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 2회차 후기_궁지기(宮之奇)라는 사람

봄날
2023-05-28 22:35
97

희공2년, 진(晉)이 괵나라를 치려면 반드시 우(虞)나라를 거쳐야 했나보다. 그래서 순식이라는 신하가 굴(屈)땅에서 자란 말과 수극의 옥으로 우나라에 뇌물을 주고 길을 빌려달라고 하자고 진문공에게 말했다. 그런데 진공은 보물이 아깝기도 했고, 우나라의 충신 궁지기가 맘에 걸렸다.  이것을 눈치 챈 순식의 대답이 걸작이다. "우나라 땅을 빌리게 되면 주군의 보물은 그냥 다른 창고에 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이미 순식은 우나라를 내 땅처럼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암튼 순식은 궁지기가 이것을 말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순식은 결국 우공이 길을 내줄 것을 예감했다. 궁지기가 유약해 간언을 해도 강하게 하지 못하고, 더구나 궁지기와 우공은 어릴 때부터 궁에서 함께 자랐기 때문에 궁지기의 간언을 우공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 예감은 들어맞았고 우공은 길을 빌려주는 것에 더해 심지어 자기 군대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우나라가 진나라에 길을 빌려준 결과가 어떻게 됐고, 궁지기가 그러지 말라고 간언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이 나중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의 출전이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궁지기는 진나라가 괵을 친다는 병목으로 길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결국 그 칼 끝이 우나라를 겨냥할 것임을 알고 반대한 것이다.  우나라의 현명한 신하인 궁지기는 희공 제위기간 도중 충심으로 간하는 신하로 몇 번 더 나온다.  어쩌겠는가, 군주가 귀닫고 있으면 신하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희공3년 경(經)은 봄 정월 "비가 내리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비는 4월에도 내리지 않고 6월에야 내렸다. 작년 10월 이래 8개월만이지만, 그래도 맹하(한 여름)가 아니어서 가뭄에는 이르지 않았던 것 같다.  가을에는 양곡에서  제환공과 송환공, 강나라, 황나라 군주가 모여 초나라를 정벌할 것을 모의했다. 제환공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노나라에 와서 결맹을 갱신했다.  한편 초나라는 정나라를 쳐들어갔고, 정문공은 초와 강화를 맺으려 했다. 그러나 공숙이 반대했다. 제나라가 정나라를 도와주느라 애쓰는데 초와 강화를 맺으면 의리가 없는 것 아니냐고. 

 

가끔 나오는 어이없는 에피소드는 춘추를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제환공이 채희(제환공의 부인)와 뱃놀이를 하는데, 채희가 장난으로 배를 흔들었다. 그런데 환공이 무서워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채희는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배를 흔들었나 보다. 화가 난 환공이 채희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그렇다고 아예 연을 끊으려 한 건 아니었고, 제 분을 삭이지 못해 한 짓이었는데, ㅎㅎ 채희의 친정은 '이때다' 싶었는지 채희를 홀랑 다른 집으로 시집을 보내버렸다. 하지만  이 일을 그냥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것이, 이것이 훗날 제나라가 채나라를 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패자로 부상하는 제 환공이지만  아무튼 당시의 군주들의 위상은 참으로 인간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ㅎㅎㅎ

 

댓글 1
  • 2023-05-29 00:25

    채희 본인이 원해서 재가했다는 말도 있다하니 과연 뭐가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네요.
    그렇다면 환공이 물 무서워하는거 알고 채희가 일부러 배를 막 흔든거 아닐까요? ㅋㅋㅋ
    어쨌든 이 웃픈 뱃놀이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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