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만나다

기린
2023-06-05 22:08
360

'전전긍긍' 하는 마음을 만나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꽃구경 가는 마음으로

 

 

  5월, 걷기도 좋은 날씨에 만발하는 꽃들에 눈까지 즐거운 철이다. 동네에도 야산에도 눈길이 가는 곳마다 꽃들이 피어 있다. 꽃 보는 즐거움까지 누리며 걷기 좋은 길을 찾다가 경기옛길 평해길 3코스로 정했다. 이 코스는 남한강 자전거길과도 겹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걸을 수도 있다. 팔당역에서 시작해 운길산역이 종점이라 교통도 편리하다. 이번에는 운길산역에서 시작해 팔당역으로 걷기로 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운길산역에 내리니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를 바라볼 수 있어서 유명하다고 한다. 역 주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평해 3길은 ‘정약용길’이기도 했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의 생가와 마재 성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였다. 자연 경관에 유적지까지 탐방할 수 있다니 걷기의 품격도 한뼘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 으쓱해졌다. 일단 남한강 자전거길로 접근할 수 있는 표지판을 따라 길을 나섰다.

 

 

 근처에 지금은 폐선이 된 북한강 철교가 있다고 해서 안내판을 따라 갔다. 레일 위로 나무 데크를 깔아 놓은 철교를 건너면서, 오래된 철교의 구조물이 주는 운치를 포착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어설프게 한 컷 찍어보았다. 강을 건너서 계속 걸었는데 길의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반대방향으로 다시 철교를 건너고 한참을 되돌아와서야 정약용길 표지판을 찾았다. 남한강을 따라 난 길 주변에 핀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 덕분에 길을 헤매는 헛수고도 나름 괜찮았다.

 

 

 

 

 

정약용의 유적지에서

 

   경의중앙선 노선이 변경되면서 폐역이 된 능내역까지 지나고 나니 정약용 유적지가 있는 마재 마을로 들어섰다. 마재 마을은 정약용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벼슬시기를 거쳐 십팔 년의 유배기를 지나 다시 돌아와 여생을 마친 곳이라고 한다. 천주교도였던 정씨 사형제를 기리는 마재 성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성지를 둘러보다가 유난히 탐스러운 흰 꽃봉오리가 눈길을 끌었다. 돌아온 후 무슨 꽃인가 찾아보니 불두화 라는데, 승려의 머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재밌는 조화다.

 

 

 

 마재 성지를 나와서 야트막한 고개길을 넘어가니 정약용의 생가와 묘지,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는 유적지로 들어섰다. 실학자인 정약용의 저작을 바닥에 새겨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웬만해서는 쉬이 헤아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저작들이었다. 생가로 꾸며둔 건물들을 둘러보고 묘역도 가 보았는데, 정약용이 생전에 ‘자찬묘지명’을 지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념관에는 묘지명의 내용이 일부 소개 되어 있었다. “육경과 사서의 연구로 수기(修己)를 삼고, 일표이서로 천하 국가를 위했으니, 본과 말을 구비한 것이다.” 라는 문장도 있었다. 공부로 일가를 이룬 삶의 자부심 뿜뿜 하는 문장이다.

 

 

 

    28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그는 정조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 신유박해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약용의 저작은 대부분 유배지에서 쓰여 졌는데 대략 500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주역』 『시경』 『서경』 등을 탐구하고 사서를 주석하고, 일표이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지어서 “모두 성인의 경전을 근본으로 두되, 시대에 부합하도록 힘썼으니 이것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더러 인용해서 쓸 만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 밝혀 두었다. 정약용의 제자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유배기에 이렇게 방대한 저술을 하는 동안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과골삼천踝骨三穿) 유배의 화를 당하여 이러한 저작물을 남겼으니 전화위복이라 치기에는 그의 복사뼈가 세 번이나 뚫어진 고통이 무겁게 와 닿았다.

 

전전긍긍 공부하는 마음을 만나다

 

  유적지와 실학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이정표를 따라가니 다산 생태공원에 이르렀다. 남한강 기슭에 조성된 생태 공원은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북적였다.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의자들도 잘 정비되어 있었고, 잔디밭에 돗자리도 널찍하게 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가를 따라 걷다가 흔들 그네에 자리가 나서 간식을 먹으며 한참을 남한강을 바라보았다.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정약용은 북한강을 따라 춘천을 거쳐 화천까지 배를 타거나 걸어서 유람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흐르기를 멈추지 않았을 강물이 그와 나를 이어주었을까. 정약용의 공부하는 마음이 나의 마음에도 흘러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책꽂이에서 『다산학 공부』 라는 책을 찾아서 펼쳤다. 정약용이 만년에 남긴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온통 녹색인 조그마한 개구리가

한평생 단정하게 매화나무에 앉아 있네

 

제가 감히 높이 날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산 채로 닭 배 속에 매장될까 겁나서네.

「여름날 전원」 24수 중 제13수 『다산학 공부』에서 발췌

 

   먹이를 쪼는 닭 부리의 집요한 공격의 사정권 안에서 평생을 긴장하면서도 그 장(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감당한 청개구리의 긴장이 느껴진다. 성군을 만나 “품은 생각이 있으면 조목조목 진술”하고 그에 대한 답을 들었던 시절은 너무 짧았다. 정적(노론세력)들의 표적이 되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은 기약이 없었다. 증자가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손발이 온전하도록 전전긍긍(戰戰兢兢) 했다는 고백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럼에도 만년까지 순정(醇正)한 그 마음은 여전히 푸릇푸릇하다. 공부하는 마음, 불화하는 세계에 산 채로 삼켜질까 전전긍긍하는 그 마음을 손톱만큼이나마 가늠해보는 시간이었다.

 

댓글 4
  • 2023-06-06 09:13

    걸다보면 정약용과도 만나게 되는구나^^ 잘 읽었습니다~

  • 2023-06-06 11:45

    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린과 함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넘어가는 길도 한번 같이 걸어보고 싶구먼..^^(다산과 함께 걷다 시리즈2?ㅋ)

  • 2023-06-07 10:14

    아, 이 길 나도 가보려고 한 길인데 먼저 다녀오셨군요

  • 2023-06-07 11:03

    날씨도 좋고 걷다가 만나는 공부하는 마음도 좋네요~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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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212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232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떨어지고 난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며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서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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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3.16 | 조회 162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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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4.03.10 | 조회 249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25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299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294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35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36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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