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문탁
2023-01-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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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어머니와 친구 부모님들에게 예외없이 나타나는 현상들, 즉 귀 안 들림, 눈 안 보임(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 낙상과 골절, 수두증, 뇌졸중, 파킨슨, 치매, 암, 척추협착증,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 등의 사태를 보면서, 또 나 역시 회전근개파열이니, 노안이니, 목디스크이니 한둘씩 몸이 고장 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곱게 늙는다”라거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늙는다”라는 말은 말짱 빈말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곱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늙는 사람은 없다.  나이듦은 몸이 손상된다는 것이고 그 몸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 –주로 배제와 혐오로 작동하는-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다. 주디스 버틀러처럼 말한다면 몸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모두 취약한/위태로운(precarious) 존재이다.

 

“몸은 삶의 유한성, 취약성, 행위 주체성을 암시한다. 피부와 살 때 문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고, 접촉과 폭력에도 노출된다... 우리는 몸에 대한 권리를 위해 분투하지만, 정작 분투의 목적인 몸은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몸에는 변함없이 공적인 차원이 있다. 공적 영역에서 구성되는 사회적 현상인 내 몸은 내 것인 동시에 내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타인의 세계에 넘겨지는 몸에는 그 세계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고 몸은 사회적 삶의 용광로에서 형성된다.”(주디스 버틀러, <위태로운 삶>, p56)

 

버틀러는 이런 ’취약함(precariousness)’의 논의로부터 근대적 주권개념을 해체하는 정치적 탐구로, 새로운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윤리적 실천의 모색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늙지 않을거야"에서 "나도 엄마처럼 늙겠구나"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일단 허겁지겁 딸의 부양 약속이라는 보험부터 들어놓는다. 하지만 과연 이 보험은 유효할까? 그럴 리가.....ㅎ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더 이상 가족 돌봄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누구에게나 닥칠 돌봄 위기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가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친구들과 <나이듦연구소>를 만들었고, 요양원이라는 국가 돌봄과 실버타운이라는 시장 돌봄, 이 둘을 넘는 새로운 상호 돌봄의 형식에 관해 공부해보기로 했다. 세미나를 열었고 그 첫 책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오월의 책)이다.

 

 

 

2. 이미 당도한 n개의 가족

 

이 책의 첫 번째 주제는 가족을 둘러싼 현실과 제도 사이의 낙차, 혹은 내 식으로 말하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담론적 지체 현상" (나는 <루쉰과 가족>에서 계속 이 이야기를 했다^^)이다. 머리말에 나오듯 “시민들은 이미 하나의 가치나 형태 모델로서의 ‘가족’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의존과 돌봄을 실천하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p5)다. 그러나 이에 비해 우리의 법과 제도는 너무 낙후되어 있고 그것을 지탱해주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도 한편에서는 여전하다.

 

세상이 바뀌고 가족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현재 나는 80대의 엄마와 그를 돌보는 70대의 간병인과 함께 셋이 산다. 이 중 둘은 혈연관계이고 다른 둘은 계약 관계이지만 함께 살다 보면 이 구별은 종종 무의미해진다. 어머니는 나보다 간병인을 더 많이 의지하기도 하고, 나는 어머니 못지않게 간병인의 건강과 마음을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상호의존! 이름 붙이기 어려운 동거형식!

 

원가족을 둘러봐도 사정은 비슷한데 전형적인 이성애 규범적인 4인 핵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남동생네뿐이다. 나는 몇 년 전에 이혼했고, 둘째 여동생은 작년에 이혼했으며, 막내 여동생은 비혼이다. 또한 지금 내 딸은 남친과 동거 중이고 아들은 베트남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한 마디로 내 원가족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반려묘 동반 1인 가구, 2인 동거가구, 비혼 1인 가구, 3인 모자가구, 3인 비혈연 노인가구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띄며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런 가족 변동은,  모두 알다시피  사회의 경제적 토대 변화에 기인한다. 크게는 남성가장 가족임금 중심으로 이성애 핵가족이 재생산되던 산업사회가 이미 쇠퇴했기 때문이고, 가깝게는 IMF가 많은 핵가족의 경제적 토대를 빠르게 허물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의 페미니즘 리부팅도 여성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수년 전 문탁에서 개최한 페미니즘 강의를 통해 소위 영 페미니스트들의 4B 운동, 그러니까 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통해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그 어떤 구조에도 동참하지 않겠다는 운동을 접한 바 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남자와 사느니 차라리 고양이와 산다”라고 말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들었다. 이미 삶의 경로는 다양해졌고, “많은 사람은 경제적인 이유로, 외로워서, 임차 계약기간이 끝나는 시기가 비슷해서, 혹은 사랑하는 사이라서 등등 여러 이유로 ‘우연히’ 함께 만나 살아가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사실을 확인한다.”(p138) 문탁 안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는데 바로. 정화와 임수의 ‘정임합목 2인 동거가족’이 그것이다. (1월 말부터 연재될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연재를 기대해주세요^^)

