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연구소] 대반열반경 3강 후기

2023-04-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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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마지막에 대한 사소한 호기심으로 듣게 된 요요샘의 대반열반경 강의.

지난 3강에 이어 오늘이 벌써 마지막 시간이다. 다수의 예비 후기 작성자들에 숨어 슬쩍 넘어 가려던 꼼수를 내려놓고^^자상하고 꼼꼼한 요요샘의 3강 강의자료를 다시 한번 읽으며 들고 나는 생각들을 짧은 후기로 적어 본다.

 

-나이듦과 병듦에 대한 나의 쿨한 척-

(나이 들다,  병 들다 의 '들다'의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생겨나서 의식 속에 자리잡다'는 뜻~)

지난 목요일에 오래된 친구들인 공동육아 동기 엄마들과 모임을 가졌다. 전날 자기 전에 급히 먹은 떡국 반 그릇 때문인지 새벽 내내 불편감이 있었는데 무시하고 나섰다 . 페스코 비건인 나를 배려해 토스트, 버섯 파스타, 야채 스프, 샐러드 등을 주문했다. 한 분이 건강검진 예약을 잊고 약속을 잡아서 그 분의 도착을 기다리다가 꽤 늦게 식사를 시작했는데, 신경 써서 주문한 요리가 모두 고기 베이스였다!!! 토스트와 파스타는 물론 야채스프에도 큼지막한 덩어리 고기가 있었다. 포크로 고기 조각을 떼어내는 동안, 얼마 전 다른 식사 자리에서 들은 어떤 분의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그분과 나는 채식을 위해 '달래장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의외로 다진 고기 볶음이 얹어져 있었다. 그분은 채식도 지향이 중요하고 본인은 조절이 가능해서 이렇게 원치 않게 나온 고기는 드신다고 하셨다. 나는 겉으로는 한 번 먹게 되면 다시 채식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울 거 같다고 애기하면서, 속으로는 내 지향과 의지의 본질을 의심했다. 나도 억지스러움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데...쩝. 그날 생각이 떠올라 동행들에게 보기 안 좋게 먹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내 의지를 못 믿어서 채식에도 선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는 사족을 붙였다.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레 건강검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산후 검진 이후로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지 않고 있는 나는 경험이 별로 없어서 할말도 딱히 없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열 한해가 지났으니 10년 정도 검진을 받지 않은 셈이다. 병원 의료를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서 이상 신호를 느끼기 전까지는 검진을 하지 않겠다 마음 먹었다. 내시경과 마취에 대한 갖은 불편함과 불안, 서로 다른 나이에서 느껴지는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이야기로 오고 갔다. 누군가 참'은 검진 안받고도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 사이 나는 점점 더 속이 불편하고 심한 편두통을 느껴지고 있었지만,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왠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 파지사유 회의가 있어 양해를 구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구토감을 호소했다. 머리에 망치질을 하는 듯 아팠고 어지러웠다. 불현듯, 코로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급히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썼다. 회의에 늦게 도착했는데, 앉아 있을 상태가 아니라는 걸 자각했다. 내 상태를 말씀드리니, 둥샘이 약을 챙겨주시고 달샘이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약을 먹고 2시간 가량 기절했다. 급체였다!!! 저녁을 굶고 다음날 아침에 죽을 조금 먹고 괜찮아졌다. 

 

실은 요사이 체하는 일이 잦다. 얼마전에 하이볼을 마시다가 다 쏟아낸 것도 취한 게 아니라 체한 것 때문. 아이들을 키우기 전까지, 먹는다는 것은 그저 에너지 제공의 의미였고 빨리 먹는 습관이  몸에 베였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자는 것과 먹는 것의 질과 양, 방식이 건강의 바로미터임을 매일 매일 깨닫는다. 체한 후 며칠 동안은 내가 괴로워한 것을 본 둘째가 천천히 먹는 자신만의 비법을 설파했다.ㅋㅋ 마음 먹기에 따라 나와 연결된 모든 관계에 붓다의 가르침이 있다는~

 

그러고 보니, 자연스럽게 살고 싶은 나는 억지스럽게  채식을 하고 있고, 고집스레 건강 검진을 안 하고 있다. 뭔가 있어 보이게 조금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저항'이라고 해보고 싶지만 의심스런 부분이 많다. 나이듦과 병듦에 대한 나의 이 쿨한 척은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내 삶의 이중적 태도와도 이어진다. 속으로는 늙기 싫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걸까? 문득문득 모든 사라짐(나를 포함한)에 대한 두려움을 쿨한 척으로 가장하는 걸까? 무튼,,,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있다.

