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리행론 3회차 후기

요요
2022-03-31 08:22
285

전체 10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입보리행론을 이제 8품까지 읽었습니다. 6품이 인욕품, 7품이 정진품, 8품이 선정품입니다. 각품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샨티데바는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길에 대해 부처님은 8정도를 설했는데, 대승불교로 오면 8정도는 6바라밀(혹은 10바라밀)로 변형됩니다.  

 

정진과 선정은 8정도의 구성요소이지만, 인욕은 8정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초기불교에서는 인욕을 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겠지요.  <법구경>에도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마라', '분노를 여읨으로 분노를 이긴다'는 가르침이 있는데, 바로 인욕바라밀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8정도도 그렇고 6바라밀도 그렇고 그 내용을 모르지는 않습니다만, 구체적 상황에 부딪치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이고, 바라밀을 닦는 것일까, 헷갈리기도 하고, 괜히 주눅들어 반성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입보리행론>의 특징 중 하나는 '인욕해라, 정진해라, 선정을 닦아라 '라고 명령하기보다는 왜 인욕해야 하고, 왜 정진해야 하고, 어떻게 선정을 닦아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합니다. 비록 압축적인 시의 형태로 쓰여진 게송이지만 시적이라기 보다는 아주 논리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욕품이란, 욕됨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금강경>에도 가리왕이 보살의 몸을 갈기갈기 조각냈지만 보살은 동요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욕하고 비난해도 분노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욕입니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참는 것은 우리의 품격과도 관계되거니와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품위를 지키면서 비난과 모욕에 지혜롭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샨티데바보살은 번뇌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번뇌의 성질이란  한 마디로 '허깨비'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는 번뇌(분노)들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원래 그런 것은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 웬수야'라고 말하면 '사랑해'로 들리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이 웬수야'라고 하면 '네가 밉다'로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욕바라밀을 닦는 것은 무조건 참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번뇌가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지를 잘 알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또 인욕이 보리심의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대개 우리는 남들 앞에서는 미소를 띠고, 곤란한 상황을 그럭저럭 넘기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치미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욕바라밀은 남들 앞에서 미소를 띠고 있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가 번뇌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인욕품>을 읽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잘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진짜 보리심이 아니라고 하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드는거죠.^^

 

선정품은 읽는 게 더 힘듭니다. 선정바라밀이라면 선정수행을 잘하라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정품에서 샨티데바는 선정하기 위한 조건으로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과 감각적 욕망, 특히 성적 욕망과 재물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버리는 수행법으로 부정관을 닦는 것에 대해 길~게 설합니다. 거기까지는 '잇츠 오케이'입니다. 부처님도 <니까야>에서 고구정녕 말씀하신 거니까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의 감각적 탐욕을 버리는 것은 준비과정에 불과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것이 평등심 수행과 자타상환수행법입니다. 평등심 수행은 자타가 평등하다는 것을 닦는 수행입니다. 아니, 우리는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평등심 수행을 꼭 해야 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평등심 수행은 천부인권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괴로움을 싫어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 그 출발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얼마전 식물세미나를 하고 친구들이 식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던 것도 생각 났고요. 불교의 급진성은 어쩌면 바로 이런 것에 있는 것 아닐까도 싶습니다.

 

자타상환수행법은 저를 매우 괴롭게 했습니다. 아니, 영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읽는 책이 이렇게 괴로워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입니다. 평등심 수행만으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하긴, 사람이 생각도 실천도 그렇게 쉽게 바뀌나요?^^ 그래서 샨티데바는 자타상환수행법을 제시합니다. 우리 마음 속의 우월감과 같은 자만심, 나와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이겨먹으려는 경쟁심, 나보다 잘난 사람과 나를 비교할 때 느끼는 초조감과 열등감, 이런 것들을 어떻게 대치할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건 심리연극 저리가라입니다. 우리 속의 찌질한 생각과 감정들을 아주 날것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을 쓰는 거죠. 도라지는 읽으면서 너무 힘들어서 거의 몸살을 앓은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이렇게 리얼하고 구체적일 수가!! 

 

진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세미나가 진행되다 보니 읽은 부분을 거듭거듭 읽게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혜품을 읽기 전에 선정품을 다시 한 번 더 읽으니 처음 읽을 때에 비해 한결 수월합니다. 자타상환수행법에도 좀 더 마음이 열리면서 음.. 이거 괜찮은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ㅋㅋ 다시 읽으며 감정적인 반응이 확 올라왔던 게송들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네요. 다음에 읽을 지혜품은 논박과 논박으로 이어집니다. 선정품에서는 감정으로 힘들었는데 지혜품에서는 머리가 힘들 것 같네요.. 꼼꼼하게 살펴가며 읽어봅시다. 아무튼 모두 화이팅입니다!!

댓글 3
  • 2022-03-31 10:27

    이 세미나팀이 아닌데도, 입보리행론 같이 하고 싶네요.

    망치 한 대로는 제대로 망치가 되지 못하고, 막 두들겨 맞고 거의 교통사고만큼의 타격을 받아서

    드러눕고, 몸살을 앓고 바닥을 기어다녀야 좀 비어질지...   

    요요샘이 매우 괴롭다하시니, 급 당깁니다...

  • 2022-04-01 15:43

    저는 이래저래 잘 모르는 것들만^^ 지혜품은 진짜 더 모르겠네요.

    음~~ 두꺼운 철학책을 대하는 기분인데 뭔가 모르게 통합시켜주는 느낌도 들고 

    책이 람림에 비해 얇고 안에 내용도 짧은 듯 보였는데 속은 듯한 느낌이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 2022-04-03 20:08

    선정품을 읽으며 힘들던 것들이 지혜품의 어려움으로 잊혀지는 건 또 뭔가요... ㅎㅎ

    선정품을 읽으며 힘들었던 이유는 그래도 끝끝내 놓지 못한 '나' 때문이란 걸 잘 압니다. 

    '무아'인줄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지우지 못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겠죠. 

    몰라서 힘들었다기보다 뭐가 문제인지 너무 잘 알아서 읽는 내내 그 마음이 고달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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