 

책에서는 이런 탈근대사회 가족의 변동을 설명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소개되고 있다. 데이비드 모건의 ‘가족 실천’이나 재닛 핀치의 ‘가족시연displaing family’의 개념은 가족을 규범이나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수행성으로 파악하는 개념이고,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의 ‘생활의 동반자’나 ‘생애 한 시기의 동반자’라는 개념은 “현재의 삶을 ‘임시적인 삶’으로 유예하지 않고, 현재의 상호의존하는 관계망을 중심으로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를 의미한다.”(p59) 나는 이 ‘생애 한 시기의 동반자’라는 개념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이성애든 동성애든, 정서적 욕구 때문이든 경제적 이유 때문이든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삶이 결코 영속적일 수 없다는 것을 환기해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LGTB에서 출현한 ‘내가 선택한 관계/가족 families of choice’ 혹은 이와 비슷한 ‘패치워크 가족’이라는 개념도 있다.(p59) 원가족에게 배척당한 다양한 소수자들 (학대, 동성애, 약물중독)이 지속가능한 사회적 지원을 서로에게 제공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가족 형태이다. “결혼제도 밖에서 연대감을 느끼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돌보고, 서로에게 동지애를 느끼고, 일부는 로맨스도 가능한 관계”인 ‘보스턴 결혼’(p81)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일찍 알았다면 나도 해보는 건데....쩝!

 

 

 

 

그런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가 이런 현실의 변화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미 수많은 ‘조립식 가족’(tvN, 가족 관찰 예능, 2022년 3월~5월 방영)이 출현해있고, “혼인, 혈연에 무관하게 생애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으로 인정한다”라고 답하는 시민도 60%가 넘고 (2019년 여성가족부+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공동 조사), 이에 비해 ‘법적인 혼인이나 혈연관계’를 가족의 조건으로 꼽는 사람들은 2.0%에 불과한데도 (2020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조사) 우리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에서는 이성애 결혼으로 인해 구성되는 결연만을 가족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 민법에 따라 ‘가족’을 언급하는 240개 법 조항이 작동한다. 우리는 주거, 의료, 돌봄, 연금, 상속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이성애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야만 적절한 국가의 보호와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법과 제도 속의 가족은 결국 시민이 될 수 있는 자와 아닌 자를 구별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와 아닌 자를 나눈다. 평생 함께 살아온 동성 파트너는 상대가 죽은 후에도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고, 정화는 임수가 병원에 입원해도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자가 되지 못한다. 이성애 규범적인 가족 장치는 우리 사회 차별과 불평등, 배제와 혐오를 재생산하는 장치가 된다.

 

 

3.가족구성권과 퀴어가족정치

 

 

그렇다면 이런 지체(遲滯) 혹은 단락(斷落)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의 두 번째 주제이다) 국가와 각종 지자체가 출산율을 높이겠다면서 하는 ‘바보짓’(인천광역시, 충청남도의 ‘결혼친화도시’ 선포, 대구 달서구의 ‘결혼 장려팀’ 신설 등/ p100~101)은 일단 논외로 하자. 하지만 저자 김순남은, 예를 들면 1인 가구를 지원하는 주거정책 같은 것도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p117) 다양한 가족형태(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다문화가족 등)을 뒤따라가면서 제도적으로 포섭하고 약간의 지원을 하는 방식은 여전히 잔여적 복지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상당히 급진적으로 보이는 ‘동성결혼 합법화’나 ‘생활동반자법 제정’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다양한 성소수자, 즉 바이섹슈얼, 논바이너리, 트랜스 젠더 퀴어 등의 존재를 비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가족구성권’과 이에 기초한 ‘퀴어가족정치’이다.

