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가족의 재구성

루틴
2023-02-2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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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연지 3년이 되어간다. 무슨 일이든 3년을 잘 넘기면 그 다음 3년을 또 기약해볼 수 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년의 마디를 기점으로 순환하듯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뭐든 어설프고 시행착오도 많고 아옹다옹 다툼도 많지만 더불어 아직 고착화되지 않은 역동성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 연재를 시작한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다독이며 봄의 마디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이름의 연원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의 분들은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한다. 하우스 빼고는 정임합목, 양생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양생’은 요즘 인문약방에서 미는 단어인데 생명력 넘치는 삶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정임합목’은 사주명리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 중 하나이다.

 

동양에서는 세상을 음양오행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성분이고 이들은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 열 가지 하늘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사람도 열 가지 기운 중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데, 무사는 음화(陰火)인 정화(丁)이고, 루틴은 양수(陽水)인 임수(壬)이다. 정화(丁)은 작지만 따뜻한 불이고 임수(壬)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큰물이다. 정화(丁)와 임수(壬)은 섞이지 않는 물성을 가졌을 뿐더러 음양의 속성까지도 다르다. 하지만 너무 다르다보니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생긴다. 동양의 사유가 보여주는 묘미인데 극단의 끝에 위치한 존재들은 서로 충돌을 피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그 중 정화(丁)와 임수(壬)가 택한 방법은 결합하여 새로운 주체인 목(木)성분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름하야 정. 임. 합. 목(丁壬合木).

 

오행의 관계도 

                                                                        출처 : https://blog.naver.com/withborinuri/222199603005

 

목(木)성분의 탄생은 양생하우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서로 반대되는 성향의 두 사람은 이상하게 합이 잘 맞을 때가 있다. 즉흥적인 선택은 잘하지만 행동력이 느린 임수(壬)는 선택 후에 진척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주도면밀한 정화(丁)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면 뿌옇게 보이던 현실이 명확해져서 임수(壬)는 앞으로 나아간다. 정화(丁)는 꼼꼼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대비하느라 기류의 흐름을 놓칠 때가 있다. 이럴 때 직감이 발달한 임수(壬)가 크게 한번 물길을 내주면 정화(丁)도 여타의 고민 없이 삶의 방향을 튼다. 우리는 서로 이런 저런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설프지만 과감하게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출범시켰다.

 

 

결혼 프로젝트를 넘어 가족-되기 프로젝트

 

좀처럼 잘 드러나지 않던 임수의 실행력은 정화의 조력뿐 아니라 사주명리 공부를 계기로 밖으로 표출되었다. 임수는 2019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분석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동양의 운명학에서는 사람의 운명이 10년마다 새로운 배치 안으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그 당시 임수는 가족을 이루는 기운의 배치 속에 들어와 있었다. 사주 명리적 용어를 빌려 보자면 ‘비겁과 식상 대운‘이라 부른다. 비겁(比劫)은 자기 자신, 친구, 형제를 뜻하고 식상(食傷)은 밥을 같이 먹는 소규모 공동체, 가족을 뜻한다. 그래서 함께 들어온 비겁과 식상 대운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가족이 아닌 스스로 가족을 이루는 기운으로 본다. 보통 역술인들은 이러한 대운(大運)을 결혼운이라 한다. 나또한 정화를 만나기전, 푸코를 공부하기 전, 단순히 이 대운(大運)을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을 이루는 결혼운으로 해석했다.

