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한 지붕 두 가족, 윗집과 공거하기

루틴
2023-04-3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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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올해는 양생프로젝트에서 ‘돌봄’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읽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어려운 책을 공부하다보니 계절을 즐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던 아침 산책은 올해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손에 꼽힌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보면 늦게 잠들게 되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계절 감각은 주말에만 즐기게 된다. 그래도 아예 계절감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거실 풍경은 계절감을 충분히 선사해준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2층 단독주택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짙은 어둠을 지나 해가 길어지니 출근하기 전에 거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좁쌀 같던 산수유 꽃은 꽃다발이 되었고 오밀조밀 새하얗게 피었던 살구꽃은 살구로 변신 중이다.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가 신기했는데 힘없이 붉은 잎이 나오더니 파릇한 초록 잎으로 변했다. 산수유나무 위에서 먹이 활동하는 새들의 소리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내 눈높이에서 이루어진다. 나무를 올려보거나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준다. 산수유 꽃이 만개하던 날 안개꽃 다발 속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작은 생명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올라온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거실 풍경, 작년 가을, 겨울, 봄, 살구꽃이 살구로 변신 중

 

손발을 움직여 우리가 선택한 것들

 

   결혼한 친구들은 대부분 본인보다는 다른 가족들의 상황에 맞춰 주거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유치원이나 학교, 남편의 직장, 또는 육아를 도와줄 부모님 댁과의 근접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에 비해 비혼들은 오롯이 나에게 적합한 스타일로 삶을 구성할 수 있다. 주거지 선택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K-장녀에게 집중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러한 것 같다.

 

   비혼 2인이 만난 정임합목은 1인 비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린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앞선 연재를 보면 그래? 의아해하겠지만^^;; 대체로 좋아하는 게 비슷했고 라이프스타일도 그러했다. 번잡한 생활을 싫어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약속도 그리 많지 않고 친구들 관계도 심플하다. 거창한 여행보다도 소소하게 동네 걷기를 좋아한다. 근처 산에도 자주 오른다.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당장 돌봐야하는 부모님도 없었다. 우리는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했고 어렵지 않게 주거지 선택기준도 맞출 수 있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누수경험이 많은 임수에게는 ‘누수는 물론 누수 흔적조차 없는 곳’이어야 한다는 특별조항이 있었다.

 

   우리는 번잡한 역세권이나 학세권이 필요 없었고 동네 마실 나가듯 산책을 할 수 있는 숲세권을 원했다. 광교산 자락에 있는 문탁 근처 동네도 우리의 선호도와 상당히 일치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의 주거지를 알게 되었고 그 동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도로 동네 전체 지형을 파악했다. 나름 친환경 계획도시 같은 느낌이 있었다. 동네가 개발되기 전 있었던 작은 동산들을 깎아 내지 않고 자연공원으로 활용했다. 가격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딱 맞는 조건이었다. 주말마다 임장 나들이를 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그 동네에서 가장 단지가 크고 연식이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를 먼저 보러 갔다. 깨끗하고 누수의 흔적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임수는 고층 아파트 앞에서 멀미증세를 일으켰다. 안되겠다 싶어서 연식은 있지만 좀 낮은 아파트 쪽으로 매물을 보기 시작했다.

 

   뚜벅이 인생인 임수와 정화에게는 걸을 때 느껴지는 동네 분위기가 중요했다. 지하주차장과 자신의 집만 오가는 사람이라면 큰 상관이 없겠지만 지상을 걷다보면 주변 사물과 눈높이를 같이 할 때 주는 안정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네 뒷산도 등반해보고, 연결되어있는 산책길로도 다녀보고 지하철역, 마트, 도서관 가는 길도 다양하게 걸어보았다. 주말마다 그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다. 숲길만으로 동네 전체를 가로지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지도에서 보던 모습을 손발을 움직여가며 감각하고 둘러보고 나니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집을 만났다. 6월 푸르른 녹음의 풍경이 거실 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월의 흔적은 있어보였지만 누수의 흔적은 없었고 리모델링을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고 오롯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주거지를 선택했고 매일 창 밖 풍경을 즐긴다. 자주는 못가지만 아침 출근 전에 가볍게 등산을 하기도 한다.

