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이 날씨에 일은 무슨 일

문탁
2023-09-11 07:07
158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 일이다. 비가 올 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것으로 쉽사리 여기니 말이다. 나에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 그저 그런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올해 봄은 정말 가물었다.

접시 물에 망할 뻔

완도군에서는 주 1~2회만 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위쪽 광주 광역시도 제한 급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봄날을 열심히 보내다 ‘아 이거 좀 비가 너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다.

문득 한 농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작년에 그 농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보면 어느샌가 돌아가 있는 물꼬 때문에 미쳐 버리겠단다. 그는 ‘이대로라면 올해도 벼가 자라지도 않은 논에서 허수아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가물다고 해서 당장 내 목을 비틀어 쥐는 일은 아니니, 나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기는 것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충실한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바쁜 4월을 보내고 노동절 다음날, 한 달 동안 만든 가구를 차에 가득 실고 납품 길에 나섰다. 핸드폰 어플에는 4~6일까지 빗방울 모양이 있었지만, 이미 4월에만 3번 정도 기상청에 속은 뒤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젖으면 안 되는 비설거지만 대충 해 놓고 출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명적인 실수였다.

안동, 군위, 서울을 거쳐 가구들을 내려놓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며칠을 보냈다. 밀양 목공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종일 비가 쏟아부었다. 날림으로 만들어진 건물에 목공소가 세 들어 사는 터라, 비가 오면 자꾸 바닥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저번에 비가 들이치던 곳에서 또 물이 들어왔겠다는 생각 정도를 하면서, ‘아 또 눅눅하겠네’ 투정을 뱉으며 내려왔다. 그렇게 도착해 목공소 문을 딱 열었는데, 상상도 하지 않았던 최악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 목공소가 침수되어 목재가 젖은 모습

잠긴 목재에 생긴 얼룩으로 물이 어느 정도까지 차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닥 면적의 절반 정도가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아니 잠겨 있었다. 잠겼다고 하기에는 고여 있고, 고였다고 하기에는 물이 너무 많았다. 콘센트와 목재는 둥둥 떠 다니고, 전선도 모두 물 밑에 있었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물난리였다.

물에 잠겨 있는 전기선을 보고서는 본능적으로 고무 장화로 갈아 신었다. 작업대 위를 돌다리 건너듯 건너뛴 나는 분전함으로 가서 차단기부터 내렸다. 비는 세차게 내리는데, 전등도 켤 수 없었다. 컴컴한 작업장에서 바깥에 나가 배수로를 파 내고, 물통과 쓰레받기로 물을 퍼 내고, 축축하게 젖은 톱밥을 손으로 걷어 냈다.

목공 기계의 모터는 대개 안전성을 위해 낮은 쪽에 위치해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내 전재산인) 목공 기계들이 고장났을까봐 마음이 너무 떨렸지만, 그렇다고 흥건히 젖어 있는 기계를 켜 볼 수도 없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3일 내 쓸고 닦고 기름칠을 했다. 기계가 말랐다 싶은 것부터 하나씩 돌려 보고, 고장난 것들은 따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나서야 밀린 일을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값이 많이 나가는 기계들은 괜찮은 듯하다. 이번에야 접시 물 정도였지만, 만약 서울에서 하루 더 놀다가 왔거나, 비가 조금만 더 왔다고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스트레스로 당긴다.

먹고사는 일을 위협하는  기후

목공소 앞에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올해는 봄이 왔는데도 산의 색깔이 바뀌지 않았다. 작년 밀양에는 5월에 단 하루만 비가 온 데다가, 5월 31일에 시작된 산불이 일주일 넘게 온 산을 태웠기 때문이다. 여름의 시작에 난 대형 산불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생기가 한창 가득한 녹색 이파리들이 타면서 어마어마한 연기가 발생했고, 연기 때문에 헬기가 진입을 못해 진압이 더 늦어졌다.

그런데 올해 5월에는 1961년 기상 관측 이래 밀양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일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수로를 미리미리 청소하지 않은 내 잘못이 훨씬 크지만 어떻게든 다른 것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어, 난생 처음 기상청 누적 강수량 통계를 찾아본 것이다. 이틀 동안 180㎜가 넘는 비가 왔다.

