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노인 실업자, 복지 수혜자로 산다는 것

먼불빛
2023-02-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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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저항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과감히 거부했다”라고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까.

제도의 수혜자로 힘없는 ‘약자’로서의 하소연, 소심한 복수로 이 글을 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만 풀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주제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성찰과

깨달음의 글을 다시 쓰는 나를 기대해 본다.

 

 

정년퇴직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년 백수. 백수가 되기 위한 필수 아이템, 백수 패션의 완성을 위해 나는 1+1 하는 저가 의류 매장에서 츄리닝 바지 2개와 맨투맨 티 2개를 샀다. 백수 패션은 바깥 생활에 요구되는 눈치와 예의 따위를 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백수로 좀 더 살고 싶었으나 정년 백수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놓치기 아까운 혜택이었다. 정년퇴직도 비자발적 실업이므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데,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이내 받지 않으면 모두 다 소멸하기 때문에 빨리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매월 급여를 받기까지 제도는 내가 얼마나 비루하고 하찮은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재취업이 전제된 조건부 급여의 성격은 자유로운 백수의 영혼이 아닌 비루한 ‘노인 실업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찾아본 일자리는 나의 취업 의지를 더 꺾었고, 실업급여는 나의 자존감을 더 깎았다.

 

마법의 돈-공공부조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비자발적 이유로 퇴사를 한 경우에 한 해 생계비 걱정 않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고용보험 제도로서 국가의 1차 사회안전망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보편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이다. 조건이 붙는다. 대표적인 복지 프레임이 근로연계복지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슬로건 아래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그런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어떤 것도 지원할 수 없다는 기조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대표적이다. 우선 비자발적 실업자(해고, 계약만료, 질병, 원거리 이사 등)여야 하고, 고용보험 피보험 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하며, 반드시 재취업을 전제로 한 구직활동 증빙을 제출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복지제도에 조건이 붙는다는 것은 그 복지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아닌 ‘시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을 전달하는 자의 막강한 권력관계 안으로 포섭되는 것임을 나는 실업급여를 받는 7개월의 경험을 통해 톡톡히 깨달았다. 잔혹 동화의 마법사 같다. ‘너 내 말 잘 들어야 떡 하나 줄 거야’ 마법사는 말한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떡을 받기 위해 기꺼이 마법에 걸려든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버려야 하는 마법. 나 역시 마법에 걸렸다.

 

 

 

 

 

투명 인간과 AI의 만남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모든 절차와 처리는 인터넷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교육을 빼고 맨 처음 1회와 4회차에는 직접 고용복지플러스센터로 방문해야 한다. 첫 번째 방문은 얼굴을 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쳐도(그렇다고 해도 담당자와 나는 말을 섞을 일이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정말 모르겠다. 역시 담당자와 눈길도,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투명 인간이 된다. 모든 설명은 서류로 한다. 창구에 앉아 있는 시간은 단 몇 분도 안 된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클릭하거나 두드렸고, 나는 계속 그들이 말없이 내민 서류에 사인만 해댔다. 나만 그런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니 비슷한 반응이다. 아마도 ‘대면’이 주는 강압의 더 큰 효과를 노리는 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친절의 문제일까? 아니, 그런 문제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업급여 제도를 실행하는 모든 과정은 법규와 규칙을 세세하게 해석해놓은 효율화된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효율은 필수적으로 관료화를 부른다. 모든 사람은 매뉴얼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규격화된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들의 관리 대상인 ‘복지 소비자’일 뿐이다. 말이 필요 없다는 건 관계 속에서 빚어질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고,  예외란 매뉴얼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제재 조치 감이다. 창구에 앉아 있는 그들의 얼굴이 매뉴얼 책자처럼 보였다. 입력된 값에 따라 움직이는 AI 행정 관료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가 절로 떠올랐다. 영국 실업 부조의 관료주의적 시스템, 인간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자본주의 복지제도의 폐해를 생생하게 고발하는 영화다. 한 시민 다니엘 블레이크가 경직된 복지 제도 시스템하에서 어떻게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심장병에 걸려 질병 수당을 청구한 댄(다니엘 블레이크)에게 현실에 맞지도 않는 매뉴얼만 강압적으로 읊조리는 심사관, 수당이 끊기면 당장 끼니를 굶을 위기에 처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차만 강조하는 고용센터 직원들,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급여를 타지 못하고 쫓겨나는 또 다른 실업자 케이티는 결국 생리대를 훔치고 성매매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인터넷 신청을 할 줄 모르는 댄에게 친절했던 공무원은 상급자에게 불려가 잘못된 선례를 남긴다는 질타를 받는 모습도 나온다. 조금 과장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통제와 관리의 위계적 복지 시스템의 모습은 영국이나 여기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잠재적 범죄자가 되다