 

“가족을 정치화하는 가족구성권은 단순히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들을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가족구성권은 근본적으로 가족들 둘러싼 여러 갈래의 복합적인 차별 해소에 대한 접근을 요청한다. 다시 말해, 사회가 상상해오고 권장해온 ‘가족’의 의미와 가족 모델은 무엇인지,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시민’으로 가정되고 상상되는 이들의 모습과 어떻게 연동되고 있는지, 제도가 어떻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 구분하는지 등 여러 갈래의 질문들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삶과 자격이 부여되는 데 이성애 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이 핵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p8)

 

한마디로 말해 가족구성권은 사적 권리가 아니고 낯설고 불온하고 문란한 신체들이 공적으로 출현하고, 관계를 맺고, 일상과 사회를 함께 점유할 권리를 말하는 것(p104)이기 때문에 푸코식으로 말하면 근대생명권력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며,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는 기술”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명정치, 인구정치를 퀴어가족정치로 바꾸어가야 한다. “퀴어가족정치의 핵심의제는 근본적으로 발전주의, 성장주의 너머의 삶과 관계에 대한 모색”이 되어야 하며 “이상적인 시민/비시민의 경계를 비틀면서 ‘오염된 공동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오염된 공동체’란 가족 상황, 인종, 장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으로 삶의 경계를 구분하는 권력에 개입함으로써 새로운 시민적 유대의 장을 확대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p165)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나는 혈연에 기초한 ‘원가족’ 너머를 상상하면서 왜 여전히 ‘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느냐(p174)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구성권운동은 가족 중심 시민 모델로 제시되는 시민의 상을 개인 중심 시민 모델로 바꿔야 한다”라고 할 때 그 개인 중심 시민 모델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저자의 답은 다음과 같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가족제도 불평등에 관한 질문을 확장하고 새롭게 사유하는 변혁의 장치로 재전유”(p175)하기 위함이고, 개인의 자기 결정권은 김도현의 논의(<장애학의 도전>)를 가져와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의견과 판단을 소통하고 조율해가며 실현할 수밖에 없는 권리”(155) 라고 한다.

 

난 우선 ‘가족’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새로운 사회적 유대의 형식, 결연의 방식에 꼭 ‘가족’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가족에서 가족구성권으로, 또 그것은 형태의 다양함이 아니라 정상가족 규범을 문제 삼는 퀴어한 가족정치이다, 라고 설명하는 방식이 좀 복잡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저자도 인용하고 있는 해러웨이의 ‘kin’이라거나 아니면 우리말 ‘식구’ 정도가 더 낫지 않을까?

 

“나의 목적은 ‘친척 kin’이란 말이 혈통이나 계보에 묶인 실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을 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친척 만들기는 사람들persons 만들기인데, 대상이 반드시 개체이거나 인간인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 시절 친척 kin과 종류 kind라는 말을 두고 하는 셰익스피어의 재담에 감동했다 – 가장 다정한 것들이 반드시 핏줄로 엮인 친척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친척의 확대와 재구성은 지구에 사는 모든 것이 가장 깊은 의미에서 친척이라는 사실에 의해 가능해지고, 우리는 진작 집합체인 ‘종류’들을 (한 번에 하나씩의 ‘종’이 아니라) 더 잘 돌보았어야 했다. 친척은 집합이라는 종류에 해당하는 말이다. 모든 크리터들은 수평적으로, 기호론적으로, 계보상으로 공통의 ‘육신’을 공유한다. 조상들은 매우 재미있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친척은 (우리가 가족 혹은 씨족이라고 생각했던 존재의 바깥에서) 낯설고, 불가사의하고, 끊임없이 출몰하는, 활동적인 무엇이다...

자,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친척이 어떻게 친척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 하기, p179)

 

 

두 번째는 ‘개인’이라는 개념. 이것의 의미는 머리말에 잠시 나오는 한나 아렌트의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개념으로부터 추론해낼 수 있다. 아렌트는 유대인, 여성으로서 27세부터 45세까지 국가 없는 난민이었다. 이 경험이 그녀를 ‘인권’ 개념에 대한 탐색으로 이끌었다. 흔히 인권은' 양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지지만 1933년 독일을 탈출해 파리로 몸을 피한 그 순간부터, 즉 독일 유대인은 더 이상 독일 시민이 아니게 된 순간부터 인권 따위는 없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자마자 그들은 노숙자가 되었고, 국가를 떠나자마자 무국적자가 되었다. 인권을 박탈당하자마자 그들은 아무런 권리가 없는 지구의 쓰레기가 되었다.”(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p490) 따라서 아렌트는 이런 인권의 역설 속에서 인권에는 ‘권리를 가질 권리’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정치상황이 출현하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권리를 가질 권리(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의 행위와 의견에 의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구조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조직된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 권리를 잃고 다시 얻을 수 없게 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그런 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나 아렌트, 위의 책, p533)

 

하여 나는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개인이, 추상적 인권의 담지자가 아니라 발리바르 식으로 이야기하면 보편적 시민권, 즉 봉기적 시민권을 통해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 공적 영역에 '출현'하는 개인이라고 이해했다. 아래는 책의 이 두 번째 주제를 어설프게 도식화해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소위 '정상가족'과 1인 가구의 증가로 표현되는 개인들의 출현이 상호의존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시민이 될지(저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니면 능력주의에 포섭된 신자유주의 공정 주체가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4. 나이듦과 난잡한 돌봄의 공동체

