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이 날씨에 일은 무슨 일

문탁
2023-09-11 07:07
438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 일이다. 비가 올 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것으로 쉽사리 여기니 말이다. 나에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 그저 그런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올해 봄은 정말 가물었다.

접시 물에 망할 뻔

완도군에서는 주 1~2회만 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위쪽 광주 광역시도 제한 급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봄날을 열심히 보내다 ‘아 이거 좀 비가 너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다.

문득 한 농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작년에 그 농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보면 어느샌가 돌아가 있는 물꼬 때문에 미쳐 버리겠단다. 그는 ‘이대로라면 올해도 벼가 자라지도 않은 논에서 허수아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가물다고 해서 당장 내 목을 비틀어 쥐는 일은 아니니, 나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기는 것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충실한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바쁜 4월을 보내고 노동절 다음날, 한 달 동안 만든 가구를 차에 가득 실고 납품 길에 나섰다. 핸드폰 어플에는 4~6일까지 빗방울 모양이 있었지만, 이미 4월에만 3번 정도 기상청에 속은 뒤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젖으면 안 되는 비설거지만 대충 해 놓고 출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명적인 실수였다.

안동, 군위, 서울을 거쳐 가구들을 내려놓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며칠을 보냈다. 밀양 목공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종일 비가 쏟아부었다. 날림으로 만들어진 건물에 목공소가 세 들어 사는 터라, 비가 오면 자꾸 바닥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저번에 비가 들이치던 곳에서 또 물이 들어왔겠다는 생각 정도를 하면서, ‘아 또 눅눅하겠네’ 투정을 뱉으며 내려왔다. 그렇게 도착해 목공소 문을 딱 열었는데, 상상도 하지 않았던 최악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 목공소가 침수되어 목재가 젖은 모습

잠긴 목재에 생긴 얼룩으로 물이 어느 정도까지 차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닥 면적의 절반 정도가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아니 잠겨 있었다. 잠겼다고 하기에는 고여 있고, 고였다고 하기에는 물이 너무 많았다. 콘센트와 목재는 둥둥 떠 다니고, 전선도 모두 물 밑에 있었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물난리였다.

물에 잠겨 있는 전기선을 보고서는 본능적으로 고무 장화로 갈아 신었다. 작업대 위를 돌다리 건너듯 건너뛴 나는 분전함으로 가서 차단기부터 내렸다. 비는 세차게 내리는데, 전등도 켤 수 없었다. 컴컴한 작업장에서 바깥에 나가 배수로를 파 내고, 물통과 쓰레받기로 물을 퍼 내고, 축축하게 젖은 톱밥을 손으로 걷어 냈다.

목공 기계의 모터는 대개 안전성을 위해 낮은 쪽에 위치해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내 전재산인) 목공 기계들이 고장났을까봐 마음이 너무 떨렸지만, 그렇다고 흥건히 젖어 있는 기계를 켜 볼 수도 없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3일 내 쓸고 닦고 기름칠을 했다. 기계가 말랐다 싶은 것부터 하나씩 돌려 보고, 고장난 것들은 따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나서야 밀린 일을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값이 많이 나가는 기계들은 괜찮은 듯하다. 이번에야 접시 물 정도였지만, 만약 서울에서 하루 더 놀다가 왔거나, 비가 조금만 더 왔다고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스트레스로 당긴다.

먹고사는 일을 위협하는  기후

목공소 앞에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올해는 봄이 왔는데도 산의 색깔이 바뀌지 않았다. 작년 밀양에는 5월에 단 하루만 비가 온 데다가, 5월 31일에 시작된 산불이 일주일 넘게 온 산을 태웠기 때문이다. 여름의 시작에 난 대형 산불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생기가 한창 가득한 녹색 이파리들이 타면서 어마어마한 연기가 발생했고, 연기 때문에 헬기가 진입을 못해 진압이 더 늦어졌다.

그런데 올해 5월에는 1961년 기상 관측 이래 밀양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일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수로를 미리미리 청소하지 않은 내 잘못이 훨씬 크지만 어떻게든 다른 것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 난생 처음 기상청 누적 강수량 통계를 찾아본 것이다. 이틀 동안 180㎜가 넘는 비가 왔다.

이제 과거의 통념은 쓸모없어졌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쌓아 온, 기후 통계나 전통적 절기 같은 것들은 모두 옛말이 되었다. 어떤 경험치와 데이터도 없는 새로운 시대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후 위기’라고 부른다.