이제 과거의 통념은 쓸모없어졌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쌓아 온, 기후 통계나 전통적 절기 같은 것들은 모두 옛말이 되었다. 어떤 경험치와 데이터도 없는 새로운 시대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후 위기’라고 부른다.

 

▲ 2022년 5월, 밀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5월이라 한창 물을 머금은 나무들이 불타면서 엄청난 연기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독자 제보

 

나는 시커멓게 타 버린 채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조소했다.

“좌측은 송전탑 뷰, 정면은 산불 뷰, 우측은 아파트 단지 뷰…… 여기가 밀양에서 제일 경치가 좋다!”

산불은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기후 위기 집회에 나가서 이렇게 살면 다 망한다고 외쳤지만, 사실 나의 일상에는 조금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월의 물난리를 맞이하고 난 지금, 올해 여름에는 비가 엄청 올 거라는 뉴스들을 보면 아득한 두려움이 생긴다. 목공소는 올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 것인가. 시간당 100㎜의 비가 온다면, 나도 논에 농부처럼 밤새 목공소에서 워터 펌프를 들고 허수아비처럼 서 있어야 할 것인가. 그 전에 비를 뚫고 목공소까지 도착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올해는 서울이 잠기는 일이 없을까? 도시 홍수 대책은 작년과는 달라졌을까? 한여름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을 보호할 강력한 법적 장치가 생겼는가? 예측 불가한 기후로 전세계에서 난생 처음 겪는 재난들이 일어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조차 관심들이 없다.

이미 많은 이들이 평생 살아온 삶터를 잃었다. 날씨가 악조건으로 작용할수록 사고는 많아진다. 여름에는 노동자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죽고, 겨울에는 몸이 얼고 감각이 둔해져 일하다 추락사한다. 사계절 내내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사를 짓는 외국인 노동자들, 긴급 보수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출동해 사회 유지 시설을 고치는 노동자들……. 세상을 지탱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진다. 재난에 대비할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대비할 돈이 없어서 재난을 맞는다.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물에 잠겨 버린 후에는 더 가난해진다.

산업 혁명 이후 탄소를 어마어마하게 배출하면서 인류는 줄곧 같은 기조를 유지해왔다.

‘기후? 환경? 그딴 게 내가 먹고사는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나 이제는 기후가 먹고사는 일을 정통으로 위협한다. 기후 위기가 돈벌이를 위협하고, 농부의 쌀농사를 위협하고, 목수가 지은 집을 부순다. 강릉 경포 해변의 펜션들이 산불로 한 순간에 다 타버렸다. 경제 성장도 최첨단의 기술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 이미 늦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세상은 망한 것 같다.

 

▲ 땀으로 젖은 작업복

작년 8월 한여름에 작업을 한 뒤 찍어 봤다. 물 한 방울 없이 모두 땀이다.

살아남기가 아닌, 살아 내기

세상이 망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집회에 자주 가는 편이다. 집회가 지금의 삶을 당장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래도 집회는 막막한 마음을 뚫어 주는 효과가 있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한창 열심히 하던 때에는 “핵 발전소 폐쇄하라! 송전탑을 뽑아 내자!”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그때는 망설임이 없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핵 발전소 없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해요?”

그런 질문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편하고 돈이 많이 들면, 사람이 죽어도 괜찮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던 내가, 그들과 같은 식으로 질문할 수 있다고는 생각치 못했다.

“기후 위기 그거 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먹고살기도 힘든데 기후까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되나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 별일 없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송전탑 반대 운동과 달리, 기후 위기와 관련된 집회를 나가서 항상 구호를 외치기가 껄끄러웠다. 바로 위와 같은 질문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가구 제작 의뢰가 2주만 없어도 목공소 재정은 휘청거린다. 기후 위기 구호를 외치면서도, 덜 소비하고 작게 생산하면 가난해질까 두려워 마음 한 켠이 껄끄러웠던 것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입은 상처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한쪽에서는 오히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화석 연료가 아닌 핵 발전을 계속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혼잣말을 흘린다.

‘어차피 내 생은 상처로 어그러졌으니, 너네도 다 망해 봐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별일’이 없을 가능성은 아주아주 희박하다는 것을 목공소가 작은 수해를 입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행히 기술이 많은 인간이니, 이리 틀어막고 저리 외면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 속에 오는 고통과 불안이 제일 두렵다.

목공소가 망하면 안 된다. 목공소를 유지하고 삶을 살아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은 혁명이 필요하다.

