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독일도착기

현민
2023-01-15 23:46
458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서 삽니다. 사진에서 가장 귀엽게 웃고있는 사람.

 

 

 

독일 도착기

 

 

 

나는 서점을 떠났다. 그리고 독일에 왔다.

 

지극히 사실인 이 문장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내가 정말 충동적으로 떠났으므로. 작고, 지역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들을 다루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서점을, 동천동을 왜 떠났을까? 한국을 왜 떠났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곳에 두고, 스스로 멀어지기를 선택한 것은 왜일까? 등의 스스로 피어오르는 질문들에 마땅히 대답이 될 이야기들을 지금은 쓸 수가 없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에게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부모가 공부하고 결혼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라. 영국이나 미국보다 비교적 유학에 돈을 많이 쓰지 않을 수 있는 복지 좋다는 나라. 페미니즘 문화의 이삼십대 언니들이 많이 유학하고 취업하는 나라.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는 거라고, 대안학교를 다닐 적에 슬퍼하던 내게 부모가 해줬던 말을 기억한다. 독일이라는 땅을 한국과 비교해 대체지나 종착지, 환상의 세계로 여기지는 않을 거다. 백인들의 땅, 니네가 얼마나 잘났냐 하는 마음과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시간 배워왔으니 말이다. 최악과 최선을 내가 떠나온 곳에서 모두 느꼈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냉소와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사는 것이 좋은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겐 있다.

 

그저 나는 집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집이 내 집이 아니고, 태어난 나라도 마땅한 곳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거쳐온 모든 주거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 때마다 어색함을 느꼈던 것처럼. 집이라는 게 세상에 태어났다고, 혹은 찾아 헤맨다고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건 아직도 조금 슬프다. 독일에 오기 전 집을 못 구해서 엄청 슬퍼하는 내게 조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넌 진짜... 집을 찾는 게 네 인생의 화두가 될 것 같애. 여기서 말하는 집이라는 게 단순히 비바람 막아줄 지붕과 벽을 말하는 것이면서도 아니라는 걸 읽는 이들께서 알아주시기를. 그래도 내 친구들도 다 가난하고 집 없고 가족 찾아 삼만리면서도 아름다운 애들이고 걔네가 옆에 있어서 기분이 괜찮다.

 

그래서 독일에 온지 두달이 되었고 나는 아직도 집이 없다. 길거리에 나앉더라도 독일 노숙자가 되라는 친구들의 말을 새기고 도착했지만 집이 없고, 친구가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나를 약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집이 없고,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것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그건 외롭거나 상처받을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 달간 집이 없어 괴로워하고, 친구가 없어 슬퍼하고, 또 친구들을 만나 기뻐하는 시간들을 몇 번 반복해보니 이제는 내가 떠돌기보다는 머물 집이 필요하고, 친구들이 있어야 더 세상에서 잘 노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우와! 이 문장을 쓰고 나니 내가 너무 대견하다.

 

 

 

약간의 존경심이 들만큼 커다란 나무 앞에서 너털너털 웃으며 쓰잘떼기 없는 이야기 나누며 스트레칭 하기

 

 

 

독일에서 만난 프랑스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How can I say ‘Germany’ for korean? (한국어로 독일 뭐라고 말해?)

It’s pronounce like ‘Dok-ill’ (‘독일’이라고 발음함)

What? Why? (엥, 왜?)

그러게. 그럼 프랑스나 스페인은 뭐냐고 묻는데 그건 그냥 프랑스랑 스페인이란다, 라고 대답하면서 검색을 했다.

독일은 영어로는 Germany이지만, 독일어로는 Deutschland인데 고대 중국에서 도이치Deutsch를 덕의지(德意志)로 표기했고, 한걸음 나아가서 덕국(德國)으로 기입했다고 한다. 누가 골랐는지 우연히 너무 좋은 한자다. 그러다가 그게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왔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외래어 표기 방식으로 인해 독일(獨逸)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기 전에는 한 번도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그리워서 떠난 것 같다. 한번도 궁금해 해보지 않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보고 싶어서.