 

▲ 2022년 5월, 밀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5월이라 한창 물을 머금은 나무들이 불타면서 엄청난 연기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독자 제보

 

나는 시커멓게 타 버린 채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조소했다.

“좌측은 송전탑 뷰, 정면은 산불 뷰, 우측은 아파트 단지 뷰…… 여기가 밀양에서 제일 경치가 좋다!”

산불은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기후 위기 집회에 나가서 이렇게 살면 다 망한다고 외쳤지만, 사실 나의 일상에는 조금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월의 물난리를 맞이하고 난 지금, 올해 여름에는 비가 엄청 올 거라는 뉴스들을 보면 아득한 두려움이 생긴다. 목공소는 올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 것인가. 시간당 100㎜의 비가 온다면, 나도 논에 농부처럼 밤새 목공소에서 워터 펌프를 들고 허수아비처럼 서 있어야 할 것인가. 그 전에 비를 뚫고 목공소까지 도착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올해는 서울이 잠기는 일이 없을까? 도시 홍수 대책은 작년과는 달라졌을까? 한여름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을 보호할 강력한 법적 장치가 생겼는가? 예측 불가한 기후로 전세계에서 난생 처음 겪는 재난들이 일어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조차 관심들이 없다.

이미 많은 이들이 평생 살아온 삶터를 잃었다. 날씨가 악조건으로 작용할수록 사고는 많아진다. 여름에는 노동자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죽고, 겨울에는 몸이 얼고 감각이 둔해져 일하다 추락사한다. 사계절 내내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사를 짓는 외국인 노동자들, 긴급 보수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출동해 사회 유지 시설을 고치는 노동자들……. 세상을 지탱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진다. 재난에 대비할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대비할 돈이 없어서 재난을 맞는다.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물에 잠겨 버린 후에는 더 가난해진다.

산업 혁명 이후 탄소를 어마어마하게 배출하면서 인류는 줄곧 같은 기조를 유지해왔다.

‘기후? 환경? 그딴 게 내가 먹고사는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나 이제는 기후가 먹고사는 일을 정통으로 위협한다. 기후 위기가 돈벌이를 위협하고, 농부의 쌀농사를 위협하고, 목수가 지은 집을 부순다. 강릉 경포 해변의 펜션들이 산불로 한 순간에 다 타버렸다. 경제 성장도 최첨단의 기술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 이미 늦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세상은 망한 것 같다.

 

▲ 땀으로 젖은 작업복

작년 8월 한여름에 작업을 한 뒤 찍어 봤다. 물 한 방울 없이 모두 땀이다.

살아남기가 아닌, 살아 내기

세상이 망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집회에 자주 가는 편이다. 집회가 지금의 삶을 당장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래도 집회는 막막한 마음을 뚫어 주는 효과가 있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한창 열심히 하던 때에는 “핵 발전소 폐쇄하라! 송전탑을 뽑아 내자!”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그때는 망설임이 없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핵 발전소 없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해요?”

그런 질문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편하고 돈이 많이 들면, 사람이 죽어도 괜찮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던 내가, 그들과 같은 식으로 질문할 수 있다고는 생각치 못했다.

“기후 위기 그거 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먹고살기도 힘든데 기후까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되나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 별일 없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송전탑 반대 운동과 달리, 기후 위기와 관련된 집회를 나가서 항상 구호를 외치기가 껄끄러웠다. 바로 위와 같은 질문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가구 제작 의뢰가 2주만 없어도 목공소 재정은 휘청거린다. 기후 위기 구호를 외치면서도, 덜 소비하고 작게 생산하면 가난해질까 두려워 마음 한 켠이 껄끄러웠던 것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입은 상처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한쪽에서는 오히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화석 연료가 아닌 핵 발전을 계속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혼잣말을 흘린다.

‘어차피 내 생은 상처로 어그러졌으니, 너네도 다 망해 봐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별일’이 없을 가능성은 아주아주 희박하다는 것을 목공소가 작은 수해를 입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행히 기술이 많은 인간이니, 이리 틀어막고 저리 외면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 속에 오는 고통과 불안이 제일 두렵다.

목공소가 망하면 안 된다. 목공소를 유지하고 삶을 살아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은 혁명이 필요하다.

에너지원을 바꾸기 전에, 우선 에너지 수요부터 줄여야 한다. 현재의 전기 수요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려면, 땅값이 싼 곳은 모두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로 뒤덮일지 모른다.

