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공 12회차 후기 : 두 발은 땅에 단단히

토용
2022-11-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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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전>을 보통 <춘추>의 주석서라고 한다. 그런데 <좌전>을 그냥 주석서라고만 하기에는 <좌전>의 내용과 거기에 담긴 의미가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는 것이 있는 듯하다. 아직 겨우 은공, 환공 두 군주의 시대를 읽었을 뿐이고,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24년(BC722년~BC698년)의 역사를 읽었을 뿐이지만, 점점 좌전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춘추>의 내용은 정말 간략하다. 지금까지 읽은 주된 내용은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회맹했다는 얘기다. 춘추 초기라 그런지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각 나라들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지, 어느 한 나라가 두드러지게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것 같다.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출발선에서 먼저 치고 나가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렇게 회(會)도 많고 맹(盟)도 많았나보다. 그런데 그렇게 회맹을 많이 하면 뭐하나. 전쟁도 그에 못지않게 많이 벌인다. 회맹하고 약속을 안 지킨다고 전쟁하고, 그리고 다시 회맹하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 되고. 연합을 맺는 나라들은 계속 바뀌고. 역설적이지만 전쟁을 안 하려고 전쟁을 벌이는 것 같다. 최소한 명목상으로라도 봉건시스템은 유지하고 살자고, 패권국가로 향해가는 길목에서 서로서로 눈치 보며 견제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춘추>는 그런 기록의 연속이다.

 

이런 간략한 <춘추>에 풍성한 내용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 <좌전>이다. <춘추>에는 있는 내용이지만 <좌전>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경우도 있고, <춘추>에 없는 내용인데 <좌전>에는 꽤 자세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좌전>을 지은 사람이(좌구명이든, 좌구명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공부집단이든, 좌구명의 제자들이든) <춘추>를 정리한 공자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철학과 윤리에 대해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각 나라의 내부 권력투쟁이 격렬해지고, 외부로의 팽창 압력이 강해지는 춘추시대에 거기에 알맞은 정치 철학과 윤리가 요구되고, <좌전>은 거기에 유가적인 입장에서 응답한 책 아닐까.

 

예를 들면 이번 시간에 읽은 초나라 무왕의 부인 등만이 한 말 같은 것.

환공 13년에 초나라는 라(羅)나라와 전쟁을 한다. 대부 투백비는 군대를 이끌고 가는 막오의 모습을 보고 전쟁에서 질 것을 예감한다. 막오가 발을 높이 들어 걸음을 걸으니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다고(擧趾高 心不固矣) 생각했기 때문이다. 투백비는 초나라 군주에게 지원병을 더 보내라고(必濟師) 간언하였으나 거절당한다.

초나라 군주 무왕은 내심 맘에 걸렸는지 부인 등만에게 말한다. 등만은 꽤 똑똑한 여자였나보다. 남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헤아려서 조언을 해준다. 등만은 투백비의 말이 단순히 지원병을 보내라는 뜻이 아니라 군주가 신의로 백성을 어루만지고 덕으로 백관을 훈계하고 형벌로 막오에게 위엄을 보이라는 뜻(君撫小民以信 訓諸司以德 而威莫敖以刑也)이라고 말한다. 이후 막오는 지난 번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대패하고 목매어 죽는다.

 

등만의 이 에피소드는 <열녀전>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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