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59년생 서른살

가마솥
2023-01-16 14:35
289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두번째 은퇴

 

 중소기업 연합회 회장이 “내일 저녁 시간을 비워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예상이 된다. 올해, 2020년. 호적나이로 만 60세이다. 이 곳은 경기도와 산업자원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수탁기관이다. 센터장은 그들의 인사권(?)으로 지명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나도 그랬다. 인사철인데, 자기가 추천했노라고 생색내며 전화하는 놈들이 없다. 연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담당 후배에게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시쳇말로 ‘가오’ 빠지는 것, 조용히 내가 정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해? 이 놈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는 어디 가고!’ 등등. 워워워...... 진정하자, 진정해. 예우하며 직접 듣는다고 바뀔 것인가? 어떻게 통지하든, 어떤 이유로든, 계약해지는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차례 책상을 가볍게 하였으니 별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했다. A4용지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시원 섭섭. 딱 그런 기분이다. 돈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니 “야호! 이제야 해방이다!” 해야 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헛헛한 기분이 올라온다. 필요한 사람들은 이미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데도 다시 볼 것 같지 않은 명함철을 버리지 못하고 박스에 담는 나를 발견한다. 뭐, 이 정도는 기념품으로 하지. 혹시 알어? 또 필요하게 될지...... 일일이 악수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였지만, 많은 직원들이 아쉬워하며 배웅 나오는 것을 위안 삼아 사무실을 나섰다. 작은 박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나를 졸졸 따라 나오는 몇몇 직원들 모습이, 꼭 ‘유골함’을 따라 가는 장례행렬 같다. 짜식들, 박스나 들어 줄 것이지.

 

사실 난 이번이 두 번째 은퇴이다. 지금 이곳에서 센터장으로 일하기 전에, 그가 市長인 도시의 산하기관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8년을 일하고, 2018년 8월에 공식적으로(?) 은퇴하였다. 직장에서는 그를 따라 경기도로 영전해 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니 은퇴가 아닌 퇴임이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은퇴이었다. 마눌님의 호출에 따라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은퇴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 준 것이다. 은퇴를 주장한 것은 '고맙게도' 마눌님이었다.

 

 2010년부터 그와 함께 일한 ‘어공’의 포지션은 참으로 애매하였다. 원래 사기업에서 그 분야에서 25년을 일한 전문성을 선택하였으니 본연의 업무 처리는 별것 없었다. 문제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하여 정무적인 일을 해야 할 때이다. 이 일은 철저히 Give & Take 논리이었고, 무조건 상대방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성사되는 일이다. 그런 일, 소위 ‘특명’을 받으면 내 안에 우글거리고 있는 새로운 ‘자아’들이 튀어 나왔고, 그 때문에 나 스스로 놀라곤 하였다. 또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잠재태로서의 즐거운 ‘애벌레 자아’가 아니라, 전문가와 정치인 사이에서 ‘나’를 선택해야 하는 흔들리는 ‘자아’를 발견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전문성을 갖춘 정치적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마눌님은 ‘당신은 정치인은 절대 못 되니, 그만 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 소는 누가 키우고? 라며 일축하였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그 스트레스는 달콤한 것의 댓가일지도 모른다. 사실, 주어진 예산을 바르게 집행하는 ‘어공’의 일은 돈을 벌어야 하는 사기업의 스트레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시민운동 할 때에는 그렇게 철옹성 같던 행정력이 전화 한 통화로 움직여지는 권력의 맛은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두 번 시장선거에서 승리하였고, 나는 네 번이나 연임하여 8년을 그와 함께 하였다.