또 서울 같은 대도시들은 해체되어야 한다. 서울이 있는 한, 서울로 전송(電送)되는 초고압 송전탑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프면 병원에 바로 접근할 수 있고, 적당한 일거리와 적당한 놀거리가 있는 작은 도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회 안전망이 튼튼히 마련돼야 한다. 일터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당연히 안전한 곳에서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쉬더라도 생계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집이 물에 잠겨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 강남이고, 밀양이고 더 많은 안전한 공공 임대 주택이 필요하다.

써 놓고 보니, 돈 버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이미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떼돈을 벌자고 목공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구가 필요한 곳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대통령도, 국회, 기업도 다들 돈놀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완전히 다른 정치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살아 내려면 싸워야 한다.

마지막에 와서 ‘싸우자’니, 독자 여러분은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차피 싸움을 혼자 할 순 없다. 즐겁게 싸우면 투쟁도 즐거운 삶이다. 적게 일하고 신나게 싸우자.

지난 5월 16일 강릉의 한 친구가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만든다기에 손을 보태러 갔다. 그 날 강릉 최고 기온이 34도였다. 5월에 34도라니.

“이 날씨에 일은 무슨 일이냐!”

댓글 7
  • 2023-09-11 10:22

    정말 발등의 불인데
    산불에 지진에 폭염에 폭우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저는 참 심란하네요 ㅠ
    재생에너지가격이 더 비싼 나라는 전세계에서 4% 밖에 안된다는데 한국이 거기에 속한다고 하니 그것도 심란하고
    뭐라도 하긴 해야겠죠

  • 2023-09-11 12:29

    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내기 라는 표현이 맞는 말이네!! 이번 글도 속쓰리게 읽었습니다...

  • 2023-09-11 15:09

    '별일' 속에서 살아내기, 어진의 일을 읽으며 나는 어떤 일을 '별일'이라고 여기는가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3-09-11 18:15

    서울 같은 대도시는 해체되어야 한다는 어진사람의 어진 글을 보면, 용인도 별 다를 게 없어보인다. 인구 100만 특례시에서 공부하는 문탁은 어떨까? 문제는 삶의 속도가 아닐까? 이 날씨에 공부는 무슨 공부냐! 어진사람의 어진 글을 읽으니 어지럽네요. ㅎㅎ 늘 잘 읽고 있습니다.

  • 2023-09-11 21:52

    밀양가면 어진이의 목공소도 꼭 가보고 싶다!

  • 2023-09-12 12:47

    작업복.....너무 두껍네. 여름용은 없남? 얇으면 보호가 안되서 ?
    목공소에는 누전 차단기를 좀 민감한 것으로 달아야 하겠네..... 바닥에 물이 흥건한데, 차단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정격감도전류가 높은가벼 ~~~
    정격감도전류 15 mA 이하, 동작시간 0.03초 정도?

