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화해하기 / 김미정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식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난다. 애석하게도 어머니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야 말이다.
누군가에 대한 애도는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보부아르의 글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내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엄마의 죽음. 그 순간에 가서야 느낄 것 같은 후회나 반성을 미리 경험한 것과도 같았다. 과연 내가 엄마라는 존재 자체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엄마의 삶에 대한 애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엄마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해 보고 싶었다.
엄마라는 커다란 온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무섭고 어려웠다. ‘엄마’라는 단어는 소리내어 읽기만 해도 따뜻함, 포근함, 그리움, 애틋함을 연상하게 했지만, 현실에서의 엄마는 많이 달랐다. 유년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나를 많이 혼내고 때렸다. 엄마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자녀들이 움직여주길 바랐고, 우리 세 자매는 그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특히 엄마는 나에 대한 성적 기대치가 높은 편이었고, 엄마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쳤을 때는 체벌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난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괜히 말이라도 잘못해서 엄마의 기분을 거스를까 싶어서 조심하던 때가 많았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엄마가 나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상 그때의 엄마는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특히 장녀인 나에게는 엄마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7살에 초등학교 입학한 나는 키도 작고 많이 말라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엄마가 등굣길 책가방을 직접 들어주셨다. 중학생일 때는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데리러 와서 학원까지 데려다주었고, 항상 학원 가는 길에 내가 먹을 간식을 꼭 챙겨오셨다. 매년은 아니었지만 내 생일에는 반 친구들을 초대해서 직접 만든 맛난 음식으로 축하파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내가 장녀여서인지 아니면 체력이 약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세 딸들 중에 나를 가장 우선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물질적이든 재정적이든 남들이 봤을 때 부족함이 없어 보일 정도로,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지원을 거의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처럼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엄마가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해줬으면... 조금 더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줬으면...하는 바람이 늘 있었지만, 이런 나의 솔직한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우리 모녀간의 대화에는 정보의 공유가 있을 뿐, 감정의 교류는 극히 드물었다. 엄마는 당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는데, 말로 풀어가기 보다 다른 대안책을 통해 감정을 전달했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한 일이 있을 때는 내가 사고 싶었던 옷이나 가방을 사주는 등 물건이 감정을 대체했었다. 그렇게 난 무뚝뚝한 엄마에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길들여졌다.
엄마, 자신을 잃어버리다
2017년 여름은 우리 가족에게 아픈 시간으로 기억됐다. 그 무렵 엄마는 우울증을 동반한 갱년기를 맞이하면서 심적으로 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초기 증상은 가벼운 위장장애로 시작됐다. 애꿎은 소화기관을 탓하며 여러 검사를 해봤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엄마는 예전의 체력을 회복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속 울렁거림과 구토증상이 갈수록 심해져 거의 하루종일 누워있는 날이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향했던 곳은 신경정신의학과였다. 우울증 진단과 함께 신경안정제를 드시고 나서야 엄마는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했다.
엄마는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복용을 중단하기 일쑤였다. 엄마의 컨디션은 하루하루가 들쑥날쑥이었고,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도 힐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양차 강원도에서 몇 주 묵게 된 엄마는, 자신만의 휴식시간을 갖게 되니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주셨다. 그렇게 걱정스런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던 어느 날,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응급실에 계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예상치 못했던 엄마의 자살 시도. 강원도에서 엄마는 주변 사람들이 없었던 틈에 과도로 당신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얼마나 당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으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예전의 엄마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누구보다도 강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픈 후의 엄마는 이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잘 드시지 못해 살도 많이 빠지고 축 늘어진 모습. 외적인 변화도 컸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텅 비어있는 듯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도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돼.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엄마조차도 자신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는 그 말이 참 아프게 들렸다.