 

 

종종 걷다가 문득 독일이 ‘홀로 독’자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무의식 중에 그래도 같이 사는 게 더 좋은 거라고 오래 편협했던 마음들이 작아지는 때가 이곳에선 있었다. 앞으로 이 곳에는 내가 독일에서 만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올 예정이다. 시작하는 글을 마치며 사랑하는 나의 친구 수련이 미국인 애인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덧붙인다.

 

... In fact, I felt the change linked to the anxiety that I might lose too much.

But change is change. Change is not about losing, but something about changing something. I always want to remember. That the flow should not be tied up. When something attacks me, I have to let it ring, not store it in my body. I need to feel accurate and transparent. I have to look at it simply and refreshingly. Always with a generous heart. I hope so.

... 사실 나는 이 변화가 너무 많은 걸 잃을 거라는 불안감에 연결되어 있어. 하지만 변화는 변화야. 변화는 잃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바꾸는 거야. 언제나 기억하고 싶어. 흐름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걸. 무언가가 나를 공격할 때마다 나는 그걸 내 몸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울리게 두어야 해. 나는 정확하고 투명하게 느낄 필요가 있어. 간단하고 상쾌하게 봐야 해.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러고 싶어.

 

변화는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너에게도, 나에게도 온다. 변화가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왜 이제야 왔냐고 얼싸안아 춤추기도 하고, 너무 놀라 집에 없는 척 발소리를 죽이고 숨기도 한다. 세상엔 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오랫동안 변화라는 걸 맹목적으로 보았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시한 가장 좋은 변화의 방향성을 체화하느라 바빴다. 이제는 ‘변화’라는 상태의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종종 글을 쓰고 나면 타인들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쓴 편지 같은 기분이 든다. 내게 글을 쓰는 건 가장 좋은 마음을 작은 그릇에 조심조심 떠 담아 휘발하지 말라고 몸에 갖다 붙이는 과정이다. 세상을 이해해보겠다고 애쓰다 마음이 자주 극단에 머물렀다. 화나서, 슬퍼서 금방 픽 쓰러져 죽지 않으려면 삶을 유연하게 대하는 몸과 마음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세상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글을 읽고 싶다. 그런 글을 읽으면 살고 싶어지고, 쓰고 싶어지고, 그리고 종종 전하고 싶어진다.

댓글 12
  • 2023-01-16 08:26

    현민아, 겁나 반갑다.
    네 글도, 정말 기대된다^^

  • 2023-01-16 09:04

    오! 현민!!!
    글로 만나도 반갑네~~~

    “내게 글을 쓰는 건 가장 좋은 마음을 작은 그릇에 조심조심 떠 담아 휘발하지 말라고 몸에 갖다 붙이는 과정이다.”

    홀로 독자를 쓰는 독일에서 또 어떤 친구들을 만들지, 어떤 글들을 담을지 궁금하네요! 맘으로 응원하고 있을께요!!!

  • 2023-01-16 09:16

    이국에서의 삶.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버뜨 백만 가지의 이유로 고이 묻어 놓았을 그 삶을 선택한 현민을 응원합니다. 글을 읽는동안 저역시 독일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세상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기대하며…

  • 2023-01-16 09:45

    오~ 현민, 반갑군, 반가워!!
    찬찬히 들여다 보는 '변화'의 이야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게.

  • 2023-01-16 10:35

    제일 화나게 하는 문장이자 제일 설레게 하는 문장이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인데 ᆢ 현민의 글 많이 기다려질거같아요.
    어서 빨리 편안한 '현민의 집'에서 다음글이 써질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 2023-01-16 11:15

    서점을 할때부터 나는 니 글이 좋아졌어. 너의 글이 끊기지않고 계속되길 바래. 다음편을 기다릴게!!