  • 2023-09-13 13:15

    읽고 잠시 머물다 갑니다..
    글 고맙습니다

기린의 걷다보면
1. 강진으로 귀촌한 친구     오래전에 논술 관련 일을 할 때 만난 친구가 귀촌을 했다. 4년 전에 따뜻한 남도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돌아보고 살 곳을 결정하겠다며 강진에서 시작했다. 4년 동안 강진에서만 두 번 정도 이사를 하더니, 그냥 강진에 눌러앉기로 하고 집까지 샀단다. 6월 셋째 주 집들이를 겸해서 강진으로 친구를 보러 갔다. 같이 일했던 다른 친구와 각자 출발해서 나주역에 우리를 태우러 온 친구와 만난 시간이 밤 10시,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나주역에서 강진 친구 집까지 가는 내내 도로에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깜깜했다. 도시를 벗어났다는 실감이 났다. 도로에서 벗어나 논길을 따라 꼬불꼬불 들어서니 집 앞으로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에 가로등 하나 덩그러니 켜져 있을 뿐 마을은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진 도암면 친구네 집>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강진에서 가까운 해남의 명소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생태관련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친구는, 강진에 내려와서도 지역에서 운영하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진에서 만난 친구들 여섯 명과 생태문화협동조합을 만들고, 강진군에서 위탁을 받아 생태문화복합공간도 만들었단다. 남편의 퇴직을 기점으로 귀촌하겠다는 계획아래 트럭운전 면허를 따고 농사학교에 등록해서 벼농사를 배우던 친구였다....
1. 강진으로 귀촌한 친구     오래전에 논술 관련 일을 할 때 만난 친구가 귀촌을 했다. 4년 전에 따뜻한 남도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돌아보고 살 곳을 결정하겠다며 강진에서 시작했다. 4년 동안 강진에서만 두 번 정도 이사를 하더니, 그냥 강진에 눌러앉기로 하고 집까지 샀단다. 6월 셋째 주 집들이를 겸해서 강진으로 친구를 보러 갔다. 같이 일했던 다른 친구와 각자 출발해서 나주역에 우리를 태우러 온 친구와 만난 시간이 밤 10시,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나주역에서 강진 친구 집까지 가는 내내 도로에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깜깜했다. 도시를 벗어났다는 실감이 났다. 도로에서 벗어나 논길을 따라 꼬불꼬불 들어서니 집 앞으로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져 있었다. 집 앞에 가로등 하나 덩그러니 켜져 있을 뿐 마을은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강진 도암면 친구네 집>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강진에서 가까운 해남의 명소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생태관련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친구는, 강진에 내려와서도 지역에서 운영하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진에서 만난 친구들 여섯 명과 생태문화협동조합을 만들고, 강진군에서 위탁을 받아 생태문화복합공간도 만들었단다. 남편의 퇴직을 기점으로 귀촌하겠다는 계획아래 트럭운전 면허를 따고 농사학교에 등록해서 벼농사를 배우던 친구였다....
기린
2024.07.08 | 조회 83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친구들이 다음 번 운동 약속을 잡자고 한다. 병원을 목요일에 쉬는 친구가 있어서 “목요일 콜?”하고 청한다. “난 안 돼. 그 날 세미나가 두 개나 있어.” “아니, 이 나이에 왠 공부?” "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지. ㅎㅎ“ 두 다리 생생할 때에 놀러 다니기도 바쁜데,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또 하느냐고 은퇴한 친구들이 핀잔을 준다. 헌데, 그 속에는 부러움도 섞여 있다. 내게 묻는다. 무슨 공부를 하는데? 서양철학하고 동양고전을 읽지. 혼자서 ? 아니! 혼자서는 못하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로 이어지는 질문들을 보면 그 들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게다. 도서관을 가기도 하는데, 나처럼 공부를 하는 게 아니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읽을 만한 것으로 이 책, 저 책 뒤지다 보면, 할 일없이 시간 때우러 온 것 같은 시선을 스스로 느끼기도 해서......   TV가 고장 났다.        은퇴 후 서너 달은 집에서 마냥 빈둥거렸다. 정년을 꽉 채운 직장생활이었고, 가족들은 그 간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지만, 내게는 무언가 모를 허탈함? 상실감? 그런 것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다. 은퇴를 말해야 하고, 바로 이어지는 질문, “어떻게 지내?”에 대답하기 마뜩찮다. 마당일을 조금 하고 나면 바로 TV를 켰다. 자세를 바꿔가며 하루 종일 채널을 돌린다. 스포츠, 유투브, 영화, BBC 다큐, CNN 방송까지 시청한다. 손흥민이 나오는 프리미어 리그는...
      친구들이 다음 번 운동 약속을 잡자고 한다. 병원을 목요일에 쉬는 친구가 있어서 “목요일 콜?”하고 청한다. “난 안 돼. 그 날 세미나가 두 개나 있어.” “아니, 이 나이에 왠 공부?” "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지. ㅎㅎ“ 두 다리 생생할 때에 놀러 다니기도 바쁜데,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또 하느냐고 은퇴한 친구들이 핀잔을 준다. 헌데, 그 속에는 부러움도 섞여 있다. 내게 묻는다. 무슨 공부를 하는데? 서양철학하고 동양고전을 읽지. 혼자서 ? 아니! 혼자서는 못하지. 그럼,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로 이어지는 질문들을 보면 그 들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게다. 도서관을 가기도 하는데, 나처럼 공부를 하는 게 아니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읽을 만한 것으로 이 책, 저 책 뒤지다 보면, 할 일없이 시간 때우러 온 것 같은 시선을 스스로 느끼기도 해서......   TV가 고장 났다.        은퇴 후 서너 달은 집에서 마냥 빈둥거렸다. 정년을 꽉 채운 직장생활이었고, 가족들은 그 간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축하 파티를 열어 주었지만, 내게는 무언가 모를 허탈함? 상실감? 그런 것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다. 은퇴를 말해야 하고, 바로 이어지는 질문, “어떻게 지내?”에 대답하기 마뜩찮다. 마당일을 조금 하고 나면 바로 TV를 켰다. 자세를 바꿔가며 하루 종일 채널을 돌린다. 스포츠, 유투브, 영화, BBC 다큐, CNN 방송까지 시청한다. 손흥민이 나오는 프리미어 리그는...
