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협 요양원에서 배우다 / 손은희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엄마는 허리 디스크로 거동이 힘드셨고 아빠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음에도 불구하고 큰 아들, 큰 며느리로써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고, 작은 아빠와 고모들은 할머니에 대한 안쓰러움과 서운함을 표현하시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할머니 건강에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연명 치료에 대한 가족들의 의사는 무시되었고 의사들은 기적처럼 살려 놓으셨다. 코로나 시기에 치러진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오히려 화합의 장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무게의 가벼워짐이 그런 분위기를 만든 듯하다.
세상은 변했고 돌봄의 형태도 달라졌다고 하나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돌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일찍 혼자가 되신 시어머님은 아들을 남편 대신 의지하고, 시누이들도 어머니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아들과 며느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머니의 3차례 수술과 입원으로 인한 병간호는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몫으로 돌아왔고, 평상시에 어머님께서 자신의 말년에 대해 이야기 하실 땐 요양원은 갈 곳이 못된다며 우리가 모셨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친정에서도 엄마, 아빠가 아프시면 나에게 주로 전화를 하시고 상담을 하신다. 의료시설이 집중된 수도권에 살기 때문에 부모님들을 모시고 병원에 자주 다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큰 딸, 큰 며느리로써 자식이 책임져야 할 도리와 책임, 부담감이 나를 압박한다.
2. 일본의 노년기 삶을 엿보다.
생협 이사로 활동할 때 나는 일본 도쿄 협동조합 연수를 다녀왔다. 도쿄 협동조합은 먹거리를 판매하는 매장중심의 사업뿐만 아니라 조합원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지자체와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여러 형태의 돌봄 사업을 하고 있었다.
견학했던 곳 중 하나는 2층 건물에 작은 정원이 있는 따뜻한 느낌이 나는 요양원이다. 1층은 거주자들의 공간, 2층은 데이 케어 센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엔 거주자들이 지내는 방이 있었는데 거주자의 요구에 따라 한 방에 1명이나 2명이 생활하고, 방마다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그 이유는 노인분들에겐 배변 활동이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고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에 존중해주는 의미라고 했다. 지자체와 예산문제로 인해 갈등이 있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어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한다. 부모님 병간호하던 시절 건강한 나도 병원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병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가장 신경 쓰이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어르신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에선 어르신들이 마작을 즐기시거나 이야기를 나누시는 등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계셨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노래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시각 장애인이셨는데 이는 단순히 노인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상생 프로그램임을 알 수 있었다. 한쪽엔 언제든지 누워서 쉴 수 있게 이부자리를 펴 놓은 방이 있었고, 그 옆엔 간호사한테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또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관한 부분에서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실 때 시신을 옮기면서 모두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는 내가 죽었을 때도 몰래 시신을 옮기는 일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나를 애도하고 가는 길을 기도해준다는 의미로 죽음에 대한 불안이 적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같이 간 일행 중에 우리나라 요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우리나라 요양원은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을 보는 자체가 상처가 되고 상심이 크실까 우려스러워 모두 보지 않을 때 재빨리 시신을 옮긴다고 한다. 관점의 차이가 어떻게 행위에 발현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양원 외에도 협동조합에서 하는 돌봄 사업 중에 마을 마실방을 운영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방식은 조합원 중에서 자신의 집에 남는 방 하나를 일정 시간동안 노인분들의 마실방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사시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편히 와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신단다. 무엇을 하고자 하면 먼저 공간을 생각하게 마련이고 임대나 신축을 고민하게 되면서 선뜻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잉여 공간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의외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돌봄은 어린이집과 주간 노인 보호센터를 1층과 2층에 두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동화나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어르신들에게 노래와 율동을 알려주며 관계를 맺는 형태이다. 노인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려와 예절을 배울 것이고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랄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내가 연수를 다녀온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에서 노인 돌봄에 대한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예로 나라코프 협동조합의 안심케어 시스템이 있다. 나라코프 협동조합에서 시행하는 안심케어 시스템은 어르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살롱, 식사 모임등을 통해 등급을 받지 않은 건강한 사람까지 고립되거나 탈락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게 하는 지원시스템이다. 나라코프 협동복지회 기본케어 10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몇가지가 인상 깊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분들은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휠체어를 탄 채 생활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케어 방침 중 하나가 ‘바닥에 다리를 대고 의자에 앉는다’ 라는게 있다. 이 방침을 지키려면 이동할 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 그리고 ‘기저귀를 사용하지 않고 변기에 앉는 것’ 또한 노인분들의 수치심을 감소시키고 운동성과 활동성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보호사들의 품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케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양센터에서는 기피하고 있는 부분이다.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우리나라 보호사들에게 이런 케어를 감히 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요코하마 시에 위치한 복지 생협 ‘클럽 후쿠시’(Club FUKUSHI)의 요양시설 중 하나인 데이니파센터(Day にっぱ Center-Day Nippa Center)
3. 나는 독박 돌봄을 넘어설 수 있을까?
