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독일도착기

현민
2023-01-15 23:46
704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서 삽니다. 사진에서 가장 귀엽게 웃고있는 사람.

 

 

 

독일 도착기

 

 

 

나는 서점을 떠났다. 그리고 독일에 왔다.

 

지극히 사실인 이 문장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내가 정말 충동적으로 떠났으므로. 작고, 지역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서점을, 동천동을 왜 떠났을까? 한국을 왜 떠났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곳에 두고, 스스로 멀어지기를 선택한 것은 왜일까? 등의 스스로 피어오르는 질문들에 마땅히 대답이 될 이야기들을 지금은 쓸 수가 없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에게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부모가 공부하고 결혼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비교적 유학에 돈을 많이 쓰지 않을 수 있는 복지 좋다는 나라. 페미니즘 문화의 이삼십대 언니들이 많이 유학하고 취업하는 나라.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는 거라고, 대안학교를 다닐 적에 슬퍼하던 내게 부모가 해줬던 말을 기억한다. 독일이라는 땅을 한국과 비교해 대체지나 종착지, 환상의 세계로 여기지는 않을 거다. 백인들의 땅, 니네가 얼마나 잘났냐 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시간 배워왔으니 말이다. 최악과 최선을 내가 떠나온 곳에서 모두 느꼈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냉소와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사는 것이 좋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겐 있다.

 

그저 나는 집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집이 내 집이 아니고, 태어난 나라도 마땅한 곳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거쳐온 모든 주거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 때마다 어색함을 느꼈던 것처럼. 집이라는 게 세상에 태어났다고, 혹은 찾아 헤맨다고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건 아직도 조금 슬프다. 독일에 오기 전 집을 못 구해서 엄청 슬퍼하는 내게 조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넌 진짜... 집을 찾는 게 네 인생의 화두가 될 것 같애. 여기서 말하는 집이라는 게 단순히 비바람 막아줄 지붕과 벽을 말하는 것이면서도 아니라는 걸 읽는 이들께서 알아주시기를. 그래도 내 친구들도 다 가난하고 집 없고 가족 찾아 삼만리면서도 아름다운 애들이고 걔네가 옆에 있어서 기분이 괜찮다.

 

그래서 독일에 온지 두달이 되었고 나는 아직도 집이 없다. 길거리에 나앉더라도 독일 노숙자가 되라는 친구들의 말을 새기고 도착했지만 집이 없고, 친구가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나를 약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집이 없고,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것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그건 외롭거나 상처받을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 달간 집이 없어 괴로워하고, 친구가 없어 슬퍼하고, 또 친구들을 만나 기뻐하는 시간들을 몇 번 반복해보니 이제는 내가 떠돌기보다는 머물 집이 필요하고, 친구들이 있어야 더 세상에서 잘 노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우와! 이 문장을 쓰고 나니 내가 너무 대견하다.

 

 

 

약간의 존경심이 들만큼 커다란 나무 앞에서 너털너털 웃으며 쓰잘떼기 없는 이야기 나누며 스트레칭 하기

 

 

 

독일에서 만난 프랑스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How can I say ‘Germany’ for korean? (한국어로 독일 뭐라고 말해?)

It’s pronounce like ‘Dok-ill’ (‘독일’이라고 발음함)

What? Why? (엥, 왜?)

그러게. 그럼 프랑스나 스페인은 뭐냐고 묻는데 그건 그냥 프랑스랑 스페인이란다, 라고 대답하면서 검색을 했다.

독일은 영어로는 Germany이지만, 독일어로는 Deutschland인데 고대 중국에서 도이치Deutsch를 덕의지(德意志)로 표기했고, 한걸음 나아가서 덕국(德國)으로 기입했다고 한다. 누가 골랐는지 우연히 너무 좋은 한자다. 그러다가 그게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왔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외래어 표기 방식으로 인해 독일(獨逸)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기 전에는 한 번도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그리워서 떠난 것 같다. 한번도 궁금해 해보지 않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보고 싶어서.

 

 

종종 걷다가 문득 독일이 ‘홀로 독’자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무의식 중에 그래도 같이 사는 게 더 좋은 거라고 오래 편협했던 마음들이 작아지는 때가 이곳에선 있었다. 앞으로 이 곳에는 내가 독일에서 만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올 예정이다. 시작하는 글을 마치며 사랑하는 나의 친구 수련이 미국인 애인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덧붙인다.

 

... In fact, I felt the change linked to the anxiety that I might lose too much.