 

매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실업 인정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이 신청 과정 과정마다 부정수급 경고들과 다그치듯 확인하는 사항들을 반복적으로 거치다 보면 인내심의 한계가 온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런 문구와 절차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맨 처음 실업 신청 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방문할 때도 엄청나게 많은 곳에 사인을 했다. 부정수급하면 처벌받겠다.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겠다, 허위 증빙 서류 제출 시 제재 조치에 응하겠다...등등. 그런데 같은 내용들이 매월 제출하는 인터넷 절차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강조 또 강조된다. 이쯤이면 실업급여 수급자는 잠재적 범죄자나, 도둑놈이며, ‘피의자’와 비슷한 신분이 된다. 복지 수혜자는 언제든 거짓말로 급여를 타낼 수 있다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꿀꺽 참고 삼키는 자에게 떡(실업급여)은 주어진다. 자존심은 개에게 줘버려야 한다.

 

실업급여 담당자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직업훈련도 나의 실업급여 담당자에게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단다. 우선 내가 구직하고자 하는 직종과의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구직활동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전 협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참에 IT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직업훈련도 구직활동으로 인정되므로 그에 해당하는 서류를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온 담당자의 목소리는 많이 격앙되어 있었다.

 

담당자. “선생님~ 지금 직업훈련 받고 계신 거예요? 이렇게 하시면 안 되세요. 사전에 의논하셨어야죠.”

나. 순간 당황 “...예에?..”

담당자. “이 자격증 과정 왜 따려고 하시는 거죠?”

나. 정신을 차리고 “아, 원래 할 줄은 아는데요. 자격증이 있으면 그걸 이력서에 표현할 수 있잖아요. 나이 60세니까 보통 문서나 행정 능력 없는 걸로 볼 확률이 높으니까요...”

 

나는 안절부절 구구한 설명을 했다. 그 순간 이번 달 실업급여를 못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담당자는 교육 시간과 일정을 꼼꼼히 따져 물으며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더니 다행히 나긋해진 말투로 처리해 주겠다고 답변했다. 물론 다음부터 이러시면 안 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면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상황에 화가 나거나, 항의할 생각보다는 ‘한 번만 봐주세요~! 몰랐어요...’하며 저자세로 읍소할 생각을 먼저 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노인 일자리의 저열함

 

실업 인정 절차(구직활동 증빙서류)가 급여를 타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지라도 재취업에 대한 은근한 심리적 압박이 안 될 수 없다. 그냥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대충 만든 이력서를 한두 곳에 찔러 넣고 증빙만 뽑으면 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내 이름이 들어 있는 이력서를 아무 곳에나 노출시키는 것도 께름칙했고, 이왕이면 취업도 하고 싶었다. 밤늦도록 일자리를 찾느라 이리저리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다녀 봤지만, 얻어지는 정보는 그저 긴 한숨만 토하게 할 뿐 이력서를 내밀 만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익장의 준말), 고다자(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노인 노동자를 일컫는 말)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는 저임금의 임시, 단순노무직 일자리들뿐이다. 대표적인 중장년 직업 포털 2곳의 채용정보를 눈으로 훑어본다.

 

 

0000빌 주상복합아파트 경비원 구인/12개월/1조 2교대 주 36시간/월급 190만 원,

000아파트 청소원 모집/6개월/주6일/168만 원,

00동요양보호사 모집/시간제 9:30~12:30(주 15시간)/시급 12,100원,

00동 신축 건물 미화원 모집/주6일(30시간)/근로계약12개월/월급 174만 원,

00어린이집 보조교사 월급 1,042,000원

.....................

 

 

어느 곳에도 시선을 오래 머물며 생각할  수가 없다. 우선 최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드물다. 또 내가 하던 일이 아니어서 엄두도 안 난다. 중장년이나 시니어를 겨냥한 일자리 정보는 어디든 기술 없이, 경력 없이 갈 수 있고, 언제라도 잘릴 각오로 가야 하는 그런 일자리 같았다. 청소나 경비직은 파견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임계장 이야기>를 쓴 저자 조정진 작가가 왜 공기업 출신이면서도 임시직, 계약직으로 전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쓴 작가 고 이순자 씨도 생각났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62세부터 세탁공장 수건 접기, 백화점·건물 공사장·병원 청소, 어린이집 주방 업무, 가정집 아기 돌보미로 전전하다 요양보호사로 정착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력서의 학력도 경력도 없애고 자존심 따윈 내려놓은 채 아무 일이나 주는 대로 하겠다고 굽혀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는 그분의 증언은 지금 생계 앞에 서 있는 노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 이력서의 경력도 자격증도 모두 필요 없는 알량한 휴지 조각같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분투하며 보냈던 시간이 안타깝고 씁쓸할 뿐이다. 대체 나는 어떤 일자리를 상상했던 것일까.