 

대학원 졸업이후 1인 가구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1인 가구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나는 가까이에 누군가가 있어야하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와 줄 사람들이 있는 기숙사라는 공간은 안도감을 주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점점 외로움을 많이 느꼈으며 같이 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공동체 주거’와 같은 개념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주변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한 상태였다.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방법은 4인 가족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대운을 결혼운으로 해석했다. 선무당이었지만 배우자운, 자식운을 고려하며 2022년까지 연애, 결혼, 출산을 일사천리로 해결할 원대한 꿈을 꾸었다(무슨 입시준비도 아니고^^;;;). 그렇게 3년 결혼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단 여러 조건상 자만추(자연스럽게 만두 추가?ㅋ)보다 소개팅을 목표로 삼았다. 소개팅에 나가려면 대학원 생활 10년의 촌티를 벗어야했다. 대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원 10년은 ‘편한 게 최고’라는 신념으로 살았다. <영심이>에 나오는 ‘왕경태’ 안경을 벗어던지기 위해 라섹 수술을 했고, 난생처음 피부과에서 점도 빼고 눈썹문신도 했으며, 비싼 돈을 들여서 미용실도 다니고, 평소에 잘 안 입던 스타일의 원피스를 샀다.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성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점점 그럴듯한 소개팅녀로 거듭나고 있었다. 마치 사기극처럼. 그리고 그리 공을 들였으면 소개팅을 쭈욱 나갔어야했는데... 운명처럼 눈앞에 소규모 공동체가 나타났다. 이름하야 ‘옆집 문탁’

 

소개팅 준비를 한창 하던 무술(戊戌)년 여름, 전셋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원인모를 누수라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 이사 간 집이 바로 파지사유(874-6번지) 옆 건물, 파지사오(874-5번지)였다. 그때까지 전공서적 말고는 인문학 책은 전혀 읽지 않았던 터라 문탁이라는 공간이 어색하긴 했다. 그래도 공부와 인연이 깊어서인지 잘 스며들었다. 밥 먹고 가라며 식권을 쥐어주시거나 시시때때로 먹을 것을 챙겨주셨다. 수다 떨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사람들이 똑똑하기까지 했다. 안 끌릴 이유가 없었다. “소개팅 해야지!!!” 의지만 다지고 주말마다 문탁을 들락거렸다. 불편한 소개팅남과의 만남보다 편안한 문탁이 좋았다. 그렇게 거기서 정화를 동기생으로 처음 만났다.

 

급속도로 친해진 정화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비혼의 세계와 여자들의 연대에 대해서. 요즘 대세는 비혼인데 결혼프로젝트가 웬 말이냐며 통계치를 들이밀었다. 이성애 핵가족이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니 정말 그런 세계가 있다고?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친구들을 포함해서 결혼 안 한 친구가 없었던 나는 반신반의했다. 비혼을 정치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인연을 못 만나서라고, 미혼과 기혼의 중간 상태로 생각했었다. 근데 굳이 선택해서 여자들끼리 가족처럼 같이 산다고??

 

그 이후로 정화를 쫓아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체력 좋은 언니들을 만날 수 있었던 대만 올레길 트래킹부터 독박 돌봄에 허우적거리는 여성들을 위한 강의 등등. 살면서 만나본적 없고 들어본 적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대만 올레길에서 만났던 체력 좋은 언니들은 다정하게 임수를 챙기는 정화를 보며 우리들에게 한마디 건넸다.

 

“남자랑 살 이유가 뭐야, 저렇게 잘 챙겨주는 친구랑 재미있게 돌아다니면 되는데~"

 

 

배우 김영옥님의 일갈 "결혼하지마"   

출처 : KBS 해피투게더 캡처

 

다수의 경험자들에게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조언에 임수는 혹하고 빠져들었다. 그래~ 다정한 친구랑 잘 놀고 잘 공부하는 인생 좋잖아~! 임수의 전략은 심플했다. 그렇게 정화와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모종의 화두를 붙잡고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렇게 일을 벌이기 시작하니 나를 둘러싼 운(運)의 향방이 이성애 핵가족 중심의 결혼운에서 난잡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운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임수는 다정한 정화의 주도면밀함과 또 다른 상상력으로 그려본 나의 운명을 텍스트삼아 삶의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 <돌봄선언> 더 케어 컬렉티브 지음,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난잡한 돌봄의 윤리라고 부른다.”

2020년 여름쯤, 임수와 정화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며 함께 살기로 한다.