에너지원을 바꾸기 전에, 우선 에너지 수요부터 줄여야 한다. 현재의 전기 수요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려면, 땅값이 싼 곳은 모두 태양광과 풍력 발전기로 뒤덮일지 모른다.

또 서울 같은 대도시들은 해체되어야 한다. 서울이 있는 한, 서울로 전송(電送)되는 초고압 송전탑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프면 병원에 바로 접근할 수 있고, 적당한 일거리와 적당한 놀거리가 있는 작은 도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회 안전망이 튼튼히 마련돼야 한다. 일터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당연히 안전한 곳에서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쉬더라도 생계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집이 물에 잠겨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 강남이고, 밀양이고 더 많은 안전한 공공 임대 주택이 필요하다.

써 놓고 보니, 돈 버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이미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떼돈을 벌자고 목공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구가 필요한 곳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대통령도, 국회, 기업도 다들 돈놀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완전히 다른 정치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살아 내려면 싸워야 한다.

마지막에 와서 ‘싸우자’니, 독자 여러분은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차피 싸움을 혼자 할 순 없다. 즐겁게 싸우면 투쟁도 즐거운 삶이다. 적게 일하고 신나게 싸우자.

지난 5월 16일 강릉의 한 친구가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만든다기에 손을 보태러 갔다. 그 날 강릉 최고 기온이 34도였다. 5월에 34도라니.

“이 날씨에 일은 무슨 일이냐!”

댓글 7
  • 2023-09-11 10:22

    정말 발등의 불인데
    산불에 지진에 폭염에 폭우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저는 참 심란하네요 ㅠ
    재생에너지가격이 더 비싼 나라는 전세계에서 4% 밖에 안된다는데 한국이 거기에 속한다고 하니 그것도 심란하고
    뭐라도 하긴 해야겠죠

  • 2023-09-11 12:29

    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내기 라는 표현이 맞는 말이네!! 이번 글도 속쓰리게 읽었습니다...

  • 2023-09-11 15:09

    '별일' 속에서 살아내기, 어진의 일을 읽으며 나는 어떤 일을 '별일'이라고 여기는가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3-09-11 18:15

    서울 같은 대도시는 해체되어야 한다는 어진사람의 어진 글을 보면, 용인도 별 다를 게 없어보인다. 인구 100만 특례시에서 공부하는 문탁은 어떨까? 문제는 삶의 속도가 아닐까? 이 날씨에 공부는 무슨 공부냐! 어진사람의 어진 글을 읽으니 어지럽네요. ㅎㅎ 늘 잘 읽고 있습니다.

  • 2023-09-11 21:52

    밀양가면 어진이의 목공소도 꼭 가보고 싶다!

  • 2023-09-12 12:47

    작업복.....너무 두껍네. 여름용은 없남? 얇으면 보호가 안되서 ?
    목공소에는 누전 차단기를 좀 민감한 것으로 달아야 하겠네..... 바닥에 물이 흥건한데, 차단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정격감도전류가 높은가벼 ~~~
    정격감도전류 15 mA 이하, 동작시간 0.03초 정도?