 

자주가는 산책길, 맨발로 걷기 열풍 중, 잠시 벗어놓은 어느 할머님의 고무신^^;;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리모델링을 시작한 날 우연히 윗집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이 아파트 참 살기 좋은데 잘 왔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다며 여러 번 올라와 항의를 했는데, 여자가 삐쩍 말라서 예민해보였어” 하시며 눈살을 찌푸리셨다. 사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여자’는 우리가 아는 분이었다. 당시 임차 중이던 그 ‘여자’ 분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집도 보여주시고 리모델링을 위해 재차 방문한 우리에게 기꺼이 집을 내어주시며 편히 대해주셨던 분이었다. 윗집 할머니의 험담이 의아했지만, 이 에피소드는 리모델링의 분주함 속에 이내 잊혔다. 화장실 천장 누수가 발생하면서 윗집과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리모델링을 시작한 첫날 안방 욕실 환풍기에서 물이 떨어졌다. 윗집에서 바로 조치를 취해줬지만 미세한 누수는 계속 일어났고 누수지점이 환풍기쪽이다 보니 누전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조치에도 누수의 원인을 정확히 잡아내지 못했고 윗집의 대대적인 화장실 공사를 하면서 4개월 만에 누수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누수가 해결되는 4개월 동안 매번 저 통의 물을 비우고 있었음

윗집 아이가 장난삼아 아래로 던진 짜파게티면이 우리집 창문에 붙어있어서 떼어냄^^;;;;;

 

 누수 문제를 해결하자 이번엔 층간소음이 시작되었다. 윗집에는 유치원생쯤으로 추정되는 첫째 아들과 갓 태어난 둘째 아들, 엄마와 아빠, 이렇게 4인 가족이 살고 출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위에서 언급한 ‘윗집 할머니’)께서 낮에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것 같다. 오후 3시쯤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유치원에서 다 풀지 못한 혈기 왕성한 에너지를 거실을 뛰어다니며 뿜어낸다. 그리고 훈계하는 할머니에게 고뤠고뤠 소리를 지르며 저항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타임,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와 아빠는 첫째 아이와 한바탕 소란이다. 훈계와 대꾸가 고성으로 오간다. 그리고 첫째가 둘째를 괴롭히는 모양이다. 둘째가 심하게 울면 부모는 첫째를 나무란다. 밤 10시쯤이 되어서야 조용해진다. 그리고 곧이어 정체모를 쿵쾅쿵쾅 소리가 이어진다. 우리 집 수사반장인 정화는 밤중 시찰을 나가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엄마가 전자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치는데, 육아의 스트레스를 다 쏟아내는 듯 격정적이다. 지금 이글을 쓰는 밤 11시 56분에도 여지없이 쿵쾅쿵쾅 소리가 난다. 가족구성원 모두 음악성이 있는지 아이의 울음소리는 우렁차고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락발라드를 부른다. 한번은 정화가 후렴구를 이어 부르며 응답해주기도 했다^^;; 이런 저녁시간을 보내고 나면 윗집 사람들과 한 지붕 두 식구가 되어서 공동육아를 한 느낌이 든다.

 

   우리 집에서는 큰 소음이 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윗집의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것일 수도 있다. 주로 저녁을 먹고 읽어야할 세미나 책에 골머리를 썩다보면 책도 잘 안 읽히는 상황이 겹쳐 윗집 소음이 더 신경 쓰이고 그러다 벌컥 화가 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층간소음에 주의를 부탁하는 정도였다.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점점 ‘강경한 대응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관리실에 전화를 해볼까?’ 고민도 해보다 다시금 주의를 부탁하는 문자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심하겠다는 답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유독 조용한 우리 집과 과도하게 시끄러운 윗집의 만남은 그야말로 잘못된 만남이었다.