  • 2023-01-16 12:14

    현민~~먼 땅에서 아직 집이 없는, 그래도 씩씩한 그대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응원해 ~~~~

  • 2023-01-16 12:36

    식물원에서, 우주소년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던 현민과는 또 다른 독일에서의 현민! 반가워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글 잘 읽었어요. 다가올 '변화'들과 '좋은 마음'들이 휘발되지 않고 매달 잘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 2023-01-16 12:49

    역시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글 만한 게 없구나. 난 타지에 가서 쓴 너의 글을 보고 나서 널 더 이해하게 됐네. 항상 응원하고 있어~!

  • 2023-01-16 22:26

    아니 댓글 다 너무 훈훈해요 아악 감사해요

  • 2023-01-30 09:39

    현민의 글과 사진을 보니 현민이 보고싶어지네요~ 이런 멘트를 날릴만큼 자주 보고살지 않았는데, 갑자기 든 이 달달구리한 마음은 뭘까요?ㅎㅎ
    항상 응원합니다.

  • 2023-01-30 18:07

    저도 현민과 30여분 같이 있었던 경험이 ㅎㅎ
    그래서인지 더 반갑네요^^
    연필 꾹꾹 눌러 쓴듯한...생각이 오롯이 담긴 글인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가슴속에 차곡차곡 들어오는 글입니다^^
    홀로 타국생활...다시없을 귀한 경험일거에요!
    응원합니다~♡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 필수)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3.3.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예)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여성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 공부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뻐국뻐국~~ 00하세요. 00~~ " 아침밥이 준비되었음을 뜻하는 기계음이 들려오자 임수가 놀라며 물었다. "오잉? 저 소리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뭐? 저 소리 첨 들었어? 전기밥솥에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소리잖아. 나는 3년째 듣고 있는데..." "난 처음듣는 것 같오." "뭣이라 -.-"   2명만 같이 살아도 공동체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2명만 되어도 공동체다." 라고 말한다. 임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말의 찐 의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나는 외동이다. 것두 성 감별 낙태가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 귀하디 귀했던 '무남독녀 외동'. 당연지사 자라오면서 먹는 것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고 옆에서 부대끼는 사람 역시 없었다. 직장 초 특수했던 공동생활을 제외하면 죽~ '혼자' 살아온 셈이다. 그랬으니, 길게는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3년 전 함께 살 결심을 하고 합을 맞춰볼 요량으로 잠시 임수의 숙소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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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00:30 조회 6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그 쪽’으로 가는 길       새벽이생추어리에 가면 새벽이와 잔디 뿐만 아니라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한다. 식사를 준비하며 고구마, 비트, 호박, 보리, 서리태, 시금치 등의 식재료를 손질하고, 물그릇에 미강을 넣고 손으로 휘휘 저어 섞어준다. 새벽이와 잔디의 분비물이 묻은 밥그릇과 물그릇을 설거지하다 보면 물이 옷에 튀고, 덩굴 잎을 채취하느라 잎 사이를 헤집다 보면 씨앗이 옷에 달라붙고, 진흙 위를 걷다 보면 흙탕물이 바지에 묻어 얼룩이 진다. 돌봄을 마치고 나면 내 몸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은밀한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작은 아지트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귀가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 더운 여름 날 돌봄활동을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이 내 몸에 들러붙는다. 나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갖 존재들과 긴밀해진다. 그 존재들이 땀샘을 통해 내 몸 밖으로 나온 노폐물과 섞이고 반응하면 특유의 냄새가 만들어진다. 돌봄 후 귀갓길 지하철에서 하차하려고 일어난 줄 알았던 내 옆자리 사람이, 나와 멀리 떨어진 좌석으로 이동(피신)해서 앉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땀으로 젖은 셔츠를 살짝 들어 코에 가져다 대었더니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때 나는 부끄러움보다는 어떤 사이-존재(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로서 새로운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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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3.20 조회 328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말하며 사는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기분   독일에 산지 네달이 되었다. 마냥 놀러 온 외국인이기엔 가본 데가 좀 많고, 로컬이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안 해본 게 많은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면 간판에 있는 광고 문장 정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에 이따금씩 기뻐하며 지냈다. 