 

 2018년 12월, 남들처럼 은퇴 기념여행을 떠났다. 해외출장으로는 가보지 않은 곳을 선택했다. 쿠바. 쿠바인들의 삶은 우리네 60년대 사회의 모습이었다. 체 게바라가 살아있으면 달랐을까? 책을 통해서 그려 보았던 쿠바를 현장에서 보니, 사회주의 정치만을 고집하며 사람들을 배고프게 하는 쿠바 정치인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념은 무엇이고, 정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시선은 차창 밖의 경치를 보고 있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곤 하였다. 문자 한통이 날아 왔다. 경기도에 들어간 후배이다. ㅇㅇ센터장의 자리가 났는데 형님이 제일 적합하다는 것이다. 여행 중이니 나중에 답을 하겠다고 하고는 바로 다음 날 승낙하는 답신을 보냈다. 바로 다음 날! 참나...... 내가 생각해도 찜찜하다. 식구들에게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잖어? 하지만, 지난 서너 달 동안 나의 마음은 좀 애매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 “요즘 뭐해?”하는 대답으로 “은퇴하고 논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고, “쉬고 있다.”고 얼버무리고 있던 터이었다. 은퇴? 왠지, 뒷방 늙은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식구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나는 은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덤덤한데, ‘아버지, 재취업 축하드려요~~~’하는 사위놈의 문자에 기분이 묘했다. 재‘취업’이라......

 

 

 

 

은퇴하면 귀촌이나 하지

 

2009년부터 성산동에서 공동육아로 만난 친구들과 반백년 기념으로 ‘은퇴 후 모여살기’를 준비하였다. 그 결과가 평창 방림면에 만든 꽃숲마을이다. 스무 가구를 목표로 출발하여 2017년도 기준으로 16가구가 집을 지었고, 현재는 대부분 세컨드 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다. 한 날 한 시에 동시에 은퇴하는 것도 아니고, 3가구만이 상주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무언가 함께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원래 계획하였던 ‘은퇴 후 모여 살기’는 요원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센터장의 임기만료가 불 보듯 뻔한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은퇴 후 평창에서의 삶을 어떻게든 그려 보았다. 은퇴하기 몇 년 전부터 책도 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유투브도 열어 보았다. 주로 귀촌관련 사례들이다. 온라인 수업도 들었다. 그럴수록 평창은,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한 후에 그에 적합한 장소를 구한 것은 아니었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지만, 스콧 니어링처럼 강의하며 메이플 시럽을 만들 수도 없고, TV 속 자연인처럼 채집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 집과 관련된 안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하여 주말마다 평창에 갔다. 태양광을 설치하고, 데크를 깔고, 나무를 심고, 화단을 만들고, 낮은 울타리를 치고, 경계의 흙이 쏠리지 않게 토낭를 두르고 등등. 언제든 들어와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었다. 당분간 상주할 수는 없으니, 원격조종이 가능한 IOT도 설치하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그것은 나의 취미이기도 하였지만, 비용만 지불하면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할 수 있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골 생활에 대비하는 훈련과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읍내 만물가게에 들어가 작업할 물품들을 고르는데, 사장님이 묻는다. “얼마나 되었우?” “?”. “평창에 집지은 지 얼마나 되었냐구?” “아 예, 한 1년 쫌 넘었습니다.” “흠......보통 3~4년 가요.” “예 ?” “처음에 이사 와서 집 주변도 가꾸고, 큰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이것저것 심어 보기도 하고..... 한 3년은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요. 그러다가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면서 한 두 해 더 있다가 결국, 도시로 다시 나가더라고.”

 

정확했다. 한 3년쯤 지나니, 집주변 공간이 빠르게 정리 정돈이 된다. 그와 비례해서 무언가 계획하고, 연구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완성된 모습을 그려보며 엔돌핀이 팍팍 도는 그런 감흥이 나지 않는다. 더욱이 나이를 먹었는지, 울타리 작업한다고 바위에 삼십여 개의 앙카볼트 작업을 하였더니 팔꿈치에 골프 엘보우가 왔다. 골프는 안하기로 마음먹고 골프세트를 통째로 친구놈에게 주어 버렸는데, 테니스 엘보우도 아니고 ‘골프’ 엘보우라니...... 그러고 보니, 마당에서 작업 좀 하면 다음 날 아침, 뻑뻑한 손가락 관절들이 모두 ‘나 여기 있오’하고 알린다. 농사? 원래 농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귀농(歸農)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지, 도시사람이 은퇴 후 한 번도 안 해본 농사를?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농사를 지어보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문제, ‘그럼, 여기서 뭐하고 살지?’하는 질문까지 겹치니 평창 가는 발길이 뜸해진다. 나도 다른 집들처럼 세컨드 하우스로 평창집을 사용하게 되었다. 남 몰래 은퇴를 준비하였다고 자부하였건만, 실행할 수 없으니 전혀 준비하지 않은 것과 같다. ‘남 몰래’ 답답한 상태가 되었다.

