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18회 위암편

겸목
2023-02-03 20:50
403

 

무사(無事),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

-위암에 황정은의 에세이집『일기』를 처방합니다

 

 

황정은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無事)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황정은, 『일기』, 창비, 2022년, 41쪽)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는 작고 예쁘다. 친구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친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런데 읽다보니 좋은 선물이었는지 불안해진다. 나에게는 불편하게 읽히는 책을 친구는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는 황정은의 말들을 친구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으로 나는 황정은의 『일기』를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힘들게 읽은 만큼 황정은 또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이상한 동질감이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도 힘들게 읽고 그도 힘들게 썼으니 피장파장이라는 느낌이다.

 

무엇이 읽기에 힘들었을까? ‘징그럽다’는 그의 생생한 감정이다.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 무사하고 무탈함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코 보통의 대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무사한 보통의 삶은 많은 비용을 치룰 수 있어야 가능하고, 무사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당함을 모르는 척 해야 유지되는 ‘고요’이다. 이런 자책감을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징그럽다’는 강렬함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말투가 내게는 따갑게 느껴진다.

 

『일기』에서 황정은 내내 자신의 까칠함을 드러낸다. 전자책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서는 곧 전자책도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텐데 그 노동의 과정을 잘 모르면서 ‘견딜 수 없다’고 말해도 될까, 망설인다. 이웃들의 공터에 대한 관심을 ‘안다’고 쓰려 했다가,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걸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알아버린 것을 모르는 척, 안다고 말해야 할 때 나는 순진한 척을 하며 무언가를 단념하고 있고 그래서 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늘 얼마간 책임을 지는 일로 느껴진다”( 『일기』, 29쪽)고 숨김없이 실토하고 있다.

 

난감한 상황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 라는 비겁한 변명에 대해 황정은은 무지는 ‘게으름’이라고 ‘덮어쓰기’ 한다. 차별받았다는 생각으로 분노할 줄은 알지만 차별한다는 자각은 없는 삶에 대해서는 ‘무능력’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그런 자신의 태도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반박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 『일기』, 133~134쪽)

 

 

황정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곤란함이 있다. 그의 윤리적 감수성은 베일 듯 날카롭고, 그 날카로움에 내가 피투성이가 안 될 자신이 없다. 알려고 하지 않는, 알지 않으려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투적인 어른’이라 질책하는 황정은의 문장은 내게 매섭다. 황정은의 작품을 좋아하기 위해 나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룸메이트, 내 인생의 피해자 1

선형은 대학시절 나의 룸메이트였다. 2학년 때부터 첫 직장에 다니던 때까지 5년을 같이 살았다. 그 사이 내가 1년 휴학을 해서, 선형과 나의 졸업년도가 다르다. 휴학생과 학생, 3학년과 4학년, 4학년과 직장인으로,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행동반경은 달라졌지만, 방 하나를 같이 쓰는 사이로서 흉허물이 없었다.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엄마에게 말하기보다 선형에게 말하는 것이 더 미안했다. 웃기지만, 친구를 혼자 두고 떠난다는 생각이 죄책감처럼 달라붙었다. 물론 선형은 내 결혼소식에 크게 서운해 하지 않았다. 어쩌면 속 시원해 했는지도 모르겠다. 선형과 사는 5년 동안 내가 방청소를 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MT를 가서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해장국을 끓어놓는 내공에서 알 수 있듯이, 선형은 룸메이트를 없는 셈치고 혼자 잘 치우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 사이가 안 좋았을까? 그랬다면 5년을 같이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였기 때문에, 우리 방은 늘 동아리 선후배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없어도 방에는 한두 명의 친구들이 어슬렁거렸고, 사생활이 없었다. 학년이 다르고, 수업을 듣는 과목도 달랐지만, 함께 해야 하는 동아리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공동체였다. 신입생 환영회, MT, 작품집 발간 같은 어지간한 일들은 둘이 후다닥 해치웠다. 성향과 기질이 달랐지만,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붙어 잘 굴러가는 것처럼, 우리는 티격태격하면서도 붙어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선형이의 배려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N분의 1의 법칙이 칼같이 적용됐다면, 우리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집안일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이 없는 나를 ‘태생적으로 이기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한 선형이의 ‘K-장녀’다운 아량과 배포 덕분에 나는 간신히 얹혀살 수 있었다(선형이는 남동생이 둘씩이나 있는, 명실상부한 K-장녀다). 선형이는 ‘내 인생의 피해자 1호’인지도. 나의 대학생활은 룸메이트 덕분에 내 마음대로, ‘나 잘났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집을 나왔으니 간섭하는 부모도 없었고,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와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 자존감의 원천은 부모의 무관심과 룸메이트의 인내심 덕분이다.

