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할 시간도 부족한데 세미나까지 하는 게임 동아리의 후기

만복
2023-02-15 23:40
397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 모임을 하는 게임 동아리가 이번에는 3주만에 빠르게 다시 모였습니다. 먼저 자백을 하자면, 각자 책 후기를 써서 만나기로 했으나 글을 써오지 못해 이렇게 후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게임 동아리 회원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은 내일까지 마무리해서 댓글로 올릴 예정이에요.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모럴 컴뱃>이었어요. ‘게임은 폭력적이고 나쁜 것이다’라는 주장에 오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통해 반박하는 책이었습니다. 다만, 딱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는 책이어서 게임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을 기대하며 읽은 저희로서는 일면 아쉽기도 했던 책이었습니다.

표지가 너무 별로인 것 아닌지...

  먼저 정군샘의 글을 읽었습니다. 정군샘은 ‘게임 = 나쁜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얼마나 일상속 에 침투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근거가 빈약한 도덕적 명제였는지를 써주셨어요. 이것은 이번 책의 핵심적인 논제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내가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일종의 무의미함과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정군샘의 말처럼 그 느낌이 사실은 게임을 거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논리와 담론에서 생겨난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 우현과 동은은 책에서 제기하는 ‘게임은 사회적 인식처럼 정말 나쁜 것일까?’라는 질문 자체에 의문을 가졌어요. 다시 말해, 게임은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라는 이분법으로 게임의 문제들에 접근하는 것이 정말 유효한가? 라는 것이었죠. 이미 수많은 사람이 별다른 죄책감 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데, 게임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고요. 정군샘은 그럼에도 이 책을 비-게이머들이 읽었으면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유는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신화에 합리적인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다음으로 우현은 폭력적인 게임(서든 어택)을 플레이했던 기억과 그것에 대해 받았던 우려들을 이야기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런 게임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다양한 게임플레이 양상들을 통해 고민해보려고 했어요. 게임이 정말 나쁜가? 라는 책의 문제의식보다 좀 더 나아가보려고 했던 것 같고, 이번에 쓴 글에는 마무리가 좀 아쉬웠는데 흥미로운 주제여서 좀 더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동은은 지난 게임 세미나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이번 책을 읽었어요. 많은 게임 속에 존재하는 PC 요소들이 플레이어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이유를 고민했고, 책에 나오는 ‘게임의 감정적 측면에서의 효능’이라는 게념을 끌어와 PC 요소들의 가능성을 발견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동은은 게임 속 PC요소들이 반갑고 즐거웠기 때문에?) 하지만 정군샘은 PC가 게임 속에서 계몽적이고 가르치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PC라는 개념을 가지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보다는 이미 게이머들 사이에서 놀림거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에, PC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서고 PC라는 용어와는 이제 결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었어요.

 

  3월은 다들 바쁘신 관계로 다음 모임은 4월 12일(세미나)과 14일(게임나잇)으로 다소 멀찍이 정해졌어요. 이번에는 책을 읽지 않고, 다음 모임까지 자신이 하는 게임 혹은 다른 게임을 해보고 나름대로 분석해서 비평을 써오기로 했어요. 내일모레 있을 게임나잇을 기대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내일까지 글 못쓰면 게임나잇 오지 말라고 하심...ㅠ)

댓글 4
  • 2023-02-15 23:44

    만복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한 것 같아서, 측은지심에 걍 제가 후기를 썼는데 후기를 써서 올렸군요. ㅎㅎㅎ 아래는 저의 원조 후기입니다.
    ----------------------------------------------------------
    지난 달 모임 이후에, 게임동호회 세미나 후기가 올라오고 어쩐지 '게임'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듯하여 내심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그 중에서도 '비디오 게임'이라고 하면 대체로 나쁜 인상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저희가 게임동호회를 하고 있다고 했을 때 가X솥님께서 '우리 아들놈도 그냥 그 거 게임을 그렇게 해가지고, 막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이 선물을 잔뜩 보내고 그랬다니까'라는, 언표만 놓고보면 오히려 좋은 일일 법한 사례를 부정적 어조로 발화하셨고요. ㅎㅎㅎ 그 발화 속의 '아들놈'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게임'은 여전히 거의 모든 '부모들'에게 악몽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발화 속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논점 한가지가 숨어있기도 합니다. 어째서 '게임'에 몰두하는 건 대부분 '아들'인가 하는 점이죠.