 

 

힙스터 대열에 들어서면 꿈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건만...

 

정화와의 동거는 세상일에 관심 없던 임수를 ‘자고 일어나 보니 힙스터‘처럼 대세반열에 올려놓았다.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우리의 동거를 힙하게 바라보셨다. 하지만, 이성애 중심의 가족을 이룬 나의 대부분의 친구들은 관심을 넘어 걱정을 한껏 쏟아냈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그래도 제대로 시대흐름을 타고 있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미 마음만은 ‘힙스터’가 된 김에 나름 괜찮은 라이프를 상상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우정을 돈독히 한 것처럼 성숙한 어른으로서 서로의 공간을 잘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10년 동안을 2인 기숙사실에서 지냈던 터라 크게 문제가 없을 듯 했다. 하지만, 우리의 동거는 잠만 자고 실험실에 가는 기숙사 생활과는 달랐다. 밥도 해먹어야하고 화장실 변기청소를 포함해서 각종 청소도 해야 하며 쓰레기 분리수거도 때에 맞춰서 해야 했다. 기숙사 생활과는 사뭇 다른 일상의 공유는 서로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따뜻한 불인 정화와 큰물인 임수는 한참 다른 인간들이었다. 첫 등산을 함께 하면서 확실히 알았다.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정화는 등산할 때는 장비를 잘 갖추어야하고 등산 간식은 딱 먹을 만큼만 그리고 먹을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서 포장해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임수는 집에 있는 아무 티나 챙겨 입고 그날따라 먹고 싶은 간식을 즉흥적으로 사서오는 사람이었다. 정화와의 첫 등산모임에서 사정없이 터져버린 연시를 정상에서 맛있게 먹었다(누가 등산을 오는데 물렁한 연시를 가져 오냐며 웃던 정화가 생각난다^^;;;).

 

사실 정임합목이 잘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내기 급급하다. 이러한 주체성의 드러냄은 대부분 다툼으로 이어진다. 다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족-되기란 어떤 의미인지 계속된 물음을 만들어낸다.

 

정화와의 다툼의 주제는 참 다양하다. 일상적 습관에서 나오는 부딪힘이 그 중 한가지이다. 상황은 다양하지만 종합해보면 대체로 임수는 돌연 화를 자주 낸다. 그렇게 화낼 이유가 아닌데 갑작스럽게 화를 낸다. 이러한 성향은 밖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체로 집에서 그런다. 주로 가족들이 옴팡 화를 뒤집어쓴다. 정화가 편해지자 그런 성향을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정화는 평소엔 다정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은 정확히 잡아냈다. 나는 그때마다 이유를 갖다 붙이며 내 분노에 대한 명분을 달았다. 그러나 정화도 굽히지 않았다. “가족이면 좀 받아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임수에게 “정말 ‘가족’한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라며 정화는 응수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주에서는, 보통 자아가 강한 사람은 사회적 관계에서 생긴 불편한 감정을 밖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집에서 푸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내가 딱 그랬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특히 그랬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나의 짜증 폭격을 제대로 맞으셨다. 하지만 엄마도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셨기에 적절한 무시로 제풀에 꺾이도록 두셨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고 바로 안락함을 느끼는 패턴을 반복했다. 내가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가족은 편안한 존재라고, 아니 편하게 대해도 되는 관계라고 착각했다.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나는 가족을 사회적 활동을 하기위해 베이스캠프를 제공해주는 사람들로 생각했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부딪힘 없이 최대한 사람들과 원만히 지내려했다. 하지만 거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바로 집이다. 결국 밖에서 쌓인 감정을 스스로 풀지 못하고 편한 존재에게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예의를 다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정화에게는 이러한 관계성이 통하지 않았다. 매번 부딪힘으로 내 태도의 문제점을 알려줬다. 이러한 정화의 방식은 불편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몰랐던 나의 모습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을 캐치하는 순간 올라왔던 화가 조금은 참아졌다. 그리고 화가 올라온 인과에 대해 묻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잘 안되긴 하지만 노력 중에 있다.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 것은 자기수양이 동반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짚어서 사건의 전말을 훤히 비추는 정화는 나의 명분을 순식간에 탄핵시키지도 하지만 새로운 물음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래서 정화와 사는 일은 때론 힘들지만 새로움과 재미를 듬뿍 주기도 한다. 나의 욕구와 반대되는 존재와의 동거는 새로운 공간으로 관계성을 뻗어가게 한다. 이것이 정임합목의 숨겨진 진면목이 아닐까?