가마솥
2024.06.30 | 조회 229
K장녀_돌봄을 말하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책이 잔뜩 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아버지 집이 있는 일산으로 간다. 그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밥과 약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이 떨어지면 약을 타오고, 같이 TV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간식을 챙기고, 장을 보고, 빨래를 돌린다. 어쩌다 함께 집 밖에 나갈 때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도 이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돌봄 4년차. 함께 한 시간만큼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지고 있다.     n분의 1 돌봄   2020년 겨울, 갑자기 닥친 부모님의 위기는 우리 형제의 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입원이 아버지의 멘탈붕괴로 이어지는 몇 달 사이에 나는 동생들과 평생 나눈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수시로 줌 회의를 열어 상황을 공유하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서로를 위로했다. 순식간에 금치산자와 같은 상태가 된 부모를 돌보는 일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를 강제 입원시키자 어머니 간병을 하러 들어갔고, 퇴원과 동시에 어머니는 낙상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사이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왔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부모 돌봄의 생애주기에 접어 들었다는 것을. 막 시작된 돌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지속가능한 돌봄의 방식, 돌봄과 일상의 균형을 잡는...
        나는 한 달에 한 번 책이 잔뜩 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아버지 집이 있는 일산으로 간다. 그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밥과 약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약이 떨어지면 약을 타오고, 같이 TV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간식을 챙기고, 장을 보고, 빨래를 돌린다. 어쩌다 함께 집 밖에 나갈 때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도 이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돌봄 4년차. 함께 한 시간만큼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지고 있다.     n분의 1 돌봄   2020년 겨울, 갑자기 닥친 부모님의 위기는 우리 형제의 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입원이 아버지의 멘탈붕괴로 이어지는 몇 달 사이에 나는 동생들과 평생 나눈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수시로 줌 회의를 열어 상황을 공유하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서로를 위로했다. 순식간에 금치산자와 같은 상태가 된 부모를 돌보는 일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를 강제 입원시키자 어머니 간병을 하러 들어갔고, 퇴원과 동시에 어머니는 낙상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사이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왔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부모 돌봄의 생애주기에 접어 들었다는 것을. 막 시작된 돌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지속가능한 돌봄의 방식, 돌봄과 일상의 균형을 잡는...
요요
2024.06.28 | 조회 246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14년 1월 16일 나는 ‘밀양햇빛버스’를 타고 밀양에 처음 가보았다. 그리고 2024년 6월 8일 ‘밀양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시 방문했다. 그 10년 동안 나는 불을 열심히 끄고 다녔다. 불을 끄고 전기를 아껴 쓰는 것 외에 딱히 내가 ‘에너지 부정의’에 연대할 게 없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것이나마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집은 물론이고, 내가 지나치는 곳, 머무는 곳, 어디든 햇빛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데 전등이 켜있으면 여지없이 전기sw를 끈다. 이제 나의 눈은 어둠에서도 사물을 아주 잘 인식하는 ‘밝광눈’(빛을 잘 찾는 눈)이 되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여전히, 아직도       10년 전에도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흘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왜 전기는 눈물을 먹고 흐를 수밖에 없는가? 이 문제의 핵심은 ‘수요지와 발전지의 거리 간극’ 때문이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곳에서 전기를 많이 발전하면’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느그 여 전기 갖다 쓰느라고 우리 집 앞에다가 말뚝 박아 놨구나”란 밀양 할매들의 말씀이 정답이다. 전기는 주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과 주요 산업단지에서 가장 많이 쓰는데, 발전은 수요지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에서 주로 이뤄지기에 전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전기는 도중에 손실이 많이 생긴다. 이를 최소한으로 하려면 전기저항을 낮춰야 한다. 전선을 굵게 하거나 전압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전선을 굵게...
