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12회차 후기 : 군주의 거동

토용
2023-03-07 23:00
82

노나라 장공 22년은 제나라 환공 14년으로 기원전 672년이다. 이 해에 진(陳)나라 내분을 피해서 공자 완이 제나라로 도망을 오고 성을 전씨로 바꾼다. 그가 바로 전씨의 제나라 시조 경중완이다.

<좌전>에서는 경중이 어릴 때 주역점을 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점을 친 결과 관(觀)괘가 否(비)괘로 변한 괘를 만난다. 이에 관한 해석이 길게 이어지는데 꽤 재미있었다. <좌전>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주역>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세미나를 하면서 이건 봄날샘의 다음번 주역이야기에 딱! 쓰기 좋은 글감이라고 꼭 쓰시라고 했다. 그래서 후기에서는 이 재미난 얘기를 안 쓰겠다. 기대하시라. 다음엔 풍지관이다.

 

그런데 후기를 안 쓸 수는 없고 대신 좀 재미없는 얘기를 써야겠다.

장공 23년의 일이다. 장공이 제나라에 다녀왔다. 제나라에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그걸 구경하러 가겠다고 했더니 조귀라는 신하가 예가 아니라고 간언을 한다. 조귀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았는데, 장공 10년에 제나라와 전쟁을 할 때 무엇에 의지해서 전쟁을 할 것이냐고 물었던 신하였다. 아, 그 때도 엄청 꼬장꼬장하게 따지고 들더니 역시나 군주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신하였다.

 

“불가합니다. 무릇 예는 백성을 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맹으로 상하의 법도를 가르치고, 재화의 사용을 제약하고, 조회로 작위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의전을 바로잡고, 장유의 순서를 따르게 하며, 정벌로 이렇게 하지 않는 나라의 죄를 다스립니다. 제후가 왕을 조견하고 왕이 제후국을 순수(巡狩)하는 것은 이 회맹과 조견의 예를 익히기 위함이니, 이런 일이 아니면 임금은 거동하지 않습니다. 임금의 거동은 반드시 기록하는 것이니, 법도에 맞지 않는 일을 기록한다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고 본받겠습니까?”

 

한 나라의 군주가 거동을 하는 경우는 회맹을 할 때, 천자를 뵈러 갈 때, 왕이 순행을 할 때, 질서를 어지럽히는 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이다. 봉건질서의 유지를 위한 거동이 아니면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공은 그럼에도 결국 제나라에 갔다. 굳이 다른 나라 제사를 보러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상력을 좀 보태자면 제나라 군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러 갔던 것 같다. 이 당시 제나라는 제사를 지내면서 초나라 사신을 위해 특별히 무기 등의 군수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강대국 제나라의 군사력이 어떤지 노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장공이라면 엄청 궁금하지 않았을까싶다.

 

 

댓글 2
  • 2023-03-09 21:26

    봄날샘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후기네요ㅋㅋㅋ

  • 2023-03-19 06:49

    ㅎㅎ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띠우님, 시동걸고 빨랑 들어오시지요.
    정말 관괘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하나, 잘 써질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밀린 택수곤괘에 머물고 있기도 하구요...ㅠ
    암튼 좌전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그걸 하나하나 읽어가는 재미는 읽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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