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차 후기

인디언
2023-04-23 11:24
291

불교학교 7회차 후기

 

숫타니파타 ‘여덟 게송의 품’과 ‘피안가는 길의 품’을 공부했습니다.

부처님 계실 때의 인도도 논쟁들이 심했나봅니다.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사문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스승들을 찾아 세를 만들고 모두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서로 싸움을 걸고 논쟁하기를 즐긴 것도 같습니다. 논쟁에 이겼다고 생각하면 우쭐해하며 기뻐하고, 졌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짓밟혔다고 생각하며 분노하고 복수를 다짐하고... 그러다가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요즘도 우리들은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시해버립니다. 아예 다른 생각을 들어보고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미리 거부해버리죠. 그래서 서로 미워하는 마음들이 극을 향해 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견해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생각을 펼쳐나가며 설해주십니다. 다양한 질문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질문하는데 부처님은 각 상황에 맞게 ‘나는 이와 같이 말한다’라며 가르침에 대한 집착없이 그저 이야기하실 뿐이라는 점이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도 합니다.

 

1.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경부터 4. 청정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을 메모하신 유님은 자신이 공부에 집착하는 모습에 대해 자신의 삶에 기준이 되는 무엇인가를 세우고 싶었으나 공부를 할수록 집착하고 고집스럽고 오만한 자신의 모습이 보여 괴로웠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불교 강의>를 읽으면서 마음과 현실이 둘이 아니고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교의 연기, 모든 것이 의존적이라는 불교의 이야기가 욕망이 이끄는 삶이 아닌 ‘향상일로’의 마음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유님을 응원합니다!!!

 

5, 최상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부터 8. 빠쑤라에 대한 설법의 경까지는 인디언이 메모했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 여러 외도의 스승들에 대해서 본 것, 들은 것, 감지된 것이나 지식, 규범과 금계 속에 의존해서 도그마를 만들어서는 안된며, 남들과 비교하여 동등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오만에 대한 경계가 크게 느껴졌고, ‘당파들 가운데 있더라도 당파에 따르지 않는다’는 구절이 많이 다가왔습니다.

부처님 과거 오백생의 부모를 만나고 그 부모가 죽음에 이르자 늙음의 경을 설하셨는데 부모도 사랑하는 사람도 ‘내 것’은 없다!는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예나 지금이나 성적 탐닉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이에 대한 경계도 적지 않습니다. 감각적 쾌락을 벗어나는 것이 알파요 오메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9번째부터 12번째 경까지 메모한 효주님은 11. 투쟁과 논쟁의 경에서 ‘지각’을 조건으로 희론적 개념이 성립하며 희론적 개념의 뿌리에 ‘나는 생각하는 자이다’라는 자의식이 있다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저마다의 ‘자의식’을 뿌리 뽑지 못했기 때문에 평화를 원한다면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각’은 상(想) 으로 색수상행식의 상인데, 이는 개념화, 표상작용에 해당하는데 원어에 ‘실체시한다’는 아상이 포함된 개념이어서 ‘실체시하는 표상작용’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요요샘의 부가설명이 있었습니다.

6처(육내처, 육외처)와 6식, 그리고 후에 유식학에서 더욱 발전시킨 제7식(말라식)과 제8식(알라야식, 업식)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더 공부하는 것으로...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주석에서 쾌락-영원주의 대 불쾌-허무주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영원주의와 허무주의가 어떤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질문하셨는데, 요요샘께서 존재는 상견(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으로 이것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영원주의이고, 비존재는 단견(죽으면 끝이다)으로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로 해석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책에서 불교의 ‘허무주의’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것은 아마 불교학교 내내 화두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13~16번째 경은 착오로 메모가 없어서...

 

피안가는 길의 품은 18개의 경인데 모두 바바린이라는 바라문이 보낸 제자들과 부처님이 나눈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터질 것’이라는 저주를 받아 근심의 화살을 맞은 바바린이 부처님을 찾아가보라는 하늘 사람의 조언에 따라 제자 16명을 보내 부처님께 자신의 근심을 질문하게 한 것. 부처님은 ‘무명이 머리인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믿음과 새김과 삼매와 더불어, 의욕과 정진을 갖춘 지혜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1~4번 경은 오영님과 도라지님 두분이 메모를 해주셨습니다. 오영님은 처음에는 연륜있고 학식 높은 바바린이 사기꾼에 불과한 유행자의 저주에 근심의 화살을 맞고 괴로워하는 상황이 의아했는데 끝까지 일고 나니 바라문의 삶의 양식이 지금의 자본주의적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고 하셨습니다. 존경받고 훌륭한 제자를 거느린 바바린이 걸려 넘어진 것은 액면 그대로 유행자의 저주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며 아주 오래된 깊은 회의와 불안이 유행자의 저주로 촉발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바라문의 제사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존재하려는 욕망만큼 탐욕적이고 꺼지기 힘든 불도 없다’는 것으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달아 출가하였으니 유행승의 저주는 오히려 축복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무리...^^

