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노인 실업자, 복지 수혜자로 산다는 것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저항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과감히 거부했다”라고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까.
제도의 수혜자로 힘없는 ‘약자’로서의 하소연, 소심한 복수로 이 글을 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만 풀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주제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성찰과
깨달음의 글을 다시 쓰는 나를 기대해 본다.
정년퇴직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년 백수. 백수가 되기 위한 필수 아이템, 백수 패션의 완성을 위해 나는 1+1 하는 저가 의류 매장에서 츄리닝 바지 2개와 맨투맨 티 2개를 샀다. 백수 패션은 바깥 생활에 요구되는 눈치와 예의 따위를 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백수로 좀 더 살고 싶었으나 정년 백수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놓치기 아까운 혜택이었다. 정년퇴직도 비자발적 실업이므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데,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이내 받지 않으면 모두 다 소멸하기 때문에 빨리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매월 급여를 받기까지 제도는 내가 얼마나 비루하고 하찮은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재취업이 전제된 조건부 급여의 성격은 자유로운 백수의 영혼이 아닌 비루한 ‘노인 실업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찾아본 일자리는 나의 취업 의지를 더 꺾었고, 실업급여는 나의 자존감을 더 깎았다.
마법의 돈-공공부조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비자발적 이유로 퇴사를 한 경우에 한 해 생계비 걱정 않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고용보험 제도로서 국가의 1차 사회안전망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보편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이다. 조건이 붙는다. 대표적인 복지 프레임이 근로연계복지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슬로건 아래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그런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어떤 것도 지원할 수 없다는 기조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대표적이다. 우선 비자발적 실업자(해고, 계약만료, 질병, 원거리 이사 등)여야 하고, 고용보험 피보험 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하며, 반드시 재취업을 전제로 한 구직활동 증빙을 제출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복지제도에 조건이 붙는다는 것은 그 복지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아닌 ‘시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을 전달하는 자의 막강한 권력관계 안으로 포섭되는 것임을 나는 실업급여를 받는 7개월의 경험을 통해 톡톡히 깨달았다. 잔혹 동화의 마법사 같다. ‘너 내 말 잘 들어야 떡 하나 줄 거야’ 마법사는 말한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떡을 받기 위해 기꺼이 마법에 걸려든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버려야 하는 마법. 나 역시 마법에 걸렸다.
투명 인간과 AI의 만남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모든 절차와 처리는 인터넷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교육을 빼고 맨 처음 1회와 4회차에는 직접 고용복지플러스센터로 방문해야 한다. 첫 번째 방문은 얼굴을 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쳐도(그렇다고 해도 담당자와 나는 말을 섞을 일이 없었다),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정말 모르겠다. 역시 담당자와 눈길도,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투명 인간이 된다. 모든 설명은 서류로 한다. 창구에 앉아 있는 시간은 단 몇 분도 안 된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클릭하거나 두드렸고, 나는 계속 그들이 말없이 내민 서류에 사인만 해댔다. 나만 그런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니 비슷한 반응이다. 아마도 ‘대면’이 주는 강압의 더 큰 효과를 노리는 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친절의 문제일까? 아니, 그런 문제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업급여 제도를 실행하는 모든 과정은 법규와 규칙을 세세하게 해석해놓은 효율화된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효율은 필수적으로 관료화를 부른다. 모든 사람은 매뉴얼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규격화된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들의 관리 대상인 ‘복지 소비자’일 뿐이다. 말이 필요 없다는 건 관계 속에서 빚어질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고, 예외란 매뉴얼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제재 조치 감이다. 