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의 암 이야기6> 사람이 아주 겸손해질 때
문탁
2023-05-05 09:59
365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몇 년 전부터 파지사유 2층에 아주 예민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은 파지사유에서 나는 작은 소음 즉, 의자 끄는 소리, 가죽 망치 소리에도 힘들어 했다. 그런데 요즘 몇 달 안 내려 와서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그분들이 임신을 하셨단다. 누구는 임신을 해서 신경이 무뎌진 거 아닐까 했지만, 난 그분들이 이제 삼가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꺼라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제일 겸손해질 때가 아이를 가지고 키울 때, 그리고 암환자 중간검사 기다릴 때인 것 같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중간검사를 한다. 재발과 전이가 많은 암이라 온갖 검사를 하루 종일 한다. 한 달 전부터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고 반성모드가 된다. 내가 그날 아이스크림을 왜 먹었을까? 운동을 왜 빼먹었을까? 요즘 고기를 넘 많이 먹은 게 아닐까? 샐러드 안 먹은 거, 잡곡 안 먹은 거 등등 모두 반성할 일 뿐이다.
중간검사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다시 6달,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특별회비를 낸다!) 환우 커뮤니티에 6개월 검진 통과, 1년, 3년, 5년 통과 글들이 올라오면 수십 개의 댓글이 쭈욱 달린다.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그 분들의 히스토리를 검색하고 나와 비슷한 병력을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나도 잘하면 이렇게 될 수 있어! 나도 5년, 10년 뒤에는 꼭 이런 통과 글을 써야지! 결심한다. 다른 암과 달리 유방암은 5년 후 완치판정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래서 꼬리가 긴 암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보기에 전혀 환자 같지 않은 나는 유방암 쪽에서 보면 신입(?)환자다. 특히 3년 이내의 재발에 대해 의사가 늘 강조하기에 중간검사는 나에게 늘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당분간 아니 아마 평생 암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맨 처음 투병할 때 지금 죽어도 내 삶이 그리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다 키워 놨고 꼭 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무렵 했던 불교공부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쌓아둔 짐을 버리고, 내가 정리하고 가야할 여러 일들을 생각했다. 애들 걱정은 별로 없었다. 내가 독립적으로 잘 키웠기에 내가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꺼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홀로 남겨질 남편이 걱정이었다. 페미니즘 여전사인 아이들과 싸운 경력이 많은 남편! 정말 진지하게 내가 없더라도 재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하고 살라 했더니 ‘그건 나중에 내가 결정할게’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았다. 지금까지도 나의 병간호를 도맡고 있는 남편! 아마 반대 상황이라면 난 그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맨 처음 ‘몸의 일기’를 쓰라고 권유 받았을 때 나의 투병과정을 글로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처음 진단 받았을 때 어떠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항암에 임했는지.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그래서 무엇을 배웠는지, 좀 의연해졌는지. 그러나 마지막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여전히 불안하고, 우울하고, 항암 후유증에 잠 못 들어 한다. 거의 2년 전 요맘때 암 진단을 받았고, 남편과 함께 병원을 쫓아 다녔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친구들과 상의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큰 시련을 한 번 겪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잘 이겨냈다고 칭찬도 받았다. 늘 두려워하는 상상이지만 나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미 고통을 알기에 다음 치료에서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난 아마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가족과 친구들과 상의할 것이다.
1년 전 이맘때 파지사유에서 친구들과 ‘항암정리파티’를 하였다. 엄청 눈물 쏟게 하는 친구들의 편지낭독이 있었고, ‘봄날’과 친구들이 불러주는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어쩜 이렇게 훌륭한 가사인가? 노래 가사처럼 살 수 있을까?
이 글이 올라가는 그 무렵 또 중간검사가 있다. 난 아마 정말 세상 겸손한 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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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의 암 이야기는, 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한달>에 2022년7월부터 6개월간 연재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홈페이지 <자기돌봄의 기술>에 Re-Play 합니다.
1편: "우리 엄마 아미래"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0&mod=document
2편: 항암'산'을 넘다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1&mod=document&pageid=1
3편: 수술이 가장 쉬었어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9&mod=document&pageid=1
4편: 방심하면 안 되는 방사선 치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0&mod=document&pageid=1
5편: 돈 많이 든 '재활치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1&mod=document&pageid=1
6편: 사람이 아주 겸손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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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부터 6편까지 이어서 쭈욱 읽으니 한편 한편 읽을 때보다 더 찡하네~~
노라, 그저 고맙기만 하구먼.
가장 겸손한 시기를 노라샘과 함께 통과하고 있네요 ㅎㅎ 1-6편을 다시 쭉 읽어보면서 샘이 겪었던 과정 하나하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을 주고 받으셨다는 게 느껴져요! 항상 뵐때마다 유쾌하신 노라샘의 뒷면을 글로 살펴볼 수 있어서 찡하네요.
‘바람의 노래’의 가사처럼 저도 살고 싶어요. 사랑하고 상의하면서!
누군가에게 노라샘 상황을 전해듣고
아주 가끔씩 문탁에서 만날때
과정들을 잘 건너가는 모습에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소심함을 반성하면서 샘글 6편까지
꼼꼼히 읽었어요.
노라샘
문탁에서 만날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노라~~함께 건강에 증진합시다~ㅋ
문탁에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가 속으로 제일 좋아한 사람은
아마 노라샘일거예요^^
힘든 과정을 잘 건너가셔서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더 나아져서
문탁에 가면 언제든
노라샘의 밝은 얼굴 보게되길 바랍니다.
정성 가득한 글
너무너무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