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침묵과 명상의 열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침묵과 명상의 열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집중명상은 단기 출가와 같다
2월에 열흘 간의 집중명상을 다녀왔다.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대면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집중명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사이에 아픈 어머니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고, 4주마다 돌아오는 일주일의 아버지 돌봄 일정으로 인해 집중 명상에 참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작년 가을에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후 불현듯 지금이야말로 반드시 집중 명상을 다녀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맞닥뜨린 늙음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물음을 수행과 연결시키고 싶었다. 또 지난 4년간 꾸준히 명상을 해 오기는 했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싶기도 했다.
잠시나마 번다한 일상을 멀리하고 오직 수행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집중명상은 단기 출가와도 같다. 명상센터에 있는 동안은 핸드폰과 전자기기 등을 소지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펜이나 노트와 같은 필기도구, 책과 같은 읽을거리도 금지된다. 온전히 수행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식사는 채식을 하고, 오전에만 밥을 먹는 오후 불식을 엄격히 지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묵언이다. 침묵함으로써 거짓말, 과장된 말, 비방하는 말 등과 같은 구업(口業)을 짓지 않고, 말로 인해 생겨나는 번뇌를 예방함으로써 수행에 집중할 수 있다. 남녀 수행자가 엄격히 분리된 생활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하루 일과는 4시 반에 새벽 수행이 시작되고, 저녁 9시에 저녁 수행이 끝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9시 반에 잠자리에 드는 셈이다.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0시간 정도 명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이번에 참가한 명상센터는 묵언을 철저히 지켜서 더 좋았다.^^)
담마코리아 명상센터(진안)
호흡관찰에서 감각(느낌)의 알아차림으로
10일의 집중명상, 아니 정확히 말해서 11박 12일의 프로그램은 아주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 첫 번째 사흘은 위빠사나에 입문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호흡 관찰을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를 알아차릴 수 있게 돕고, 감각(느낌)의 관찰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해온 방법보다 집중력과 관찰력이 훨씬 예리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전체를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할 때는 거친 감각(가려움이나 열기, 저림 등)을 느끼는 것과 달리, 들숨 날숨이 오가는 코주위로 관찰대상을 제한하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명상방법을 바꾸려니 약간의 저항감도 있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명상은 신비체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연습하고 훈련하면 누구나 집중력과 관찰력을 키울 수 있다. 코끝에서 들숨과 날숨의 온도차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것은 열흘의 수행 중에서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흘 동안 호흡과 감각을 관찰하는 힘을 키운 뒤 나흘째부터 본격적인 위빠사나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끝에서 느낀 미세한 감각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 있게 관찰력을 예리하게 하는 연습과 훈련을 하루, 이틀, 사흘…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금씩 나누어서 어떤 감각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거친 감각으로부터 미세한 감각으로 알아차림을 예리하게 갈고 닦는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에 있지 않다. ‘일어난 것은 사라진다’, 다시 말해 ‘감각은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하고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괴로움에도 즐거움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통증, 가려움, 마비 같은 거친 감각을 느끼면 괴롭다. 반면 미세한 진동을 느끼면 펀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괴로운 감각을 멀리하고 즐거운 감각을 즐기는 것은 명상의 목표가 아니다. 괴롭든 즐겁든 거친 감각이든 미세한 감각이든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각의 변화를 알아차림으로써 무상의 지혜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평정심을 키운다.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바로미터는 평정심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숙소에서 명상홀 가는길
마무리는 자비명상
하루 종일 명상을 하다보면 아주 작은 차이라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떨 때는 반복이 지루하다는 느낌, 싫다는 느낌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앉아 있으려니 처음 며칠은 몸이 매우 고달팠다. 그때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수행도 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루는 자려고 누워 눈을 감았는데 당최 눈앞이 훤하기만 할 뿐 어두워지질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눈에 무슨 탈이 났나? 명상 와서 몸과 마음에 거듭 새긴 것이 무상(無常)이었기 때문에 주문처럼 무상을 떠올리며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서 멀쩡하다는 걸 알고 한시름 놓는 코미디 같은 일도 있었다. (집중하다보면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고 한다.) 어느날은 몸이 파동으로 변하여 몸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혹시 내 상상력이 이런 느낌을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다. 명상을 지도하는 분은 ‘평정을 유지하며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라’고 할 뿐이었다. 하루 종일 밥먹고 방석에 앉아 있는 열흘이었지만 매일매일이 놀랍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한 변화무쌍한 나날이었다.