 

나같이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룸메이트도 거뜬히 감수하며 살아간 공덕으로 선형의 삶은 무탈하게 흘러갔다. 경상도 여자답게 말은 ‘뚝뚝’하게 했지만, 누구에게도 ‘모난’ 소리 하지 않는 친절한 사람이란 걸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나만 해도 나 좋을 땐 나 몰라라 지내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선형을 찾았다. 선형은 입으로는 싫은 소리를 해도, 산타클로스처럼 작은 선물들을 잊지 않았다. 립스틱, 원두커피, 와인, 수제비누 같은 걸 꼭 가지고 왔다. 이런 선물은 받을 때는 모르지만, 헤어지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돌아갈 때쯤 꺼내보면 부적처럼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됐다. 선형과 만나고 있으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안심이 됐다. 언제 찾아가도 밥 한 끼 사줄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후줄근해진 마음을 조금은 부풀어 오르게 한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선형은 작년에 위암수술을 받았다. 1기에 발견되어 다행이라고 하지만, 종양의 위치가 나빠, 위를 반 이상 절개했다. 늘 ‘받기만’ 하던 내가 드디어 무언가를 주어야 할 순간이 왔다. 나는 무엇을 주어야 할까? 따뜻한 말 한 마디, 정성들인 밑반찬, 알짜배기 의학정보…… 뭐든 들고 달려가려는 내게 선형은 말했다. “나중에 보자. 지금은 앉아 있기도 힘들고” 그 말투가 평소의 무뚝뚝함을 넘어서는 서늘함이라 나는 이내 수긍하고 말았다.

 

선형의 삶이 무탈하다고 했지만, 위암 수술 이후 생각해보니 전혀 무탈하지 않았다. 선형의 부모님은 20년 전쯤 한 해 걸러 모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후 치러져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 다음해 심장마비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해 선형의 어머니는 막 정년퇴직을 한 직후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모두 어느 정도 가족력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일찍 부모를 잃은 선형 남매는 알게 모르게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며 살아왔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위암 진단과 수술을 마치고 나니 선형은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모두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조심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맥이 빠지는 일이기도 했다. 수술 후, 선형은 평소와 달리 하루 다섯 끼를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언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었다고 했다.

 

“부모의 이른 죽음을 보고, 죽음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건 나쁘지 않아.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의 인생이 너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안 좋아. 자식이 결혼해서 자식과 똑 닮은 손자를 낳았는데, 그 얼굴을 봤으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고, 그걸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쉽지.”

 

선형이 앉아 있을 체력이 생겼을 때쯤 우리는 만나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위암 수술을 마친 친구를 위로하고자 만났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얘기는 부모님의 죽음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도 유전자의 힘은 강하고, 그걸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냉소적이 되기 쉬운데, 그보다 선형은 부모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도 경황이 없어 동생들을 살피지 못해 트라우마와 건강염려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아쉬워해 했다.

 

선형은 수술 후 6개월 정도 지난 후 다시 일에 복귀했고, 식습관 조절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아직 여행일정을 잡는 게 조심스럽다고 하지만, 그 밖의 일상생활에서 속도가 느려진 것 말고는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언제나 안달복달하지 않고 그러려니 살아가는 선형의 모습이 의아했는데, 이번에도 선형은 호들갑 떨지 않고 이 고비를 넘길 것이다.