But change is change. Change is not about losing, but something about changing something. I always want to remember. That the flow should not be tied up. When something attacks me, I have to let it ring, not store it in my body. I need to feel accurate and transparent. I have to look at it simply and refreshingly. Always with a generous heart. I hope so.

... 사실 나는 이 변화가 너무 많은 걸 잃을 거라는 불안감에 연결되어 있어. 하지만 변화는 변화야. 변화는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바꾸는 거야. 언제나 기억하고 싶어. 흐름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걸. 무언가가 나를 공격할 때마다 나는 그걸 내 몸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울리게 두어야 해. 나는 정확하고 투명하게 느낄 필요가 있어. 간단하고 상쾌하게 봐야 해.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러고 싶어.

 

변화는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너에게도, 나에게도 온다. 변화가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왜 이제야 왔냐고 얼싸안아 춤추기도 하고, 너무 놀라 집에 없는 척 발소리를 죽이고 숨기도 한다. 세상엔 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오랫동안 변화라는 걸 맹목적으로 보았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시한 가장 좋은 변화의 방향성을 체화하느라 바빴다. 이제는 ‘변화’라는 상태의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종종 글을 쓰고 나면 타인들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쓴 편지 같은 기분이 든다. 내게 글을 쓰는 건 가장 좋은 마음을 작은 그릇에 조심조심 떠 담아 휘발하지 말라고 몸에 갖다 붙이는 과정이다. 세상을 이해해보겠다고 애쓰다 마음이 자주 극단에 머물렀다. 화나서, 슬퍼서 금방 픽 쓰러져 죽지 않으려면 삶을 유연하게 대하는 몸과 마음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세상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글을 읽고 싶다. 그런 글을 읽으면 살고 싶어지고, 쓰고 싶어지고, 그리고 종종 전하고 싶어진다.

댓글 12
  • 2023-01-16 08:26

    현민아, 겁나 반갑다.
    네 글도, 정말 기대된다^^

  • 2023-01-16 09:04

    오! 현민!!!
    글로 만나도 반갑네~~~

    “내게 글을 쓰는 건 가장 좋은 마음을 작은 그릇에 조심조심 떠 담아 휘발하지 말라고 몸에 갖다 붙이는 과정이다.”

    홀로 독자를 쓰는 독일에서 또 어떤 친구들을 만들지, 어떤 글들을 담을지 궁금하네요! 맘으로 응원하고 있을께요!!!

  • 2023-01-16 09:16

    이국에서의 삶.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버뜨 백만 가지의 이유로 고이 묻어 놓았을 그 삶을 선택한 현민을 응원합니다. 글을 읽는동안 저역시 독일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세상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기대하며…

  • 2023-01-16 09:45

    오~ 현민, 반갑군, 반가워!!
    찬찬히 들여다 보는 '변화'의 이야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게.

  • 2023-01-16 10:35

    제일 화나게 하는 문장이자 제일 설레게 하는 문장이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인데 ᆢ 현민의 글 많이 기다려질거같아요.
    어서 빨리 편안한 '현민의 집'에서 다음글이 써질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 2023-01-16 11:15

    서점을 할때부터 나는 니 글이 좋아졌어. 너의 글이 끊기지않고 계속되길 바래. 다음편을 기다릴게!!

  • 2023-01-16 12:14

    현민~~먼 땅에서 아직 집이 없는, 그래도 씩씩한 그대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응원해 ~~~~

  • 2023-01-16 12:36

    식물원에서, 우주소년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던 현민과는 또 다른 독일에서의 현민! 반가워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글 잘 읽었어요. 다가올 '변화'들과 '좋은 마음'들이 휘발되지 않고 매달 잘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 2023-01-16 12:49

    역시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글 만한 게 없구나. 난 타지에 가서 쓴 너의 글을 보고 나서 널 더 이해하게 됐네. 항상 응원하고 있어~!

  • 2023-01-16 22:26

    아니 댓글 다 너무 훈훈해요 아악 감사해요

  • 2023-01-30 09:39

    현민의 글과 사진을 보니 현민이 보고싶어지네요~ 이런 멘트를 날릴만큼 자주 보고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든 이 달달구리한 마음은 뭘까요?ㅎㅎ
    항상 응원합니다.

  • 2023-01-30 18:07

    저도 현민과 30여분 같이 있었던 경험이 ㅎㅎ
    그래서인지 더 반갑네요^^
    연필 꾹꾹 눌러 쓴듯한...생각이 오롯이 담긴 글인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가슴속에 차곡차곡 들어오는 글입니다^^
    홀로 타국생활...다시없을 귀한 경험일거에요!
    응원합니다~♡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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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2024.04.25 | 조회 10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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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63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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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02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180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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