 

얼마 전 우연히 ‘노루목 향기’라는 이름을 가진 시니어 공유주택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다. (kbs <다큐 온> “노후, 누구와 사시겠습니까”, 2021년9월10일 방영) 주인공은 68세 동갑내기 심재식, 이혜옥, 이경옥 세 할머니이다. 이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은 우연이었는데 13년 전에 심재식 씨가 귀촌하여 여주에 집을 지었고, 그곳에 오랜 친구였던 이혜옥 씨가 합류하였고, 4년 전에 그 동네 주민이던 이경옥 씨가 마지막으로 합류하면서 3명의 비친족 노인가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 중 심재식, 이혜옥 씨는 비혼이고 이경옥 씨만 결혼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사별했고, “아들은 장가보내면 해외교포”라고 말하는 노인 1인 가구였다. 이렇게 모인 세 명의 노인은 낮에는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분담하고, 저녁때는 각자 독립적으로 젊었을 때 돈 버느라 혹은 자식 키우느라 못했던 취미생활을 즐긴다. 이혜옥 씨는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젊은 시절 자수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심재식 씨는 이경옥 씨와 함께 프랑스 자수를 익힌다. 어쩌다 이경옥 씨의 다섯 살짜리 손주가 할머니를 방문하는 날이면 온 집안이 들썩인다. 아이는 할머니가 셋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할머니들은 맛있는 걸 해먹이고 함께 물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분들이 정기적으로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자기네 차를 이용하여 마을 노인들을 모셔다 야외 노인 문화센터를 여는 것이었다. 관의 도움 없이 할머니들의 힘으로 비혈연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을 마을로 확장해나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이분들은 이런 가족의 가장 큰 장점을 ‘서로 돌봄’이라고 한다. 특히 이경옥 씨는 암이 재발하여 매우 불안한 상태인데 친구들과 살면서 맘이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이런 상태라면 요양원에 가지 않아도 살던 곳에서 유쾌하고 명랑하게 서로를 챙기면서 더 오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난잡한 돌봄’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 말은 1980년대 에이즈 인권활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가 사용한 용어인데, 당시 게이들이 공격받은 ‘난잡한 성생활’이라는 혐오 표현을 뒤집어 그것을 ‘난잡한 돌봄’이라는 급진적 용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는 당시 “(몇몇 게이 지도자들이) 우리의 난잡함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난잡함이 우리를 구할 것”라고 썼다.(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선언> p86) 다시 말해 여기에서 “난잡함promiscuous이란 성애적인 것이 아니며,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게 많은 친족 단위의 돌봄에 대항하여 돌봄의 위계를 급진적인 평등주의로 만들어가는 방향 전환이 핵심이다.”(p125)

 

나는 노루목 향기의 세 할머니에게서, 한 명의 친족 손주를 공동의 손주로 사랑하고 돌보는 모습에서, 암에 걸린 친구를 위로하면서 일상을 함께 꾸리는 삶에서, 자신의 돌봄 역량을 마을의 더 많은 할머니에게 확장해나가는 모습에서 ‘난잡한 돌봄’의 모습을 목격한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싱글이고 <나이듦연구소>를 함께 꾸리는 내 친구는 남편이 있다. 나는 내심 그 남편과 아들까지를 더 넓은 확장된 가족 속에서 ‘공유’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다. 그 남편과 아들의 손이 아주 야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리치약국>에는 두 명의 비혼 싱글이 있다. 우리 사이에 나이와 경제력의 차이가 있지만 이건 오히려 우리가 확대된 가족을 꾸려나갈 때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는 일단 땅부터 보러 다니자고 하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올해, 새로 맞은 계묘년 검은 토끼해가 비혈족 시니어 친족만들기(Make kin)!, 시니어 공유주택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어디 좋은 땅이 있는지 빨리 주역점을 쳐봐야겠다.