창구에 앉아 있는 그들의 얼굴이 매뉴얼 책자처럼 보였다. 입력된 값에 따라 움직이는 AI 행정 관료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가 절로 떠올랐다. 영국 실업 부조의 관료주의적 시스템, 인간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자본주의 복지제도의 폐해를 생생하게 고발하는 영화다. 한 시민 다니엘 블레이크가 경직된 복지 제도 시스템하에서 어떻게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심장병에 걸려 질병 수당을 청구한 댄(다니엘 블레이크)에게 현실에 맞지도 않는 매뉴얼만 강압적으로 읊조리는 심사관, 수당이 끊기면 당장 끼니를 굶을 위기에 처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차만 강조하는 고용센터 직원들,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급여를 타지 못하고 쫓겨나는 또 다른 실업자 케이티는 결국 생리대를 훔치고 성매매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인터넷 신청을 할 줄 모르는 댄에게 친절했던 공무원은 상급자에게 불려가 잘못된 선례를 남긴다는 질타를 받는 모습도 나온다. 조금 과장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통제와 관리의 위계적 복지 시스템의 모습은 영국이나 여기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잠재적 범죄자가 되다
매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실업 인정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이 신청 과정 과정마다 부정수급 경고들과 다그치듯 확인하는 사항들을 반복적으로 거치다 보면 인내심의 한계가 온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런 문구와 절차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맨 처음 실업 신청 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방문할 때도 엄청나게 많은 곳에 사인을 했다. 부정수급하면 처벌받겠다.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겠다, 허위 증빙 서류 제출 시 제재 조치에 응하겠다...등등. 그런데 같은 내용들이 매월 제출하는 인터넷 절차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강조 또 강조된다. 이쯤이면 실업급여 수급자는 잠재적 범죄자나, 도둑놈이며, ‘피의자’와 비슷한 신분이 된다. 복지 수혜자는 언제든 거짓말로 급여를 타낼 수 있다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꿀꺽 참고 삼키는 자에게 떡(실업급여)은 주어진다. 자존심은 개에게 줘버려야 한다.
실업급여 담당자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직업훈련도 나의 실업급여 담당자에게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단다. 우선 내가 구직하고자 하는 직종과의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구직활동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전 협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참에 IT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직업훈련도 구직활동으로 인정되므로 그에 해당하는 서류를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온 담당자의 목소리는 많이 격앙되어 있었다.
담당자. “선생님~ 지금 직업훈련 받고 계신 거예요? 이렇게 하시면 안 되세요. 사전에 의논하셨어야죠.”
나. 순간 당황 “...예에?..”
담당자. “이 자격증 과정 왜 따려고 하시는 거죠?”
나. 정신을 차리고 “아, 원래 할 줄은 아는데요. 자격증이 있으면 그걸 이력서에 표현할 수 있잖아요. 나이 60세니까 보통 문서나 행정 능력 없는 걸로 볼 확률이 높으니까요...”
나는 안절부절 구구한 설명을 했다. 그 순간 이번 달 실업급여를 못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담당자는 교육 시간과 일정을 꼼꼼히 따져 물으며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더니 다행히 나긋해진 말투로 처리해 주겠다고 답변했다. 물론 다음부터 이러시면 안 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면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상황에 화가 나거나, 항의할 생각보다는 ‘한 번만 봐주세요~! 몰랐어요...’하며 저자세로 읍소할 생각을 먼저 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노인 일자리의 저열함
실업 인정 절차(구직활동 증빙서류)가 급여를 타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지라도 재취업에 대한 은근한 심리적 압박이 안 될 수 없다. 그냥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대충 만든 이력서를 한두 곳에 찔러 넣고 증빙만 뽑으면 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내 이름이 들어 있는 이력서를 아무 곳에나 노출시키는 것도 께름칙했고, 이왕이면 취업도 하고 싶었다. 밤늦도록 일자리를 찾느라 이리저리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다녀 봤지만, 얻어지는 정보는 그저 긴 한숨만 토하게 할 뿐 이력서를 내밀 만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익장의 준말), 고다자(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노인 노동자를 일컫는 말)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는 저임금의 임시, 단순노무직 일자리들뿐이다. 대표적인 중장년 직업 포털 2곳의 채용정보를 눈으로 훑어본다.
