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욜엔 양생> 6회차 후기 -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세번째 후기

그믐
2022-04-23 10:16
99

어느 셈나 후기에선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데, 난 아직도 일주일 전 과거에서 못나오고 있나부다.  매일 이렇게 사부작사부작 바쁜 날들, 게의 눈으로 바라보면 채 50년도 되지 않았겠지... 밤을 지새울 수도 있는 문명이 말이다.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3장 물의 신화, 정신공간의 분수령(구술,문자, 컴퓨터), 기억의 틀(중세의 책과 현대의 책), 컴퓨터를 읽었다. (이렇게 후기가 늦으니, 다 복기를 해야하네 ㅜㅜ)

 

우리의 이야기에 물꼬를 튼 첫 질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런 처리장(하수)이 생산하고 쏟아내는 것은 꿈의 물과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리가 멉니다. 도시에는 변함없이 화장실이 필요하다 는 생각이 계획자의 상상을 더욱 단단히 옭아맬 뿐입니다.” P205  : 사실 물의 세정력이 이런게 세균, 병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게 맞는거 아닌가, 깨끗하게 해주고 좋은 건데,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요????

이전엔 배변활동을 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었나 보다. 냄새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민감하진 않았던 거 같고. 점점 더 냄새를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물로 냄새를 씻어내게 되었다. 물은 이제 하수가 되고, 물의 신화는 사라지고 H₂O로 바뀌었다.

냄새를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뭐가 달라진 걸까? 지금은 매일 샤워하고 화장실이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갔고, 심지어 집에 화장실 갯수가 많을수록 좀 더 세련됨을 자랑하는 척도처럼 되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으면 불편하고, 이 불편함은 필요를 생성해서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그게 문명이니까. 물의 세정력은 세균을 막아주고, 이제 인간은 100세 시대를 바라본다. 우리는 변화하고 끊임없이 변형된 존재이다. 하지만, 100세 수명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40년 수명의 문화가 있었다는 거다.  게의 걸음으로 과거로 뒷걸음질치며 과거로 돌아가보라. 지금 우리는 단답으로만 시비판단을 하려는 신체이다. 오지선다 중 하나만 맞다는, 하나만 찾으려는 사유체계가 너무나 강고하다. 그 대표적인 게 학교제도이고 교육이다. 우리는 그 체계 안에서 계속 변형되었는데, 무엇이 변형되었는지를 보라고 일리치는 말한다.

 

정신문화의 분수령이라는 구술 – 문자 – 컴퓨터로 이어진 문화. 손편지와 인쇄물은 분명히 다르다. 심지어 손편지를 복사한 것과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한 것과도 다르지 않은가. 이 과정에 놓친 신체성이 있다. 자동차를 타면서부턴 뚜버기로 살던 신체성과는 어떤 게 달라진 걸까. 어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걸까.

일리치처럼 생각한다는 것, 어떤 변형을 겪었을까, 어떤 변형을 겪고 있는 걸까를 탐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도시락이란  주제로 탐구해 본다면 지금은 다 급식 시대이지만, 불과 20-30년 전까지는 엄마가 싸주시는 도시락(사랑)을 먹었다. 모두가 똑같은 반찬, 먹기싫지만 내 식판에도 올려져 있는 식판 위의 반찬이 아니라. 도시락에도 자율이 있었다. 또 코로나가 만들어준 변형도 있다.  마스크라던가, 비대면 미팅 같은.

 

일리치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로 나누라고 하는 게 아니다.

P290 “컴퓨터에 반대하는 이런 근본주의자에게는 컴퓨터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 컴퓨터를 조작하며 약간의 재미도 느껴보는 것이 이 시대를 살며 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미 공기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컴퓨터의 사용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이 책의 부제인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이라는 것처럼, 이미 상식은 통용되어 질문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서 그것에 대해,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형을 인식하지 않으면 주인없는 명령어가 되어 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경고(?) 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왜곡되어 나를 옭아매는지 예민하게 바라봐야 한다.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리치가 과거를 떠올릴 때 그의 글들이 마치 성직자로서 과거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리치가 성직자여서 그의 시선이나 그의 느낌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옛날 사람들의 삶 자체가, 원시시대부터 제사장이 마을의 제일 큰 어른이었고, 토템이라고 하는 게 누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는 아닌 무슨무슨 종교라기 보단 그냥 삶의 바탕에 흐르는 무언가였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 일리치가 풀어내는 과거는 일리치가 성직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이지, 너무 신화적 추상이거나 성스럽기만 한 그런 쪽의 회상은 아닌 거 아니었을까.

 

일리치 셈나, 지금 세 번째 책, 4강 중 세 번 째 시간을 마쳤다. 앞에 읽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보는 동안 텐션 올라가는 내 심장을 붙잡아야만 했다. (물론 자전거 이야기에서 텐션이 강하게 올라가진 않았지만,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전장연 지하철 투쟁이 그러하게 했다.)  일리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서 그랬다. 아니면 누군가를, 그 무엇을 탓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는 알아차림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다음 시간(내일) 발제는 기린님,  간식은 그믐입니다. 

 

 

 

댓글 4
  • 2022-04-24 06:52

    일주일의 직장생활 중에도 공부하고 후기까지 쓰느라 애쓰셨습니다~~~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는 알아차림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게의 눈으로 현재를 응시한채 과거로 가면서 보이는 것을 통해 현재의 변형을 인식함을 불교의 '알아차림'과 연결시키니

    변화를 어떻게 인식해야하는가 에서 '어떻게'의 내용이 좀 더 채워지더라구요^^

  • 2022-04-24 06:53

    그믐님의 후기에 그날의 대화가 상기되었어요

    단풍님의 말씀처럼 토론후에 다시 책을 읽어보면 처음보다는 쪼~금 이해되네요 ㅎ ㅎ 좀있다 뵙겠습니다

  • 2022-04-24 08:32

    늘 담담하게 스토리를 이어가는 그믐님...

    우리 세미나의 '품위 있는 침묵(dignity)' 담당인걸로... ^^

    우리들의 후기는 또 다른 시간을 기대하게 하네요.

    그와 그녀들이 설레이게 하는 주말아침입니다.

    저도 군고구마 냄새로 주변에 민폐끼치며  부지런히 가겠습니다. 🙂

    • 2022-04-24 14:59

      너무 바지런하신(고군분투) 사유님 덕에 오늘 간식당번이 좀 가벼웠습니다.
      군고구마 넘 맛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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