 

 

 

 

 

 

 

 

 

 

 

댓글 12
  • 2023-01-03 19:40

    잘 알고 있던 '가족'이란 것이,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 되어가는 것 같고, 있는 가족도 관계설정을 다시해야 할 것 같고...
    각자 친구경험 연애경험 직장경험이 다르듯, 각자의 가족경험도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고...
    앞서가는 '만국의 늙은이' 이고 싶은데 말이예요... ^^

    저도 <노루목 향기> 다큐 봤을 때 너무 멋지다고 느꼈어요.
    다큐의 세 분들은 함께 사시기 전에 각자 1인 가구였고, 마을주민들과의 교제도 활발히 꾸려가는 모습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어요.
    단순히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니 세 분의 결정이나 경제적 자립력, 일상을 채우는 다채로운 모습 등등이
    그저 아이디어로 되었다기 보다는 평생 살아온 스타일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인가 왠지 '모방불가?' 같은 느낌도 있었고요.
    제 입장에서는 온갖 현실적 장애물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솔직히 저도 노루목 향기 언니들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어요. ㅎㅎ

  • 2023-01-04 11:50

    1인 가구로 살아가거나 2인 동거 가구를 원하는 입장으로서 외롭지 않게 커가고 늙어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가족'과 '공동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협업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세미나 들으면서 '가족'이라는 언어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사전적 의미만 보았을 때는 책과 우리가 이야기한 그 '가족'을 포용하기에는 현재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가족'도, '식구'도, 'kin'도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집어치우고 생각해보았을 때 '가족'이라는 단어만이 가진 따스함과 포근함, 그리고 심적 안정감이 있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굳이 바꾸어야 하나 싶기는 하네요. 그럼에도 '가족'이 여전히 혈연/혼인 중심의 집단만을 이야기한다면 조금은 불편함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결국 가족은 마음이 통해야 만들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집단이니까요.
    이제야 저는 낭랑 18세가 되었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내가 청년일 때 지낼 수 있는 곳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세미나를 통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언젠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시니어 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가족을 구성할 권리>.. 정말정말 어려웠지만 다시 한 번 각잡고 읽어봐야겠습니다. 아, 공동체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LGBT 커뮤니티에서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는 '무지개집'이 위치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LGBT+, 비혼 여성 등)이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부분도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23-01-04 12:40

      와우 낭랑18세라니...그런데도 이렇게 멋지다니!
      존경스럽네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ㅎㅎㅎ)

  • 2023-01-04 17:41

    제목이ㅋㅋㅋㅋㅋ 맑스와 해러웨이, 공산당과 반려종의 콜라보를 연상시키는...^^
    세미나 참여자는 아니지만, 최근 이런 기사를 발견하여 공유해봅니다~~
    .

    "탈혈연, 탈젠더, 탈시장적 ‘돌봄 공동체’는 실험중
    집담회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에서 나눈 이야기"
    https://www.ildaro.com/9525

  • 2023-01-05 11:56

    여러 장애물로 인해 현실 불가능해서 신청했다가 취소했는데 요약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1인가구로 10년을 살다가 6개월전 부친이 요양원에 가셔서 , 부모님이 사시던집에 들어 와서 비혼 남매가 세어하우스? 에서 살 듯 살고 있습니다?
    이런 조합도 있습니다.^^ ㅠㅠ

  • 2023-01-05 12:21

    요새 다양한 위치,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각자 다르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시민으로 같이 한다면
    불편하지만 시간의 여유를 두고 숙고할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또 세미나에서 질문한 '권리를 가질 권리'와 관련된 영화 '더 스위머스'란 영화를 추천합니다.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2023-01-06 09:04

    먼저 이번 세미나를 하면서 '푸코 공부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미나 중간에 요요샘이 하신 말씀중에 돈있어서 실버타운하는 그런거 말고..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박혔거든요. 지금의 삶이 그져 경제적 안정된 여성들의 동거정도가 되지않으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문탁샘 발제문처럼 능력주의에 사로잡힌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지않고 퀴어가족정치를 하려면 어떻게해야할까? 좀 더 적극적으로 난잡한 돌봄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2023-01-06 11:57

    저도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상호의존의 사회적 관계'라는 용어에 많이 관심갖게 되었습니다. 1인가구로 살고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을 생각할 때 혈연 중심의 관계성을 생각했을 때는 뭔가 답답하면서 답이 없을 것 같았는데, 적극적으로 이상하고 난잡한 가족을 상상해보고,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또한 정년퇴직 후 다시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일을 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대해서도 조금 여유를 갖고 마음 졸이지 말아야지 했습니다. 왜?? 결국 나도 상호의존의 사회적관계를 거부했기 때문에 더 조급했던건 아닐까….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에 입각했던건 아닐까. 그것보다 나는 어떤 개인이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고, 다른 방식의 삶을 고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다시 회귀하는 저 자신과 이런 공부를 하면서 잘 싸워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뭔 일이 생겨 이혼을 해도 차라리 다행?일 수 있겠다...결혼을 앞둔 딸에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서두...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ㅜㅜ ㅎㅎ