집중명상의 피날레는 자비명상을 배우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는 『숫타니파타』의 「자애경」을 읽을 때마다 자비와 기쁨과 평정의 마음을 기르는 사무량심(四無量心) 수행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명상 매뉴얼을 보고 따라하기도 했지만 읽은 대로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날에 이르러서야 자비명상이 어떤 특별한 명상이라기 보다는 수행의 공덕을 다른 존재를 향해 되돌리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회향廻向이라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덕분에 이제는 매일 하는 명상을 다른 존재의 행복과 평화를 서원하는 자비명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상의 공부와 수행은 계속된다
오래전 집중명상을 마치고 수행처를 나서자마자 가라앉은 줄 알았던 번뇌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난 몇 년간 매일 아침 명상방석에 앉은 덕분일까, 아니면 불교공부로 마음의 힘을 키웠기 때문일까. 열흘 집중명상의 효과일까.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일은 겪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고요했다. 그러나 일상의 중력은 짧은 열흘 명상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나고 조금씩 마음의 동요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마음의 출렁거림이 일어날 때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고, ‘나와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무상과 무아가 단지 지적인 이해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깨어있는 앎이 되려면 몸과 마음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알게 모르게 축적된 어떤 습관과 경향성에 따라 움직인다. 명상은 관찰과 알아차림을 통해 바로 그런 습관과 경향성으로 반응하는 몸과 마음을 바꾸어내려는 것이다.
이번에 집중명상을 다녀오면서 생각한 게 있다. 불교학교에서 일상의 수행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음.. 잘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고 친구들이 뭐라 하는지 보면서 과연 가능할지 어떨지 생각해보려 한다.^^
일상의 중력은 힘이 셉니다.
일탈의 유혹도 힘이 세구요.
전 98.745% 넘어갔습니다. ㅎㅎㅎ
우리 모두, 성불합시다~
저는 로봇이 아닙니다. ㅋㅋㅋ
전 명상 배우고 싶어요~~ 100% 이미 넘어가 있음요! ㅋ
소중한 수행 체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넘어갔죠
잘할수 있을지는 자신없지만
늘 배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요님의 글들에서
제 명상의 방향을 얻어갑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요요샘 글을 읽으며 명상이 궁금합니다^^
“괴롭든 즐겁든 거친 감각이든 미세한 감각이든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텍스트로만 읽었던 무상과 명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네요 🙂
일상의 중력의 힘은 쎄다라는 말이 넘 와닿아요! 일상을 수행처로 삼아야한다는 말을 스님 유튜브에서 자주 들었는데. 또 단기 명상도 가보고 싶네요.
명상은 정적이면서도 무척 다이나믹한 수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못견디고 중간에 퇴소하는 사람도 꽤 있다던데 잘 마치고 돌아셔서 기쁩니다! 일상의 수행에 대한 대화도 기대됩니다^^
저는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새벽산행을 시작했었는데요. 해가 뜨지않는 산기슭이 정말 무섭거든요. 무사샘하고 같이 가는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근데 조금만 지나면 해가 살짝 드리워지면서 그 무서움의 금세 사라진다는 걸 알았어요. 두려움의 감정이 그리 오래가지않는 다는걸 알았죠. 평소에도 한번씩 두려운 감정에 휩싸이곤 하는데 이 무상의 감각을 잊지말자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일상의 중력은 쎕니다. 일상에서는 기억이 잘 안나요~ㅎㅎ
요요샘 글을 보며 무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무상의 지혜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명상 함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