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두개의 돌 정원이 던지는 질문
요요
2023-05-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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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돌 정원이 던지는 질문
-료안지의 돌 정원과 고야산 곤고부지의 돌 정원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딸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와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찰 투어. 그 컨셉에 맞게 무리하지 않은 속도로, 그러나 알차게 이곳저곳 탐방을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교토방문이 세 번째였지만 딸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내가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딸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구글맵을 켜고 효율적으로 목적지를 찾고, 궁금한 게 있으면 빠르게 검색하는 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길을 잃는다거나 혹은 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에 내린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던 시절이 갔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빈틈이 있고, 빈틈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침입해 들어왔다. 여행의 맛은 그 빈틈을 향유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료안지의 돌정원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토에서 3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1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돌아와 오사카에서 2박을 하며 하루는 온종일 나라를 둘러보는 코스를 짰다. 교토에는 보아야 할 것들이 많고 많지만 내가 이번 여행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곳으로 생각한 것이 료안지(龍安寺)의 돌정원이었다. 이 정원은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인류학』에도 소개되어 있어서 문탁 학인들은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료안지의 돌정원은 검은 돌과 흰 모래, 돌에 낀 녹색 이끼로 구성된 직사각형 정원이다.
료안지를 방문했을 때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전히 낯설었다. 대개 우리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압도당하는 숭고미를 느낄 때 말문이 막히거나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이번에 교토의 기요미즈테라(淸水寺)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산 중턱에 있는 절에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녹음의 깊이감이 아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료안지의 정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10m×25m의 규모일 뿐이다. 하얀 모래 위에 열 다섯 개의 검은 돌이 놓인 단순한 배치는 입체적이기보다 오히려 평면적이기조차 하다. 그런데도 바로 그 단순함 때문인지 ‘이게 뭐지?’라는 물음과 함께 말문도 막히고 생각도 막히는 듯하다. 료안지의 돌정원은 마치 선수행자에게 주어지는 ‘화두’와도 같다.
화두는 말인 경우도 있지만 어떤 형상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당나라때의 스님인 구지선사는 누가 찾아와 불법을 물으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부처님이 설법을 들으러 온 대중들 앞에서 말씀은 하지 않고 꽃 한송이를 들어 올렸다는 뜻의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는 화두도 있다. 료안지가 그렇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도가 무엇입니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그저 말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모래가 있고 돌이 있고 이끼가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기의 없는 기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생각이란 대개는 오래도록 되풀이 된 숙업에 의해 어떤 경향성을 갖게 된 망상에 지나지 않기에, 화두를 드는 수행자는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말의 길이 끊길 때까지 생각을 비우고 또 비워서 그 마음이 의심으로 꽉차게 하라고 한다. 들뢰즈를 빌려와서 말하자면 사유의 무능에 직면할 때만 ‘사유의 절도와 불법침입’이 일어난다!
료안지의 흙벽은 낮다. 흙담 너머로 수양벚나무, 단풍나무 등이 서 있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든다. 이번에는 신록으로 물든 나무들이 보였다. 정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바람이 있고 햇빛이 있고 나무의 흔들림이 있다. 그것들은 그저 배경이 아니다. 정원의 일부이다. 어쩌면 정원이 있다는 우리의 생각 역시 ‘있음’에 집착하는 망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료안지의 정원은 거기 있지만, 그러나 료안지의 정원은 없다! 1시간 가량 정원을 지켜보고 앉아 있는 사이 정원은 끊임없이 모습이 달라졌다.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내리 쬘 때 그 변화는 극적으로 실감되었다. 바람이 불어와 흙벽 너머의 나뭇잎이 살랑일 때 정원은 직사각형으로 인식되던 평면적인 느낌을 벗어던지는 것 같았다. 정원을 바라보는 나는 또 무엇인가? 내가 없다면 정원도 없는 것 아닐까? 관계들과 관계들의 변화만이 현존하는 상태, 바로 이것인가? 이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그저 물음표들만 머리속에 채운 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야산 곤고부지(金剛峯寺)의 돌정원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고야산(高野山) 1박2일 일정이었다. 고야산은 일본 진언종의 본산으로 현재 170여개의 사찰이 운영되고 있다. 한창때는 고야산에 2000여개의 사찰이 운영될 정도였다고 하니 고야산과 진언종의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중국에 유학하여 밀교를 배워 진언종을 연 홍법대사 구카이(空海774~835)가 고야산 사찰의 최초 창건자이다. 고야산 깊숙한 곳에는 구카이 대사의 영묘가 있고, 그 주위에는 20여만기의 크고 작은 무덤들, 비석들이 산재해 있다. 이렇게 큰 공동묘지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수많은 비석 사이를 걷다보면 죽음과 삶이 마구 뒤섞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덤도 무덤이지만 이곳에는 순례객들의 참배가 끊어지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고 싶은 곳이 고야산이라고 한다.