며칠 전 엄마가 우울해하신다는 막내 동생의 전화를 받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내가 왜 그렇게 나는 돌보지 못하고 며느리로써의 책임감으로만 살았을까?’ 하는 억울한 감정과 유일한 피붙이라며 서로 애틋하게 챙겨주던 외삼촌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월이 원망스럽다며 울먹이셨다. 나이 들어도 치유받지 못한 엄마의 삶이 애잔했고 그나마 엄마처럼 살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나에게도 엄마 삶의 잔재처럼 가지고 있는 부담감에 답답하기도 했다. 엄마가 나이 들면서 더욱 외로워지고 무기력해질텐데 가깝게 살지도 않고 각자의 삶에 바쁜 자식들이 얼마나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우리 부모님들의 돌봄에 대한 고민에서 머무는게 아니라 나와 남편의 노후에 대한 생각도 미리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노후 생활을 하는 생각할 때 가장 쉽게 생각나는 곳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일 것이다.
사설에서 운영하고 있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먹는 것, 자는 것 외에 쉬면서 치료하는 어떤 행위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불상사가 생기거나 사고가 생기면 3~4개월 정지를 당하는 엄격한 처벌 때문에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위주로 경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업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들의 낮은 처우와 복지로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나쁘게 형성되어 있어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에 다녀오면서 지역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지역에서 돌봄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부모님도 모시고 나도 나이 들면 갈 수 있는 요양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사회적 협동조합과 연계된 노인 돌봄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11월 한국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회원 근거 자료를 보면 현재 10개 정도의 노인 돌봄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울림 두레 돌봄센터는 돌봄이 필요하지만 장기 요양 등급을 받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한 ‘인생 응원’ 프로그램이 있다. 인생 응원 프로그램은 외부활동을 병원이나 외출을 함께 하는 동행 서비스, 수술 후 회복, 퇴원 등으로 생활에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는 분들을 위한 단기 지원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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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요양원 중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지인의 소개를 받고 안산의 꿈꾸는 집 요양원 시설장을 역임하신 분과 통화를 했다.
“이곳은 이용자 중심 즉, 어르신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보호자 간담회를 열어 어르신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던지 직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하는 방향을 지향하기 위해 수익 발생을 zero로 맞추고 있어 대기자들도 많은 상황이예요. 어르신들의 외출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한 번 견학을 오면 좋을 것 같아요.”
막막함과 불안한 나의 미래에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느낌이다. 아직은 자신 없고 망설여지지만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려 한다.
저도 아흔이 넘으신 시부모님과 팔십대 후반이신 친정부모님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직까진 건강하시지만 언젠가 닥칠 돌봄 문제,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하나의 오랜 생각을 실천으로 이어가는 여백님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힘들게 찾아온 시즌1의 시간에서 부디 반짝이는 무언가를 많이 얻었기를 ᆢ 힘내시오 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