    • 2023-01-06 15:17

      우리 자녀 세대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많이 결혼, 이혼, 싱글, 동거, 정착, 유목 등을 오갈거에요.ㅋㅋㅋㅋ
      그래서 그 어떤 것도 다행도 불행도 아니라는^^

  • 2023-01-09 19:17

    이번 세미나를 통해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해야한다'는 의무 (환경적으로 주어지든, 스스로짊어지든) 에만 치우쳐 일상을 꾸려왔기 때문인듯합니다.( 주인 아닌 끌려가는 삶에 익숙해서 이겠죠 ^^;;) 책 제목에도 붙여진 그 '권리'를 인식할 줄 알아야 한발더 나아간 '정치'(퀴어가족정치 처럼) 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3-01-11 21:06

    노루목= 너무나 부러운 돌봄 공동체입니다. 현재 한집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이 나에게 편안한 존재인가? 우선 생각해보게 됩니다. 가능한 한 책임 의무 규칙 원칙 등의 단어에서 멀어지고 싶습니다.(막 살겠다는건가?!) 좋은 책과 좋은 분들을 알게된 것 같아 기뻐하는 중~~입니다.

  • 2023-01-18 17:48

    이번 세미나하면서 또 오늘공동체 탐방하고 전 난잡해질 수 있겠구나! 느꼈습니다~~~ 화이팅~~~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 필수)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나의 60세는 정년퇴직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첫 자리의 5가 6으로 바뀐다는 건 남다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젊다’에서 ‘늙다’의 경계로 넘어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전환기 일 수밖에 없다. 나이 60에 정년퇴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는 게 바빠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맞은 나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무리 준비 없이 맞았다 해도 고민이 없었겠는가? 대책이랄 게 없었으므로 계획적 노력은 하지 못했지만 60세, 정년퇴직, 수입 끝, 노후 30년 시작, 그 단어의 무게감은 나를 충분히 짓누르고도 남았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건 2022년 6월이다. 그러나 나의 정년퇴직 이야기는 지금(2023년 1월)으로부터 약 2년 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묻지 마, 노후 계획!      ‘은퇴 후 30년 노후 자금 10억’이란 말을 액면가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억~ 소리가 날 만큼 두려움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태생이 흙수저인 내게 60줄 나이에 들어선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미래였고, 백 세 시대 재앙의 서막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목덜미에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후 준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마세요~’...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나의 60세는 정년퇴직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첫 자리의 5가 6으로 바뀐다는 건 남다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젊다’에서 ‘늙다’의 경계로 넘어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전환기 일 수밖에 없다. 나이 60에 정년퇴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는 게 바빠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맞은 나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무리 준비 없이 맞았다 해도 고민이 없었겠는가? 대책이랄 게 없었으므로 계획적 노력은 하지 못했지만 60세, 정년퇴직, 수입 끝, 노후 30년 시작, 그 단어의 무게감은 나를 충분히 짓누르고도 남았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건 2022년 6월이다. 그러나 나의 정년퇴직 이야기는 지금(2023년 1월)으로부터 약 2년 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묻지 마, 노후 계획!      ‘은퇴 후 30년 노후 자금 10억’이란 말을 액면가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억~ 소리가 날 만큼 두려움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태생이 흙수저인 내게 60줄 나이에 들어선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미래였고, 백 세 시대 재앙의 서막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목덜미에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후 준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마세요~’...
먼불빛 2023.01.30 조회 176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두번째 은퇴    중소기업 연합회 회장이 “내일 저녁 시간을 비워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예상이 된다. 올해, 2020년. 호적나이로 만 60세이다. 이 곳은 경기도와 산업자원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수탁기관이다. 센터장은 그들의 인사권(?)으로 지명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나도 그랬다. 인사철인데, 자기가 추천했노라고 생색내며 전화하는 놈들이 없다. 연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담당 후배에게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시쳇말로 ‘가오’ 빠지는 것, 조용히 내가 정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해? 이 놈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는 어디 가고!’ 등등. 워워워...... 진정하자, 진정해. 예우하며 직접 듣는다고 바뀔 것인가? 어떻게 통지하든, 어떤 이유로든, 계약해지는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차례 책상을 가볍게 하였으니 별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했다. A4용지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시원 섭섭. 딱 그런 기분이다. 돈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니 “야호! 이제야 해방이다!”...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두번째 은퇴    중소기업 연합회 회장이 “내일 저녁 시간을 비워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예상이 된다. 올해, 2020년. 호적나이로 만 60세이다. 이 곳은 경기도와 산업자원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수탁기관이다. 센터장은 그들의 인사권(?)으로 지명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나도 그랬다. 인사철인데, 자기가 추천했노라고 생색내며 전화하는 놈들이 없다. 연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담당 후배에게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시쳇말로 ‘가오’ 빠지는 것, 조용히 내가 정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해? 이 놈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는 어디 가고!’ 등등. 워워워...... 진정하자, 진정해. 예우하며 직접 듣는다고 바뀔 것인가? 어떻게 통지하든, 어떤 이유로든, 계약해지는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차례 책상을 가볍게 하였으니 별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했다. A4용지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시원 섭섭. 딱 그런 기분이다. 돈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니 “야호! 이제야 해방이다!”...
가마솥 2023.01.16 조회 289
나이듦에 관한 리뷰
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문탁 2023.01.03 조회 686
겸목의 문학처방전
