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14차 후기 : 어디로 돌아가나

진달래
2023-03-2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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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27년의 기록에 '겨울 기백희가 왔다(來).' 즉 친정으로 부모님을 뵈러 왔다는 기록이 있다. 

기백희(杞伯姬)는 기나라로 시집을 간 노 장공의 딸이다. 

<좌전>에 기백희가 친정에 온 것을 쓰면서 제후의 딸이 친정에 오는 것을 래(來)라고 하고 쫓겨난 것을 래귀(來歸)라고 한다고 적어 준 것이다. 부인이 친정에 가는 것은 여모(如某), 즉 어디에 갔다라고 하고 부인이 쫓겨났을 때는 귀우모(歸于某) 그러니까 어디로 돌아갔다고 한다고 했다. 

양백준 선생이 여기에 영(寧)은 안(安),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하고 여자가 출가를 하고 여자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을 귀녕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귀녕을 제후의 딸들이 할 때 래(來)라고 쓰는데 이 말을 장차 남편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고 출(出)은 남편 집에서 버림을 받는 것으로 래귀(來歸)가 와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좌전>에는 이렇게 글자의 용례를 적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공 28년의 기록에 진 헌공의 아내 여희, 그리고 태자 신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로 말미암아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인 진 문공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희와 태자 신생의 이야기는 춘추시대 가족 막장극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우선 <좌전>의 기록을 보자. 

진(晉) 헌공이 가(賈)나라에서 부인을 맞이 했는데 자식이 없었다. 제강(齊姜)과 증(烝)하여 진목부인(秦穆夫人/진 목공의 부인)과 태자 신생을 낳았다. 여기서 증(烝)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는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 이 글자는 아버지나 형의 여자를 취하여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고대에는 부친이 죽으면 생모 이외에 아버지가 거느리던 모든 여자들을 자신의 첩으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세가>에는 제강이 제환공의 딸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강이 헌공 아버지의 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진 헌공은 융(戎)에서 두 여자를 맞이해서 결혼했는데 대융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자는 이오를 낳았다. 

진헌공이 후에 여융을 쳤는데 여융의 군주가 여희를 진 헌공에게 시집 보냈다. 

여희가 결혼 할 때 동생도 함께 와서 여희는 해제를 낳고 동생은 탁자를 낳았다. 

여희가 총애를 받자 자기 아들을 즉위 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진 헌공에게 총애를 받던 대부 양오와 동관오에게 뇌물을 주고 헌공에게 말을 해 달라고 했다. 

내용은 곡옥 땅이 군주의 종묘가 있는 곳이니 태자를 보내고 중이와 이오는 포와 굴이 나라의 경계이니 그곳의 책임자로 보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태자와 이오, 중이 등의 왕자들이 그곳에 가면 군주의 권위를 세우고 융땅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헌공에게 간한니 기뻐하면서 왕자들을 모두 변방으로 보냈다. 이에 수도에는 해제와 탁자만 남게 된다. 

신생은 후에 여희의 계략에 빠져 진 헌공이 자살을 명하자 그 명을 받아들여 죽었다. 이에 중이와 이오 등등 여러 공자들이 모두 도망을 갔다.  

 

<예기> 단궁편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의 명을 받고 죽는 신생은 과연 효자일까? 

<예기>에서는 효라고 보진 않는 것 같다. 나중에 그를 공세자(恭世子)라고 불렀다고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여기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일은 의(義)가 아닌데 아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불의를 저지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도망가야 한다고 했다. 

우샘은 이 일이 춘추시대 중반을 들어서며 '종법제가 사라지는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이는 집안 일이면서도 군주와 태자라는 지위 때문에 국가의 일이 되는 이 사건... 

하지만 후에는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여희가 마치 자기 아들을 군주에 올리고 싶어하는 욕심 많은 여자처럼 그려지지만, 이 일은 여희가 오랫동안 꾸준히 준비한 일이였으면 권력 투쟁의 한 장면으로 보아야 한다. 

바로 28년에 여희가 진헌공이 총애하는 두 대부를 이용하여 헌공의 아들들을 변방으로 보내고, 이후에 신생이 큰 공을 세우도록 함으로써, 헌공이 자연스럽게 태자인 신생에게 경계심을 갖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명을 받고 죽은 태자 신생의 슬픈 이야기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어서 여희는 나쁜 여자로 묘사되어 있지만 침략 당한 나라에서 결혼한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별로 없었을 것 같다. 게다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일을 꾸민 것이 나름 지략도 있고, 꽤 똑똑한 여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신생의 세력은 만만치 않았고, 신생은 죽었지만 그 세력은 결국 해제를 죽이고 이오를 군주로 세운다.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한 번 나았던 식규에 관한 이야기이다. 

초나라 영윤자원 그러니까 시동생이 문부인(식규)를 유혹하고자 부인의 궁 옆에 거처를 마련하고 방울을 흔들며 춤(만무)을 췄다고 한다. 그러자 부인이 울면서 말했다. 선군인 문왕은 이 춤을 군대를 훈련시키면서 췄는데 영윤은 원수에게 쓰지 않고 미망인의 곁에서 쓴다고. 자원이 이를 듣고 부끄러워했다. 

미모 때문에 잡혀온 두 여자가 나란히 써 있는 것도 신기하다.

앞에서 제후의 딸들이 친정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두 여자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렇게 보니, 자식까지 낳고 살면서도 말을 안 한 식규도, 오랜 기간 자기 아들을 군주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여희도 모두 고단해 보인다.  

댓글 1
  • 2023-03-28 01:06

    신생의 죽음을 보니 진시황의 아들 부소의 죽음이 생각나네요. 부소도 조고와 이사가 꾸민 거짓 조서에 바로 자살을 하거든요.
    소동파는 <진시황부소론>에서 부소가 거짓 조서를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유를 상앙의 변법 이후 가혹해진 법에서 찾고 있어요. 거기에다 사람을 죽이는데 과감한 진시황의 사나운 성격을 보면 부소가 정말 자살을 명했냐고 감히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죠. 그래서 진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로 이어가구요.
    소동파는 부소가 인(仁)하여서 죽음을 택했다고 했는데, 신생은 효심때문에 죽었다고 해야 할까요?
    점점 냉혹한 세계로 들어가는 춘추시대라 인과 의, 효 이런 단어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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