 

한 지붕 두 가족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화와 임수는 다른 성향이지만 사주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 우선, 둘 다 에너지를 수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바깥 활동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또한 사주팔자의 8글자 중 현실세계를 뜻하는 글자인 일지(태어난 날의 지지地支)와 시지(태어난 시간의 지지地支)가 巳(사화)로 동일하다. 巳(사화)는 목표물이 정해지면 그 맹렬한 에너지를 용의주도하고 전략적으로 뿜어낸다. 자신의 주변 환경을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놓는다. 자신의 능력으로 전체 시스템을 장악하려 한다1). 이러한 특징이 비혼의 삶과 만나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비혼의 삶은 비교적 변수가 크지 않은 편이다. 돌봐야하는 누군가가 적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조절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삶을 장악하려는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  1)안도균 <운명의 해석, 사주명리> p226~227

 

   巳(사화) 글자가 있지만 잘 발휘가 안 되는 임수에 비해 정화는 巳(사화) 능력이 출중하다. 임수는 정화와 함께 할 때 巳(사화)의 글자가 잘 작동한다. 용의주도한 성향은 주거지 선택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동네 탐방을 하며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곳을 찾고 또 찾았다. 폐기물을 최소한으로 만들어내면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티격태격은 있었지만 크게 별 탈 없이 지금의 주거지를 마련했다. 우리는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비혼의 삶을 하나의 형태로 우리만의 주거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적의 주거지를 만들었다는 생각은 허상이었을지 모른다.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했다. 화장실 천장 누수와 층간소음은 임수와 정화의 개인적 경험, 성향, 신체적 특이성과 합쳐지면서 변수 적은 우리의 삶을 파고들었다. 임수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4번의 이사를 했는데 그중 3번 누수가 발생했고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이번 집은 정화와 함께 고심해서 고른 만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리모델링 첫날 화장실 천장에 누수가 발생했다. 어릴 적 귀를 다쳐 귀가 예민한 정화는 층간소음을 유독 힘들어했다. 정화는 말소리도 작고 움직임도 크지 않다. 종종 큰 소리 내는 임수의 말소리에도 놀라는 정화는 윗집의 소음들에 취약했다. 정화가 퇴직하면서 첫째 아이의 고성에 자주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사 온 직후에는 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생활이 안정되면서 소음으로 느껴졌다.

   화장실 누수는 윗집의 대대적인 화장실 공사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층간소음은 줄어들 기세가 없어 보였다. 어느 집이든 이사를 간다면 일시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유형의 잘못된 만남이 시작될 수도 있다. 이렇게 예측 불허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할 수는 있기는 한 것일까?

 

