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Heimat

현민
2023-09-19 09:38
493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어차피 한국 못살아. 거기서 못 살겠어서 여기 온 거잖아. 그럼 이거 아니면 안된다 생각하면서 될 때까지 해야지.

그 애나 나에게 할 법한 말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정신없이 짐을 부친 뒤 출국장에 들어가며 그 애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당황해서 웃기다며 그 애가 우는 사진을 찍어서 엄마한테 보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굉장히 슬픈 사람처럼 울음이 났다.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12명과 함께 살면 외롭지 않겠다고 하지만 각자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같이 산다고 다 알 수는 없는 법이겠지 종종 생각한다. 정민은 출발하지 않는 비행기 안에서 내게 긴 문자를 보냈다. 오지에 언니를 두고 가는 기분이라 눈물이 났다고.

그 애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있었던 가족과의 헤프닝들을 말해주었다. 갑자기 독일에 살 동기부여가 확 됐다. 그래, 나는 왜 한국을 자꾸 돌아갈 곳으로 생각할까? 떠나온 곳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는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니

 

다니는 나와 함께 사는 귀여운 여자다. 그는 나의 또 다른 플랫메이트 필리페의 누나인데 긴 여행 중 이곳에 도달해 독일에 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시기에 방이 나 새로운 플랫메이트가 되었다. 우리는 일곱 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다니 앞에서는 무엇이라도 편히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주어진다. 그 애 앞에서는 입을 열면 문장이 나온다. 그건 내가 긴장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다니는 하루에 몇백 명은 오는 것 같은 큰 자라에서 일한다. 그 애에게 장 보러 갈 시간도, 금요일 밤에 같이 파티에 갈 수도 없게 만드는 자라는 드물게 다니에게 긴 휴가를 주었다. 다니는 그 휴가로부터 막 돌아왔다. 집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다니는 오랜만이었다. 나와 다니는 산책을 가기로 했다.

다니와 함께 강 쪽으로 걸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애가 요즘 만나는 애는 어떤지, 새로 들어온 플랫메이트는 어떤지, 코스타리카에 잠시 돌아간 필리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다니는 자신도 겨울쯤에 코스타리카에 잠시 다녀올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금은 겁이 난다고도. 왜 겁이 나? 물으니 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은 자기가 독일에 정착해 일하며 사는 걸 아예 모른다고 했다. 내가 다시 왜냐고 묻자 다니는 말했다. 이미 너도 눈치챘을지도 몰라. 나랑 필리페 사이에 남동생이 하나 더 있거든. 근데 그 애가 일년 반 전에 죽었어.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야.

 

그걸 어떻게 알았겠냐고 놀라서 반문하는 나에게 다니는 가끔 자신이 Brother가 아니라 Brothers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디테일을 잡기엔 내 영어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다니와 필리페는 9살의 나이 차가 있어 이전에 필리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너네 혹시 다른 형제도 있어? 필리페는 없다고 했다. 만약 내 동생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나는 두 명의 동생이 있다고 말할까, 한 명의 동생이 있다고 말할까? 분명 그들에게도 이런 혼란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통과해 다니는 있다고 말하고 필리페는 없다고 말하는 그 지점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읽혔다.

 

다니는 그 애가 죽었던 작년의 시간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코스타리카를 떠났다고. 고향에서는 모두가 그 사건을 알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게 여행을 떠났고, 필리페가 대학을 다니는 이 도시에 오게 되었다고. 함께 산지 반년이 다 되가는데 다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이야기였다. 이 사건이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겐 어떤 일이었는지, 지금 네 마음은 어떤지 들으며 우리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다니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영어로 어떻게 직역해야 될 지 모르겠어서 그저 한국어로 그 애를 안고 고생했다고 말했다. 다니는 너에게 이걸 말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강물을 보며 나는 한국에서의 내 삶이 어땠는지도 다니에게 말하고 있었다. 영어로 말하니 한국어와는 다른 문장이 나왔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비극들이 내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왜 그렇게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는지. 나와 아빠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이 상처들이 덧나지 않기 위해선 한국과 독일만큼의 거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다니는 잘 들어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타인에게 이 정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왜 한국을 떠났는지 설명하기란 이전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라는 작가 이슬아의 책 속 문장이 떠올랐다. 그때의 마음들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도 슬펐다.