지자체 공공시설이나 기관 등에 파견되어 월 30시간 정도 일하는 정부 노인 일자리는 나같이 생계형 노인은 갈 수 없다. 그나마 연령대도 65세 이상이다. 60세부터 65세 미만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나 시장형 일자리는 한정적일 뿐 아니라 근무 시간도 월 60시간 이내로 제한되어 있어 임금도 50만 원대에 불과하다. 정부 노인 일자리는 여전히 용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업급여 수급 7개월째를 맞고 있는 내가 고용노동부의 의도대로라면 지금 막바지 재취업 의욕을 갈아 넣어야 할 때이다. 그런데 나는 점점 더 취업을 기피하고 싶어진다. ‘근로의욕’이 사라진다. 진짜 복지라고 주장하는 ‘일자리의 질’은 나몰라라 놔둔 채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소 탓만 한다. 내가 겪은 실업부조 제도의 결론이다. 영화 <인턴>에서 멋진 시니어 인턴으로 자신의 경험을 발휘하는 지혜로운 로버트 드니로는 환상이다. 덕분에 노인 일자리에 대한 나의 환상은 완전히 깨졌다. 그렇다고 해도 생계형 노인인 내가 일하기 위해서 고 이순자 씨처럼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실업 급여의 목표인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댓글 8
  • 2023-02-27 09:21

    당연히 받아야 할 걸 받는데, 시혜를 받는 듯한 느낌, 엄청난 감정의 소모를 요구하는 먼불빛 실업급여 분투기를 읽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프랑스에서 정년연장법안이 올라왔을 때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연대하여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그 기사를 보고 '정년연장'이 보편복지의 확대 대신 각자 알아서 일해서 먹고 살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실업급여에 이어, 초고령화 사회에서의 정년과 연금, 노인의 생계와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 2023-02-27 13:27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네요. 문제는 우리가 요지경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 ㅠㅠ
    먼불빛님 글 읽으니 예전 기억도 되살아나고 .. 그렇네요.. 감사해요

  • 2023-02-27 14:17

    백수 선배님 먼불빛님께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여쭸었는데… 먼불빛님 글을 읽으며 결코 슬기로울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을 미리 엿볼 수 있었습니다ㅜ 글 감사드려요. 그리고 다시 쓰실 글을 기대합니다.

  • 2023-02-27 14:29

    10여년 전 실업급여 받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때는 아직 젊어서 그렇게 분노가 일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좀 더 느슨했던 것 같고 이렇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도 같고요
    점점 실업이 많아지고 실업급여자가 많아져서 더 심해지나 보네요
    어쨌거나 신자유주의 이후 '복지'와 관련된 것들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먼불빛님, 응원해요~

  • 2023-02-27 20:59

    샘 말대로 정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군요!
    속이 쓰립니다 정말!
    예전에 대관업무할 때 공무원들한테 굽신거리던 생각도 나구요.
    실업급여는 권리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 2023-02-27 21:40

    요즘 이직전에 실업급여 받고 쉴려고 하는 직장동료들이 받아서 그져 쉴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좋게 생각했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네요ㅠ
    쉽지않은 일이였군요ㅠ
    먼불빛님 응원합니다~!!

  • 2023-02-27 21:42

    먼불빛님 글 읽으며, 샘 글에 소개된 <예순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를 일욜엔양생팀과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녹록치는 않지만, 계속 힘내는 방법으로 글쓰기가 의지가 되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 2023-02-28 19:09

    잠재적 땡땡 취급하고 ‘임계장’, ‘고다자’로 여기는 현실이 복지 시스템의 민낯이네요ㅠ 먼불빛님 앞으로의 글도 응원합니다!

문탁의 나이듦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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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5.12 조회 338
먼불빛의 웰컴 투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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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먼불빛 2023.05.11 조회 22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가마솥 2023.05.03 조회 267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문탁 2023.05.03 조회 19
인문약방 에세이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문탁 2023.05.03 조회 8
인문약방 에세이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문탁 2023.05.02 조회 147
인문약방 에세이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문탁 2023.05.02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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