아렌트가 보기에, 지상에서의 공거(cohabitation)에서 우리가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은 바로 그 특성이 윤리적·정치적 존재로서 우리 존재의 조건인 것이다....지상에서 우리와 공거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가 신중하게 고민해 우리의 의지를 통해 진입하게 되는 그 어떤 사회적, 혹은 정치적 계약보다 선행하고 우리의 선택보다 선행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주디스 버틀러, p164)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는 아렌트의 공거의 개념은 이러하다. 우리가 선택한 것들보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의 공거가 선행되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 특성이 우리 존재의 조건인 것이다. 요즘은 집을 선택할 때 윗집 현관문 앞에 아이 자전거나 킥보드가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함께 살 윗집 사람들조차 선택해 층간소음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렌트는 ‘선택할 수 있는 조건들을 늘리는 방식은 다른 이들의 삶을 부정하고 선택하지 않는 것들과의 공거라는 인간성의 정치적 조건들을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선택된 적 없이 지상에 출현했다. 이러한 인식 없이는 개개인의 생명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공거하는 이들에 대한 윤리적 책무를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각이 윗집과의 공거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양생 프로젝트 세미나를 끝내고 돌아와 대화를 나누다가 층간소음을 돌봄 차원에서 이해해 보면 어떨까하고 아이디어를 내보았다. 아이를 낳고 직접 기르지는 않지만 아랫집에 살면서 층간소음을 견디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오늘 뛰는 소리를 보니 건강하네.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아니면 나들이 나갔나? 이 나이 때는 나가 놀아야지~^^;;” 이런 생각들은 공동 육아에 참여하는 셈 아닐까? 돌봐야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혼들에게는 자칫 혼자만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쿨한 삶’의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애를 안 낳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말에는 절대 동의 할 수 없지만 ‘쿨한 삶’에 대한 유혹이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경계심은 있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불호’하는 것들과 분리된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과의 공거를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돌봄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은 오롯이 포용과 관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럴 내공도 없다. 여전히 고성이 오가는 층간소음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지금도 갑자기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놀라 ‘혹시 전자 피아노대신 일반 피아노를 산걸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돌봄의 기술은 다양한 차원에서 유연성을 요구한다. 요즘 정화는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퇴원하는 3시쯤에 수영장을 간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생활노동을 한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윗집에서 나는 소리에 훨씬 무감각해진다고 한다. 종종 윗집 아빠의 노래 후렴구를 이어 부르면서 웃어넘기고 무언의 압박 메시지를 던지는 정도랄까?^^;;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있다. 밤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건반 치는 소리에는 한 번의 정면 돌파가 필요해 보인다. 바닥에 소리 흡수 매트를 추천 드린다는 메시지를 언제쯤 넣어야할까 고민 중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의 공거를 위한 기술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댓글 11
  • 2023-05-01 10:11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의 공거!! 버틀러 책을 읽을 때 아리송했던 것들이 명료하게 다가오네!! 땡큐 정임합목하우스~
    연재 넘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 2023-05-01 15:50

    정화와 임수 두 사람이 윗집 아이들 공동육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듣고 한참 웃었는데, 읽어보니 돌봄의 확장이 참 어렵네요.
    층간소음의 고단함 속에서도 양생세미나에서 공부한 것을 일상과 접목하려는 두분의 시도, 감동이에요~~

  • 2023-05-01 15:53

    직장 일도 바쁜 상황에서 세미나 책 읽으랴 연재쓰랴 쉽지 않았지요. 너무 고생많았어요. 토닥토닥~(앗! 이제 내가 쓸 차례?ㅜㅜ)

    윗집 아부지가 부르는 노래들이 다 소싯적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라... 입이 먼저 반응하는지, 자꾸 따라 부르게 되네요^^;; 그나저나 정말 선곡이 예술임!!

  • 2023-05-01 16:49

    거의 에세이급이군^^

  • 2023-05-01 18:18

    두 분의 생활이 그려지는 글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ㅎㅎ

  • 2023-05-03 13:09

    이렇게 함께 사는 삶에 대해 서로 기록하고 함께 나누는 일이 어떤 형태의 동거나 공거에서든 참 의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 루틴님의 활기찬 바이브에 비해 잔잔하고 다정하게 읽히는 글이었습니다. ^^

  • 2023-05-03 17:40

    하! 층간소음을 이렇게도 이해해 보는 군요. 나의 생활패턴을 바꾸어서...... 리스팩 !

  • 2023-05-03 21:54

    마지막 문단은 예상 밖이었어요. 윗층 층간소음에 맞춰 생활패턴을 바꾸는 방법을 선택하시다니요! 밤 건반소리는 곧 꼭 해결되기를요.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도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워갑니다. '우리가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은 바로 그 특성이 윤리적·정치적 존재로서 우리 존재의 조건인 것이다' 발췌도 더불어 이해가 가고요. 이번호도 넘나 잼나게 읽고 갑니다~!

  • 2023-05-08 12:19

    앎과 삶의 긴장감이 팍팍 느껴짐요~~~ 화이팅을 전합니다~

  • 2023-05-14 21:33

    배움이 윤리가 되어 스며든 글! 읽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 2023-05-17 20:02

    감동…훌륭합니다. 정임합목 양생~ 재미있어요. 잘 읽었어요 👏🤗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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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06:19 | 조회 19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현민
2024.04.17 | 조회 175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150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167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0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경덕
2024.04.02 | 조회 287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모로
2024.03.25 | 조회 30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311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25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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