인터네셔널 셰어하우스에 사느라 영어는 더 늘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한국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은 종종 까먹는다. 어느 날에는 내가 발을 걸치는 언어들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슬퍼하다가, 번역가의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보며 지낸다.   모국어를 영어로 Mother tongue이라고 하듯이,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난하다. 바닥이 없는 땅에 집을 짓는 기분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한다. 틀리며 감각을 얻는 것이 불가피하다. 같은 뜻을 전하고 싶어도 나의 모국어로 문장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이 언어로 문장을 이루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때는 문장을 읽고 이 말들이 각각 무슨 뜻인지는 알아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코스가 끝날 때 쯤에는 반에 앉아있는 수강생 모두가 자신이 다음 단계로 가도 괜찮을지 의심에 가득 차...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말하며 사는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기분   독일에 산지 네달이 되었다. 마냥 놀러 온 외국인이기엔 가본 데가 좀 많고, 로컬이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안 해본 게 많은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면 간판에 있는 광고 문장 정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에 이따금씩 기뻐하며 지냈다. 인터네셔널 셰어하우스에 사느라 영어는 더 늘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한국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은 종종 까먹는다. 어느 날에는 내가 발을 걸치는 언어들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슬퍼하다가, 번역가의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보며 지낸다.   모국어를 영어로 Mother tongue이라고 하듯이,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난하다. 바닥이 없는 땅에 집을 짓는 기분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한다. 틀리며 감각을 얻는 것이 불가피하다. 같은 뜻을 전하고 싶어도 나의 모국어로 문장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이 언어로 문장을 이루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때는 문장을 읽고 이 말들이 각각 무슨 뜻인지는 알아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코스가 끝날 때 쯤에는 반에 앉아있는 수강생 모두가 자신이 다음 단계로 가도 괜찮을지 의심에 가득 차...
현민 2023.03.16 조회 268
기린의 걷다보면
은영들, 물소리길을 걷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수에 나선 물소리길    대동강 물도 녹으며 봄이 온다는 우수(雨水)다. 물소리길의 강물도 다 녹았을까. 그래서 양평 물소리길을 골랐다. 양평 주변을 흐르는 강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인데 총 여섯 개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고, 경의중앙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재작년 1월에 걸었을 때는 혼자였는데 이번에는 동행을 찾았다. 인문약방 프로그램 <일욜엔양생>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은영님, 나와 이름이 같다.   죽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해서 아신역까지 두 시간, 검색은 그랬다. 하지만 실제 경의중앙선은 지나가는 기차를 보낸다고 5분씩 대기하는 역이 몇 개나 되었다. 30분 지각,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은영님을 만났다. 우수라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아신역을 나서니 부슬부슬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비오다 오후 맑음이란 일기예보에 우산은 챙겼다. 둘레길에 들어서니 우산을 든 손이 시렸다. 장갑은 안 챙겼다. 방수가 되는 등산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낀 은영님은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같이 세미나를 했을 때도 누가 뭔가 필요해서 찾는가 하면 어느 새 챙겨 내놓던 은영님이었다. 그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좀 신기했다.     <은영님도 나도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
은영들, 물소리길을 걷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수에 나선 물소리길    대동강 물도 녹으며 봄이 온다는 우수(雨水)다. 물소리길의 강물도 다 녹았을까. 그래서 양평 물소리길을 골랐다. 양평 주변을 흐르는 강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인데 총 여섯 개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고, 경의중앙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재작년 1월에 걸었을 때는 혼자였는데 이번에는 동행을 찾았다. 인문약방 프로그램 <일욜엔양생>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은영님, 나와 이름이 같다.   죽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해서 아신역까지 두 시간, 검색은 그랬다. 하지만 실제 경의중앙선은 지나가는 기차를 보낸다고 5분씩 대기하는 역이 몇 개나 되었다. 30분 지각,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은영님을 만났다. 우수라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아신역을 나서니 부슬부슬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비오다 오후 맑음이란 일기예보에 우산은 챙겼다. 둘레길에 들어서니 우산을 든 손이 시렸다. 장갑은 안 챙겼다. 방수가 되는 등산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낀 은영님은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같이 세미나를 했을 때도 누가 뭔가 필요해서 찾는가 하면 어느 새 챙겨 내놓던 은영님이었다. 그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좀 신기했다.     <은영님도 나도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