    저희의 두번째(사실은 세번째)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은 가X솥님의 발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서 읽은 텍스트 『모럴 컴뱃』도 그 주제, '게임은 게이머를 망치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텍스트고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텍스트의 저자들을 시종일관 '게임'을 옹호합니다. 그것도 여러 심리학, 미디어이론 등의 연구성과를 토대로요. 그리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눈에 띄게 나쁜 영향을 주지도, 그렇다고 눈에 띄게 좋은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모임까지 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저자들의 목표가 좀 더 선명하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하는 여러 여가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을 역설하는 것이죠. 그래서 제목이 '도덕 전쟁'입니다. 게임에 가해지는 사회적 비난의 대부분은 비난하는 사람의 도덕 감정에서 연유하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으면 왜 그렇게 게이머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때리는 것에 몰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건 마치 동양고전을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유학'이 그저 고집불통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동양고전이 실제로 그런 게 전혀 아닌 것처럼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엔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게임'은, 화면의 그래픽 이미지와 게임패드, 유기체적 인간을 결합하여 인간의 사이보그화가 어떤 모습인지 미리 보여주는 미디어입니다. 이를토대로 생각해 보면 훗날 인간 활동의 대부분이 (지금도 거의 그러한 것처럼) 게임화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모임에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 였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모종의 '죄의식'을 갖는게 아닌가 하는 것과 저자들은 게임이 유해하지도 무해하지도 않다는 주장을 펼치는 데 정말 그러한가 하는 것이 그것들입니다. 첫번째의 경우에는 생각해보면 다른 활동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당장 세미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마침 잡은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준비를 소홀하게 하면 그 역시도 어떤 죄책감을 유발하니까요. 이걸 토대로 생각해 보면, 문제는 '게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 외적 환경에 있는 것 같다고 정리했습니다. 『모럴 컴뱃』에서도 자녀가 지나치게 게임에 몰두한다면, 그건 게임의 문제라기 보다는 아이가 처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저의 경우에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게임을 더 오래, 몰입해서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고나면 해야할 일이 똑같이 남아있더라도 한결 가벼운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효능감이 플레이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청소년 청년층이 그렇게나 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도 '게임' 자체의 요소보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非-게이머들은 차라리 밖에가서 운동을 하라고 하지만, 핸드폰을 켜서 잠깐 하고 나올 수 있는 게임이 밖에서 하는 운동보다 훨씬 넘어야할 문턱이 낮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번째에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요컨대 '미디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이건 사실상 뭐라 결론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자들의 의견을 따라가다보면 '게임'은 나쁜 영향도 좋은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게 정말 그런 걸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것처럼 어째서 게이머의 80%, 많게는 90%가 '남성'인 것일까 라는 질문도 그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 '정치적 올바름' 문제까지 끼어들면, '게임'은 그야말로 여성혐오, 경쟁지향, 과정무시의 온갖 나쁜 점을 한꺼번에 안고 있는 매체처럼 보입니다. 여기에서 젊은 세대의 기계적 공정 관념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비슷비슷한 조건의 플레이어들이 시스템 상에서 설정된 같은 조건 아래에서 경쟁하는 여타 게임의 모델들이 그들에게 어떤 '테크닉'을 구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이것은 '가상화폐'와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많습니다. 게임 속에서 미리 연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디지털 자산운용'에 그렇게 쉽게 뛰어들 수 있었을까 싶은 것입니다. 어쨌든, 이 부분에서는 저자들의 설명이 오히려 표피적이라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요컨대 게임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단정하기에는 딱히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체감상 느껴지는 '영향'이 게이머인 우리들에게는 분명 있었으니까요. 이 부분은 차후에 읽을 『게임 : 행위성의 예술』에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자, 저희가 아직 처음이라 이야기가 딱딱 정리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몇번 더 하다보면 나름의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ㅎㅎㅎ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달 게임데이는 17일 금요일 8시부터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우현, 동은, 만복, 정군 중 누구에게라도 연락주셔요.
    이번 달에도 <모두의 골프>, <피파23>, <오버쿡드>, <테트리스 이펙트> 등을 플레이할 예정입니다. (물론, 게임 목록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2023-02-16 17:56

    게임도 하고 게임 중계까지 보는 딸이 하는 말 "엄만 내가 한심해 보여?"
    저는 그냥 할 말이 딱히 없어서 "아니~" 라고 했어요.
    (맥락없는) 젊은 세대의 기계적 공정관념에 늘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리고 가상화폐에 대한 것도 그렇구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후기도 기다릴게여~^^

  • 2023-02-17 14:48

    새삼스럽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도 게임에 대한 변호를 해야 한다는 게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차피 얘기가 통하지 않을테니 그냥 우리끼리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의미에서 게임데이 놀러오셔요ㅎㅎ

    마무리를 조금 수정한 제 글도 첨부합니다~

  • 2023-02-18 12:20

    2.17 게임데이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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