 

평창 방림면 꽃숲마을 조감도

 

 

어쨌든 집에서 나온다

 

한 놈은 매일 도서관에 간단다. 또 한 놈은 동네 근처 산인 광교산, 청계산을 매일 올라 다니고. 특이하게도 한 놈은 정장을 입고 작은 방으로 출근을 한단다. 미친 놈. 은퇴를 하였어도 스스로 무언가에 매어 있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이 좋아서 산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면 몰라도, 죽으면 항상 누워있을 산인데, 왜 벌써 못가서 안달인지...... 혀를 끌끌 찼다. 헌데, 정작 나는 점점 소파에 앉아서 TV보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손흥민의 게임은 당일도 보고, 재방송도 보고, 하이라이트도 보면, 그의 EPL 모든 경기를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소파에 앉던 자세도 점점 눕고 있었고, 그 시간에 비례해서 허리도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마눌님이 “이제 그만 움직여 보시죠?“한다. 센터장을 그만 둔 이후 정말로(!) 은퇴한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삼식(三食)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지하실에 묶어놓고 있던 자전거를 청소했다. 엉덩이 받침이 있는 자전거 복장에 헬멧, 선글라스까지 챙겨서 쓰고 탄천으로 나갔다. 슬슬 패달을 밟아 보니 바람이 뺨을 살살 스치는 게 상쾌하다. 내친 김에 한강까지 나아갔다. 평일인데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룹지어서 씽씽 속도를 내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어떤 이는 뽕짝을 틀어 놓고 달렸다. 꼴불견. 성수대교 쪽으로 가다가 너무 무리하나 싶어서,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맙소사! 죽는 줄 알았다. 멍청한 놈. 생각이 없었다. 탄천은 당연히 하류인 한강 쪽으로 흐른다. 그러니 한강 쪽으로 갈 때에는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되어서 룰루랄라 내려갔던 것이다. 그럼, 올라 올 때는? 오후 맞바람까지 불어서 힘들기가 배가(倍加)되었다. 이것도 매일 하기에는 재미없어 보인다. 하기야 매일 자전거 타는 것이나 할 일없이 산에 가는 것이나 ‘집을 나간다’는 측면에서 똑같다. 그런데 가만,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은퇴해도 매일 집에서 나가야 하지? 속에서 무언가 부글거린다.

 

 

59년생 서른 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첫 번째 칸에 주저앉았다. 이곳이 우리 집에서 제일 시원하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하기가 좋은 곳이다. 치매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건강하신 장모님과 태어날 손주 녀석을 돌보면서 이렇게 내 생의 마지막, 노년을 보내는 것인가 하는 상념에 빠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전면에 커다란 족자가 걸려 있다. 사실, 족자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십년 전에 이 집을 지은 기념으로 장인어른이 써주신 것이다. 약간 흘려 쓰셔서 몇 글자는 못 읽는다. 검색해본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벽란도판상시(碧瀾渡 板上詩)이다.

 

 

登眺江樓日(등조강루일) 강루에 올라서 구경하는 날

奔馳宦路年(분치환로년) 벼슬길에 헤매는 시절이라오

何當伴鷗鷺(하당반구로) 어느 때 갈매기와 무리를 지어

歸釣碧山前(귀조벽산전) 저 산 앞에 돌아가 고기를 낚을꼬.