 

도라지님은 부모님들 보살피느라 못오셨는데 메모에서 ‘지혜, 새김과 더불어 명색은 어떠한 경우에 소멸하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의문이 생긴다고 하셨다. 지혜와 새김으로 인해 명색에 대해 생겨난 무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데 부처님은 ‘의식이 없어지면 그 때 그것이 소멸합니다’라고만 답하고 있으니... 이 부분은 번역의 문제가 좀 있는 것같다는 요요샘 말씀이 있었고(‘지혜와 새김을 통해서 명색은 어떠한 경우에---’) 도라지샘이 메모한 “환멸문으로 보면 명색이 사라지면 지혜와 새김도 사라지는 것은 맞겠다”는 부분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12연기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5~8번경을 메모한 초빈님은 괴로움은 집착에서 생기는데 현자는 어떻게 괴로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유위적 의식을 제거하고자 하는 수행승은 괴로움을 여의게 될 것이라는 부처님 말씀에서 ‘유위와 유위적 의식’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유위는 연기법이 적용되는 세계이고 이에 대비해 무위는 열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도교에서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요요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초빈님은 이 경들을 읽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들의 불안정하고 필사적인 애씀이 느껴졌다고 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면서 답을 찾고 싶어하는게 똑같구나 생각했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는 것을 무척이나 부러워하셨어요.^^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저를 부디 해탈시켜주세요!’라는 학인의 부탁이다. 초빈님 말대로 놀라운 부탁! 이에 대해 부처님은 자신은 어느 누구도 해탈시켜 줄 수 없다며, 그 방법을 알면 스스로 해탈할 수 있다고, 그 방법은 어떤 것이라도(시간적으로나 위로 아래로 옆으로 가운데로나, 그대가 인식하는 어떤 것이라도) 집착이라는 것을 알아서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고! 참 부처님은 한결같습니다!!

 

미리내님은 9~12번째 경을 메모하셨습니다. 허망한 집착과 갈애를 소멸시키는 방법에 대해 부처님은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인식한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떠나면 된다’고 하십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허무주의’에 대한 생각을 안 하기가 어려운 것도 같습니다. 아무 것도 원치 않는 사람, 생존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며,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취하는 일이 없는 것이 피난처(섬)라고...

미리내샘은 이 ‘섬’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섬은 피난처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지...

요요샘이 지난번에도 한번 말씀하신 적이 있듯이 ‘섬’이라는 말은 피난처라는 의미이고 이 원어에 ‘등불’이라는 다른 의미도 있어서 중국에서는 ‘자기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는 부분을 ‘자등명’으로 한역했다고 합니다. 그 의미는 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나 망망대해에서 살 길을 찾게 해주는 섬이나 세상을 헤매는 우리 중생들의 귀의처라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겠죠.

 

이렇게 후기를 쓰다 보니 확실히 복습이 되긴 하네요.^^

 

다음 주에는 이번 시즌 마지막 정리가 있습니다.

요요샘이 내주신 20개의 문제의 답을 찾아보면서 복습해 보시고, 10개의 생각거리를 잘 정리해보신 후 함께 모여 생각들을 나누고 서로 도움을 받는 마무리 자리를 만들어 보아요.

 

댓글 3
  • 2023-04-23 19:08

    와~~ 일목요연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일단 저는 요요샘의 문제 풀기 쉽지 않습니다.ㅠㅠ. 하지만 다시 한번 되새김하는 시간으로 초심자는 두 주먹 불끈 쥐어 보겠습니다~

  • 2023-04-23 19:29

    인디언 쌤의 후기를 읽다보니 요요쌤이 내주신 문제 중에 몇개는 풀리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실수로 빠뜨린 엄청난 구멍도 보이니... 부끄럽습니다. ㅋ

  • 2023-04-24 00:08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도 유행자의 저주라고 여겼던 게 있었더군요. 대차게 걸려 넘어져서 괴로워했었는데... 그게 깨달음의 길로 이어지면 축복이 되겠군요. 포기하지 않고 배움의 길을 가야 얻게 되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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