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시호(諡號)와 족(族)과 성씨(姓氏)

느티나무
2022-06-28 00:47
86

은공 8년 12월 노나라 대부 무해가 죽자 우보가 그를 위해 시호(諡號)와 족(族)을 내려줄 것을 청하였다. 

은공이 중중에게 족에 대해서 묻자 중중이 대답했다.

"천자는 덕이 있는 자를 제후로 세워 그의 출생지를 성(姓)으로 하사하고 땅을 봉해주고 그 지명을 씨를 삼도록 명합니다. 제후는  자로써 시호를 삼게 하고 그 자손들에게 이를 족으로 삼게 합니다. 관직에 있으면서 대대로 공이 있으면 후손들의 관명을 족으로 삼기도 하고 선조가 봉해진 읍명도 관명을 족으로 삼은 예와 같이 합니다. "

이에 은공은 무해의 자로써 족을 삼도록 명하여 전씨가 되었다.  

 

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런데 이 내용에 붙은 주석이 자그마치 2쪽이 넘게 달려있다. 

해석 따라가기에도 바쁜 터라 이처럼 복잡한 내용이 나오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시호와 성씨와 족에 대한 유래와 쓰임 등에 대한 설명이니 일단 정리라도 한 번 해보자

 

시호를 하사하는 것은 주나라 공왕과 의왕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사후에 그 사람의 행적에 근거하여 이름을 하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천자와 제후들만 시호를 가졌고 경대부들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동주 이후에 경대부들 역시 점차 시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노나라는 시호를 가진 대부가 타국에 비해 비교적 많지만 환광과 장공 이전에는 경의 대부분은 시호가 없었다.

소공과 정공에 이르러서는  하대부들까지도 시호가 없는 이가 없었다.

 

족과 성씨의 씨는 구분하지 않고 같이 싸용했다. 

춘추의 은공과 환공의 시기에는 아직 경대부들에게 성씨를 하사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보가 노나라 대부 무해가 죽자 특별히 그를 위해 족(성씨)을 내려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장공과 민공 이후로는 성씨를 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성씨를 삼는 것의 유래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라의 선조 우는 모친이 율무를 삼키고 낳았기 때문에 하나라의 성은 이(苡-율무 /질경이 )가 되었으며

상나라 선조 설은 그 모친 간적이 제비 알(燕子-제비 연/아들 자)을 먹고 낳았기 때문에 상나라의 성이 자(子)이다.

주나라의 선조는 기인데 그 모친 강원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한 후 낳았기 때문에 주나라의 성은 희(姬-자국/자취)가 되었다. 

이처럼 선조를 잉태한 연유로서 성을 삼았다면 선조들이 본래 거주했던 곳을 따라 성을 얻는 경우도 있다.

순임금이 규예(嬀汭)에서 살았는데 후손인 호공만이 덕이 있어서 주나라가 그에게 규(嬀)라는 성을 내렸으며

강{姜)이 강을 성으로 얻은 까닭 역시 그들이 강수(姜水)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혹은 생(生)을 성(性)으로 해석하여 성(性)은 곧 덕(德)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의 생전의 덕행을 따라서 성을 내리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전설 혹은 전례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으로 반드시 실제와 부합한다고 말할 수 없다. 

 

두예의 주에 따르면

두예의 주석은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성은 그의 유래를 따라서 하사하고, 씨는 봉한 땅을 따라서 하사했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주나라가 순의 후손을 진(陳)나라에 봉하니 그 성은 유래에 따라 규(嬀)라 하고(위의 호공만의 경우),

씨는 봉건한 지역인 진(陳)을 근거로 한 것과 같다.

 

또한 제후에서 대부까지는 그의  자(字)로써 시호를 삼고 그의 후손들은 이를 족성(族姓)으로 삼았다.

당시 제도는 제후의 아들은 공자라 부르고 공자의 아들은 공손이라 부렀는데

공손의 아들을 또 공손이라 부를 수 없어서 제후였던 조부의 자를 씨(氏)로  삼았다. 

노나라의 삼환씨인 계씨, 숙손씨, 맹손씨의 경우는 군주의 아들이었던 공자의 자를 씨로 삼아 하나의 씨족으로 분할했다. 

 

 

선대의 탁월한 공적이 있었던 관직명을 그 족성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마씨(司馬氏), 사공(司空씨氏), 사도씨(司徒氏),

송나라의 사성씨(司城氏), 진(晉)나라의 사씨, 중항씨 등이 그 예이다.

선대가 보유했던 채읍을 족성으로 삼는 경우로 진나라의 한씨, 조씨, 위씨 등이 그 부류다.

 

위 내용들은 각각의 책에 실려 있거나 여러 사람들의 주석에 근거한 것들인데 너무 복잡하여 모두 생략하였다. 

 미주알 고주알 너무도 상세한 근거들을 가져와 설명하고 있는 양백준의 주는

때론 머리가 지끈거리고 '뭐 이런 것까지' 싶기도 하지만 방대한 자료에 놀라고 그의 노고에 감사하기도 하다. 

이렇게 읽어가다 보니 어느덧 은공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댓글 2
  • 2022-06-28 07:26

    정리하느라 애쓰셨어요^^

  • 2022-06-28 16:36

    그니까요. 양선생님 주 보다가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래도 지난 번에 자산 쓰면서 호칭이 하도 많아서 헷갈렸는데, 

    좀 도움이 되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7
문공 1회차 후기 : 역법은 어려워! (1)
토용 | 2024.04.20 | 조회 26
토용 2024.04.20 26
96
희공 39회차 후기 : 순무를 캐고 뜯는 것은 그 뿌리 때문이 아니다. (1)
진달래 | 2024.03.26 | 조회 44
진달래 2024.03.26 44
95
희공38회차 후기: 효산전쟁
봄날 | 2024.03.25 | 조회 36
봄날 2024.03.25 36
94
희공 37회차 후기 : 말 안 듣는 진(秦)목공 (1)
토용 | 2024.03.19 | 조회 48
토용 2024.03.19 48
93
희공36회차 후기 : 그 귀신이 아니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1)
진달래 | 2024.03.11 | 조회 52
진달래 2024.03.11 52
92
희공35회차 후기: 질긴 위성공의 목숨
봄날 | 2024.03.04 | 조회 53
봄날 2024.03.04 53
91
희공 34회차 후기 : 대부가 제후를 고소하다 (1)
토용 | 2024.02.27 | 조회 52
토용 2024.02.27 52
90
회공 33회차 후기 : 자옥이 패한 이유 (1)
진달래 | 2024.02.20 | 조회 66
진달래 2024.02.20 66
89
희공32회차 후기: 성복전쟁은 겨우 이틀? (1)
봄날 | 2024.02.12 | 조회 61
봄날 2024.02.12 61
88
희공 31회차 후기 : 성복전쟁의 서막
토용 | 2024.02.04 | 조회 61
토용 2024.02.04 6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