기린 2023.03.05 조회 224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연지 3년이 되어간다. 무슨 일이든 3년을 잘 넘기면 그 다음 3년을 또 기약해볼 수 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년의 마디를 기점으로 순환하듯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뭐든 어설프고 시행착오도 많고 아옹다옹 다툼도 많지만 더불어 아직 고착화되지 않은 역동성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 연재를 시작한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다독이며 봄의 마디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이름의 연원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의 분들은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한다. 하우스 빼고는 정임합목, 양생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양생’은 요즘 인문약방에서 미는 단어인데 생명력 넘치는 삶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정임합목’은 사주명리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 중 하나이다.   동양에서는 세상을 음양오행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성분이고 이들은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 열 가지 하늘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사람도 열 가지 기운 중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데, 무사는 음화(陰火)인 정화(丁)이고, 루틴은 양수(陽水)인 임수(壬)이다. 정화(丁)은 작지만 따뜻한 불이고 임수(壬)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큰물이다. 정화(丁)와 임수(壬)은 섞이지...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연지 3년이 되어간다. 무슨 일이든 3년을 잘 넘기면 그 다음 3년을 또 기약해볼 수 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년의 마디를 기점으로 순환하듯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뭐든 어설프고 시행착오도 많고 아옹다옹 다툼도 많지만 더불어 아직 고착화되지 않은 역동성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 연재를 시작한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다독이며 봄의 마디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이름의 연원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의 분들은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한다. 하우스 빼고는 정임합목, 양생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양생’은 요즘 인문약방에서 미는 단어인데 생명력 넘치는 삶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정임합목’은 사주명리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 중 하나이다.   동양에서는 세상을 음양오행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성분이고 이들은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 열 가지 하늘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사람도 열 가지 기운 중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데, 무사는 음화(陰火)인 정화(丁)이고, 루틴은 양수(陽水)인 임수(壬)이다. 정화(丁)은 작지만 따뜻한 불이고 임수(壬)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큰물이다. 정화(丁)와 임수(壬)은 섞이지...
루틴 2023.02.28 조회 353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우다다, 우다다       잔디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두번째 입주자다. 나는 잔디가 실험용 돼지로 키워지다가 새벽이생추어리에 입주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새생이(운영활동가)로 오래 활동해온 무모의 목소리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고은   새벽이는 2020년 여름 종돈장에서 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잔디는 언제 <새벽이생추어리>에 오게 되었나요? 무모   잔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가을이었어요. 새벽이가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의약 회사에 있었던 실험 동물 돼지가 탈출하려다가 기구 같은 게 쓰러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요. 병원에서 잔디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회사에 할당된 예산이 있었겠죠? 수술하고 나서도 빨리 회복이 안 되니까 병원에서 안락사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잔디가 <새벽이생추어리>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잔디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2020년 가을, 겨울 동안 실내 생활을 하다가 2021년 2월 에 <새벽이생추어리>에 왔어요. 그때는 잔디도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이빨도 더 많이 튼튼 해지고 그랬던 상황이었어요.   - 김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무모 인터뷰 중                   돼지와 돼지   작년 7월에 처음 만난, 무더운 여름 날의 잔디가 떠오른다. 하우스 문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우다다, 우다다       잔디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두번째 입주자다. 나는 잔디가 실험용 돼지로 키워지다가 새벽이생추어리에 입주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새생이(운영활동가)로 오래 활동해온 무모의 목소리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고은   새벽이는 2020년 여름 종돈장에서 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잔디는 언제 <새벽이생추어리>에 오게 되었나요? 무모   잔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가을이었어요. 새벽이가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의약 회사에 있었던 실험 동물 돼지가 탈출하려다가 기구 같은 게 쓰러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요. 병원에서 잔디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회사에 할당된 예산이 있었겠죠? 수술하고 나서도 빨리 회복이 안 되니까 병원에서 안락사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잔디가 <새벽이생추어리>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잔디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2020년 가을, 겨울 동안 실내 생활을 하다가 2021년 2월 에 <새벽이생추어리>에 왔어요. 그때는 잔디도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이빨도 더 많이 튼튼 해지고 그랬던 상황이었어요.   - 김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무모 인터뷰 중                   돼지와 돼지   작년 7월에 처음 만난, 무더운 여름 날의 잔디가 떠오른다. 하우스 문을...
경덕 2023.02.20 조회 579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경계의 포용성     독일의 이모들   쿠키이모는 독일에 산다. 작년 나는 잠시 서점을 쉬고 여름을 쿠키이모 집에서 보냈다. 떠나고 싶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서 머물러도 되는 곳에 갔던 것 같다. 이모와 첫 식사를 마친 후, 이모는 나에게 흡연 여부를 물었고 그렇게 우리는 맞담배를 피며 여름을 한 집에서 보냈다. 이모와 나는 술과 담배, 한국 음식과 강아지를 좋아했다. 그 여름 동안 나는 어떤 감각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의 적당함을 알아가는 기분. 과하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느낌.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이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곳에 오래 산 한국인 이모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대체로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국제결혼은 너무 힘들다고 하더니 곧 이어서 너도 독일인이랑 결혼하라는 말들을 했다. 그때는 음 그래서 결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어린데 결혼 얘기를 하시네... 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이모들은 모두 내 나이 때 결혼했고, 국제결혼이 그들 모두에게 삶의 큰 사건이었을 것 같다.   이모들은 한국어로 말했지만 표준 한국어와는 발음이 달랐다. 독일어 단어들도 자주 섞여 있었다. 한국어를 아예 잊어 독일어만 쓰는 이모도 있었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경계의 포용성     독일의 이모들   쿠키이모는 독일에 산다. 작년 나는 잠시 서점을 쉬고 여름을 쿠키이모 집에서 보냈다. 떠나고 싶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서 머물러도 되는 곳에 갔던 것 같다. 이모와 첫 식사를 마친 후, 이모는 나에게 흡연 여부를 물었고 그렇게 우리는 맞담배를 피며 여름을 한 집에서 보냈다. 이모와 나는 술과 담배, 한국 음식과 강아지를 좋아했다. 그 여름 동안 나는 어떤 감각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의 적당함을 알아가는 기분. 과하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느낌.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이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곳에 오래 산 한국인 이모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대체로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국제결혼은 너무 힘들다고 하더니 곧 이어서 너도 독일인이랑 결혼하라는 말들을 했다. 그때는 음 그래서 결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어린데 결혼 얘기를 하시네... 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이모들은 모두 내 나이 때 결혼했고, 국제결혼이 그들 모두에게 삶의 큰 사건이었을 것 같다.   이모들은 한국어로 말했지만 표준 한국어와는 발음이 달랐다. 독일어 단어들도 자주 섞여 있었다. 한국어를 아예 잊어 독일어만 쓰는 이모도 있었다....
현민 2023.02.15 조회 282