  • 2023-09-13 13:15

    읽고 잠시 머물다 갑니다..
    글 고맙습니다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비질(vigil), 기어코 응시하기     도축장 가는 길   도축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캘린더에는 '비질(vigil)1) 모임, 9:30, 오산역' 이라고 적혀있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하는 인간들로 꽉 찬 지하철에 탑승했다.   몸을 비집고 들어가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섰다. 한참을 가야 해서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은 금방 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자고 있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 태연한 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못마땅했다. 벌써부터 피곤하고 짜증이 올라와 눈을 감고 숨을 깊게 쉬었다. 같은 시간 트럭에 실려오고 있을 돼지들이 떠올랐다. 몇 시간 후면 만나게 될 존재들, 오늘 보고 다시는 못 볼 존재들이었다. 출근길 지하철 인파에 섞여 나는 도축장에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지 못해 피곤하고 짜증이 올라오는 상태로 나는 죽기 전의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낯설고 기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역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비질 모임을 주최한 사이 님2),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 개별적으로 비질을 신청한 사람들이 모였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 님3)도 나중에 합류했다. 각자 챙겨온 준비물을 점검했다. 돼지들에게 물을 주기 위한 페트병과 물 분사기, 찐 감자와 고구마를 꺼냈다. 물 조절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페트병 뚜껑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어 약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비질(vigil), 기어코 응시하기     도축장 가는 길   도축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캘린더에는 '비질(vigil)1) 모임, 9:30, 오산역' 이라고 적혀있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하는 인간들로 꽉 찬 지하철에 탑승했다.   몸을 비집고 들어가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섰다. 한참을 가야 해서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은 금방 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자고 있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 태연한 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못마땅했다. 벌써부터 피곤하고 짜증이 올라와 눈을 감고 숨을 깊게 쉬었다. 같은 시간 트럭에 실려오고 있을 돼지들이 떠올랐다. 몇 시간 후면 만나게 될 존재들, 오늘 보고 다시는 못 볼 존재들이었다. 출근길 지하철 인파에 섞여 나는 도축장에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지 못해 피곤하고 짜증이 올라오는 상태로 나는 죽기 전의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낯설고 기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역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비질 모임을 주최한 사이 님2),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 개별적으로 비질을 신청한 사람들이 모였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 님3)도 나중에 합류했다. 각자 챙겨온 준비물을 점검했다. 돼지들에게 물을 주기 위한 페트병과 물 분사기, 찐 감자와 고구마를 꺼냈다. 물 조절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페트병 뚜껑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어 약간...
경덕 2023.09.22 조회 27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현민 2023.09.19 조회 188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 일이다. 비가 올 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것으로 쉽사리 여기니 말이다. 나에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 그저 그런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올해 봄은 정말 가물었다. ​ ​ ​ 접시 물에 망할 뻔 ​ 완도군에서는 주 1~2회만 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위쪽 광주 광역시도 제한 급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봄날을 열심히 보내다 ‘아 이거 좀 비가 너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다. 문득 한 농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작년에 그 농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보면 어느샌가 돌아가 있는 물꼬 때문에 미쳐 버리겠단다. 그는 ‘이대로라면 올해도 벼가 자라지도 않은 논에서 허수아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날이 가물다고 해서 당장 내 목을 비틀어 쥐는 일은 아니니, 나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기는 것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충실한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 일이다. 비가 올 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것으로 쉽사리 여기니 말이다. 나에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 그저 그런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올해 봄은 정말 가물었다. ​ ​ ​ 접시 물에 망할 뻔 ​ 완도군에서는 주 1~2회만 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위쪽 광주 광역시도 제한 급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봄날을 열심히 보내다 ‘아 이거 좀 비가 너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다. 문득 한 농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작년에 그 농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보면 어느샌가 돌아가 있는 물꼬 때문에 미쳐 버리겠단다. 그는 ‘이대로라면 올해도 벼가 자라지도 않은 논에서 허수아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날이 가물다고 해서 당장 내 목을 비틀어 쥐는 일은 아니니, 나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기는 것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충실한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문탁 2023.09.11 조회 15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 한 여름 걷기의 맛     8월 내내 둘레길을 걸을 엄두가 안 나는 무더위가 계속 되었다. 