난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우울증이라는 병이 주된 원인이라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아주 편안한 죽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지난 삶을 다시 그려보는 부분을 통해, 중간중간 과거의 엄마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엄마가 걸어온 삶에 대해 돌이켜보거나 이해해보려 한 적이 별로 없었다. 보부아르의 어머니처럼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던 것”(p.58)은 아니었을까. 엄마는 조금씩 쌓여온 분노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뒤틀리고 훼손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gettyimagesbank
엄마, 가족에게 헌신하다
엄마는 22살의 어린 나이에 첫째인 나를 낳았다. 내 기억에 엄마가 부끄러워한 것 중 하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주변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실제 나이를 속이곤 하셨다. 결혼 초기에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는 잘 챙겨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빠는 어려운 집안형편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다. 나와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돌보는 것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성실하게 일에만 전념한 대신 나와 동생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은 함께 공유할 수 없었다.
아빠는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편이었다. 당신의 역할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전부였다. 집안 살림이 풍족해지고, 아빠가 일궈낸 사업이 번창해갈수록 아빠는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아빠의 자부심은 가끔 왜곡되어 표현되기도 했는데, 그 대상은 딸들보다는 주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넌 내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있어서 좋겠다’는 둥, 엄마는 자신의 헌신이 남편에 의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는 부당한 대우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아빠는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신의 말에 아내는 물론 딸들도 고분고분했으면 했다. 딸들이 못마땅하게 행동하면 아빠는 그 화살을 엄마에게 돌렸다. 집에서 뭐했냐며, 네가 어떻게 했기에 애들이 저러냐며, 엄마는 억울하고 분했지만 아빠에게 맞설 수 없었다.
엄마 역시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밖에 없었다.(p.47) 시대적으로 규정되어 왔던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다. 어린 나이에 형성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엄마에게 현실적인 안정감은 주었지만, 권위적인 남편과 의존적인 딸들은 정신적인 억압과 속박으로 작용했다. 가족을 위한 엄마의 희생은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다. 딸들조차도 엄마의 헌신을 의미있게 생각하지 못했다. 젊고 건강했을 때의 엄마는 당신이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신체적으로 이에 맞설 힘이 부족해진 순간이 오자 엄마는 거대해진 분노를 다스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의 삶을 이해하다
결혼하고 딸을 출산하면서 나는 비로소 엄마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키웠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나는 엄마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었을까? 여전히 나에게 엄마는 약간은 어렵고 불편한 존재였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가했던 언어적, 신체적 체벌은 지금까지도 내게 피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에 대한 애도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고, 어머니와의 연대와 화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책을 계기로 나도 엄마와의 진정한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지나간 여정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나의 어린시절, 엄마는 왜 그렇게까지 강압적인 모습으로 날 몰아붙였을까. 그때의 엄마에게 세 딸을 잘 키우는 것은 하나의 소명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주체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엄마는 우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의 의미를 딸들의 성장과 성취에 투영시켰던 것은 아닐까.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타자로서의 삶을 안타까워한 것처럼, 나도 세 딸들에게 대상화된 엄마의 삶에 대한 연민이 생겨났다. 그동안 나는 엄마의 영향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던, 감정적인 결핍을 지닌 피해자인 줄 알았다. 정작 엄마야말로 남편과 자녀들에게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빼앗겨버린,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였던 것 같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 글은 나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로 끝맺음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엄마에게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라며 사과할 수도, ‘우리 그간 못 나눴던 모녀간의 정을 나눕시다’라고 말하기도 멋쩍다. 그렇다고 40년 넘게 가족을 위해 살아온 엄마에게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이제 당신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 살아가세요’라는 말을 건네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엄마의 지난 삶에 대한 몇 줄의 글을 적는 것만으로도 서운했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엄마의 지난 40년 삶을 애도하면서 엄마와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도 든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엄마와 나의 교차점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지만, 이제는 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주체적인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편안한 죽음>을 통해 타자화되었던 엄마의 지난 삶을 애도하며, 어린 시절 그때의 엄마와 화해한다.
엄마와의 화해 = 나와의 화해, 전 이렇게 읽었습니다~
쉽지 않았을 어떤 지점을 찬찬히 마주하신 것 같아 축하드리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