 

 

며칠 전 크게 싸우고 정화가 사온 바나나우유를 나눠 마셨다.

이렇게 우리 정화가 다정하다~ㅎㅎ

 

p.s. 과연 이 다툼이 끝일까요?ㅋㅋ 다음 3월 <업무분장의 기쁨과 슬픔> 정화편 기대해주세요~

댓글 12
  • 2023-03-01 07:47

    ㅋㅋㅋ........우껴^^
    담엔 싸우는 걸로 한편 다 채워보세요. 너무 재밌을 듯^^
    (구경 중에 젤 재밌는 건 쌈구경이라니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

  • 2023-03-01 08:20

    3년은 지나야 하는군!! 일리치약국도 올해 3년차입니다. 올해를 잘 넘기면 관계의 밀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되네~

  • 2023-03-01 09:02

    히히~잼써요. 잘 풀어서(결말 좋음) 그런지 그 전의 다툼과 일련의 과정들이 더욱 재미있게 느껴집니다ㅋㅋ

  • 2023-03-01 12:59

    거침없는 큰 물처럼 흐르는 임수의 스토리텔링, 바나나우유와 쪽지를 건내는 작고 따뜻한 정화! 이렇게 합목이 탄생하는 거군요!
    뭔가 트렌디하고 힙한 사주에세이? 누드글쓰기? 같아서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ㅎㅎㅎ

  • 2023-03-01 19:11

    편안함과 함께 늘어나야 할 다른 덕목들도 있을 거 같네요. 글 읽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돌아봤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기대! ^^

  • 2023-03-02 07:05

    가족이 편안한 관계인지... ㅋㅋ 저도 늘 왔다갔다 합니다. 두 분, 안 싸울것처럼 보였는데...
    '5초후에 풀발하는 메모지' 재미있습니다.

  • 2023-03-02 07:51

    ㅋㅋㅋㅋ 다음 글을 기대하게 하는 이 전략도, 임수의 큰 그림? 정화의 세심한 계획? 무튼 ~~~여러모로 쓸만한 스토리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을 응원^^

  • 2023-03-02 10:00

    두분의 글쓰기 스타일도 달라서 꾸르르르르르잼입니다!!

    너무 달라서 괴로운데 다르니까 살 수 있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
    임수같은 임수와 산다고 생각해봐요 ㅋㅋㅋㅋ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3-02 14:15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수양하우스이기도 하군요.^^
    대체 둘이 어떻게 싸우나 궁금했는데 임수가 돌연 화를 내는군요. 정화는 어떻게 화를 내나, 그것도 알고 싶군요. 하하하

  • 2023-03-05 18:48

    시간이 그새 이렇게 흘렀나 싶네요.
    이야기에 쑥 빠져들었습니다.
    무사귀환 이야기와 루틴의 일상이야기가 궁금합니다. ㅋㅋㅋㅋ

  • 2023-03-11 20:19

    재밌게 읽었어요~
    두분 매력에 반하는 순간도 궁금하고~
    목이 어떻게 성장할지도 기대되고 : )
    두분 응원합니다

  • 2023-06-16 20:34

    우리 집 보는 줄!!
    남편은 정화 나는 임수.
    나도 가족들에게 화를 잘 내는데 우리 집에서는 그라데이션 화라고 불려요.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현민
2024.04.17 | 조회 13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141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163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19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경덕
2024.04.02 | 조회 285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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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307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308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21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00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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