 

다니와의 대화 속 어느 이야기도 슬프지 않은 것은 없었는데 이야기를 할수록 나는 이 곳에서 살아갈 용기가 났다. 마음 속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이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눌 수 없을 거라 생각해왔다. 설명할 자신도 이해받을 자신도 없었다. 그것이 내가 12명과 함께 살면서도 종종 외로웠던 이유였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그 힘으로부터 나는 생생한 생명력을 느낀다. 나는 다니를 전보다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쯤 다니에게 물었다. 그 동생의 이름이 뭐야?

 

Marco

마르코 베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가 어딘가에서 생생히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Heimat

 

나에게는 고향이라는 단어의 모양이나 어감이 아름답게 들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어디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오는 이질감일 수도 있다.

학원에서 고향에 대해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독일어로 고향은 ‘Heimat’이라 쓰고 ‘하이맛’이라 읽는다. 한국어로 읽었다면 금방 고루하게 느낄 말을, 독일어로 읽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게 됐다. 결국은 고향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구글에 검색해 보니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혹은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가 고향이라 한다. 나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한동안 자랐지만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살았던 미금역 언저리는 익숙하지만 그립지는 않다. 정체성을 형성했던 고등학생 시절은 늘 항상 괴로웠던 것 같아 또 그립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어떤 땅이 나의 구체적인 고향의 장소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감각이란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Als ich dieses Wort 'Heimat' gehört habe, habe ich an Situationen von vergangener Zeit gedacht. Es geht nicht nur um ein Land. Ich erinnere mich an einige bestimmte Szenen. Beispielsweise habe ich eine kleine Buchhandlung mit meinen Freunden in Korea betrieben. Sie war nicht nur unsere Geschäft, sondern auch ein Treffpunkt von lokalen Menschen und unseren Freunden. Wenn man sich allein fühlt, konnte man immer zur Buchhandlung kommen. Wir haben gemeinsam viel Zeit verbraucht. Wenn jemand traurig war, haben wir Geschichte von einander ohne Urteile zugehört und konnten für uns weinen. Ich möchte sagen, dass ich mich das Moment als Heimat fühle.

 

직역하자면 이런 말이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의 나라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나는 어떤 특정한 장면들을 기억한다. 예를 들면 나는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작은 서점을 운영했다. 그것은 우리의 사업이기도 했지만, 지역 사람들과 우리의 친구들에게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누군가 혼자라고 느끼면, 언제나 서점에 올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슬프다면 우리는 판단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서로를 위해 울 수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고향이라고 느낀다고 말하고 싶다.

 

공간은 시간을 거치며 변화한다. 내가 서점에서의 시간들을 그리워하더라도 현재의 우리는 그 시절을 재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금새 슬퍼지기 마련일 테다. 문득 주연과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안주연과 나는 몇 년 전 함께 살았다. 그때 난 집에서 쫓겨났고, 그 애는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이 쫓겨났다. 막 스무 살이었던 나는 주연에게 어떤 타투를 받고 싶냐고 물었다. 주연은 몸 어딘가에 문을 새기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나 집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집을 잃기 마련이니까. 목 뒤에 문을 새겨서 몸을 하나의 집으로 명명하겠다는 의도였다.

몸에 문을 그리자. 몸이야말로 쫓겨나지 않을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리워하는 시간들도 그렇게 여겨보고 싶어졌다.

기억을 고향으로 삼자.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덜 두려워하며 더 멀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학원에서 수업을 같이 듣는 어떤 여자의 말도 기억이 났다. 그 여자는 네가 살고 있는 이 곳도 너의 Heimat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멀리 왔다.

원래는 자신의 고향에 대해 짧은 텍스트 10문장을 써오는 거였는데... 

댓글 3
  • 2023-09-19 11:30

    현민의 하이맛 이야기는 이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가? 나의 하이맛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네.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 2023-10-02 09:33

    추석에 형제들 모여서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이야기를 하는데.. 현민의 글이 생각났단다.
    어린 시절 기억과 추억이 담긴 곳이긴 하지만.. 그 뒤로 더 오랜 시간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맺으며 살다보니..
    이젠 나도 어디가 고향인가 싶네.^^

