿아있어 좋아요
    좁아들어가는 가장자리에 새로운 연결들이 생겨나는 기쁨!!
    참님의 에너지가 힘을 주는군요
    고맙습니다~~

  • 2023-03-29 07:52

    참의 산호초가 땡픔 3종세트였군요..
    그런데 백화현상 드로잉도 멋있어보이니 이거 문제인거죠?

    더 들여다 보니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살아 남기 위해 황록공생조류를 떠나보내고"
    그 떠나보낸 이들이 안보이는 군요..

    다시 불러모으는 시간들이 닥치기를..

  • 2023-03-29 09:31

    이렇게 작업이 끝난 작품을 보니 좋네요~
    저도 관심이 많은 내용이라...
    아침에 색감이 입혀집니다

  • 2023-04-04 11:09

    이런 홀로바이움 예술가랑 같이해서 좋아요
    잠시라도 일상에 영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