 

-아난다여, 생겨나고 생성되고 형성되고 부서지고야  마는 것을 두고  '부서지지 말라'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것은 옳지 않다.-

 

붓다의 입멸을 뒤늦게 알아차린 아난다가 그제야 붓다에게 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물러 달라고 청원했는데 그 (때늦은) 타이밍 때문에 여지껏 욕을 먹는다는 점이 꽤나 웃겼다.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 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재해석 한건가???  게다가 여자들이 출가 하기 어렵던 당시 승가 분위기 맞서서 왜 여자는 아라한이 못 되냐며 여자들의 출가를 적극적으로 붓다에게 어필했다는 아난다는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다.  언듯 눈치가 참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붓다 말씀의 특징이 경전의 묵수가 아니라 수행자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한다는 점을 되새겨 보면, 아난다의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아난다만의 경험과 생각, 따져봄이 엿보이는 특별한 대목이기도 하다.  따져봄과 경험에는 사람마다 다른 시간이 들기도 하고...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벗들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참모임, 장로들, 한 분의 장로 ) 앞에서 듣고 세존 앞에서 받았습니다. 이것이 가르침이고 이것이 계율이고  이 것이  스승의 교시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의 말에 동의 하지도 말고 배척하지도 말아야 한다.  동의하지도 배척하지도 말고 , 그 말마디와 맥락을 잘 파악하여 법문과  대조해보고 , 계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법문과 대조헤 보고 계율에 비추어 보아, 법문에 들어맞지 않고 계율에 적합하지 않다면, '이것은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의 말이 아니다. 이 수행승은 잘못 파악한 것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 법문에 들어 맞고 계율에 적합하다면 '이것은 세상의 존귀한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의 말이다. 이 수행승은 올바로 파악한 것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붓다는 말한 사람의 권위에도 의존하지 말고 다수의 주장이라고 해서 수용하지도 말고, 경과 율에 비추어 보고 논리적으로 판단하여, 그 말이 타당한지 아닌지  잘 살펴 본 후에  동의하거나  반대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뜻도 어렵고 실천도 힘든  여러 수행방법과 과정 중에 제일 와닿는 말이였다.  정희진이 말하는  Against한 공부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붓다가 내세우는 정통성과 권위의 근거는 경장과  율장이다.  그러나 불교의 경전과 그것으로 산출된 역사도 그 시대와 사회조건의 변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왔기에  어떤 경전과  율을 근거로 할  것 인가라는  문제가  늘 제기된다.  붓다의 유훈에  따르면  다양한 주장들에 대해 정통성을 판단하는 책임은 특정 교단이나 고승들이 아니라 각자의 과제로 남겨진다.  그래서 다양한  분파나 종파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이단의 다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삶의 다양성 회복이 중요한  시점에  붓다의 말씀에는 우리가 환기 시킬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쭌다의 마지막 공양을 받고 설사병으로 고생한 붓다의 이야기 부분을 읽으며, 억지스럽지만^^ 급체와 관련된 내 나이듦과 병듦의 자각과 그  자각으로 품게 되는 마음을 연결하고 싶었다. (처음 접속한 붓다의 이야기에 연결 할 내 이야기가 무척 궁함 ㅜ) 설사병으로 더욱 쇠약해진 붓다도 모든 수행의 기초가 되는 새김과 알아차림의 힘으로 고통을 견뎠다고 한다. 네 가지 새김의 토대가 되는 사념처(四念處)는 새김을 확립하고 알아차림을 갖추어,  몸[身念處]-느낌[愛念處]-마음[心念處]- 현상[法念處] 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이 말은 내 몸과 마음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모순된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수행의 출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건가? 붓다의 말씀을 맛보니, 그 출발선에 서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빠바에 간 붓다는 금세공사(대장장이라고도) 아들 쭌다의 공양을 받은 뒤 혈변을 쏟는 설사병에 걸린다. <대반열반경>에서는 공양음식 중에서 혼자  이 음식을  먹은 붓다가 남은 것을 누구에게도 공양하지 말고 구덩이에  파묻으라고 지시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 음식이 수행승들에게  좋지 않은 음식이였을지도 모른다. 분명 늙은 붓다는 이 병으로  죽음에 더 가까이 가고 있었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 새김과 알아차림' 의 힘으로 고통을 견디며 길을 나섰다. 쿠시나라 근처의 까꿋따 강에 이르러 마지막 목욕을 마친 붓다는 쭌다를 위한 전언을 남겼다고 한다. 붓다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공양으로 쭌다가  받게 될  비난과  쭌다 자신의 회한을 염려한 말씀이였다. 죽음을 부르는 고통 앞에서도 쭌다를 염려하는 붓다의 마음의 깊이를 우리도 언젠가 알 수 있을까? 

 

 

 

 

 

 

 

 

 

 

 

 

 

 

댓글 1
  • 2023-04-27 08:05

    이 부분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쭌다의 공양으로 심한 식중독에 걸린 붓다의 태도 같아요.
    붓다의 관용이랄까, 대자대비랄까...
    누가 앞으로 '대자대비'가 뭡니까? 그건 너무 어려운 거 아닙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붓다와 쭌다의 이 에피소드를 말해줄 것 같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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