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의 암 이야기4> 방심하면 안 되는 방사선 치료
문탁
2023-04-19 09:47
236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어른들을 위로하는 역할까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여러 집안 행사에 참석 못한다는 것은 코로나 정국이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많이 모이지 말라는 정부의 지침에 잘 따르는 척 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갑자기 죽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상처가 훨씬 심하다고 한다. 환자를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수술 마치고 나오는 날,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를 병원에 옮기고 검사하는 정신없는 순간에 부모님은 그동안 내가 항암하고 수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 울고불고 하는 시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었다. 다행이 아빠는 곧 나으셨지만, 엄마는 그간 혼자 고생한 나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셨다. 미리 안 알리길 잘했다!
노라찬방시절, 어느날 세프로 활약해주신 어머니
수술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방사선치료와 12차의 후함암이 시작되었다. 방사선 치료는 병원에 따라, 암 기수나 조사된 방사선의 양에 따라 회수가 조절된다. 17회에서 30회까지 다양하다. 난 19번 받았다. 주말을 뺀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가서 방사선기계 안에 누워 2~3분간 받는다. 매일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서 받는 환자들도 많다. 잠시 누웠다 온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차수가 지날수록 피곤함이 더해졌다.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치료였다! 치료기간 동안 단백질 식단으로 잘 먹어야 하는데 밥맛도 없고, 기력도 없어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일주일 후부터 방사선을 쪼인 가슴은 화상으로 따끔따끔 했는데, 치료 후 화상으로 거뭇거뭇해진 부위를 병원에서 권하는 로션으로 매일매일 발라야 했다. 몇 달 후 방사선폐렴이 오는 경우도 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난 그 기간 영광스럽게도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방사선 치료와 동시에 3주 간격으로 진행되는 12번의 후항암이 시작되었다. 정말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후항암은 ‘표적항암제’라는 신약으로 하기에 부작용은 적다. 관절통, 기력 없음, 심장에 큰 무리, 뭐 이정도! 선항암이 안겨준 부작용이 너무나 컸기에 후항암은 거져먹기였다. 나는 표적항암제로 ‘퍼셉틴’과 ‘허제타’ 두 종류를 맞았다. 표적항암제는 암이 있는 세포를 표적으로 공격하여 제거한다. 유방암 환자 수가 엄청 늘다보니 여러 연구 끝에 성과 좋은 항암제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실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들어간다. 보통 암환자는 ‘중증환자등록’을 하여 치료비의 5%만 내면 된다. 근데 내가 맞아야 하는 함암제는 비보험이다. 한번 맞을 때 350만원이 든다. 기본 코스가 18번인데 다 맞으면 7000만원 가까이 된다. 재발율을 6%대로 낮춰 준다는 말에 치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만약 수술에서 완전관해가 아니라 암세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한 번에 700만 원 짜리 ‘케싸일라’를 맞아야 한다. 그건 맞는데 거의 1억이 넘는다.
"이윤보다 생명을!!" 2002년의 그 유명한 글리벡 투쟁
그런데! 카페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 ‘신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병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제도를 설명하자니 너무 복잡해서 패스!) 그 병원으로 옮기면 한 번 치료에 20만원만 내면 된다. 엄청난 절약이다! 남편은 수술 잘해준 병원을 배신(?)하는 거라며 병원 옮기는 것에 비협조적이었다. 의사인 지인은 ‘의사도 환자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치료받는 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옮기라고 권했다. 그래서 난 후항암 기간 동안 가족들에게 ‘엄마 돈 벌어 올께!’ 말하며 신포괄수가제 병원으로 항암 하러 갔다. 그런데 이 제도가 올해 없어졌다. 나는 치료가 끝나 다행이지만 다른 환우들은 아직 고액의 치료비에 힘들어 한다. 카페커뮤니티에는 종종 환우들이 힘을 모아 여러 신약들의 보험수가 적용을 위해 서명을 받거나 시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얼마 전 그 비싼 ‘케싸일라’가 보험적용 약물로 인정되었다! 그들의 투쟁으로 지금 내가 보험 적용된 항암제를 맞고 생명을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다음 환자들을 위해 서명했다!
다음엔 돈 제일 많이 들었던 <재활치료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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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의 암 이야기는, 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한달>에 2022년7월부터 6개월간 연재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홈페이지 <자기돌봄의 기술>에 Re-Play 합니다.
1편: "우리 엄마 아미래"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0&mod=document
2편: 항암'산'을 넘다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1&mod=document&pageid=1
3편: 수술이 가장 쉬었어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9&mod=document&pageid=1
4편: 방심하면 안 되는 방사선 치료
5편: 돈 많이 든 '재활치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1&mod=document&pageid=1
6편: 사람이 아주 겸손해질 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2&mod=doc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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