요요의 월간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불교 공부도 철학 공부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10년은 불교세미나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철학공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명상일기를 쓰다   아침 명상 후에 명상 일기를 쓴다. 가끔씩 메모를 하다가 명상일기를 쓴 지 반년이 좀 넘었다. 명상일기와는 좀 다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서 기록하는 것도 있다. 하나는 아버지 돌봄 일지다. 2년 전 어머니 병상일지로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돌봄 일지가 되었다. 간혹 몸이 아플 때마다 기록하는 몸상태 일지도 있다.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없었던 긴장성 두통과 어깨 통증, 눈 뻑뻑함, 수면 패턴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써놓고 있다. 명상도, 아버지의 치매와 건강상태도, 내 몸의 컨디션도 기록을 들여다보면 변화추이를 알 수 있어서 나름 유용하다.             사실 나는 일기나 가계부 같은 사적인 비망록 남기기를 즐겨하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반추하는 회고형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도 어쩌다 다른 사람이 찍어 준 사진 이외에는 거의 없다. 카메라나 캠코드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기록과 보관에 무심한 것은 정도가 지나쳐 친한 친구들과의 몇 번의 해외...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불교 공부도 철학 공부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10년은 불교세미나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철학공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명상일기를 쓰다   아침 명상 후에 명상 일기를 쓴다. 가끔씩 메모를 하다가 명상일기를 쓴 지 반년이 좀 넘었다. 명상일기와는 좀 다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서 기록하는 것도 있다. 하나는 아버지 돌봄 일지다. 2년 전 어머니 병상일지로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돌봄 일지가 되었다. 간혹 몸이 아플 때마다 기록하는 몸상태 일지도 있다.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없었던 긴장성 두통과 어깨 통증, 눈 뻑뻑함, 수면 패턴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써놓고 있다. 명상도, 아버지의 치매와 건강상태도, 내 몸의 컨디션도 기록을 들여다보면 변화추이를 알 수 있어서 나름 유용하다.             사실 나는 일기나 가계부 같은 사적인 비망록 남기기를 즐겨하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반추하는 회고형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도 어쩌다 다른 사람이 찍어 준 사진 이외에는 거의 없다. 카메라나 캠코드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기록과 보관에 무심한 것은 정도가 지나쳐 친한 친구들과의 몇 번의 해외...
문탁 2023.02.10 조회 25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여곡절 무릎소동     무릎이 부어도    언제부턴가 한약 포장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쌍화탕을 한 팩씩 정렬하는 일을 즐겼다. 푸짐한 뱃살 때문에 쪼그리고 앉는 자세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을 지나, 어쨌든 앉아지는 가능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뱃살들이 다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고 아주 약간 얇아졌을 뿐이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른쪽 무릎이 좀 더 삐걱댄 달까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 아침, 샤워를 하다가 왼쪽 무릎과 비교해서 현저히 부어있는 오른쪽 무릎을 발견했다. 당장 검색부터 했다. 무릎에 물이 찼다는 신호란다. 무릎의 염증이라는 진단과 물이 찼다는 표현 차이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몇 번을 읽었다. 병원을 가야했다.      출근해서 오전 일과를 마무리 짓고 나니 12시쯤 되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슬그머니 약국을 나섰다. 침을 잘 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 동네 한의원에 갔다. 정형외과를 가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고 침이 더 빨리 붓기를 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의사는 무릎 상태를 진단한 후 검색으로 읽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퇴행성이냐고 물었더니 진단으로 봐서는...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여곡절 무릎소동     무릎이 부어도    언제부턴가 한약 포장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쌍화탕을 한 팩씩 정렬하는 일을 즐겼다. 푸짐한 뱃살 때문에 쪼그리고 앉는 자세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을 지나, 어쨌든 앉아지는 가능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뱃살들이 다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고 아주 약간 얇아졌을 뿐이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른쪽 무릎이 좀 더 삐걱댄 달까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 아침, 샤워를 하다가 왼쪽 무릎과 비교해서 현저히 부어있는 오른쪽 무릎을 발견했다. 당장 검색부터 했다. 무릎에 물이 찼다는 신호란다. 무릎의 염증이라는 진단과 물이 찼다는 표현 차이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몇 번을 읽었다. 병원을 가야했다.      출근해서 오전 일과를 마무리 짓고 나니 12시쯤 되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슬그머니 약국을 나섰다. 침을 잘 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 동네 한의원에 갔다. 정형외과를 가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고 침이 더 빨리 붓기를 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의사는 무릎 상태를 진단한 후 검색으로 읽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퇴행성이냐고 물었더니 진단으로 봐서는...
기린 2023.02.05 조회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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