  • 2023-10-08 00:56

    우리는 보헤미안 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슬픔을 가슴에 안고서...^^

일상명상
    길에서 만난 지렁이   어제 아버지 집으로 오던 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햇살이 내리쬐는 뜨거운 인도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못 본 척하고 길을 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지렁이에게 되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올려서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런 뒤 지렁이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곧바로 흙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렁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렁이는 머리 부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오래도록 흙의 상태를 탐색했다. 이렇게 자세히 지렁이를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부터 비 온 다음날이면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파놓은 흙 속 터널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기 어려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지렁이는 물속에서 오랫동안 피부호흡이 가능하다며 비가 흙에 부딪칠 때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 소리로 알고 위협을 느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협을 느껴 밖으로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들이 지렁이 사체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는 포식의 축제가 되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지나치게 된다. 간혹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지만 지렁이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지렁이를 향한 연민이 가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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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7.15 | 조회 59
K장녀_돌봄을 말하다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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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7.15 | 조회 62
기린의 걷다보면
1. 강진으로 귀촌한 친구     오래전에 논술 관련 일을 할 때 만난 친구가 귀촌을 했다. 4년 전에 따뜻한 남도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돌아보고 살 곳을 결정하겠다며 강진에서 시작했다. 4년 동안 강진에서만 두 번 정도 이사를 하더니, 그냥 강진에 눌러앉기로 하고 집까지 샀단다. 6월 셋째 주 집들이를 겸해서 강진으로 친구를 보러 갔다. 같이 일했던 다른 친구와 각자 출발해서 나주역에 우리를 태우러 온 친구와 만난 시간이 밤 10시,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나주역에서 강진 친구 집까지 가는 내내 도로에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깜깜했다. 도시를 벗어났다는 실감이 났다. 도로에서 벗어나 논길을 따라 꼬불꼬불 들어서니 집 앞으로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에 가로등 하나 덩그러니 켜져 있을 뿐 마을은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진 도암면 친구네 집>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강진에서 가까운 해남의 명소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생태관련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친구는, 강진에 내려와서도 지역에서 운영하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진에서 만난 친구들 여섯 명과 생태문화협동조합을 만들고, 강진군에서 위탁을 받아 생태문화복합공간도 만들었단다. 남편의 퇴직을 기점으로 귀촌하겠다는 계획아래 트럭운전 면허를 따고 농사학교에 등록해서 벼농사를 배우던 친구였다....
1. 강진으로 귀촌한 친구     오래전에 논술 관련 일을 할 때 만난 친구가 귀촌을 했다. 4년 전에 따뜻한 남도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돌아보고 살 곳을 결정하겠다며 강진에서 시작했다. 4년 동안 강진에서만 두 번 정도 이사를 하더니, 그냥 강진에 눌러앉기로 하고 집까지 샀단다. 6월 셋째 주 집들이를 겸해서 강진으로 친구를 보러 갔다. 같이 일했던 다른 친구와 각자 출발해서 나주역에 우리를 태우러 온 친구와 만난 시간이 밤 10시,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나주역에서 강진 친구 집까지 가는 내내 도로에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깜깜했다. 도시를 벗어났다는 실감이 났다. 도로에서 벗어나 논길을 따라 꼬불꼬불 들어서니 집 앞으로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에 가로등 하나 덩그러니 켜져 있을 뿐 마을은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진 도암면 친구네 집>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강진에서 가까운 해남의 명소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생태관련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친구는, 강진에 내려와서도 지역에서 운영하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진에서 만난 친구들 여섯 명과 생태문화협동조합을 만들고, 강진군에서 위탁을 받아 생태문화복합공간도 만들었단다. 남편의 퇴직을 기점으로 귀촌하겠다는 계획아래 트럭운전 면허를 따고 농사학교에 등록해서 벼농사를 배우던 친구였다....
기린
