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 19회 후기 - 주 환왕과 정나라의 은원

진달래
2022-07-1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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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공(隱公) 11년 가을 제(齊)나라, 노(魯)나라, 정(鄭)나라가 허(許)나라를 쳤다.

허 장공(莊公)이 위(衛)나라로 도망을 가고 제나라가 노나라에 허나라 땅을 양보하자 은공은 주(周) 왕실에 공경하지 않은 것을 벌하기 위해 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니 땅을 받는 것은 불가하다고 대답을 한다. 이에 제나라는 이 땅을 정나라에게 주었다.

허나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정나라 영고숙(潁考叔)이 선봉대로 나가 성위에 올랐는데 같은 정나라 사람인 자도(子都)가 그를 미워하여 활을 쏴서 떨어뜨렸다. 전쟁이 끝나고 정 장공은 자도를 저주하는 제(祭)를 올렸다고 한다. 주에 따르면 자도가 잘생겨서 정 장공이 그를 총애하여 형벌을 내리는 대신에 이런 저주를 내리는 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군자는 직접 형벌을 내리지 않고, 저주의 제를 지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음~ 뭐가 더 안 좋은 건지.....

 

주나라 환왕(桓王)이 정나라에게 땅을 받고 소분생(蘇忿生)의 땅을 정나라에 주었다.

이 사건에 대해 군자(君子)의 평은  “어짊을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덕의 원천이며 예의 근본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기에 남에게 주었으니 사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역시 마땅하지 않은가?(君子是以知桓王之失鄭也,恕而行之,德之則也,禮之經也,己弗能有,而以與人,人之不至,不亦宜乎。)”라고 말하며 주 환왕이 정나라를 잃을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여기에 대한 주를 보면 “소씨가 왕을 배반하니 12개의 읍은 왕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환공 5년에 (제후들이) 왕을 따라서 정나라는 치게 된 장본이다. (蘇氏叛王 十二邑王所不能有 爲桓五年從王伐鄭張本)” 이라고 되어 있다.

세미나 시간에 ‘환오년(桓五年)’에서 헷갈렸는데 여기서 ‘환(桓)’은 주 환왕이 아니라 노나라 환공을 말한다. 그러니까 은공 11년 주 환왕 8년 주나라가 정나라와 땅을 바꾼 일이 일어나고 5년 뒤에 즉 노나라 환공 5년 주나라 환왕 13년에 주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하는 일이 일어난다.

<사기본기>를 보니 이 때 정나라 사람이 활로 환왕을 쏘아 상처를 입히자 환왕이 달아나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정세가>는 정나라 장공 37년 정 장공이 주나라에 조회하지 않자 주 환왕이 진(陳), 채(蔡), 괵(虢), 위(衛)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를 토벌하였다고 쓰고 있다.

<춘추좌전> 노 환공 5년의 기록을 보면 “가을, 채인, 위인, 진이 왕을 따라 정나라를 쳤다.(秋, 蔡人, 衛人, 陳人從王伐鄭)“이라고 경(經)에 나와 있다. - 춘추시기 전체에서 주나라 왕이 직접 정벌을 나선 것은 이 때 한 번밖에 없다고 한다. 

 

정나라와 주나라가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정 장공 24년 정나라가 주나라 왕실의 직할지에서 곡식을 훔친 사건이 있었고, 정 장공 27년/환왕3년에 정 장공이 주나라 환왕을 조회했으나 이전의 일로 예로써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장공 29년/환왕 5년에는 이에 또 정나라 장공이 원한을 품고 주나라의 허락 없이 노나라와 멀지 않은 팽읍(祊邑)을 정나라에 붙어 있는 허전(許田)과 바꾸었다. 팽읍과 허전은 천자, 즉 주나라 왕이 내려 준 탕목읍(湯沐邑)으로 함부로 바꿀 수 없는데 정나라가 이를 바꾼 것은 주 환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나라가 주나라를 무시하여 주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한 것처럼 보이나, 주 환왕이 자기 땅도 아닌데 정나라에게 땅을 주는 것, 그리고 조회를 오지 않은 일에 계속 화를 내는 것, 그리고 노나라 환공 5년에 주나라가 제후국을 데리고 정나라를 친 것은 주 환왕이 정나라의 주나라에서 경사의 지위를 빼앗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경사의 지위를 빼앗긴 정 장공은 주나라에 조회를 가지 않았다.  정나라가 주나라를 무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일단 시작은 주 환왕의 잘못으로 보고 있다. 

 

은공 때의 주인공은 바야흐로 정 장공(莊公)이 아닌가 싶다. 동생(공숙단)과, 어머니(무강)와의 다툼으로 시작하여 주나라, 송나라, 허나라, 식나라, 오랑캐인 융까지 안 싸우는 날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주나라와의 은원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정나라의 쇠퇴와 더불어 점차 사라지는 듯하다.

 

이렇게 은공11년의 사건들이 마무리 되고 있다. 다음 시간 은공이 우보에 의해 살해 당하게 되는 사건을 볼 것이다. 그리고 소식의 <은공론>을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댓글 2
  • 2022-07-12 23:59

    아하, 주환왕이 아니라 환공5년이군요. 그러면 이야기가 연결되네요.

    왕의 이름도 여러 나라에서 중복되니 잘 따져봐야 되네요. 뭐, 저는 토용이나 진달래에 의지해서 '아, 그런가보다' 하지요.ㅎㅎ

    은공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세미나가 끝났어요. 경에서 잠깐 언급된 것처럼 노나라 임금 중에 제 명에 못죽은(피살된) 군주가 세명인데, 이중 은공이 있네요. 진달래님 말처럼 은공은 나름대로 괜찮은 군주였는데, 그 끝은 초라하게 군주의 예로써 장사도 못지내 경에 기록도 없는 신세가 됐어요. 소식의 <은공론>에는 어떤 은공이 등장하는지 궁금하네요~

  • 2022-07-15 20:49

    사기를 같이 보면서 비어있는 전후 맥락을 좀 엮어봐야겠네요. 

    그래도 뭘 자세히 알게될 것 같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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