    2014년 1월 16일 나는 ‘밀양햇빛버스’를 타고 밀양에 처음 가보았다. 그리고 2024년 6월 8일 ‘밀양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시 방문했다. 그 10년 동안 나는 불을 열심히 끄고 다녔다. 불을 끄고 전기를 아껴 쓰는 것 외에 딱히 내가 ‘에너지 부정의’에 연대할 게 없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것이나마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집은 물론이고, 내가 지나치는 곳, 머무는 곳, 어디든 햇빛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데 전등이 켜있으면 여지없이 전기sw를 끈다. 이제 나의 눈은 어둠에서도 사물을 아주 잘 인식하는 ‘밝광눈’(빛을 잘 찾는 눈)이 되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여전히, 아직도       10년 전에도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흘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왜 전기는 눈물을 먹고 흐를 수밖에 없는가? 이 문제의 핵심은 ‘수요지와 발전지의 거리 간극’ 때문이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곳에서 전기를 많이 발전하면’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느그 여 전기 갖다 쓰느라고 우리 집 앞에다가 말뚝 박아 놨구나”란 밀양 할매들의 말씀이 정답이다. 전기는 주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과 주요 산업단지에서 가장 많이 쓰는데, 발전은 수요지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에서 주로 이뤄지기에 전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전기는 도중에 손실이 많이 생긴다. 이를 최소한으로 하려면 전기저항을 낮춰야 한다. 전선을 굵게 하거나 전압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전선을 굵게...
김윤경~단순삶
2024.06.20 | 조회 293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엄마네 집, 딸네 집   지금 사는 집을 지은 건 14년 전이다. 집을 지은 가장 큰 이유가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이미 은퇴도 하셨고 연세도 있으셔서 곧 우리와 살게 될 것이라고, 아니 내가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식물 가꾸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해 조용한 전원주택을 선택했고, 설계도 아래층은 부모님을 위한 공간으로, 위층은 우리들 공간으로 만들었다. 두 분은 집을 지을 때는 그렇게 관심을 보이시고 아빠는 상량문까지 직접 붓글씨로 써주시더니, 막상 집이 다 완성되어 같이 살자고 하니 고개를 저으셨다. 3~4년을 조르다가 아직 두 분이 살만하시니까 그러시는 거라고, 아직 건강하셔서 그런 거니까 오히려 다행이라며 일단 우리 생각을 접었다. 우리집을 참 좋아하셨던 아빠는 가끔씩 집에 오시면 바깥 데크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시다가 주변 숲과 나무들을 돌아보시며 흐뭇한 표정을 짓곤 하셨는데,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한 달 정도를 우리집에서 지내셨을 뿐이다.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엄마 아빠는 우리집으로 오는 대신 당신들의 집을 지으셨다. 엄마네 집은 원래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다. 동네가 개발지구가 되면서 집이 수용되었고 대토를 받았는데 그 땅에 집을 지은 것이다. 힘들게 집을 왜 짓느냐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아빠가 대장암 수술로 병원을 들락거릴 때였는데도 기어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부터 집짓는 과정의 모든 의사결정을 엄마가 다 했고, 병원에서 폰뱅킹으로 비용을 지불해가며 그렇게...
    엄마네 집, 딸네 집   지금 사는 집을 지은 건 14년 전이다. 집을 지은 가장 큰 이유가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이미 은퇴도 하셨고 연세도 있으셔서 곧 우리와 살게 될 것이라고, 아니 내가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식물 가꾸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해 조용한 전원주택을 선택했고, 설계도 아래층은 부모님을 위한 공간으로, 위층은 우리들 공간으로 만들었다. 두 분은 집을 지을 때는 그렇게 관심을 보이시고 아빠는 상량문까지 직접 붓글씨로 써주시더니, 막상 집이 다 완성되어 같이 살자고 하니 고개를 저으셨다. 3~4년을 조르다가 아직 두 분이 살만하시니까 그러시는 거라고, 아직 건강하셔서 그런 거니까 오히려 다행이라며 일단 우리 생각을 접었다. 우리집을 참 좋아하셨던 아빠는 가끔씩 집에 오시면 바깥 데크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시다가 주변 숲과 나무들을 돌아보시며 흐뭇한 표정을 짓곤 하셨는데,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한 달 정도를 우리집에서 지내셨을 뿐이다.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엄마 아빠는 우리집으로 오는 대신 당신들의 집을 지으셨다. 엄마네 집은 원래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다. 동네가 개발지구가 되면서 집이 수용되었고 대토를 받았는데 그 땅에 집을 지은 것이다. 힘들게 집을 왜 짓느냐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아빠가 대장암 수술로 병원을 들락거릴 때였는데도 기어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부터 집짓는 과정의 모든 의사결정을 엄마가 다 했고, 병원에서 폰뱅킹으로 비용을 지불해가며 그렇게...
인디언
2024.06.10 | 조회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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