0000빌 주상복합아파트 경비원 구인/12개월/1조 2교대 주 36시간/월급 190만 원,
000아파트 청소원 모집/6개월/주6일/168만 원,
00동요양보호사 모집/시간제 9:30~12:30(주 15시간)/시급 12,100원,
00동 신축 건물 미화원 모집/주6일(30시간)/근로계약12개월/월급 174만 원,
00어린이집 보조교사 월급 1,04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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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도 시선을 오래 머물며 생각할 수가 없다. 우선 최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드물다. 또 내가 하던 일이 아니어서 엄두도 안 난다. 중장년이나 시니어를 겨냥한 일자리 정보는 어디든 기술 없이, 경력 없이 갈 수 있고, 언제라도 잘릴 각오로 가야 하는 그런 일자리 같았다. 청소나 경비직은 파견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임계장 이야기>를 쓴 저자 조정진 작가가 왜 공기업 출신이면서도 임시직, 계약직으로 전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쓴 작가 고 이순자 씨도 생각났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62세부터 세탁공장 수건 접기, 백화점·건물 공사장·병원 청소, 어린이집 주방 업무, 가정집 아기 돌보미로 전전하다 요양보호사로 정착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력서의 학력도 경력도 없애고 자존심 따윈 내려놓은 채 아무 일이나 주는 대로 하겠다고 굽혀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는 그분의 증언은 지금 생계 앞에 서 있는 노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 이력서의 경력도 자격증도 모두 필요 없는 알량한 휴지 조각같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분투하며 보냈던 시간이 안타깝고 씁쓸할 뿐이다. 대체 나는 어떤 일자리를 상상했던 것일까.
지자체 공공시설이나 기관 등에 파견되어 월 30시간 정도 일하는 정부 노인 일자리는 나같이 생계형 노인은 갈 수 없다. 그나마 연령대도 65세 이상이다. 60세부터 65세 미만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나 시장형 일자리는 한정적일 뿐 아니라 근무 시간도 월 60시간 이내로 제한되어 있어 임금도 50만 원대에 불과하다. 정부 노인 일자리는 여전히 용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업급여 수급 7개월째를 맞고 있는 내가 고용노동부의 의도대로라면 지금 막바지 재취업 의욕을 갈아 넣어야 할 때이다. 그런데 나는 점점 더 취업을 기피하고 싶어진다. ‘근로의욕’이 사라진다. 진짜 복지라고 주장하는 ‘일자리의 질’은 나몰라라 놔둔 채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소 탓만 한다. 내가 겪은 실업부조 제도의 결론이다. 영화 <인턴>에서 멋진 시니어 인턴으로 자신의 경험을 발휘하는 지혜로운 로버트 드니로는 환상이다. 덕분에 노인 일자리에 대한 나의 환상은 완전히 깨졌다. 그렇다고 해도 생계형 노인인 내가 일하기 위해서 고 이순자 씨처럼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실업 급여의 목표인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걸 받는데, 시혜를 받는 듯한 느낌, 엄청난 감정의 소모를 요구하는 먼불빛 실업급여 분투기를 읽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프랑스에서 정년연장법안이 올라왔을 때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연대하여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그 기사를 보고 '정년연장'이 보편복지의 확대 대신 각자 알아서 일해서 먹고 살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실업급여에 이어, 초고령화 사회에서의 정년과 연금, 노인의 생계와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네요. 문제는 우리가 요지경 속 등장인물이라는 것 ㅠㅠ
먼불빛님 글 읽으니 예전 기억도 되살아나고 .. 그렇네요.. 감사해요
백수 선배님 먼불빛님께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여쭸었는데… 먼불빛님 글을 읽으며 결코 슬기로울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을 미리 엿볼 수 있었습니다ㅜ 글 감사드려요. 그리고 다시 쓰실 글을 기대합니다.
10여년 전 실업급여 받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때는 아직 젊어서 그렇게 분노가 일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좀 더 느슨했던 것 같고 이렇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도 같고요
점점 실업이 많아지고 실업급여자가 많아져서 더 심해지나 보네요
어쨌거나 신자유주의 이후 '복지'와 관련된 것들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먼불빛님, 응원해요~
샘 말대로 정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군요!
속이 쓰립니다 정말!
예전에 대관업무할 때 공무원들한테 굽신거리던 생각도 나구요.
실업급여는 권리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요즘 이직전에 실업급여 받고 쉴려고 하는 직장동료들이 받아서 그져 쉴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좋게 생각했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네요ㅠ
쉽지않은 일이였군요ㅠ
먼불빛님 응원합니다~!!
먼불빛님 글 읽으며, 샘 글에 소개된 <예순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를 일욜엔양생팀과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녹록치는 않지만, 계속 힘내는 방법으로 글쓰기가 의지가 되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잠재적 땡땡 취급하고 ‘임계장’, ‘고다자’로 여기는 현실이 복지 시스템의 민낯이네요ㅠ 먼불빛님 앞으로의 글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