근데 올해 여름이 제일 시원할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그래도 누가 같이 걷자고 하면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서 경기옛길 영남길 4코스도 걸었고, 서울 둘레길 1코스도 걸을 수 있었다.  이 코스들은 모두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코스였다. 영남길 4코스는 용인 동백 호수 공원에서 석성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고, 서울 둘레길은 수락산 둘레를 걸었다. 그래서 한 여름이라도 숲 속을 통과하는 길이라 정수리로 내리꽂는 땡볕은 피할 수 있었다.    석성산 코스는 정임합목 하우스와 함께 걸었다. 471 미터 고지정도 되지만 동백동쪽 등산로는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경사면의 암벽 길까지 타고 올라야 하는 코스였다. 매일 새벽 아파트 뒤로 난 석성산 산책로를 걷는다는 두 사람은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초입부터 숨이 가팠다. 헉헉대며 올라가자니 온 몸으로 땀이 차올랐다. 뒤처지는 나를 기다려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정상에 올라서니 윗도리가 땀으로 흥건했다. 정상에 얼음이 동동 뜨는 막걸리를 파는 미니 주점이 있었다. 반색하는 나를 보고 무사님이 한 잔 사주었다. 얼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뒷덜미가 시원해졌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 한 여름 걷기의 맛     8월 내내 둘레길을 걸을 엄두가 안 나는 무더위가 계속 되었다. 근데 올해 여름이 제일 시원할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그래도 누가 같이 걷자고 하면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서 경기옛길 영남길 4코스도 걸었고, 서울 둘레길 1코스도 걸을 수 있었다.  이 코스들은 모두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코스였다. 영남길 4코스는 용인 동백 호수 공원에서 석성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고, 서울 둘레길은 수락산 둘레를 걸었다. 그래서 한 여름이라도 숲 속을 통과하는 길이라 정수리로 내리꽂는 땡볕은 피할 수 있었다.    석성산 코스는 정임합목 하우스와 함께 걸었다. 471 미터 고지정도 되지만 동백동쪽 등산로는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경사면의 암벽 길까지 타고 올라야 하는 코스였다. 매일 새벽 아파트 뒤로 난 석성산 산책로를 걷는다는 두 사람은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초입부터 숨이 가팠다. 헉헉대며 올라가자니 온 몸으로 땀이 차올랐다. 뒤처지는 나를 기다려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정상에 올라서니 윗도리가 땀으로 흥건했다. 정상에 얼음이 동동 뜨는 막걸리를 파는 미니 주점이 있었다. 반색하는 나를 보고 무사님이 한 잔 사주었다. 얼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뒷덜미가 시원해졌다....
기린 2023.09.07 조회 224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무사 2023.08.31 조회 301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조은 2023.08.26 조회 223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난잡한 돼지'들'     돌봄, 중단   지난 한 달 동안 돼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돌봄 1주년을 앞두고 나는 무모 님에게 7월 돌봄을 쉬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7월에 많은 일이 몰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초에 나는 문탁네트워크 안팎으로 여러 세미나를 신청했고 소개에도 적었다시피 '난잡한 공부'를 '체질'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한 해를 시작했다. 몇몇 샘들의 응원, 격려, 경악, 걱정이 이어졌고, 문탁샘은 "경덕...2023은 빡세게 공부하는 해? 주역에 불교로 기본기를 다지고 양생프로젝트 당대철학으로 문제의식을 벼리고...아주 좋네, 좋아!!! (그런데 너, 연말에 가랑이 찢어지겠다. 크하하핫)" 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그런데 상반기를 결산하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던가..?) 어떻게든 잘 수습하기 위해 발표가 몰린 7월에는 돌봄을 쉬고 일을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상반기 공부를 마무리했다. (찢어진 나의 가랑이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 번씩 밴드에 올라오는 일지로 돼지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더위가 극심할 때는 대형 얼음을 주문해서 진흙탕 옆에 두거나 조각 얼음을 간식으로 주기도 했다. "새벽, 잔디에게 큰 얼음을 배달받아서 줬어요. 새벽이는 좋아하는데 잔디는...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난잡한 돼지'들'     돌봄, 중단   지난 한 달 동안 돼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돌봄 1주년을 앞두고 나는 무모 님에게 7월 돌봄을 쉬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7월에 많은 일이 몰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초에 나는 문탁네트워크 안팎으로 여러 세미나를 신청했고 소개에도 적었다시피 '난잡한 공부'를 '체질'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한 해를 시작했다. 몇몇 샘들의 응원, 격려, 경악, 걱정이 이어졌고, 문탁샘은 "경덕...2023은 빡세게 공부하는 해? 주역에 불교로 기본기를 다지고 양생프로젝트 당대철학으로 문제의식을 벼리고...아주 좋네, 좋아!!! (그런데 너, 연말에 가랑이 찢어지겠다. 크하하핫)" 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그런데 상반기를 결산하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던가..?) 어떻게든 잘 수습하기 위해 발표가 몰린 7월에는 돌봄을 쉬고 일을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상반기 공부를 마무리했다. (찢어진 나의 가랑이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 번씩 밴드에 올라오는 일지로 돼지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더위가 극심할 때는 대형 얼음을 주문해서 진흙탕 옆에 두거나 조각 얼음을 간식으로 주기도 했다. "새벽, 잔디에게 큰 얼음을 배달받아서 줬어요. 새벽이는 좋아하는데 잔디는...
경덕 2023.08.22 조회 220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현민 2023.08.18 조회 284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문탁 2023.08.10 조회 181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2023.08.06 조회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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