 

 

벽란도(碧瀾渡)에 있는 벽란정(碧瀾亭)에서, 고려말 조선초 격동기의 학자이자 정치인인 권근이 벼슬길의 아슬아슬함을 떠나 초야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87년 대기업에 들어가 직업을 가진 이래,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고민하고 싸웠다. 직원들 말처럼 ‘바보같이’ 손해도 많이 보았고. 마지막 10년 동안도 ‘어공’으로 보내며, 사방에 널려있는 진흙탕 구덩이들에 용케 빠지지 않을 정도로 행동하였다. 그들과 한배를 타기 싫어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 나를 지켰다. 그러니, 눈 매서운 후배들이 형님으로 예우하면서 뒷방으로 밀어내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오늘, 그림으로 걸려 있던 이 족자가 나의 욕망을 꺼내 보여준다. 권근(權近)과는 다르게 나는 벼슬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 동안 어정쩡하게 하루를 보낸 것은, 혹여 ‘그의 대선 캠프에서 불러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랬다. 지금은 소를 키우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은 짭짤한 권력의 달콤함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은퇴의 변(辯)으로 “앞으로는 선택을 구하는 삶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삶으로 살겠다.”며 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놓은 나인데, 부끄러웠다. 어디든 일단 집을 나서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집안을 뱅뱅 도는 나도 은퇴가 안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 ‘이제 그만 움직여 보자.’ 앉은 채로 핸드폰을 꺼내서 그와 관련된 밴드를 탈퇴하고, 카톡방을 나오고, 텔레그램 방들을 폭파하고 나서, 관련된 전화번호들을 모두 지웠다. 후 ~~~~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으로 80은 산다고 보면, 앞으로 남은 20년을 뭐하고 살까? 늙지 않았다고 혹은 늙지 않겠다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지혜로운 60대이라면 여기 저기 좋은 말을 해주고 다니면 좋겠지만 어림도 없다. 하기야, 그 동안 쌓은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추억을 먹고 사는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살까?’가 아닌, ‘어떻게 살까?’라고 질문해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오늘 즐거운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로 하였다. 그 동안 미뤄 놓았던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버킷 리스트? 그런 것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 것은 목표를 세우고 나의 현재를 미래에 미뤄 놓는 그 동안의 삶과 비슷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도래하는 미래를 지금 여기서 맞이하는, 현재를 살아 보고자 한다. 우선 지난 30년 동안 했던 돈 벌기 위한 공부와는 다른, 사람 사는 공부로 새로운 20년을 시작해 본다.

 

36년 전 사회 초년생일 때 가졌던 두려움과 기대, 그 상반된 떨림을 살려 내어 ‘59년생’이 아닌 ’서른 살’로 출발 해보자. 20년 뒤에 생(生)을 은퇴할 때에는 한 번의 은퇴로도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댓글 9
  • 2023-01-16 16:25

    가마솥님의 서른살을 응원합니다~

  • 2023-01-16 16:44

    가마솥님의 글을 읽으니 꼰대와 어른의 차이를 알겠네요 ~ ㅎㅎ
    서른살의 공부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2023-01-16 18:29

    우와 가마솥쌤과 함께 공부해보고 싶어요..!!!

  • 2023-01-16 19:00

    가마솥님~~ 사람 사는 공부, 응원합니다~~~

  • 2023-01-16 19:06

    그렇다. 가마솥의 누룽지는 아직 끓고 있다.
    한 20년은 더 불을 지펴야 맛 볼수 있는 누룽지.
    그 가마솥은 그만큼 단단했다.

  • 2023-01-16 23:15

    가마솥님의 글을 읽는데, 왠지 드라마 인트로가 시작하는 느낌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상상이 되네요^^
    앞으로 주인공이 어떤 삶을 펼칠지 기대가됩니다~ㅎ

  • 2023-01-17 00:02

    새로운 공부 20년!! 멋져요~

  • 2023-01-17 13:06

    와~ 60갑자를 돌아오신 ‘59년생 서른살’님의 사주가 매우 궁금해집니다.(루보살~~~제가 운띄웠으니 하반기에 공략!)