‘월간 부끄러움’ -이석증에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나는 단지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고, 그러나 그후의 삶이 두려워 자주 울었다. 그런 나의 매일에 대한 말들은 할 수 없다기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에 가까웠다. 언젠가 결국엔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그즈음엔 내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후배에게 들은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복기했다. 쉽게 뱉은 말이었을까,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까, 비아냥댄 걸까, 내게 상처를 받았던 걸까. 그러니까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거의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거나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얼마 전 그 후배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59쪽)   H가 직장을 그만둘 때의 심정은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의 주인공과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퇴사에는 공통된 감정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 싫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두세 달만 쉬고 싶었는데 아예 그만두지 않는 한, 두세 달을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외곽에 있는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했던 후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미안해,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월간 부끄러움’ -이석증에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한 사람을 위한 마음』, 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   나는 단지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고, 그러나 그후의 삶이 두려워 자주 울었다. 그런 나의 매일에 대한 말들은 할 수 없다기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에 가까웠다. 언젠가 결국엔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그즈음엔 내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후배에게 들은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을 자주 복기했다. 쉽게 뱉은 말이었을까, 어렵게 꺼낸 말이었을까, 비아냥댄 걸까, 내게 상처를 받았던 걸까. 그러니까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거의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다거나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얼마 전 그 후배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59쪽)   H가 직장을 그만둘 때의 심정은 이주란의 단편소설 「넌 쉽게 말했지만」의 주인공과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퇴사에는 공통된 감정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 싫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두세 달만 쉬고 싶었는데 아예 그만두지 않는 한, 두세 달을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외곽에 있는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했던 후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미안해,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겸목 2022.10.24 조회 347
나이듦에 관한 리뷰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문탁 2022.10.04 조회 544
나이듦에 관한 리뷰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동작이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동작이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문탁 2022.08.20 조회 615
겸목의 문학처방전
우리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김금희의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년)을 처방합니다     화병, 답답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 갈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으려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 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순두부와 비빔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 등 인생은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들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 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 ‘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S는 ‘화병’으로 문학처방전을 의뢰했다. 화병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심장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이른다. S에게는 어떤 답답한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S의 남편 회사는 몇 년 전에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본사로 옮겨갔지만, S의 남편은 서울에 남았다. 이 결정이 그의 직장생활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 그는 승진이나 일의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김금희의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년)을 처방합니다     화병, 답답하고 섭섭하고 화가 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 갈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으려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 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순두부와 비빔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 등 인생은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들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 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 ‘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S는 ‘화병’으로 문학처방전을 의뢰했다. 화병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심장에 열이 오르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증상을 이른다. S에게는 어떤 답답한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S의 남편 회사는 몇 년 전에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본사로 옮겨갔지만, S의 남편은 서울에 남았다. 이 결정이 그의 직장생활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 그는 승진이나 일의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겸목 2022.08.18 조회 309
겸목의 문학처방전