 

문제는 나다. 선형이가 서른의 초입에서 때 이른 부모의 초상을 치를 때 나는 문상객으로 조문을 다녀왔을 뿐이다. 막 아이들이 태어나 정신없을 때라고 하지만, 그애의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일 수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그 당시 막냇동생은 아직 대학생이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남매가 어떻게 생활을 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준비를 하였는지 나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처리해야 할 번거로운 일들에 나는 일손을 보태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수술 후 오지 말라는 친구에게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위로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음악 한곡을 여덟 번 열 번 반복해 듣는 것이 어떻게 삶을 구할 수 있기까지 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넷플릭스 오리지널2019)의 두 형사, 그레이스와 캐런은 한번도 만나지 못한 마리의 삶을 본인들의 일로 돕는다. 누군가의 애쓰는 삶이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구한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며, 픽션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일기』, 20쪽)

 

선형이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애써 만들어낸 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구한다. 나는 황정은이 애써 쓴 문장을 빌려 친구에게 그 시절의 무사함에 대해 ‘고마웠다’는 인사를 뒤늦게 해본다. 내가 위로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사였다.

 

 

날카로운 윤리의식과 날렵한 상상력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한다. 황정은의 소설은 대개 비슷하다. ‘다크’하다. 그가 그려내는 빈곤의 모습은 평면적이지 않다. 빈곤을 다루되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무심한 듯 다정하고 단정한 그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그의 수고가 떠오른다. 황정은은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말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기꺼이 알고자 하고, 제대로 인식하고, 정직하게 책임을 지고 발언을 하려는 그의 태도는 존경스럽다. 그러나 가끔 그의 문장들은 내게 매서운 질책의 말들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그만큼 정직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황정은의 책을 읽을 때 따라오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이런 후회와 자책감이다.

 

『일기』를 읽으며 황정은도 나처럼 후회하고 자책하며 글을 계속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황정은의 책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아마도 그의 문장들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부끄러워하며 계속 읽어나가는 일일 것이다. 불편한 독서는 무뎌지려는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일기』의 뒷부분에 실린 「흔」이 만들어낸 파문은 오래도록 마음에서 요동쳤다. 자신의 상처를 탐문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과 같은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황정은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수치심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라고.”(184쪽) 황정은은 자신을 옭아매는 것들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의 존엄함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상상의 힘을 잊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다.

 

가혹한 현실에 시달려 손상된 사람이라기보다는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며 현실 너머로 건너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상상이 현실을 밀어내며 엉뚱하게 팽창하는 순간을 나는 좋아했고, 그가 어른들 앞에서 비교적 의젓하고 무력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 그 상상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앤이 하는 것처럼 앤처럼, 나에게도 상상력이 있다고 믿으며 상상으로 빠져든 시간이 내게도 있었고 그 상상들 중에 무언가는 내게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부럽기도 했다. (『일기』, 47쪽)

 

내게 황정은의 날카로운 윤리적 감수성이 부담스럽다면, 그의 상상력에는 조금 가볍게 편승하고 싶은 마음이다. 난관에 부딪쳐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고, 용기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힘에서 나온다. 황정은이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처럼 말이다. 지금 용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앤의 날렵한 상상력을 ‘공유’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도록 상상력을 발동시키지 않고 살아왔다. 녹슨 상상력에 시동을 걸어본다.

 

 

댓글 17
  • 2023-02-03 20:59

    18회로 <문학처방전>을 마칩니다.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오래된 친구에 대한 글로 마무리를 하게 되어 훈훈합니다. <문학처방전>을 읽고 '재미있다' 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3년 동안 게으르게나마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글쓰기' 경험해봤습니다. 고맙습니다. 황정은의 문장으로 인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2023-02-04 07:54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문학처방전 읽는 동안 즐거웠어요^^

  • 2023-02-04 08:36

    생각이 납니다.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에게서 받은 힘이 있었죠. ^^

    문학처방전 팬으로서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마무리를 하게 된 걸 축하하고 싶네요. 겸목이 다른 글로 나아가게 될 거니까요. ^0^

  • 2023-02-04 08:42

    ㅋ 위로보다 감사를 먼저 했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겸목도 마이~~~~ 성장했을 것이네요^^ 애쓰셨습니다~~ 문학처방전을 쓰겠다는 발심의 순간에 함께 했던 저로서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 겸목의 순간에 또 함께 해서 좋습니다~~~~ 겸목의 글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2023-02-04 09:07

    문학 처방전 너무 잘 읽고 있었어요!
    마지막이라니 아쉽네요ㅠ
    또 좋은 글 보여주세요~^^

  • 2023-02-04 09:28

    그간 문학처방전 덕분에 의미있게 책선물도 할수 있었지요~~
    친구분 덕분에 어린겸목샘의 이야기도 들을수 있었네요~^^
    감사해요~좋은글을 읽게 해주셔서^^