    가마솥님과 함께 하는 20년 공부. 기대됩니다^^

  • 2023-01-18 17:42

    정말 솔직한 글이네요… . 응원합니다!!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 필수)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나의 60세는 정년퇴직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첫 자리의 5가 6으로 바뀐다는 건 남다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젊다’에서 ‘늙다’의 경계로 넘어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전환기 일 수밖에 없다. 나이 60에 정년퇴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는 게 바빠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맞은 나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무리 준비 없이 맞았다 해도 고민이 없었겠는가? 대책이랄 게 없었으므로 계획적 노력은 하지 못했지만 60세, 정년퇴직, 수입 끝, 노후 30년 시작, 그 단어의 무게감은 나를 충분히 짓누르고도 남았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건 2022년 6월이다. 그러나 나의 정년퇴직 이야기는 지금(2023년 1월)으로부터 약 2년 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묻지 마, 노후 계획!      ‘은퇴 후 30년 노후 자금 10억’이란 말을 액면가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억~ 소리가 날 만큼 두려움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태생이 흙수저인 내게 60줄 나이에 들어선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미래였고, 백 세 시대 재앙의 서막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목덜미에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후 준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마세요~’...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나의 60세는 정년퇴직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첫 자리의 5가 6으로 바뀐다는 건 남다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젊다’에서 ‘늙다’의 경계로 넘어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전환기 일 수밖에 없다. 나이 60에 정년퇴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는 게 바빠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맞은 나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무리 준비 없이 맞았다 해도 고민이 없었겠는가? 대책이랄 게 없었으므로 계획적 노력은 하지 못했지만 60세, 정년퇴직, 수입 끝, 노후 30년 시작, 그 단어의 무게감은 나를 충분히 짓누르고도 남았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건 2022년 6월이다. 그러나 나의 정년퇴직 이야기는 지금(2023년 1월)으로부터 약 2년 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묻지 마, 노후 계획!      ‘은퇴 후 30년 노후 자금 10억’이란 말을 액면가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억~ 소리가 날 만큼 두려움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태생이 흙수저인 내게 60줄 나이에 들어선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미래였고, 백 세 시대 재앙의 서막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목덜미에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후 준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마세요~’...
먼불빛 2023.01.30 조회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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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두번째 은퇴    중소기업 연합회 회장이 “내일 저녁 시간을 비워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예상이 된다. 올해, 2020년. 호적나이로 만 60세이다. 이 곳은 경기도와 산업자원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수탁기관이다. 센터장은 그들의 인사권(?)으로 지명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나도 그랬다. 인사철인데, 자기가 추천했노라고 생색내며 전화하는 놈들이 없다. 연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담당 후배에게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시쳇말로 ‘가오’ 빠지는 것, 조용히 내가 정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해? 이 놈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는 어디 가고!’ 등등. 워워워...... 진정하자, 진정해. 예우하며 직접 듣는다고 바뀔 것인가? 어떻게 통지하든, 어떤 이유로든, 계약해지는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차례 책상을 가볍게 하였으니 별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했다. A4용지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시원 섭섭. 딱 그런 기분이다. 돈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니 “야호! 이제야 해방이다!”...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두번째 은퇴    중소기업 연합회 회장이 “내일 저녁 시간을 비워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예상이 된다. 올해, 2020년. 호적나이로 만 60세이다. 이 곳은 경기도와 산업자원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수탁기관이다. 센터장은 그들의 인사권(?)으로 지명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나도 그랬다. 인사철인데, 자기가 추천했노라고 생색내며 전화하는 놈들이 없다. 연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담당 후배에게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시쳇말로 ‘가오’ 빠지는 것, 조용히 내가 정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해? 이 놈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는 어디 가고!’ 등등. 워워워...... 진정하자, 진정해. 예우하며 직접 듣는다고 바뀔 것인가? 어떻게 통지하든, 어떤 이유로든, 계약해지는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차례 책상을 가볍게 하였으니 별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했다. A4용지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시원 섭섭. 딱 그런 기분이다. 돈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니 “야호! 이제야 해방이다!”...
가마솥 2023.01.16 조회 289
나이듦에 관한 리뷰
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문탁 2023.01.03 조회 685
겸목의 문학처방전