  복잡한 마음, 복잡한 진실 -최정화의 단편소설 「잘못 찾아오다」(문학동네, 2018년)을 처방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B와는 가끔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그 가끔은 1년이기도 하고 6개월이기도 하다. 나와 B는 5~6년 전에 예술워크숍의 담당자와 참가자로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연기로 진로를 결정한 B는 가끔 연극 공연을 올리거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가끔 취업상태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B의 20대는 늘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매우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냉소적인 인상을 주었다. 안 될 거야, 라든가 별 거 없다, 라는 식으로 쿨한 제스처를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이나 간절함이 있어 보였다. 누군들 안 그럴까? 예술지망생이라는 오래된 직업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제멋대로 사람을 휘저어 놓는 직업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 보편적인 모습과 달리 B만의 특징이라고 하면 매우 예의 바르면서도 매우 막무가내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만취상태에서도 내가 ‘선생’이라고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도 한순간에 막말을 날려버리는 후련함이 있었다. 많은 청년들에게서 제멋대로이고 잘난 척하거나 불행한 척하며 폭주하는 건 익히 봐왔지만, 단정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유지하려 하다 허물어지는 모습은 좀 새로웠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B는 단정하고 예의바르며 막무가내였다. 내가 기억하는 B의 불일치는 이런 모습이다.   최근 2~3년 동안 B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일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연기에 집중하려 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 일이 꼬여버렸다. 주식투자에 중독적으로 빠지기도 했고, 20대를 같이 보낸 남친과도 결별했다....
  복잡한 마음, 복잡한 진실 -최정화의 단편소설 「잘못 찾아오다」(문학동네, 2018년)을 처방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B와는 가끔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그 가끔은 1년이기도 하고 6개월이기도 하다. 나와 B는 5~6년 전에 예술워크숍의 담당자와 참가자로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연기로 진로를 결정한 B는 가끔 연극 공연을 올리거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가끔 취업상태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B의 20대는 늘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매우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냉소적인 인상을 주었다. 안 될 거야, 라든가 별 거 없다, 라는 식으로 쿨한 제스처를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이나 간절함이 있어 보였다. 누군들 안 그럴까? 예술지망생이라는 오래된 직업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제멋대로 사람을 휘저어 놓는 직업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던가? 그런 보편적인 모습과 달리 B만의 특징이라고 하면 매우 예의 바르면서도 매우 막무가내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만취상태에서도 내가 ‘선생’이라고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도 한순간에 막말을 날려버리는 후련함이 있었다. 많은 청년들에게서 제멋대로이고 잘난 척하거나 불행한 척하며 폭주하는 건 익히 봐왔지만, 단정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유지하려 하다 허물어지는 모습은 좀 새로웠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B는 단정하고 예의바르며 막무가내였다. 내가 기억하는 B의 불일치는 이런 모습이다.   최근 2~3년 동안 B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일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연기에 집중하려 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 일이 꼬여버렸다. 주식투자에 중독적으로 빠지기도 했고, 20대를 같이 보낸 남친과도 결별했다....
겸목 2022.07.10 조회 272
겸목의 문학처방전
  침착하고, 꼼꼼하고, 영리하게 ―우울증에 백수린의 단편소설 「폭설」을 처방합니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대학교수인 남편과 세 아이, 한적한 교외의 주택, 그의 조건을 떠올릴 때, Y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 부부는 또래들보다 일찍 생활의 기반을 잡았고, 남편의 직업도 안정적이다. 그들 부부에게 위기라고 부를 만한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Y의 남편은 지방대학 교수라 주중에는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온다. 아이들은 네 살, 여덟 살, 열 살, 아직은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때이다. 그의 남편은 아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남편 없이 세 아이를 돌보야 하는 Y의 육아스트레스를 그대로 체감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막연히 아내가 힘들겠구나 짐작하는 정도. 그러나 짐작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못 견딜 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일에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 긴장이 하루하루 쌓이다, 남편이 올 때쯤 되면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와 집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고, 우리는 우리대로 남편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고. 이런 가족형태가 괜찮은지도 모르겠어요.”     부부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남편은 박사학위를 따고 Y가 석사학위를 마쳤을 때 결혼을 했다. Y의 전공은 ‘환경경영’이다. 대학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Y는...
  침착하고, 꼼꼼하고, 영리하게 ―우울증에 백수린의 단편소설 「폭설」을 처방합니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대학교수인 남편과 세 아이, 한적한 교외의 주택, 그의 조건을 떠올릴 때, Y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 부부는 또래들보다 일찍 생활의 기반을 잡았고, 남편의 직업도 안정적이다. 그들 부부에게 위기라고 부를 만한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Y의 남편은 지방대학 교수라 주중에는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온다. 아이들은 네 살, 여덟 살, 열 살, 아직은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때이다. 그의 남편은 아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남편 없이 세 아이를 돌보야 하는 Y의 육아스트레스를 그대로 체감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막연히 아내가 힘들겠구나 짐작하는 정도. 그러나 짐작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못 견딜 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일에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 긴장이 하루하루 쌓이다, 남편이 올 때쯤 되면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와 집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고, 우리는 우리대로 남편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고. 이런 가족형태가 괜찮은지도 모르겠어요.”     부부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나 남편은 박사학위를 따고 Y가 석사학위를 마쳤을 때 결혼을 했다. Y의 전공은 ‘환경경영’이다. 대학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Y는...
새털 2022.04.22 조회 365
겸목의 문학처방전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를 처방합니다       잠 못 드는 밤, 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를 처방합니다       잠 못 드는 밤, 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겸목 2021.08.13 조회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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