  • 2023-02-04 12:07

    겸목님의 친구 선형님을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선형님이 공을 들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애정하는 겸목이 될 수 있었구나, 고맙기도 하고요. 하하하
    겸목의 문학 처방전을 읽는 즐거움이 이 글로 끝이라니 아쉽지만, 또 다른 글로 돌아 올 겸목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2023-02-04 20:34

    그러게요.. 연재마감에 매우 섭섭한 또 하나의 일인입니다.'날카로운 윤리의식과 날렵한 상상력'은 '문학처방전'의 미덕이기도 했죠.

    마침 제게도 친구가 준 황정은의 '일기'가 있어요.
    문학처방전 덕분에 다시 한번 촘촘히 읽어봐야겠어요.겸목샘~~그간 많이 애쓰셨어요!^^

  • 2023-02-04 22:47

    문학처방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일기> 문장을 다시 대하니 저는 너무 평평하게 읽어 버렸던게 아닌가 싶네요...
    겸목샘도 건강하시기를...그래서 또 뵈요~

  • 2023-02-05 06:32

    황정은 작가는 십년 전 ‘라디오 책다방’ 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왜인지 그의 작품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겸목샘의 이번 문학처방전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유독 소설 읽기를 힘들어하는 편인 저에게, 겸목샘의 문학처방전은 마치 다 깎아놓은 과일을 먹기만 하면 되는 기쁨을 주었더랬습니다. 그 과일을 깎기까지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언제가 글쓰기 수업에서 지도받고 함께 공부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무사함에 빚지고 있는 모두(모든 것)에 감사하며…

  • 2023-02-05 06:52

    그 동안 겸목의 처방전 리스트에
    언급되었던 친구들이, 한켠 부럽기도 했다.
    그들이 겸목에게 특별한 편지를 받는 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겸목이 참 글을 잘 쓰는구나, 싶었다.
    그게 또 부럽기도 했다.
    무사한 일상이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꾸려진다면
    쉽게 읽히는 글에는 글쓴이의 고민과 애씀이
    더욱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겸목의 글이 그러했다.
    그런 글들은 참 고맙다.
    아, 생각해보니 쉽게 잘 읽히는 좋은 글을 좋아한다는 것
    그 역시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편하게 읽을께, 고민은 당신들이 해주라.

    그러나 나 역시 겸목의 글을 부러워하기 전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건내고 싶다.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 2023-02-05 07:22

    샘 저도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읽겠습니다

  • 2023-02-05 19:52

    그간 수고 많았어요.
    다른 글로 또 보겠죠?

  • 2023-02-05 20:15

    잘 읽었습니다. 황정은 작가의 <일기>가 무척 읽고 싶어지네요. 산다는 것은 준엄한 일이고 살아남는 것 또한 그런 일이겠지요. 좋은 친구를 두신 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 2023-02-06 06:18

    다른 분들의 처방을. 통한 제 마음의 치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겸목샘!!

  • 2023-02-06 10:11

    양생과 글쓰기에 글을 올리면서 처음 겸목의 연재글을 보고
    한 편씩 찾아서 아껴가며 매일 매일 읽기 시작했는데, 마감한다고요?
    이거슨 반칙입니다!
    하지만 고생했습니다. 수고로움에 감사합니다

  • 2023-02-06 17:09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선형님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겨요. 그리로 겸목의 뒤늦은 감사의 인사에 울컥합니다. ^^: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당분간 곱씹게 될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서 누군가의 분투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겸목의 처방전을 선물로 받고, 처방전대로 실천도 해보고 종종 아껴 보게 됩니다. 겸목의 분투로 저의 무사함을 지켜갈 수 있어서 고마워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

문탁의 나이듦 리뷰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문탁 2023.05.12 조회 339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먼불빛 2023.05.11 조회 22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가마솥 2023.05.03 조회 267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문탁 2023.05.03 조회 19
인문약방 에세이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문탁 2023.05.03 조회 8
인문약방 에세이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문탁 2023.05.02 조회 147
인문약방 에세이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문탁 2023.05.02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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