‘월간 부끄러움’ -이석증에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나는 단지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고, 그러나 그후의 삶이 두려워 자주 울었다. 그런 나의 매일에 대한 말들은 할 수 없다기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에 가까웠다. 언젠가 결국엔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그즈음엔 내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후배에게 들은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복기했다. 쉽게 뱉은 말이었을까,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까, 비아냥댄 걸까, 내게 상처를 받았던 걸까. 그러니까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거의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거나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얼마 전 그 후배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59쪽)   H가 직장을 그만둘 때의 심정은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의 주인공과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퇴사에는 공통된 감정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 싫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두세 달만 쉬고 싶었는데 아예 그만두지 않는 한, 두세 달을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외곽에 있는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했던 후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미안해,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월간 부끄러움’ -이석증에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나는 단지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고, 그러나 그후의 삶이 두려워 자주 울었다. 그런 나의 매일에 대한 말들은 할 수 없다기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에 가까웠다. 언젠가 결국엔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그즈음엔 내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후배에게 들은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복기했다. 쉽게 뱉은 말이었을까,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까, 비아냥댄 걸까, 내게 상처를 받았던 걸까. 그러니까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거의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거나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얼마 전 그 후배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59쪽)   H가 직장을 그만둘 때의 심정은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의 주인공과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퇴사에는 공통된 감정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 싫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두세 달만 쉬고 싶었는데 아예 그만두지 않는 한, 두세 달을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외곽에 있는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했던 후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미안해,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겸목 2022.10.24 조회 347
나이듦에 관한 리뷰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문탁 2022.10.04 조회 544
나이듦에 관한 리뷰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동작이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동작이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문탁 2022.08.20 조회 615
겸목의 문학처방전
우리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김금희의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년)을 처방합니다     화병, 답답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 갈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으려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 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순두부와 비빔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 등 인생은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들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 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 ‘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S는 ‘화병’으로 문학처방전을 의뢰했다. 화병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심장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이른다. S에게는 어떤 답답한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S의 남편 회사는 몇 년 전에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본사로 옮겨갔지만, S의 남편은 서울에 남았다. 이 결정이 그의 직장생활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 그는 승진이나 일의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김금희의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년)을 처방합니다     화병, 답답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 갈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으려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 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순두부와 비빔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 등 인생은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들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 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 ‘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S는 ‘화병’으로 문학처방전을 의뢰했다. 화병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심장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이른다. S에게는 어떤 답답한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S의 남편 회사는 몇 년 전에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본사로 옮겨갔지만, S의 남편은 서울에 남았다. 이 결정이 그의 직장생활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 그는 승진이나 일의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겸목 2022.08.18 조회 309
겸목의 문학처방전