2024.07.08 | 조회 90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친구들이 다음 번 운동 약속을 잡자고 한다. 병원을 목요일에 쉬는 친구가 있어서 “목요일 콜?”하고 청한다. “난 안 돼. 그 날 세미나가 두 개나 있어.” “아니, 이 나이에 왠 공부?” "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지. ㅎㅎ“ 두 다리 생생할 때에 놀러 다니기도 바쁜데,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또 하느냐고 은퇴한 친구들이 핀잔을 준다. 헌데, 그 속에는 부러움도 섞여 있다. 내게 묻는다. 무슨 공부를 하는데? 서양철학하고 동양고전을 읽지. 혼자서 ? 아니! 혼자서는 못하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로 이어지는 질문들을 보면 그 들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게다. 도서관을 가기도 하는데, 나처럼 공부를 하는 게 아니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읽을 만한 것으로 이 책, 저 책 뒤지다 보면, 할 일없이 시간 때우러 온 것 같은 시선을 스스로 느끼기도 해서......   TV가 고장 났다.        은퇴 후 서너 달은 집에서 마냥 빈둥거렸다. 정년을 꽉 채운 직장생활이었고, 가족들은 그 간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지만, 내게는 무언가 모를 허탈함? 상실감? 그런 것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다. 은퇴를 말해야 하고, 바로 이어지는 질문, “어떻게 지내?”에 대답하기 마뜩찮다. 마당일을 조금 하고 나면 바로 TV를 켰다. 자세를 바꿔가며 하루 종일 채널을 돌린다. 스포츠, 유투브, 영화, BBC 다큐, CNN 방송까지 시청한다. 손흥민이 나오는 프리미어 리그는...
      친구들이 다음 번 운동 약속을 잡자고 한다. 병원을 목요일에 쉬는 친구가 있어서 “목요일 콜?”하고 청한다. “난 안 돼. 그 날 세미나가 두 개나 있어.” “아니, 이 나이에 왠 공부?” "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지. ㅎㅎ“ 두 다리 생생할 때에 놀러 다니기도 바쁜데,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또 하느냐고 은퇴한 친구들이 핀잔을 준다. 헌데, 그 속에는 부러움도 섞여 있다. 내게 묻는다. 무슨 공부를 하는데? 서양철학하고 동양고전을 읽지. 혼자서 ? 아니! 혼자서는 못하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로 이어지는 질문들을 보면 그 들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게다. 도서관을 가기도 하는데, 나처럼 공부를 하는 게 아니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읽을 만한 것으로 이 책, 저 책 뒤지다 보면, 할 일없이 시간 때우러 온 것 같은 시선을 스스로 느끼기도 해서......   TV가 고장 났다.        은퇴 후 서너 달은 집에서 마냥 빈둥거렸다. 정년을 꽉 채운 직장생활이었고, 가족들은 그 간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지만, 내게는 무언가 모를 허탈함? 상실감? 그런 것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다. 은퇴를 말해야 하고, 바로 이어지는 질문, “어떻게 지내?”에 대답하기 마뜩찮다. 마당일을 조금 하고 나면 바로 TV를 켰다. 자세를 바꿔가며 하루 종일 채널을 돌린다. 스포츠, 유투브, 영화, BBC 다큐, CNN 방송까지 시청한다. 손흥민이 나오는 프리미어 리그는...
가마솥
2024.06.30 | 조회 234
K장녀_돌봄을 말하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책이 잔뜩 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아버지 집이 있는 일산으로 간다. 그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밥과 약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이 떨어지면 약을 타오고, 같이 TV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간식을 챙기고, 장을 보고, 빨래를 돌린다. 어쩌다 함께 집 밖에 나갈 때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도 이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돌봄 4년차. 함께 한 시간만큼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지고 있다.     n분의 1 돌봄   2020년 겨울, 갑자기 닥친 부모님의 위기는 우리 형제의 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입원이 아버지의 멘탈붕괴로 이어지는 몇 달 사이에 나는 동생들과 평생 나눈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수시로 줌 회의를 열어 상황을 공유하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서로를 위로했다. 순식간에 금치산자와 같은 상태가 된 부모를 돌보는 일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를 강제 입원시키자 어머니 간병을 하러 들어갔고, 퇴원과 동시에 어머니는 낙상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사이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왔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부모 돌봄의 생애주기에 접어 들었다는 것을. 막 시작된 돌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지속가능한 돌봄의 방식, 돌봄과 일상의 균형을 잡는...
        나는 한 달에 한 번 책이 잔뜩 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아버지 집이 있는 일산으로 간다. 그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밥과 약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이 떨어지면 약을 타오고, 같이 TV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간식을 챙기고, 장을 보고, 빨래를 돌린다. 어쩌다 함께 집 밖에 나갈 때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도 이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돌봄 4년차. 함께 한 시간만큼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지고 있다.     n분의 1 돌봄   2020년 겨울, 갑자기 닥친 부모님의 위기는 우리 형제의 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입원이 아버지의 멘탈붕괴로 이어지는 몇 달 사이에 나는 동생들과 평생 나눈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수시로 줌 회의를 열어 상황을 공유하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서로를 위로했다. 순식간에 금치산자와 같은 상태가 된 부모를 돌보는 일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를 강제 입원시키자 어머니 간병을 하러 들어갔고, 퇴원과 동시에 어머니는 낙상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사이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왔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부모 돌봄의 생애주기에 접어 들었다는 것을. 막 시작된 돌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지속가능한 돌봄의 방식, 돌봄과 일상의 균형을 잡는...
요요
2024.06.28 | 조회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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