고야산을 대표하는 절 중의 하나인 곤고부지 안에는 두 개의 돌정원이 있었다. 절에 들어가 처음 만나는 돌정원은 료안지의 돌정원을 본뜬 모양이었다. 보자마자 그저 그렇고 그런 수많은 복제품 중의 하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물음은 우리의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반면 그것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반복될 때 그것은 뻔하고 상투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앞서 말한 구지 선사를 시봉하던 동자가 있었다. 어느날 구지선사가 출타한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이 도를 묻자 동자는 구지선사가 한 것과 같이 손가락을 들었다. 구지 선사가 돌아와 그 꼴을 보고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그 순간 그 동자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료안지 돌정원의 복제가 아니려면 대체 돌정원들은 자신 만의 고유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내가 하는 말, 내가 쓰는 글이 나의 자기복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자기복제일 뿐만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말, 읽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느낌이 들 때면 극심한 부끄러움이 일어난다. 그런데 어디선가 읽은 것을 똑같이 말하더라도 그것은 다를 수 있다. 보르헤스가 쓴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소설이 있다. 피에르 메나르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똑같은 소설을 썼다. 그것은 세르반테스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모방과 창조 사이에서 모든 글쓰기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문제의 소박한 돌정원을 지나 건물의 모서리를 돌아서면 눈앞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돌정원이 나타난다. 반류정(蟠龍庭)이다. 이 정원 역시 흰 모래와 검은 돌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반류정은 2,340m²라는 넓이를 자랑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돌정원이라고 한다. 이 정원에 놓인 돌은 140여개로,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구름 사이로 승천하는 두 마리 용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돌의 크기 또한 료안지 돌정원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돌들은 고야산의 돌이 아니라, 구카이 대사가 활동한 시코쿠 지역에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료안지의 돌정원이 사유의 틀을 깨는 화두를 던지는 정원이었다면 곤고부지의 반류정은 규모로 압도하며 ‘이래도 안 놀랄거야?’라고 묻는 듯했다. 료안지의 돌정원이 추상화라면 반류정은 구상화다. 하나는 비재현적이고 하나는 재현적이다. 반류정의 두 마리 용은 곤고부지를 보호하는 용이다. 어쩌면 진언종을 수호하는 용일지도 모른다. 안내서에서 소개하는 반류정은 명확하게 자신의 의미를 단 하나로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질문의 여지를, 의심의 여지를 막아 버린다. 그저 명확한 답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점이 료안지의 선적인 돌정원과 고야산의 만다라적 돌정원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밀교의 만다라에서는 모든 것이 상징이다. 상징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돌정원이라는 형식은 같지만, 하나는 의미를 알 수 없고, 하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돌들이 두 마리 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만 볼 필요가 있을까? 곤고부지의 반류정 역시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나는 140여개의 돌을 한 눈에 다 볼 수도 없었고, 거기에서 용을 찾아낼 수도 없었다. 거기에는 반류정을 반류정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용을 찾으려고 부질없이 애쓰는 내가 있었다. 다만 나는 료안지의 정원과 곤고부지의 정원을 감상하는 내가 한결같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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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토를 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료안지를 가게 되었는데(세번이나 갔다는^^)
그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늘 르부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ㅋㅋ
고야산, 가보고 싶네요.
저 무덤 사이에 가만히 한번 앉아 있어보고 싶어요.
(요즘엔 여행에 대한 흥미가 거의 없어졌는데, 일본은 가까우니까 한번 가봐? ㅎㅎ)
여행도 학구적으로 하시는 요요님^^ 두 정원을 보진 못했지만 알게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데요 ㅋ
재밌다...
샘이랑 여행 가보고 싶어요
엄청 질문 많이 생길것 같아요
제가 샘 엄청 귀찮게 만들것 같아요
ㅋㅋ
엄청난 '수학'여행이 될 것이다. 크하하핫!!
저 정원들을 볼 때마다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누군가는 저 정원을 매일 쓸 것인데,
쓸면서 자신이 만든 발자국을 지우는,
쓸기 위해 만들어진 발자국을 또 지워야만 하는,
쓸데없는 매일 발자국을 보면서,
없어진 발자국을 보면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저 역시 요요샘과 여행 한번 동행하고 싶네요~
'요요샘과 함께 하는 일본 돌여행' 프로그램 하나 셋팅해볼까요? ㅎㅎ
제주에 있는 지금, 제주돌문화공원은 어케 생겼나 궁금해졌네요. 료안지와는 매우 다르겠지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