  복잡한 마음, 복잡한 진실 -최정화의 단편소설 「잘못 찾아오다」(문학동네, 2018년)을 처방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B와는 가끔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그 가끔은 1년이기도 하고 6개월이기도 하다. 나와 B는 5~6년 전에 예술워크숍의 담당자와 참가자로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연기로 진로를 결정한 B는 가끔 연극 공연을 올리거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가끔 취업상태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B의 20대는 늘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매우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냉소적인 인상을 주었다. 안 될 거야, 라든가 별 거 없다, 라는 식으로 쿨한 제스처를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이나 간절함이 있어 보였다. 누군들 안 그럴까? 예술지망생이라는 오래된 직업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제멋대로 사람을 휘저어 놓는 직업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 보편적인 모습과 달리 B만의 특징이라고 하면 매우 예의 바르면서도 매우 막무가내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만취상태에서도 내가 ‘선생’이라고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도 한순간에 막말을 날려버리는 후련함이 있었다. 많은 청년들에게서 제멋대로이고 잘난 척하거나 불행한 척하며 폭주하는 건 익히 봐왔지만, 단정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유지하려 하다 허물어지는 모습은 좀 새로웠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B는 단정하고 예의바르며 막무가내였다. 내가 기억하는 B의 불일치는 이런 모습이다.   최근 2~3년 동안 B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일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연기에 집중하려 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 일이 꼬여버렸다. 주식투자에 중독적으로 빠지기도 했고, 20대를 같이 보낸 남친과도 결별했다....
  복잡한 마음, 복잡한 진실 -최정화의 단편소설 「잘못 찾아오다」(문학동네, 2018년)을 처방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B와는 가끔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그 가끔은 1년이기도 하고 6개월이기도 하다. 나와 B는 5~6년 전에 예술워크숍의 담당자와 참가자로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연기로 진로를 결정한 B는 가끔 연극 공연을 올리거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가끔 취업상태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B의 20대는 늘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매우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냉소적인 인상을 주었다. 안 될 거야, 라든가 별 거 없다, 라는 식으로 쿨한 제스처를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이나 간절함이 있어 보였다. 누군들 안 그럴까? 예술지망생이라는 오래된 직업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제멋대로 사람을 휘저어 놓는 직업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 보편적인 모습과 달리 B만의 특징이라고 하면 매우 예의 바르면서도 매우 막무가내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만취상태에서도 내가 ‘선생’이라고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도 한순간에 막말을 날려버리는 후련함이 있었다. 많은 청년들에게서 제멋대로이고 잘난 척하거나 불행한 척하며 폭주하는 건 익히 봐왔지만, 단정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유지하려 하다 허물어지는 모습은 좀 새로웠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B는 단정하고 예의바르며 막무가내였다. 내가 기억하는 B의 불일치는 이런 모습이다.   최근 2~3년 동안 B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일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연기에 집중하려 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 일이 꼬여버렸다. 주식투자에 중독적으로 빠지기도 했고, 20대를 같이 보낸 남친과도 결별했다....
겸목 2022.07.10 조회 272
겸목의 문학처방전
  침착하고, 꼼꼼하고, 영리하게 ―우울증에 백수린의 단편소설 「폭설」을 처방합니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대학교수인 남편과 세 아이, 한적한 교외의 주택, 그의 조건을 떠올릴 때, Y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 부부는 또래들보다 일찍 생활의 기반을 잡았고, 남편의 직업도 안정적이다. 그들 부부에게 위기라고 부를 만한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Y의 남편은 지방대학 교수라 주중에는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온다. 아이들은 네 살, 여덟 살, 열 살, 아직은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때이다. 그의 남편은 아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남편 없이 세 아이를 돌보야 하는 Y의 육아스트레스를 그대로 체감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막연히 아내가 힘들겠구나 짐작하는 정도. 그러나 짐작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못 견딜 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일에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 긴장이 하루하루 쌓이다, 남편이 올 때쯤 되면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와 집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고, 우리는 우리대로 남편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고. 이런 가족형태가 괜찮은지도 모르겠어요.”     부부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남편은 박사학위를 따고 Y가 석사학위를 마쳤을 때 결혼을 했다. Y의 전공은 ‘환경경영’이다. 대학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Y는...
  침착하고, 꼼꼼하고, 영리하게 ―우울증에 백수린의 단편소설 「폭설」을 처방합니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대학교수인 남편과 세 아이, 한적한 교외의 주택, 그의 조건을 떠올릴 때, Y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 부부는 또래들보다 일찍 생활의 기반을 잡았고, 남편의 직업도 안정적이다. 그들 부부에게 위기라고 부를 만한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Y의 남편은 지방대학 교수라 주중에는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온다. 아이들은 네 살, 여덟 살, 열 살, 아직은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때이다. 그의 남편은 아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남편 없이 세 아이를 돌보야 하는 Y의 육아스트레스를 그대로 체감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막연히 아내가 힘들겠구나 짐작하는 정도. 그러나 짐작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못 견딜 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일에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 긴장이 하루하루 쌓이다, 남편이 올 때쯤 되면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와 집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고, 우리는 우리대로 남편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고. 이런 가족형태가 괜찮은지도 모르겠어요.”     부부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남편은 박사학위를 따고 Y가 석사학위를 마쳤을 때 결혼을 했다. Y의 전공은 ‘환경경영’이다. 대학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Y는...
새털 2022.04.22 조회 365
겸목의 문학처방전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를 처방합니다       잠 못 드는 밤, 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를 처방합니다       잠 못 드는 밤, 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겸목 2021.08.13 조회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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