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9회차 후기 : 예수(禮數)는 바르게 써야한다

토용
2023-02-10 12:22
92

장공 17년과 18년의 경(經)과 전(傳)을 읽었다.

 

17년 경의 내용은 간단하다. 춘하추동 각 한 사건씩만 서술하고 있다.

봄에는 제나라가 정나라 집정대신을 인질로 잡아두었는데, 이유는 정나라가 제나라에 조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에는 단지 인질로 잡았다는 내용만 있고, 좌전에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때는 제나라 환공이 패자가 된 직후이고, 정나라는 그것이 못마땅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대신은 가을에 도망가서 정나라로 돌아가는데, 경에만 기록이 있고 전은 없다.

 

여름에는 제나라 군대가 수(遂)에서 섬멸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는 장공 13년, 즉 4년 전에 제나라가 뺏은 지역으로 순임금의 후손이 세운 나라이다. 이후 그 땅에 주둔군을 두었는데, 수의 귀족세력이 술잔치를 벌여 제나라 군사들을 취하게 한 뒤에 다 죽였다는 것이다. 작은 나라 땅덩어리 뺏고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했던 것일까. 패자가 된 제나라로서는 창피한 일이었을 듯.

 

겨울의 기록은 재해다. 추수철에 고라니떼가 곡식을 다 먹어치웠나보다. 경에는 동물이나 곤충떼가 가끔 등장하는데 피해를 입힌 경우에만 기록한다. 그런데 추수철인데 왜 겨울이냐고? 경은 주나라 달력 기준으로 기록한다. 주나라 겨울은 현재 우리의 계절로는 가을이다.

 

18년 기록에는 봄에 일식이 있었고, 여름에 장공이 제수(濟水) 서쪽에서 융을 쫓아냈고, 가을에 곡식에 해를 끼치는 곤충의 재해가 있었다.

 

그런데 경에는 없고 좌전에만 있는 기사가 있다.

괵공(虢公)과 진후(晉侯)가 주나라 왕에게 조회를 하자 왕이 단술을 내어 향연을 베풀고 폐물을 하사하였다는 기사이다. 그런데 괵공과 진후에게 하사한 폐물이 똑같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괵나라는 공(公)이고, 진나라는 후(侯)인데. 좌전은 이에 대해 예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왕이 제후에게 내린 작위에는 명칭과 지위가 같지 않아 예우도 수(등급)가 달라야 하니, 예를 함부로 사람에게 빌려 주어서는 안된다. (王命諸侯 名位不同 禮亦異數 不以禮假人)

 

진후에게 괵공과 똑같이 폐물을 준 것이 바로 신분에 맞지 않은 예를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이라는 뜻이다. 예법은 봉건질서를 지탱하는 중요 기둥이니 엄격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주왕실에서부터 이렇게 잘못 쓰고 있으니, 계손씨가 팔일무를 추게 한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궁금하신 분은 북앤톡 진달래샘의 글 <논어 카메오 열전 10회>를 보세요)

좌전의 저자는 춘추시대 각 제후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봉건질서의 붕괴이유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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